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hyun's diary?
난 제목의 맨 처음 두글자에 주목했다. dr.?의료일긴가?하긴 진짜 일기면 ...그러면 그렇게 쉽게 보이는곳에 두지 않을거야..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판도라가 상자를 열때처럼 난 그렇게 도둑고양이처럼 책을 대충 치우고 책상위로 기어올라가서 도둑이 된 기분으로 그 상자를 열었다.
일기의 첫 장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사람에게는 두가지 병이 있다. 하나는 몸으로 오는 병, 다른 하나는 마음으로 오는 병..이건 내 마음의 병을 담은 .... 가슴속의 기록이다."
그래서 닥터현의 일기장이라고 붙인거로구만...근데 어떡하냐? 난 지금 너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엔 너무 심심하단다. 내가 자~알 읽어주마.
짤막짤막하게 하루를 표현한 그의 일기는 날짜가 없고 시간도 없다. 그저 '그녀'에 대한 이야기 뿐이다.
'내가 보는 그녀는 참 별나다.. 그녀의 눈이 나를 보면 난 저절로 웃음이 난다. '
첫일기부터 예사롭지 않다..이건 사랑에 관한 이야기 같다..나도 사랑해봐서 안다. 저번에 내가 정나미값을 확실하게 치뤄준 어떤 놈에게 눈이 뒤집혀서... 어쨌거나 저절로 웃음나는건 참 좋은 현상이다. 적어도 저절로 눈물나는 것보다는..
'오늘은 해부학 실습을 하는 날이다. 역시 어떤 녀석은 메스에 손도 못대고 나가버린다. 내가 왜 외과에 진학했는지 난 잘 안다. 그만큼 죽은사람을 잘 겪었기 때문이다.'
죽은사람을 겪다?? 내 눈은 그 밑을 살폈다.
'내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때의 가슴아픔을 알기 때문이다.'
폼 디게 잡네..이놈이...지가 무슨 싸이코 살인마야? 난 남을 고칠수 있는 사람이 사람목숨이 귀한걸 잘 알거라고 믿고있었다. 분명히 다른 뜻일거야..그렇다면..누구를 죽였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그 다음일기엔 그 자기가 죽인 인간에 대해 적지 않았다.
'드디어 인턴생활이 시작됐다. 소독약냄새가 많이 낯설었는데 이젠 그것도 중독이 된거같다.
사랑하는 사람도.......그녀도......이 냄새를 좋아해야 될텐데...'
누구에게 깊게 빠져있구만 아주 깊어....읽고 있을수록 일기속의 그녀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성적인 의사에게 이런 감성이 숨어있다니 세삼 놀랐다..하긴 아까 내 붕대를 감던손길도 그렇고 섬세하긴 한거 같다...이들에게 사랑이란 얼마나 절실한걸까? 한 남자가 이정도로 사랑하는 걸 알면 여자는 어떨까? 한편으론 이런 사랑이 부럽기도 했다. 순진하고 아무것도 안 묻은 사람냄새가 안나는 그냥 사랑이 그리워 질때가 가끔 나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정민기..그 녀석이 다녀간 자리가 그저...허전할뿐이다.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뭐랄까? 그 정나미의 시간들이 갑자기 사라진다는게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채울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까..말이다.
글세 사람이란 참 미묘한 감정을 가졌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저 남의 이야기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이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읽으며 가벼운 생각을 하다니..참..묘하다..만약에 내 이야기라면? 어떤 사람이 날 사랑해서 이런 일기를 썼다면 난 얼마나 행복할까??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하게 엉겨붙어 머리가 아파오는데 쇼파위에 놔두고 온 가방안에서 핸드폰 진동이 들린다. 일단 일기를 접어서 안봤다는 듯이 잘 정돈해두고..
"여보세요?"
"누나?" 지연이다. 꼭 이럴때 전화를 해서 산통깨놓는다니까..
"어 그래"
"누나어디야?" 하는데 문이 열리면서 전화목소리의 주인공이 등장하신다.
그냥 멍해져서 보고있는 지연과 나..
지연은 되려 민망해하면서 나에게 물어온다 "누나 여기 어쩐일이야? 아휴..씨..어 그리고보니 나 누나한테 여기 말한 적 없는데...."
"어...그게.." 뭔가가 찔리는 인간들에겐 항상 그렇듯이 진실이 약이 될수 있다. 그러나 지금 붕대어쩌구 할수 없다. 쪽팔림..ㅡㅡ;;
"어어...전에 한번 재영이가 말한적 있어....."
그런데 지연은 그냥 믿는 눈치다 "어...그렇구나...그녀석이 입이 좀 싸지.."
헐....내동생 지연이 맞니??? 그러더니 지연이가 그 일기를 집어든다 "이야 이쉐끼...이런건 잘 둬야지.." 그러더니 엉뚱하게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누나 이거봤어?"
"아..아..아...아니이이이..." 내가 생각해도 좀 오버해서 대답한 거 같긴하다.ㅡㅡ;;
그러나 이런 내 대답이 별로 거슬리지 않는다는 듯 일기를 보란듯이 펼쳐드는 지연의 반응은 여전히 일기속 사랑만큼이나 흥미롭다.장수를 넘길때마다 바뀌는 표정으로도 개그맨시험에 붙을 건 따놓은 당상이라고나 할까??
남이 일기를 자기것처럼 보며 저렇게 웃을수 있을까? 난 비난하고 싶었지만 그 전에 나도 지은죄가 있어 묵묵부답으로 이어갔다. "킬킬킬킬 이 셱이 이거이거.....의외로 순진해.어떻게 그렇게 가까이 두고도 말한마디 못했던 거지.." 헉 가까이두고도? 뭐야? 누군지 안다는 건가? 이성과 호기심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지연에게 난 이렇게 묻고말았다.
"그게 누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