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붉은 여우-9 (외출)

붉은 여우 |2005.08.18 06:35
조회 1,125 |추천 0

  -8 일째 (외출)-

   수연은  아침  6시부터  설레이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  오전에  엄마와   오빠가  오기로  되어있지만  한편으론,  가족들  앞에서  어떡해야  할 건지,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할 것 같은  시간이  가까워  오는 것이  두려워졌다.  오빠와  새언니,  태어난지  한 달 되는  자신의  첫 조카가  생각보다  보고 싶지만,  집에  가야한다는  것이  또 다른  부담감으로  마음을  무겁게  했다.

'집에 있을까?...  없겠지... ? ... 집에 가고 싶지만...  가기 싫다... '

  아침식사를  끝내고  침대에  앉아 있자니  수연은  마음이  점점  조여들었다.   간호원실로  가  언제  나가게  되냐고  물었지만,  10시가  넘으면  가족들이  데리러  온다며  "기다리세요"  라는  말만을  김간호원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연은  그녀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과  표정,  부딪칠 때의  차가운  손짓들이  수연을  싫어한다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병원 환자라서  싫어하는 것인지,  수연 자신의  어떤  부분을  싫어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환자들에게 보다   수연에게는  유독  딱딱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날카롭게  말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수연은  간호원실을  뒤로 하고  목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얼굴과  손을  깨끗이  씻은 후  정리할 것 없는  그녀의  침대와  보조 테이블을   정리하며  시간이  거북이처럼  더디게  지나는 것을  기다렸다.

'아,  시간이  왜 이리 안가지?... 빨리  10시가  되었으면...'

 

  수연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간호원실의  벽시계를  계속 확인했다.  10시 이다.  그러나  병동 문도  열리지 않고,  아무도  오는 이가  없다.  조금  늦나보다  하는 생각에  병동의  입구만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서 있었다.  10시  30분이  지나고서야,   인터폰의  대화가  오가고,  철문이  천천히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 창훈씨? ..."

그는  아무말 없이  성큼성큼  수연에게  다가오더니  들고 온  쇼핑백을  쑤-욱  내밀었다.

" 갈아입을 옷이야.  어머니랑  오빠께서  오신다는 걸  내가   데려온다고  했어. 우선  갈아입고  나와.

나가서  이야기하자.  조용히  둘이서..."

수연은  대답없이  그의 쇼핑백을  받아들고  병실로  돌아와   수연이  즐겨입던  빨간 스웨터와  검정 골덴바지를  입고,  굽낮은  구두를  신은 후  창훈에게  다가갔다. 

" 다 입었어요.  가요."

" 이수연씨,  5시까지  시간지켜서  들어오세요."

 하는  간호원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병동 문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조용한  침묵이  그 좁은  네모난  공간을  밀실로 만드는 것만 같아,  13, 12, 11,10....5...3..2..1   숫자만을  노려보다 '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병원 밖으로  나왔다. 

'아 -'  두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 마시며  내쉬기를   2~3번  반복한  수연은   내품어진  콧김마저   차갑게  얼릴 것 같은  그  공기가  너무도  자유롭게  느껴졌다.

" 수연아..."

뒤에서  조심스레  부르며  불안스러운  눈초리로  서있는  한  남자,  창훈.

" 차 가지고  오셨죠?  잠시  바람쐴 수 있는 곳으로  가요. "

" 그래..."

" 잠시만요,  전화기 좀  줘보세요.  집에  전화  좀  먼저 하고요."

수연은  창훈에게서  휴대폰을  받아   집으로  전화를  했다.  세 번의  울림만에  다급하게  받는  엄마의 목소리... " 연이냐?  "

" 응, 엄마...  엄마,  나  창훈씨랑  이야기 좀 하고  들어갈께.  점심도  먹고 갈거니까  차리지 말고."

" 그래. 그래라.  점심먹고  집에  올거지?"

" 응.  지연이는?  "

" 모른다.  아침부터  어딜 나갔는지,  언니가  온다는데도   아무말 없이  나가더라."

" 알았어요."

 

  수연은  전화를  끊고, 창훈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타,  한강변으로  조용히  달렸다. 

오전이라  길도  막히지 않아   짧은 시간에  한강 둔치에  도착했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는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 왜 왔어요?"

" ... 수연아,  생각해 봤는데... 물론  내가  잘못했지만...  내게  기회를  한 번만 줘... 우리  다시  시작하자.  결혼식도  일주일밖에  안남았는데...  취소하기도  그렇잖아... "

수연은   말없이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살갗에  부딪치는   얼음같은  차가움이   수연에게  매섭게 부딪쳐왔다.  

" 수연아!" 

 따라나온  창훈이  수연의  팔을  잡으며  소리쳤다.

" 난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

" 지연이는  어떻게  할건데요?"

" 정리할께... 정말이야!   지연이도  너와  결혼할 걸  알면서  나와  시작한거니까   이해할거야."

" ... 당신!.... 후- ... 관둬요.  긴 말  하고 싶지도 않아.  우린  끝난  사이예요.  미련 갖지 말아요... 

  가요.  집에 가고 싶어요."

