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에 걸친 정민의 통사정과 기분 나쁘게 하는 전음이 오고가고서야 겨우 문이 열리며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간단한 요기만하고 바로 떠나겠습니다.”
객잔 안은 깨끗했다. 열 개정도의 탁자가 있었고, 문 양옆의 탁자에는 각각 두 명씩 앉아있었고, 문에서 안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탁자에도 역시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노인이 정민을 안내한 자리는 그들이 앉아있는 삼각형의 중앙이었다.
‘햐, 이놈들 뭐 좀 아는 놈들이군!’
사람을 포위할 때 전후좌우 이렇게 네 방향에서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줄 안다. 하지만 실전에 임하게 되면 그 생각이 틀렸음을 금방 깨닫게 된다. 공격하는 쪽은 그 차이를 깨달기 힘들지만, 공격받는 쪽은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사방에서 공격을 하면 세 방향의 적을 보면서 공격을 받아 낼 수 있다. 즉 앞에서 오는 공격을 받아 내면서 양옆에서 공격하는 자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소리다. 보이지 않는 적은 뒤에 있는 하나뿐이라는 소리가 된다. 하지만 삼방향이 되면 보이지 않는 적이 둘이 된다는 것이다. 즉, 보이지 않는 자들에 대한 수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민을 둘러싸고 있는 자들은 실전 경험이 많은 자들이었던 것이다.
정민은 노인이 지정한 자리에 아무 소리 없이 앉았다. 노인은 주문을 받지도 않고 주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아침이라서 준비되는 건 죽과 야채 볶은 것밖에는 안되니 그리 아시오!”
“저, 따뜻한 국물은 없을까요?”
“장국을 끓이리다.”
“고맙습니다.”
정민은 대답을 하면서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의식만 깨어나 이상한 소리에 조정을 받으며 움직일 때 느꼈던 기분 나쁜 느낌들이 여기저기서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소위 살기라는 것이었다. 정민은 정면에 앉아서 전음을 주고받고 있는 두 사람을 주목했다. 그들은 의외로 유약한 문생이 들어오자 맥이 풀렸는지 주변에서 암기를 꺼내들고 숨어있는 자들에게 해제령을 내릴 것인가를 두고 의논을 하고 있었다.
‘야, 그렇게 본다고 내가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바지에 쌀 것 같으냐?’
정민은 그들과 눈이 마주 치자 묘한 얼굴 표정으로 씩 웃어주었다. 그러자 보다 높은 지위인 것으로 보이는 자가 형형한 안광을 쏟아내며 노려보았지만 정민은 다시 한 번 입을 이죽거리며 묘한 미소를 흘렸다.
- 아무래도 저자는 보통의 유생이 아닌 것 같소이다.
- 그렇다면 그냥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아니오, 일단 지켜봅시다. 그리고 더욱 긴장하라고 해야 할 것 같소.
- 알겠습니다.
오른 쪽에 앉아 있던 자가 오른손을 들었다가 내렸고, 그에 따라 더욱 정민의 뒷목이 따끔거렸다. 정민의 뒤쪽에 앉아있던 자들이 노골적으로 살기를 뿌려댔지만 정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쪽어깨에 끼고 있던 보퉁이를 옆자리에 내려놓고는 탁자에 있는 수저통에서 대젓가락을 한 짝을 꺼내들고 손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 보낼 것을 찾다가 고등학교에 다니며 유일하게 개인기라고 가지고 있는 현란한 연필 돌리기를 대젓가락으로 해본 것이다.
- 보, 보이십니까? 저, 저자가 환술을…!
정민의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현란하게 춤추듯 움직이는 대젓가락의 움직임을 보더니 오른쪽에 앉아있던 자가 더욱 긴장하는 표정이 되었다.
- 으흠, 너무 긴장하지 마시오. 저건 재주꾼이 부리는 손장난에 불과하오. 아직 속단하긴 이르니 좀 더 지켜봅시다.
‘어라, 환술이라니? 연필돌리기를 이 시대에는 환술이라고 하나?’
옛 중국에서는 서역의 광대들이 부리는 재주나 마술을 환술이라 했다. 중국인들 중에 서역과 교역을 하면서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개종한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유교나, 불교의 영향이 큰 한족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했기에 경원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별도로 모여 살거나, 서역사람들에게 재주를 배워 먹고사는 자들이 있었다. 특히 사람의 눈을 속이는 마술 같은 재주는 무림인들에게 일종의 마공처럼 오해를 받아 척결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지식이 없는 정민은 심심풀이로 미래의 추억을 해본 것이 엉뚱한 오해를 받았던 것이다.
- 하지만 저런 환술을 하는 자들은 대부분 대식국인 이거나 회회교도들 아닙니까?
‘대식국은 알겠는데, 회회교는 또 뭐지?’
- 혹시 저들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환술의 고수를 불러들인 게 아닐까요?
- 어허, 속단은 금물이요! 지켜봅시다.
‘제기랄, 손장난도 맘대로 못 치겠군!’
