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연은 영악한 자였다. 훔친 비급을 독학으로 익힌 무공이라 원천적으로 높은 수준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 처음 뒷골목을 장악할 때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점점 등치가 불어날수록 강한 적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했다. 고수들을 포섭하여 가신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자체무력을 키울 것인가. 위연은 후자를 택했다. 고수를 잘못 영입했다가는 오히려 먹히는 수가 있음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절대고수에게는 원만한 합격으로는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고수가 있는 곳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지켜야 했다.
위연은 그동안 세력을 키우면서 점점 간이 붓기 시작했고, 결국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총관 왕방이 말렸을 때 그만 두었어야 할 유가장 날로 삼키기를 밀고 나갔다. 처음에는 계획대로 진행이 잘 되었다. 우선 돈을 들여 무림맹주의 속가제자로 아들을 집어넣었다. 그다음에 유가장 큰딸과의 혼사를 위해 무림맹주를 월하노인으로 앞장세우는데 성공하였고, 이어서 유가장 주변의 무력을 차례차례 제거하였다. 여기까지가 어제까지 순조롭게 진행된 것이다. 확실한 도장을 찍기 위해 아들을 유가장에 보내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었다.
“왜 갑자기 조용해졌지?”
“방주님, 이젠 침입자를 제압했나 봅니다. 제가 나가볼까요?”
“어서 알아보아라!”
“네!”
위연의 지시를 받은 자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시 일각여가 흐르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미치겠네! 나가기만 하면 돌아 올 생각을 하지 않는군. 그놈한테 당했을까? 아니 혹시 이것들이 그냥 도망친 거 아냐?’
위연의 생각이 맞았다. 현재 교응방에서 위연을 따르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자발적으로 따르는 자들이 아니었다. 협박이나 매수를 통해서 교응방에 들어오게 된 자들이 대부분인 까닭에 신뢰니 충성이니 하는 것이 존재하는 주종관계가 아니었다. 그나마 총관 왕방만이 같은 뒷골목 출신이라 그런대로 위연의 가신다운 가신이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뇌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앉아 있어 위연의 곁에는 갈 곳이 없어 눈치를 봐야하는 자들만 남아 있는 셈이었다. 머리가 돌아가는 자들은 철환대가 박살났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창고로 달려가 제몫을 챙겨 달아났다. 미쳐 거기까지 생각이 돌아가지 않는 자들은 직접적인 위협이 다가오자 몸을 피해 달아났던 것이다.
정민은 철환대를 박살내고 나서 나머지 교응방의 무인들은 처리하기위해 싸움을 벌였으나 실력이 형편없어 실망했다. 그래서 애꿎은 건물에다 익힌 무공을 실험하며 방주가 있을 법한 건물을 찾았다. 처음에는 제법 덤벼드는 자들도 있었으나 반 시진 정도가 흐르면서 아예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머쓱해진 정민은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야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응! 총관이란 자가 여기 있군. 헌데 여기 감옥 같은데….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갇힌 모양이군!’
지키는 자들도 없어 썰렁한 뇌옥에 들어서서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 정민이 들어오리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얼굴에 웃음기까지 띄운 채 왕방은 들어서는 정민을 향해 손짓을 했다.
“총관!”
“예, 왕방이요. 어서 오시오! 기다리고 있었소.”
“…?”
“우선, 날 이곳에서 꺼내주시겠소!”
“꺼내?”
“허허허, 열쇠를 가진 놈이 그냥 달아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탁드리는 거요.”
“열쇠…! 아, 어디에 있나?”
“허! 중원사람이 아니었소이까.”
‘중원사람! 그놈이 열쇠를 가져갔다는 소리인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모양이군! 여, 여기… 이렇게…(고개 끄떡)! 그럼 해주시오.”
왕방은 손짓으로 자물쇠를 깨달라고 손짓으로 한 뒤, 멀찌감치 뒤로 물러섰다.
‘열쇠가 없다는 말이군! 그럼 부셔야지.’
정민은 한 손으로 자물쇠를 움켜쥐고 비틀었다. 자물쇠는 제 모습을 잃고 고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왕방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쇠로 만든 건데 너무 쉽게 자물쇠를 부수는 것을 보고 혹시나 파편이 튀어 다칠까 걱정되어 뒤로 피한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나와라!”
“아, 알았소!”
“방주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이거야! 말로해서 좋게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물 건너갔군. 어이구, 내 팔자야! 친구 하나 잘못만나 말년에 쪽박을 차는구나.’
