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이상한 관계(23) 잃어버린 조각을 찾다.

瓚禧 |2005.08.10 10:04
조회 1,377 |추천 0
   

이상한 관계





(23) 잃어버린 조각을 찾다.



그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보고만 있었다................ 영효가 차에 치일 뻔 한 것을.

아니 치이기 직전임을 나란히 봤으면서도 그는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기 까지 했다. 상한이 자기 대신 치었다는 충격과 뒤로 천천히 물러서던 주혁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그녀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영효는 손을 들어 볼을 꼬집어보았다. 볼을 꼬집으면, 자신의 익숙한 침대 위에서 눈을 뜰 것만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아, 내가 악몽을 꾸었구나.’ 하고 깊은 한 숨을 내 뱉으면 그것으로 된 거라고. 따뜻한 코코아 한잔 타 마시고 악몽은 지워버려야지 했다. 그런데 꿈에서 깨지 않고 있었다. 볼을 꼬집었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꿈속이었다. 모든 것이 생생하게 움직여, 주변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고, 솜 인형 같이 축 늘어진 그의 팔이 바로 한 뼘 정도의 거리에 늘어져 있었다. 영효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손을 잡았다. 아직 따스한 온기가 흐르는 그의 손.

‘무슨 악몽이 이렇게 생생하니. 왜 이렇게 생생해? 기분이 이상하네. 빨리 깨야 하는데 이런 악몽 꾸고 싶지 않은데.........’

아아악- 소리라도 지르면, 깨어날까?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목청 터져라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어- 어-’ 벙어리처럼 짧은 어어 소리만 연이어 나올 뿐이었다.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목소리는 안 나오고, 눈앞에 상한의 모습은 너무도 생생하고.

‘깨고 싶어요. 이제 그만 일어나고 싶어요. 이제 그만.....................’

연신 말은 내 뱉는데 말소리가 안 나온다. 주변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상한의 몸을 흔들고 그녀의 몸을 흔드는데도 영효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상한의 모습만 틀어박혀,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보았는데, 영효를 향해 달려오는 차를 보았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그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는데, 상한은 그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를 밀어 버리고 자신이 차에 치어 버렸다. 상한의 몸이 붕 떠서 공중에서 털썩- 아스팔트에 떨어 질 때까지 주혁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서 얼어버린 주혁을 영효가 쳐다보았다. 원망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을 견딜 수 없어. 지금 닥친 상황이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서 주혁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는 그대로 달음질 쳐버렸다. 도망…….쳐 버렸다. 그녀의 원망스러운 눈길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스르르 눈을 떴을 때는 옥색 빛 페인트칠이 눈에 단아하게 들어왔다. 킁킁- 소독약 냄새. 병원이었다. 고개를 돌려 팔을 바라보니 링거가 꼽혀 똑똑 방울 방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분명, 악몽을 꾸었었는데, 병원에는 왜 있는 것일까? 정말 지독한 악몽이었는데........... 악몽이었는데............. 어깨 부분이 욱신거렸다. 환자복 단추를 몇 개 풀어 어깨를 들어내니 짙은 푸른색 멍이 잔뜩 들어있었다. 꿈속에서 상한이 자신의 어깨를 밀치고 그가 대신 치였었는데. 빵빵거리니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헤드라인 불빛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는데. 그게 꿈이 아니었단 말이야? 영효는 팔에 꼽힌 링거를 뽑아버리고는 무작정 병실을 나섰다. 안내데스크로 달려가, “여기 혹시 이상한이라는 남자 입원했나요?” 속사포 같이 말을 쏟아내는 영효를 보던 서른이 훌쩍 넘어 보이는 간호사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뒤뚱 뒤뚱 데스크 안에서 걸어 나와 영효의 팔에 맺힌 피를 닦아 주며 말했다.

“어휴, 이 피 좀 봐. 무식하게 그걸 뽑아버린 거유? 요즘 아가씨들 독해.”

“이상한이라는 남자 입원했냐고요!”

“거참, 그렇게 소리를 안 질러도 내가 알아들어요. 가만 가만 나지막하게 이야기해도 다 알아 들으니, 가만히 좀 있어 봐요. 그렇게 움직이니깐 피가 더 새어 나오잖아요.”

영효의 팔을 지압하기 전까지는 절대 상한의 상태를 말 해주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팔을 지혈하는 간호사를 보며 영효가 한 숨을 내 쉬었다. 혹시나, 그가 잘 못되기라도 한다면....... 안 된다. 영효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만약 그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한다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녀의 팔을 세차게 붕대로 묶은 간호사가 그제야 복도 맨 끝에 있는 방을 가리키며 ‘저기로 가 봐요. 그리고 다른 사람 몸도 좋지만, 자기 자신의 몸 먼저 챙겨야 해요. 그래야 다른 사람 간호도 해 주고 그러지.’ 라고 기어코 한마디 건넸다. 간호사의 말이 결코 그녀를 탓하려 하는 말이 아님을 알기에 영효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빠르게 복도 맨 끝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불과 얼마 안 되는 거리인데 왜 그리도 멀어 보이는지. 벌컥 연 1인용 병실에 그가 누워 있었다.