창훈의  손이  수연의  한쪽 빰을 가르며  빨간  손자욱을  남겼다.

" ...너!  알아?  난  너의 그런 점 때문에  너를  사랑할 수 없었어.  자기  주장  강하고,  고집세고,  나긋나긋하지도  않고... 애초에  네가  좀 더  여자다왔으면,  애교도  있었으면   이렇게까지도   안됐어.  처녀인게  벼슬이니?  너와  잘 때도  통나무를  껴앉고  자는 것 같더라.  그래... 너와  만족해  본 적도 없지...  남자를   만족시킬지도   모르는  불감증 주제에...  그래도  난   최소한  널  책임지려고 했어...  관 둬. 그래  관두자... 네가  뭐 그리  잘났다고...  네 동생은  그런 면에서  너와  다르지,  남자가  뭘  원하는 지를  알거든...  애교도  있고...  눈물도  흘릴줄  알고... 넌  울음이  뭔지도  모를거다...  얼음공주이니까... ..."

    창훈은  분노로  벌게진  얼굴로  소리치며,  놀람과  비난이  가득한  눈동자로  쳐다보는  수연을  버려두고  뒤돌아  혼자  차에  올라  거칠게  차를  몰며   수연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수연은  손자욱이  선명한  볼을  감싸며   눈동자가  눈물로  넘쳐  눈 앞이  흐려지며  목이  매여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렇게  서서   끅끅... 소리없는  울음으로  온 몸을  떨고 있었다.  얼마간을  그렇게  있었던  걸까...  수연은  한강 둔치를  나가는  길을  찾아  천천히  걸었다.   내복 한벌과  스웨터  한 벌로는  막지  못하는,  스웨터의  구멍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칼바람같은  추위조차   느끼지  못한 채   멍하니  한참을  걸어   한강 둔치 앞  도로에  도착했다.  빠르고  거칠게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횡단보도와  인도가  나오기까지  얼마를  그렇게  걸었던걸까?   벌겋게  부어오른  눈과  이미  붉게  얼어버린  볼에   남은  눈물 자국뿐,   몸에는  아무  감각조차  없게  느껴졌다.  병원에서  나온  수연이  전화할 수 있는  동전하나  있을 리 없었다.  수연은  인도로  걸으면서   제일 처음  만나게  된   젊은  연인들에게   핸드폰을   빌렸다.

" 오빠,  나  집에  가고 싶어.  데리러  와줘. "

" 어딘데?"

" 여기  암사동쪽으로  들어오는  한강고수부지 였는데   걸어나오는 쪽으로   나오다 보니   어딘지  잘 모르겠어. " 

" 알았어.  좀 기다려야겠다.  최대한   빨리  갈께.  그 자리에  있어."

수연의  오빠인  명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오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수연은  전화를  잘썼다며  돌려주고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차가  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30 여분이나  됐을까...  수연의  몸이  견딜 수 없이  꽁꽁  얼어가고 있을 때   명환의  차가  도착했고,

" 수연아!   너  얼굴이..."

명환은  수연의  어깨를  감싸며  차문을  열어  차에  태우고   조용히  달려   집에  도착했다.

" 어머니!  주민  엄마!"

대문이  열리고  수연 엄마가  뛰쳐나왔다. 

" 아니, 무슨 일이냐. 이게?...  어여  들어가자."

 

  수연은  집 안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집에  돌아온  안도감을  느끼며  들어갔다.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얼음같은  긴 차가움  속에  서 있다가   따뜻한  공기속으로  들어와서 인지  수연은  머리에  현기증이  일면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 엄마,  나 조금  쉴께.  그리고나서   이야기할께... "

수연 엄마는  수연을  자신의  방으로  손을  잡아끌며,

"  이게  무슨 일이니?  얼굴은  또  왜그러고... 아유,  세상에  이  몸  차가운 것 좀 봐...  엄마방에서   몸 좀  지지자.  몸 좀  따뜻해지고  얘기하자.  그래.  주민 엄마야,  따뜻한  차 좀  가져와봐라. 어서"

수연은  안방의  푹신한  요 위에  몸을  눕히고   두 눈을  감고   솜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덮은 채  옆에  앉은  엄마의  허벅지를  껴안았다.

" 집에 오니까  좋다.  엄마 .... 흑..."

긴장이  풀린 탓 이었는지  수연은  터져나오는  오열로   어깨를  들썩여 가며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 이것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소리내서  울어... 뭐가  그리  가슴에   쌓인게  많은 게냐... "

이불에  누워서   엄마의  다리를  껴앉고  흐느끼는  수연과   수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같이  우는  두  모녀의  모습에,  차를  들고 들어오던  주민  엄마도  늘  단정하기만  했던   큰 아가씨의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눈물이  나왔다.

 

  수연이  울다  지쳐  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무도  없는 듯,  집 안이  조용했다.  수연은  이불을  걷고  거실로  나갔다.   벽난로  한쪽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어  있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는  거실에서,  가족들  모두  소파에  앉아  수연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던 듯  조용히  앉아있던   수연 엄마가  일어서서  수연을  불렀다.

