“그게 무슨…?”
“아하, 그렇다고 입을 열라고 하진 않았소이다.”
“으윽!”
사내가 어떻게 손을 썼는지 정민은 옆구리를 파고드는 고통에 다시 신음을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겨우 몸을 가눈 정민은 승강기 문 앞에 서서 승강기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채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민에게는 한 시간도 더 넘게 느껴졌다.
- 땡, 스르륵!
“어!”
“아니!”
승강기의 문이 열리자 나오려는 사람을 보고 정민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희연이 복도에서 지나쳤던 두 사람과 신경질적인 얼굴로 말을 나누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희연은 승강기 앞에 엉거주춤하며 서있는 정민을 발견하고 놀라 입을 가리며 정민을 쳐다보았다.
“앗, 뭐야! 어이쿠!”
- 우당탕!
뜻하지 않은 희연의 등장에 놀란 정민이 뒷걸음을 치다 뒤에 서있던 사내의 발등을 밟았고, 사내는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정민은 뒤에 서있던 사내가 넘어지자 곧 바로 호텔 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서라!”
“잡아요, 놓치면 약속한 돈은 없어요!”
“제기랄, 너 안서!”
정민은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왜, 희연이가?’
호텔 뒷산으로 뛰어오르며 정민은 희연이 외치던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중국 현지 공장을 세우기 위해 베이징에 도착한 뒤로 자신에게 보여 왔던 태도와는 완전히 달라진 희연의 모습은 정민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 정 대리, 비서실 미스 박은 포기해라.
- 에이, 노 과장님 왜 그러세요! 노 과장님도 희연 씨에게 흑심을…!
- 그게 아니라고, 소문이 안 좋아!
- 무슨 소문이요?
- 응, 그게 그러니까… 에이 그냥 그런 게 있어! 그러니까 미스 박 말고 내가 참한 아가씨 소개해줄 테니 맘을 돌리라고.
- 그런 소리 마십시오.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갑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 골키퍼도 골키퍼 나름이지…. 그게 사…, 으흠!
- 네? 사 뭐라고요?
- 아, 아냐! 하여간 생각 잘하라고, 신세 처량해지기 전에.
‘후우, 그런 거였나! … 희연이가 사장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나. 하지만 왜 날 죽이려고 하는 거야? … 돈 때문인가? 그렇다면, … 그래! 김 사장, 이 개자식! 있는 놈이 더하다더니 앞으로 벌 돈이 얼만데 겨우 10억 때문에 날 죽이려 들어. 으음…!’
정민의 생각은 계속되지 못했다. 정민이 숨어있는 나무 둥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고 이어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일을 이렇게 처리 할 수가 있죠? 당신들 프로가 맞아요? 넷씩이나 돼서 연구실에 처박혀 있던 비리비리한 사람하나 처리 못하고 있다니.”
“사실 승강기 앞에서 그렇게 노골 적으로 소리만 치지 않았어도 그 놈이 쉽게 눈치 채고 도망치지 않았을 것 아니요. 지금 이라도 당신이 인질로 위장해서 지금 그놈을 속일 수 있었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희연의 신경질적인 말이 나오자 사내들끼리 중국말로 싸우는 듯 거친 말이 오고갔고 다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자에게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너무 그러지 마쇼. 우리가 맘을 바꾸면 어떻게 된다는 것쯤 잘 알고 있을 텐데. 지금 괜히 우리 성질을 건드려봐야 아가씨에게 득 될 것 없으니 조용히 우리 뒤나 따르시오. 아님 돌아가서 결과나 기다리던가.”
“…!”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희연은 입을 다물고 한 발 뒤로 뺐다. 그러나 반드시 정민의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라는 사장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그대로 호텔로 돌아가 기다릴 수 도 없었다. 기댈 것이라곤 이 사내들의 능력밖에 없는 희연은 빨리 일이 끝나기만을 기대할 수 없었다. 정민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가슴에 울컥하는 것이 치밀었다. 정민이 자신도 모르게 기척을 내자 급하게 자기 쪽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정민은 그들이 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무조건 뛰기 시작했다.
- 핑!
소음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정민의 어깨를 스치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공포에 휩싸인 정민은 더욱 힘을 다해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정신없이 달리던 정민은 어깨의 총상이 아려온다는 것을 느끼고 어깨의 상처를 보려고 달리면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다리 밑이 허전해 지는 것을 느꼈다.
“으악!”
정민은 한없이 밑으로 미끄러지는 몸을 가누려고 팔을 허우적거렸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대로 밑으로 미끄러지며 정민은 머릿속에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 들이 한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죽는 건가?’
미끄러지던 몸이 어느 순간 공중에 떠오른다고 느끼는 순간 정민의 의식이 아득해졌다.
“으하하하,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더냐?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던 너희들을 위해 흑도의 무지한 놈들을 도륙해 주었거늘 나에게 이런 수모를 안겨주다니…. 그리고도 너희들이 소위 정의를 부르짖는 정파 무림의 수뇌라 할 수 있느냐?”