“상한 씨...........”

그녀의 부름에 항상 웃으며 고개를 돌려 쳐다봐 주던 그가 오늘은 그녀를 쳐다봐 주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 하나에 촉각을 세우고, 자신의 일처럼 말하던 그가 오늘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두 눈을 꼭 감은 채, 누워만 있었다. 이래서 가슴이 아렸던 것일까? 이래서 가슴이 그토록 아팠던 것일까? 심장을 빼내어 버리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나, 나 때문에 이러면........ 난 어떻게 살라고……. 난 어떻게 하라고...........흡…….흑흑……. 일어나 봐.”

울면서 매달리는데도, 그녀가 울면서 매달리는데도 그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를 달래주지도, 울지 마라 다정한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그녀가 원했던 것은 그게 아닌데.

‘눈만 뜨면, 당신 눈만 뜨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할게. 그러니깐 제발....... 제발.............’

간절하게 빌고 또 빌어도, 그는 그대로였다. 영효는 다시 밖으로 뛰어나가, 조금 전 간호사를 붙잡았다.

“저기 환자 상태가 어떤가요? 움직이지 않아요...........읍……. 어떻게 된 거예요?”

인상 좋아 보이는 간호사는 울먹이는 영효의 눈물을 가만히 닦아 주며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푸근한 친언니처럼 다독이면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걱정 말아요. 단지 지금 잠을 자는 것뿐이니깐. 곧 깨어 날거예요. 아직 젊잖아. 그러니 울지 마요. 울지 마……. 그렇게 울면 더 못 일어나요……. 울지 마요.”

울지 말라고, 다정하게 속삭여 주는 간호사의 넓은 품에 안겨 영효는 오열했다. 누군가가 미치게 필요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생판 처음 보는 간호사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영효는 울었다. 의사는 일시적일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게 다 정상이라고. 단지 정신이 깨어 나오지 않는 것뿐이라고. 간호사의 말처럼 그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제발 빨리 깨어나 달라고 애원하는 영효의 간절함을 외면 한 채 그는 잠만 자고 있을 뿐이었다. 회진을 도는 의사의 가운을 붙잡고, 이러다 잘못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영효를 보던 의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젊으니깐 곧  깨어날 거예요. 그나마 다행인 게 심한 내상은 없어서,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벌써 5일이 지나도록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영효에게 의사는 같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금방 깨어난다던 것이 일주일이 다 되어 가고 있는데, 금방 깨어 날 것이라고? 우르르 몰려 나가는 의사무리들을 보며 영효가 신경질 적으로 ‘돌팔이들!’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금방 일어난다더니. 금방 깨어난다더니. 상한은 일어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을 뿐이었다.

“나 더 아프게 하지 말고……. 그만 일어나........ 내가 잘 못했으니깐.........일어나봐...........”

일어만 난다면, 그가 일어만 난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줄 텐데. 일어만 난다면 그가 원하는 것을, 그가 지독히 원했던 마음을 줄 수 있는데...........간절한 그녀의 바람에도 상한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슬슬 화가 났다. 자기 때문에 다친 것인데도 불구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어서 일어나라고, 일어나 보라고 패악질이라도 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서 일어나라고 그를 향해 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게 애가 타는데, 보는 사람 이렇게 가슴 저미는데, 상한은 그런 영효의 마음을 계속 아프게만 할 뿐이었다. 잠잠하던 그 병실에 간호사와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발을 디딘 것은 그가 사고가 난 후 1주일이 지나서였다. 허름한 옷차림의 등산복 차림의 60대의 노인이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영효와 누워있는 상한을 번갈아 쳐다보며 누구시냐는 눈빛을 보내는 영효를 쳐다보았다.

“아가씨를 대신 해서 우리 애가 다친 건가?”

우리 애? 그제야 영효는 기억을 더듬어 상한의 집에 갔었을 때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혼자 사냐는 그녀의 물음에 상한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가끔 아버지가 오기도 하시니깐.’라고 답했었다. 영효는 대답을 재촉하는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풍채 좋고, 인상 좋아 보이는 것이 딱히 그와 닮은 것은 아니지만 풍기는 분위기 하며 느낌이 상한과 너무나 흡사했다.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영효를 향해 ‘어른이 물어보는데 대답 안 할 텐가?’라고 재차 대답을 강요하는 그의 아버지를 향해 영효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흠흠. 면목이 없을 게 뭔가? 저 녀석이 원체 착해서 아가씨가 아니라 해도 뛰어 들었을 놈이라네.……. 그렇게 죄책감 가질 필요 전혀 없네.”