" 수연아,  이젠  좀  괜찮냐?   괜찮으면  이리 좀  앉아봐라"

수연은  말없이  빈 1인용  소파에  앉아  등을  기댔다.

" 창훈이는  전화를  아무리  해도  안받더라.  무슨 일이야?   얘기를  해야  알지."

"...  엄마, 오빠, 새언니... 나   결혼 안해요.  창훈씨랑  헤어졌어요."

" 으응?  그게  무슨 말이야!   창훈이는  오늘 아침까지   아무말  없던데!  창훈이가  너 때렸니? "

"  어머니,  잠시  가만  계셔 보세요.  수연아,  네가  약 먹은 것도  그런 이유니? "

" 응....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데...  창훈씨가  다른 여자를  사랑해요. "

" 창훈이가  직접 그러디? "

" 내가  직접  봤어요.  두 사람을.   엄마,  나 결혼 안해요.  정말이야.   나도   창훈씨를  사랑하는 것  아니고,  창훈씨도  그래.  "

"  결혼하면  남자들은  괜찮아져.  바람펴도  집은  지키거든."

" 아버지처럼?   난  그렇게  살기 싫어.  안 살거야. "

"....  누구니? ... 그  여자가  누구디? ... 네가  아는  사람이니?"

" ....  나중에....  정말  많이  나중에  말할께요...  "

" 수연아,  오빠는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면  그렇게  해야지. 

  그래.  그렇게  해.  좀  쉬면서  마음도  추스리고."

" ... 휴-우( 긴 한숨을  내쉬며)  그래라.  평생  살아야하는게  결혼인데 ... 네  마음대로  해라...

  나도  이젠  모르겠다."

" 엄마,  빌려놓은  내 아파트  그냥  내가 들어가서  살래.  금방  안 나갈테니   나가는 동안   살다가 

  새 아파트 구하고."

" 안돼.  집에  들어와라.  혼자 있다가   또  흉한  생각 할까봐   걱정스럽다."

" 걱정 마세요.  이젠  약  안 먹어요.  걱정  안시켜요.  엄마,  나  이제   애 아니잖아요.  나  믿죠? 

  늘  자기 앞가림  혼자  잘하던  연이잖아요.  집에서  가까우니까  바람쐴 겸   엄마  오고 싶을 때 

  오세요.  네? "

"... 휴-우,  네 마음대로  해라.  생떼같은  자식  죽을뻔도  했는데...  그래,  그러자구나.  "

"...  죄송해요... "

" 밥이나  먹었니?  밥이라도  든든히  먹어야   얼른  기운차리지.  주민애미야,  밥 좀 차려라.  수연이  밥 좀  든든히  먹여서  보내야지.   몇 시까지  들어가야 하니?"

" 5시요."

" 그래,  시간도  많지  않네. 얼른  밥 차려야겠다."

 

  수연에게  밥을 차려줄  생각에  서둘러  부엌으로  주민엄마와  수연엄마가  사라지고,

" 오빠, 미안해.  걱정만  끼쳐서."

" 괜찮아.  네가  금방 나올거라서   병원에는  안갔다.  오빠는  널  믿어.  괜찮을 거야."

수연은  따뜻한  눈으로 수연을  늘 감싸주는  오빠가   오늘따라  더  듬직하고   믿음직해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21살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된  오빠였다.

" 오빠, 나중에... 정말  나중에   말할게  있는데... 오빠가   엄마  충격  안 받게  옆에서  도와줘."

" 지금은   말 못하고? "

" 응,  지금은  말 못하겠어.  나도  마음 정리가  안됐고."

" 그래.  한 가지만 묻자.  그 새끼가  너 때렸니?"

" 응... 내가  말을  심하게  했어."

" 알았다."

 

  수연은  엄마가  차려주는  진수성찬같은  음식에도   많이  먹을 수 없었다.  무언가   큰 덩어리를  내려놓은 것 같은데도   가슴에  남아있는   이  찜찜한 무거움이,  불안함이  안개처럼   마음에  깔려있는 것만  같았다.   

  오빠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돌아오자  유림, 지아, 옥순아줌마는   그룹 정신치료에  나가고  없었다.  지임할머니는  오랜만에  시누이 되시는  할머니가  면회를  와서  "이것 좀 드세요.  저것 좀 드세요" 하는 염려서린   말에도  자꾸 헛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한숨만  내쉬며,

" 어휴, 이젠  손까지  떠시네. 수전증에  걸리셨나,  저렇게 까지는  않았는데...언니, 정신 좀 차려봐요"  하면서  울음섞인  목소리를 냈다.

" 누가  자꾸  괴롭혀요.  물레방아집의  딸이지, 너?"

하는  정신없는  지임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수연은  힘을  내보려고 했다. 

' 난  이제  24살이야!  새로이  출발할 수 있어.  정신차리자. "

그러나,  수연은  온몸에  열이 오르면서  어지러웠다.  저녁 식사도 거른 채  열에  들떠  꿈과  현실 사이의  무의식속으로  빠져들어갔다.

" 이수연씨,  이수연씨... 이런  열이  높네... 이수연씨'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수연의  의식이  없어지고  있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