두 사람의 전음을 감청하고, 괜스레 오해를 받는 걸 피하고자 손가락으로 가지고 놀던 대젓가락을 탁자위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주방으로부터 구수한 장국냄새가 퍼지자 여기저기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듣기 힘든 은밀한 소음이었기 때문에 정민의 음파 탐지기 수준의 귀에만 들린 것이다. 잠시 뒤, 노인이 마련된 음식을 정민의 앞에 늘어놓았다. 장국과 야채 볶은 것, 그리고 밀로 만든 죽이 전부였다. 쌀죽을 기대했던 정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는 쌀이 귀한 곳이오. 대신 밀이 많이 나기 때문에 밀로 죽을 끊인다오.”
“아, 그렇군요! 잘 먹겠습니다. 헌데 이곳 마을이름이 무엇입니까, 노인장?”
“이곳은 호남 성 화원이란 곳이오.”
“예에, 호남 성이요?”
정민은 기가 막혔다. 원래는 북서쪽으로 길을 잡아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남서쪽으로 거의 천릿길을 밤새 이동했던 것이다. 별을 보여 천천히 걸었다고 생각을 했지만 무의식중에 몸이 교응방을 치러 갈 때 써먹은 축지법을 발휘하여 이동을 했던 것이다. 그걸 인식하지 못한 것은 별똥별들 때문이었다. 미래의 어렸을 적 추억에 빠져 별똥별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따르다보니 엉뚱한 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이렇게 되면 양양을 거쳐 연경으로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개봉을 거쳐 연경으로 가야한단 말이군. 에이, 몸도 알고 있는 축지법을 생각지 못하다니,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도 병이구나.’
지금 정민이 황당해하고 있을 때, 더 황당해 하는 자들이 앞에 앉아 있었다. 유약해 보이는 유생이 환술을 하더니, 이젠 자신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놈의 정체가 도대체 뭐지?’
결국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던 오른쪽의 사내가 정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예, 저 말입니까?”
“그렀소! 어디를 가려고 하는데 그리 당황하시오?”
“헤헤헤! 양양성을 가려고 했는데, 밤새 길을 잃어 정반대로 와버렸습니다.”
“양양성은 무슨 일 때문에 가려 하시오?”
“그냥 가보려고요!”
“뭐…!”
물어보던 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정민을 쳐다보았다. 상대의 할 말을 잃게 만든 정민은 특유의 장난스런 웃음을 지어주고는 구수한 장국 마시며 속을 달랬다.
‘맛있네! 어,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먹은 거 체하겠다.’
천연덕스럽게 음식을 먹는 정민의 모습을 쳐다보는 사내의 눈에서 불통이 튀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사람의 제지로 행동은 취하지 못하고 씩씩 거리며 정민을 노려보았다. 바로 코앞에서 인상을 구기고 있는데 음식에서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정민의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하자, 왼쪽에 앉아있던 사내의 눈이 반짝였다.
‘오호, 드디어 저자가 본색을 드러 내려하는군!’
정민은 젓가락을 집었다. 중국인들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동시에 써서 음식을 먹는데 그건 정교한 젓가락 놀림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유가장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정민의 젓가락질은 신기한 볼거리였다. 땅콩을 기름에 볶아 놓은 것까지 젓가락으로 가뿐하게 짚어먹는 솜씨는 감탄의 대상이었다. 젓가락질은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정민처럼 정교한 놀림을 하여 음식을 집어 먹는 것을 처음 보는 까닭에 짝퉁선녀 화령도 무공인줄알고 제일 먼저 배우려 했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환술을 쓰다니!’
- 저자를 잡아 정체를 밝혀야겠습니다.
- 자, 잠깐! 뭔가 이상하네. 저렇게 정교한 젓가락질을 하는 자들을 본적이 있소!
- 네에?
- 산동의 황룡세가에 갔을 때 교려에서 온자들이 저렇게 음식을 먹는 것을 봤소. 그들은 특히 손재주가 좋았소.
- 그럼, 저자는 고려인이라는 소리인가요?
- 으흠, 아무래도 말투도 약간 어색하게 들리는 걸 봐서 틀림없어 보이오!
‘어라, 산동이라 했나! 그렇지, 산동으로 가면 한국…, 아니 고려인이 많을 거야!’
정민에게 새로운 목적지가 생겼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이들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야 했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보은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
‘어디보자, 어느 놈부터 손을 볼까?’
정민이 여유롭게 야채볶음을 집어 먹으며, 먹잇감을 고르고 있을 때 이층 객방 창문에 있던 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 남궁 순찰님, 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남궁 씨! 그럼 진짜로 남궁세가라는 게 있는 거야!’
- 음, 알겠다! 모두 준비해라.
- 저자는 어떻게 할까요?
- 뭐, 고려인이라면 변변한 무공도 없을 터이니, 그냥 놔두는 게 좋겠소. 우선 급한 게 저들이 사천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막는 것이 우선이요.
-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