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생활 대부분의 집들이 보면 남자들은 셧터맨으로 살아간다. 거의 어느 나라나 가게를 하는 집들은 비슷한 수준으로 가는 듯 싶다. 물론 남미의 풍경이다. 브라질, 멕시코, 칠레 등등 인근 나라의 환경도 비슷했다.
사실 장사는 여자가 낫다. 좁은 가게에 둘이 얼굴 맞대고 있음 싸울 일이 많으니 귀찮아서라도 남자들을 밖으로 내모는 이들도 있다.
셧터맨. 그가 하는 일은 아침에 가게에 와서 가게 셧터 드르륵 올려주고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 나절 슬슬 나와 셧터 드르륵 내려주고 가게 문 잠그고 집으로 가는 거다.
아르헨티나 교민의 80프로 이상이 옷에 관한 일을 하다보니 이 셧터맨의 숫자도 엄청나다. 온세와 아베쟈네다 그리고 저 지방 소매상들까지 다 합쳐봐라. 내가 살던 그 때만해도 아르헨티나 한국 교민이 6만명을 웃돌던 때다.
많은 한국 남자들이 낮에 그들이 할 일을 못 찾아 헤매고 다녔다. 그러더니 어느 날 골프가 유행이 되어 버렸다.
랑 친구들은 다 골프 가방 하나씩 매고 골프장으로 출근한다. 물론 셧터 올려주고.
그래서 주말에 교회 끝나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골프 연습장으로 간다. 남자들은 골프 연습하고 아내들은 노냐? 아니다. 애본다. 거의 다 애 엄마니 뭔 골프를 치겠는가. 주중에 가게를 봐야 하는 아내들은 아이들을 시부모나 친정 부모에게 맡겼다가 혹은 식모님에게 맡겼다가 주말에나 아이들과 지내니 아가들이 불쌍해서라도 골프채를 못만진다.
골프 연습장은 여러 곳이 있었지만 한국인들이 잘 몰리는 곳이 있다. 거의 300 미터 길이의 골프 연습장은 공이 휘잉~ 날아가는 것이 다 보이니 진짜 칠만하다. 드라이버, 아이언, 퍼터, 샌드웨찌, 종류별로 골프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대로 폼을 잡아본다. 가끔 내 예상대로 딱! 공이 맞는 감이 손 끝에 전해져오면 전율까지 느껴진다. 그나마 애를 일찍 낳아서 키운 통에 골프채를 가끔 만질 수 있었다.
그렇게 난 폼만 배웠다. ㅎㅎㅎ
대학 다닐 때 체육 시간에 골프 시간이 있었는데...그 때도 폼만 배웠드랬다. 뭘 얼마나 잘쳤는지 모르지만 운동에 별로 소질 없던 내가 A+를 받았드랬다. 체육 쪽에서 받은 점수 중에서 그거 신기록이다. 정말이다. 그래서 난 아직도 골프 연습장 밖에 안가봤지만 나 골프 잘친다고 우긴다. 점수 높게 받았었으니깐두루. ㅎㅎ
골프 연습장은 정말 쌌다. 매점에서 파는 음식도 맛있었고, 커피도 향이 끝내줬다. 남자들은 골프 치는 맛으로 갔지만 사실 아내들은 먹으러 갔다. 아이들 넓은 잔디밭에 풀어놓고 수다떠는 재미도 만만치않았다.
그러다보니 골프를 자주 치는 사람은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 중 한 명은 지방에 소매상을 차려서 갔다. 그들 부부는 교회 오느라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올라와서 주말마다 보게 됐는데 그 남편이 1년만에 거의 프로 수준이 된 것이 아닌가.
그 지방은 골프장이 공짜랜다. 그래서 골프채만 갖고 들어가서 캐디 돈만 주면 되는 거였다. 그는 지방 옷가게를 아내에게 맡기고 셔터맨 생활을 했다. 그리고 새벽부터 밤까지 골프만 쳐댔다고 한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암튼 그는 햇볕에 그슬려 눈만 반짝거리고 새카맸다.