“이 노음, 어린것이 입이 거칠구나! 여기는 네놈보다 배분이 낮은 분들은 없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명숙들 앞에서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는 거냐?”
검과 도, 그리고 선장과 창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온몸에 피로 목욕을 한 듯 온몸이 피 칠을 한 사내가 검을 비껴들고 서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얼굴의 일부를 가리고 있었고, 몸 이곳저곳에 각종 무기에 피해를 본 듯 많은 상처들이 보였다. 게다가 왼쪽 어깨에는 검은색 화살이 삼분의 이는 부러진 상태로 꽂혀있었다. 화살에는 독이 발라져 있었는지 주위의 살이 검게 변해있었고 지혈이 되지 않은 듯 검은빛을 띤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사내는 왼쪽어깨를 슬쩍 쳐다보았다. 처음 마철궁의 화살을 맞았을 땐 별게 아니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화살촉에는 산공독과 피가 멎지 않게 하는 사천 당문의 절독이 발라져 있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독에 중독된 뒤라 어찌할 수 없었고 그냥 화살을 뽑는다면 출혈이 더 심해져 뒷감당이 되지 않을 것 염려했기 때문에 독이 퍼지지 않도록 하고 화살을 부러뜨려 응급처치를 했다. 하지만 한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결과는 돌이킬 수 없었다.
“후후, 염 도제! 네놈의 간이 배밖에 나왔구나. 감히 본좌 앞에서 그 더러운 입을 함부로 놀리다니. 너부터 이세상의 빛을 더 이상 보지 않게 해주마. 오너라!”
사내의 불같은 눈을 마주친 염상은 오금이 저렸다.
‘쳇, 저놈의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네. 이젠 죽을 때도 되지 않았더냐!’
염상은 슬그머니 옆에 선장을 겨누고 있는 소림 승의 뒤로 빠졌다.
“하하하, 누가 너에게 천하일도 염 도제라고 명호를 붙였는지 눈깔이 삐었구나!”
“아미타불! 정 시주, 이제 그만 하시오. 이제 오 천리를 끓어온 이 지긋지긋한 여정을 끝내시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사내의 눈이 막 말을 끝낸 소림 승에게로 향했다.
“공상대사님, 내가 지은 죄가 무엇이오?”
“그, 그건…!”
“하하하, 사부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군! 너무 강하면 부러질 것이니 한 번쯤은 천부의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져주라고…. 져주기가 싫다면 출도하지 말라 하시고 선도하신 사부의 유명을 어기고 나온 것이 저런 소인배들에게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다니…!”
사내의 입에서 천부라는 말이 나오자 사내를 둘러싼 사람들로 부터 탐욕스런 눈빛이 흘렀다. 천부의 무공은 중원 무림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구파 일방을 비롯한 각종 문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무공과도 그 궤를 달리했다. 물론 사파나 흑도의 무공과도 유사점을 찾을 수 없었다. 도가 계열과 유사점이 있기는 했지만 막상 부딪혀보면 완전히 달랐다. 이렇게 중원의 여타 문파의 무공들과는 다른 신비에 싸인 무공이 천부의 무공이었다.
이렇게 신비에 싸인 천부가 강호에 알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 백여 년 전 소위 천마라 불리는 사파의 고수가 피의 살육을 일으켜 폭풍 앞에 촛불처럼 중원 정파 무림 전체가 공멸의 위기에 몰려 전전긍긍하며 숨죽이고 있을 때였다. 믿었던 소림의 정예 무승, 오백을 중심으로 한 무림연합 일만이 천마가 이끄는 한혈마대 이천의 발굽아래 무참히 패퇴하고 난 후 거의 자포자기가 되었을 때 그 당시 이름만 그럴 듯 했지 하나의 무림 방파로서 알려지지 않았던 장백파의 식객으로 있던 괴 노인이 나서서 천마와의 대결을 벌였다. 믿지 못하게도 많은 사람이이 보는 앞에서 단 일초 일합에 천마를 굴복시켰으며, 거기에다 무지막지한 무공으로 강호 무림을 벌벌 떨게 한 천마를 자신이 타고 온 소의 고삐를 쥐는 종복으로 삼아 홀연히 사라졌다.
그때 그 노인의 무위에 놀란 장백파의 장문이 문파를 묻자 손으로 동쪽하늘을 가리키며 환(桓)라는 말 한 마디만 남기고 떠나갔다. 그런데 천(天)이라고 말을 잘못 알아들은 장백파의 장문인이 천부(天府)라고 전하면서 잘못된 전언이 굳어져 버렸다. 그 뒤로 전설로만 존재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던 천외천(天外天)이 바로 천부라고 치부하고 천부의 무공을 얻기 위해 중원의 무림인들은 노인이 사라지며 손짓한 동쪽을 이 잡듯 눈에 불을 켜고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천부의 무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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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