그냥 단지 물어본 것뿐인데,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영효를 향해 아니라고 됐다고 손을 저어 보이며, 성식은 간이 의자에 무거운 몸을 앉혔다. 3개월 만에 돌아온 집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상한이 돌아오셔서 문 잠겨 있으면 걸라고 쥐어준 꼬깃꼬깃해진 종잇조각을 보며 전화를 걸었는데도 받질 않아, 성식은 상한의 집 입구에 쪼그려 앉았다. 벌써 3년이었다. 이렇게 밖으로만 도는 것이. 밖으로라도 돌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집안 구석구석 아내의 모습이 어리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파 숨이 턱턱 막혀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마치 수행하는 사람처럼 오르고 또 올랐다. 사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였다. 아내가 죽고, 자신의 삶을 그 보장된 삶을 쉽게 포기해 버리던 아들을 보고 싶지 않아, 가끔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아들의 눈길이 매서워 그는 도피하듯 전국을 누볐다. 2시간이 넘도록 앉아있는 성식에게 예전 아내의 동네 친구인 여자가 상한의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5시간이고 10시간이고 꼼짝없이 앉아 있었을 것이었다. 워낙 작은 동네이고 소문이 빨리 도는 동네라 영효가 말을 하지 않아도, 성식은 자신의 아들이 왜 그녀를 구하러 뛰어 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소문이라는 것이 과장이 섞이기는 하지만 영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아니지 않은가? 성식은 영효 모르게 그녀를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그녀 너머의 인성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오랜 연륜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이것 좀 드세요.......”

언제 뽑아왔는지 물방울이 맺힌 차가운 음료수를 건네는 영효를 향해 성식이 노장의 다감한 미소를 지어보여 주었다. 혹시나 질책하러 오셨으면 어쩌나, 그녀의 책임이라고 질책한다고 해도 뭐라 할 말이 없지. 그냥 고개 숙이고 죄송합니다. 연신 머리를 숙여야지 했던 영효의 생각과는 달리 성식은 단지 ‘아가씨를 대신 해서 우리 애가 다친 건가?’라고만 물어봤을 뿐, 그 외에 그녀를 질책하는 눈빛이라던가, 언행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그의 태도가 마치 폭풍의 전야처럼 느껴져 영효는 야단맞을 시간만 기다리는 아이처럼 발가락만 꼼지락댈 뿐이었다. 멀뚱히 서 있는 영효를 쳐다보던 성식이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 큰 자식의 손을 쓸어내리며, 혼잣말처럼 그가 말했다.

“우리 애가 남의 것을 빼앗지 못하네. 그냥 그러려니. 혼자 감싸 안고 살지. 세상에 부모만큼 자식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가끔 상한이 녀석 그런 모습을 보면 좀 독하게 키울 걸, 뒤 늦은 후회도 되네...........”

그 말이 꼭 영효의 사랑을 차마 빼앗을 수 없어, 가만히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영효와 상한의 관계에 대해서 모두 다 알고 있는 말투로 말하는 것 같아, 영효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절 죽여주십시오. 하는 태도로 서 있는 영효에게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여기 앉게.’ 하며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고는 간이 의자를 영효에게 건네주었다. 어른의 말씀인지라, 아무 말 못하고 가만히 간이의자에 앉아있는 영효의 가녀린 어깨를 성식이 두어 번 토닥였다.

“난 내 아들이 행복하기를 비네. 그것은 만천하 부모의 공통된 심사 아닌가? 자기 자식 아프게 하는 사람은 무조건 역적이고, 나쁜 놈이고, 자기 자식 좋게 하는 사람이 호인 아니던가? 나는 아가씨를 미워하고 싶지 않네............”

딱 털어놓고, 내 아들이랑 사귀어라, 내 아들의 진심을 알아 달라 말은 못하고 성식은 돌려, 자신의 아들을 봐 달라고 영효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굳이 딱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그 말에 숨겨진 뜻을 모를 리 없는 영효라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친 성식이 다시 무거운 짐을 지며 일어나 영효의 작은 손을 따사로이 감싸 쥐었다.

“내 아들 잘 부탁하네. 아비가 못나서 오래 못 있고 가니, 부디 아가씨가 잘 좀 보살펴 주게나........”

처진 어깨를 하고, 무거운 배낭을 맨 채, 사라지는 성식의 뒷모습을 영효는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아버지와 아들. 둘의 뒷모습이 너무나 닮았다. 영효는 깊은 한 숨을 내 쉬고 다시 병실로 들어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상한을 얄밉게 흘겨보았다.

“당신이나 당신 아버지나, 너무 닮았네........... 어서 일어나. 일어나서 나랑 같이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고, 같이 놀기도 해야지. 아직 할 게 너무 많잖아. 우리...........아직 모르는 것도 너무 많잖아............ 일어나야 같이 하지…….”