그 중 골프를 젤루 안치는 사람은 알렉한드로와 울랑이었다. 둘은 볼링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우린 볼링을 쳤다가 골프를 쳤다가 그랬다. 또 당구 포켓볼도 유행했었는데 손가락이 짧은 난 당구채 자체가 잡기가 거북스러웠다. 게다가 애딸린 엄마는 거기 들여보내주지도 않아서 볼링장 옆에 딸린 포켓볼 장엔 아예 안들어가려고 애썼다. 거긴 몸매 좍~ 빠진 세뇨리따(아가씨)들이 짧은 원피스 입고 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죽어나는 건 애엄마들이다.
시집살이 하랴. 가게보랴. 애들 불쌍해서 맘 쨘하라. 이 철없는 신랑들은 그저 놀기 바빴다. 뭐 그 중 진짜로 일에 미친 사람들도 있긴했다. 아, 그리고 가게를 안하는 따제르(공장)하는 사람들은 남자도 대부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다림질 하는 사람들은 남자들이 다림질을 했고, 보르다도(수)집은 남자들이 기계를 조작해야 했고, 쉐타 공장도 남자들이 쉐타를 만들어 내야 했다. 여잔 그저 보조에 불과했다.
암튼 그렇게 셧터맨인 직업인 사람들과 랑이 어울리다보니 완전 셧터맨의 습관이 붙어버리는 게 아닌가.
가게는 으례히 내가 보는 것이 정석이 되어 버렸다. 지방을 돌아다니니 한달의 반은 지방을 돌아다니다 오고 그 반은 밤에 나가서 놀다가 왔다. 젊으니 술도 마시고 친구들과 포카도 한 판 치기도 하고...근데 문제는 포카를 치면 자꾸 딴다는 거다. 따면 자리에서 얼른 못 일어난다나. 눈치가 보인댄다. 핑계도 좋아요 암튼.
난 밤 늦게까지 죽어라 일하는데 랑은 갑자기 차도 새로 뽑고, (그때 한국에서 엘란트라가 처음 수입됐었다) 그 엘란트라에 날개도 달고 별 휘황찬란한 차 엑세서리를 다 붙이며 멋을 부리고 다녔다. 뭐 우리 차니까 나도 기분은 좋았는데 차를 너무 아끼고 치사맞게 굴며 호들갑 떨 때가 많아서 좀 속으로 쯔쯔거리며 아니꼬울 때가 많았드랬다.
옷 장사는 대목이 몇 번 있는데 어머니날은 엄마들 옷 대목, 아버지 날은 아버지용 쉐타 대목, 그리고 아무거나 잘 팔리는 제일 큰 크리스마스 대목이 있다.
아마도 어머니 날 대목을 보고 있던 중이었을 꺼다.
지방 소매상 손님들이 밀려와서 주문을 받고 있었다. 가게에 있던 옷이 물량이 딸려서 바느질 집에 만들어 놓은 옷들을 가져와야 했다. 이층 사무실에서 밤새고 놀다 와서 꼬박 꼬박 졸고 있는 랑을 깨워서 얼른 옷을 가져오라고 했다. 랑은 졸던 눈을 비비고 내려오더니 가게 앞에 주차해 놓은 차를 끌고 갔다.
10분이면 다녀 올 거리를 한 시간을 기다려도 안오는 게 아닌가. 잉. 가다 뭔 사고라도 났나? 왜 안오지? 새 차라 고장도 안날텐데...이럼서 바느질집에 전화했더니 안왔댄다.
뭔일이지?
가게를 나가서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잉 우리 차가 있는 게 아닌가. 차 유리창에 선탠을 진하게 해놔서 두 손을 받치고 코를 박고 안을 들여다 봤다.
헉. 잠보 울랑. 거기서 입벌리고 자고 있다.
세상에......손님은 물건 사갖고 간다고 지방서 올라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어 열이 확 받쳤다.
유리창 문을 똑똑 두드려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아 열받어. 화딱지나.
길거리에 있는 돌멩이로 옆 유리창을 확 깨버렸다. 그리고 뒤도 안돌아보고 가게를 왔더니 놀라 일어난 랑이 허겁지겁 공장에 가서 옷을 받아들고 왔다. 어유 얄미워라. 언제 철드냐. 아유 신경질나.
암튼 그 이후로 나만 부려 먹을려고 하는 기세만 보이면 째려보았다.
어딜. 쓰읍. 난 다른 여자들하고 다르다구.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