왕방은 미워도 어쩔 수 없는 옛 친구를 살리고 싶었다. 그러자면 말이 통해야 하는데 아예 말을 못하는 벽을 만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적당히 챙겨 여생을 보내려고 했던 것까지 보장받지 못하게 될 것이 뻔했다. 스스로 뇌옥으로 들어온 것도 괜히 질것이 틀림없는 싸움에서방주 옆에 있다가 개죽음을 당하기 싫어서였다. 더불어서 방주를 비롯한 교응방의 인원 모두가 유가장을 치러 가고나면 적당한 기회를 봐서 뇌옥을 빠져나가 신분을 바꾸고 숨어 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유가장에서 이렇게 직접 치러 올 줄은 생각지 못했고, 게다가 뇌옥을 지키던 자들이 겁을 먹고 그냥 달아나 버리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틀어져 버린 것이다.
“빨리, 앞장서!”
“알았소! 참나….”
정민이 왕방을 앞세우고 뇌옥을 벗어나 방주 위연이 머물고 있는 곳을 향해 가고 있을 때 방중선이 이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공자님, 여기 계셨군요. 어, 왕 총관… 반갑소이다!”
‘만세! 살았다.’
왕방은 다가오는 방중선이 부처님으로 보였다. 절망에서 본 한줄기 희망의 빛이 이렇게 밝은 것일까?
“누, 누구시오?”
“나는 유가장의 방중선이요.”
방중선은 그냥 두건을 벗었다. 정민이 교응방을 철저하게 밟아놓았기 때문에 이젠 신분을 감출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왕방은 예상대로 이들이 유가장에서 왔음을 알고는 왠지 모르게 쓴 약을 먹은 듯 입 안이 썼다.
“역시 유가장에서 오셨군요. 한 가지 할 말이 있소이다.”
“뭐요?”
“참, 저분은 누구시요!”
“공자님은 우리 유가장의 백년손님이 되실 분이요.”
“으흠! 앞으로 유가장은 중원의 중심이 되겠군요.”
“글쎄요, 공적이 될 수도 있겠지요.”
왕방은 고개를 끄떡였다. 절대강자는 늘 질시를 받게 마련이었다. 문득 12년 전에 갑자기 실종된 천부정검이 생각났다. 형주에서 위연을 도와 교응방을 세울 때 절대적인 힘을 보태주었던(?) 혈의맹의 피바람을 잠재운 절대자였다. 무림맹의 재정지원을 자처하면서 수뇌부들을 매수할 때 먼발치에서 본 그는 영웅다운 풍모보다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어 더 큰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 무림맹의 수뇌들이 뒤로 돌아서서 입에 담는 그에 대한 험담을 늘어 놓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실종되자 겉으로는 영웅으로서 추앙하였지만 속으로는 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벌였던 정파 무림의 추악한 짓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방중선의 말이 이해가 됐던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요?”
“이 교응방을 어찌하실 생각이시오?”
“그, 그게…!”
방중선은 얼떨결에 길잡이로 따라왔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될 줄을 몰랐다. 단 한 사람에 의해서 그래도 명색이 무림방파였는데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교응방은 해제한다.”
옆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듣던 정민이 불쑥 끼어들었다.
“네에?”
“허허허! 작지만 그래도 제가 지난 20년 동안 공을 들인 것인데, 이렇게 취급당하니 섭섭하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섭섭하겠지.’
“부하를 챙기지 않는 자는 자격 없다. 해체한다!”
방중선이나, 왕방은 할 말을 잃었다. 특히 왕방은 지금까지 교응방을 꾸려오면서 방주 위연과 자신을 포함해서 수뇌부들이 단 한 번도 제대로 부하들을 챙겨 본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방중선은 왕방의 모습에서 정민의 결정이 타당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 했다.
“역시, 그래야 하겠군요!”
정민의 고개가 끄떡였다.
“모든 건 비밀이다. 남이 알면 넌 죽는다.”
‘너무 심했나!’
정민은 왕방을 향해 심하다 싶은 말과 함께 살기를 뿌렸고, 왕방은 얼굴이 해쓱해지고 온몸을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
“으윽! 아, 알았소. 오늘 난 공자를 보지 못했소.”
죽음이 곁에 찾아온다는 것이 이거라는 걸 실감한 왕방은 죽으면 죽었지 다신 경험하기 싫은 공포를 직접 온몸으로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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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