그때였다. 상한이 스르르 눈꺼풀을 들어 올린 것은. 그리고 그의 따스한 눈동자가 영효의 얼굴에 박힌 것은.

“사, 상한 씨. 일어 난 거야? 그런 거야? 어디, 어디 괜찮아? 아픈 곳은 없어? 나 기억은 나는 거야?”

그에게 달려가 그의 몸 이곳저곳을 들춰보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영효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상한은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었다. 하, 이렇게 좋을 것을. 이렇게 행복할 것을.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 상한의 큰 손바닥 안에서라면 이렇게 마음 편해진다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괜찮은 거야? 어디 아픈 곳 없는 거야? 와, 나 십년감수했잖아. 어쩜 사람이 그러니? 어쩜 그렇게 ...........흡.........흑흑.........”

“우는 거야?............”

“아, 아니야. 안 울어.”

“우는구먼. 뭘.”

또르르 흘러내리는 영효의 눈물을 상한이 엄지손가락으로 지워주며 그녀에게 말했다.

“걱정 안 해도 돼. 멀쩡한걸.......”

“흡…….그래도…….그래도……. 1주일이 넘도록 잠만 잤단 말이야…….내, 내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는지 알아? 상한 씨 잘못될까봐 내가 빌고 또 빌었다고. 제발 깨어나게 해달라고…….흡흡. 그런데 이게 뭐야! 이렇게 일어날 거면 진작 일어났으면 훨씬 좋았잖아……. 훌쩍.”

어린아이처럼 그의 가슴을 때리며 우는 영효의 작은 어깨를 상한이 가슴으로 감싸 안았다. 사랑하는 여자, 다정한 여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자..........

‘꿈을 꿨어. 꿈속에서 네가 있는 거야. 널 향해 가야 하는데 내 발은 꼼짝도 할 수 없고, 네 곁으로 가야 하는데 난 움직일 수 없고, 넌 점점 더 멀어지고. 저만치서 날 부르며 울먹이는 너를 달래 줘야 하는데, 달래 줘야 하는데....... 결국은 네가 날 깨운 거야. 결국은.......’

사랑하는 영효를 가슴에 안고 상한이 ‘나 없는 동안에 나한테 얼마나 모질었는지 반성 좀 했어?’라고 묻는 그를 그녀가 아프지 않게 꼬집으며 눈을 흘겼다.

“뭐야? 나 골탕 먹으라고 일부러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같잖아.”

앙탈부리는 영효가 못내 사랑스러워 상한이 그녀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참, 의사선생님 불러 올게. 혹시 모르잖아.”

라며 그의 품안에서 빠져 나가려는 영효를 상한이 더 꼭 감싸 앉으며 다정히 ‘조금만 더 우리 이러고 있자.’라고 속삭였다. 달콤한 그의 목소리에 영효는 두 눈을 살포시 감았다. 익숙한 그의 향기. 감은 두 눈 대신 그녀의 후각, 촉각, 청각이 그의 행동 하나 하나에 반응하며 그를 느끼고 있었다.

“정말 같이 할 거야?”

“응?”

눈물 가득 맺힌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되묻는 영효를 바라보며 상한이 ‘나랑 같이 하겠다는 것, 정말 이냐고…….’물었다. 못 들었을 줄 알았는데, 들었나 보다. 남몰래 한 고백을 들켜버린 것 같아, ‘몰라.’라고 말하며 애써 딴청을 하는 영효를 보며 상한이 집요하게 물었다.

“대답해봐. 그렇게 피하지 말고, 그렇게 외면하지 말고. 정말 같이 할 거냐고........”

그가 그렇게 다치고 나서 정말 많은 생각들이 영효의 머릿속을 맴돌았었다. 정리 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돌고 돌아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들을 확신시켜 주었고, 그녀가 몰랐던 감정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그래.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슴 뛰는 사랑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에게 익숙해 져 있었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걸 왜 몰랐던 것일까? 힘들 때 마다 그의 얼굴이 떠오른 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왜 몰랐던 것일까? 가슴이 뛰는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여전히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는 책임감 있는 상한의 얼굴을 쳐다보며 영효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같이 할 거라고. 긍정의 태도를 보였다. 그녀의 행동에 상한이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다시 한 번 가슴으로 깊게 안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가 내 속을 섞이기 전에 진작 교통사고라도 당할 것을 그랬다. 나 친 그 운전자한테 고마워해야겠는걸!”

“뭐야?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죽음처럼 적막하던 병실이 겨우 까르르- 웃음소리로 찼다. 그의 말도 안 되는 말은 벌을 받아야 된다고 씩씩대며 베개를 들고, 그를 쫓아다니는 영효와 그녀를 피해 다니는 상한.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또 한 사람.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