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은 남자가 그 똥차 트렁크에 기대 앉아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도 처음 본 남자와 함께..”
“이봐요. 뭘 그렇게 걱정을 합니까. 저 그런 나쁜 사람 아니라니까요. 어떻게 민증이라도 보여드릴까요?”
그 남자는 채원의 말을 중간에서 나무 부러뜨리듯 끊어 먹더니 바지 뒷주머니에서 주섬 주섬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지갑안에 끼워둔 주민등록증을 꺼내 채원의 앞에 내밀었다.
“저기요. 이럴 필요까지는 없으시구요...”
채원은 손사래를 치며 그 남자에게 자신은 그럴 의향이 없음을 강하게 들어내 보였다. 하지만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채원에게 어서 확인하라는 듯한 눈으로 채원을 바라보았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직접 확인하세요라고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눈빛에 무너진 걸까. 채원이 그 남자가 내민 민증을 건내 받았다.
주소지는 서울이였다. 나이는 채원보다 4살이 많았다. 임유하. 남자의 이름은 유하였다. 채원은 대충 민증을 훑어보고는 다시 남자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남자는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휙하고 채원의 손에 들린 그것을 집어 들고는 다시 지갑에 넣고 그 지갑을 다시 뒷 주머니에 주섬 주섬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채원을 향해 다시 하얀 이를 들어 보이며 웃어주었다. 거봐요. 난 결백하다니까요. 문제없잖아요. 그 남자는 채원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나쁜 사람 아니죠?”
그 남자는 양 손을 벌려 보였다, 제 몸 구석 구석을 털어보아도 나쁜 사람이라는 흔적은 나오지 않아요. 자신있죠. 마치 그렇게 그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구요, 제가 지금 그쪽을 태우고 갈 만큼 그런 기분이 아니예요”
“왜요? 안좋은 일 있어요? 이런.. 그런 기분으로 운전하면 쥐약인데.. ”
남자는 여전히 채원의 말을 그렇게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설명을 듣고 남자의 이해를 구해야 하는거지. 도움을 바란건 바로 저 남자인데..
“제가 대신 운전 해드릴께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요. 그리고 기분이 우울하다고 혼자 운전하고 그러면 큰일나는데. 알죠? 졸음 운전보다 더 무서운거..”
채원은 남자의 이야기에 그저 푸하고 웃어버렸다. 주책이다. 무슨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라구.. 채원은 처음 본 남자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린게 곧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채원의 웃음을 놓치지 않은 남자였다
“거봐요. 그렇게 웃으니까 이쁘잖아요. 뭘 그렇게 겁을 잔뜩 먹구 그래요. 내 인상이 그렇게 안좋나?”
남자는 트렁크에서 풀썩 내려와 뒷자석 유리창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는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쓱 문질렀다.
“그렇게 무섭거나 나쁜 인상은 아니죠?”
남자가 채원을 보며 물었다. 채원은 그저 헛기침만 하고 말았다. 사실 나쁜 인상은 아니다. 오히려 호감이 가는 그런 얼굴이니까. 하지만 이미 남자라면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남자라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채원은 맘이 닫혀버렸으니까. 하긴 그 사람이 여자라고 해도 선뜻 그런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엔 채원의 마음이 지금은 너무 메마른 사막과도 같았으니까. 뭐랄까. 이미 오랜 가뭄에 지쳐버린 뙤약볕아래 늘어진채 고개 숙인 벼와 같으니까.
“뭘 그렇게 생각해요? 어디까지가요? 같이 좀 갑시다. 제가 운전은 대신 해드리죠”
남자는 이미 확답을 들은 사람처럼 자신있게 채원에게 말했다. 저 남자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한거지? 채원은 살짝 기가 막혔다. 남자는 다시 트렁크에 올라 앉아 채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다른 운전자분에게...”
“정말 너무하시네요. 제가 다른 차를 얻어 탈거 였으면 이미! 진작! 탔을겁니다. 그런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차가 이렇게 오래된 꼴통 아닙니까. 좋은 차를 타면 적응이 안되거든요.”
뭐야. 그럼 지금 내 차가 저 남자 차만큼이나 오래된 고물차라서 적응이 된다는 말이야? 채원은 기가 막혀 그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그리고 제가 뒷자리엔 못 앉거든요. 그런거 몰라요? 운전을 오래하면 앞자리에 익숙해져서 뒤에 앉으면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그런 느낌. 갇혀 있는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오래된 차를 보아도 도움을 청할 수가 있어야죠. 그런 점에서 보면 그쪽은 모든 조건이 아주 맘에 들어요. 어때요? 이젠 좀 이해가 되요?”
왜 내가 이 남자를 이해해야 하며 왜 내가 이렇게 설교를 듣듯 이렇게 남자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거지? 도움을 바라는 사람이 조건을 따지다니. 이게 무슨 경우야? 채원은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 이 길 끝까지 갑니다. 그러니까 그쪽 목적지에 도착하면 절 내려주시면 되요. 그때부턴 다른 차를 얻어 타면 되니까요”
남자는 다시 껄걸 웃어댔다. 이 남자 도대체 뭐야. 어디서 이렇게 여유로움이 나오는거지? 채원은 순간 남자의 저 여유로움이 몸서리치게 부러웠다.
“정말 어디까지가요?”
남자가 채원에게 다시 물었다. 채원은 머뭇거리기만 할뿐 뭐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어디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떠오르는게 없었다. 목적지를 생각해 본적이 없었으니까.
“그냥 무작정 가는 거예요?”
남자는 눈치까지 빨른 모양이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남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채원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저 행동은...
“기분 안좋다고 하더니 그냥 나왔나보네요. 아침도 안먹고 점심도 안먹었나봐요. 배 많이 고프죠?”
그러고 보니 배가 고파서 휴게소로 들어온건데. 정작 핫바 한입 베어 먹은게 전부였다니. 남자의 이야기를 듣자 채원은 자신이 잠시 잊고 있었던 배고픔이 다시 파도 밀려오듯 밀려들었다. 근데 저 남자는 그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혹시 직업이 점쟁이? 아니면... 심리학자?
“핫바 먹다 말고 내렸잖아요. 가죠. 운전은 제가 할께요. 그쪽은 드시다 만거 다시 드셔야죠. 아! 목적지 없으면 제가 좋은데 소개해 드릴께요. 저도 기분이 우울하거나 뭔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자주 가는 곳인데. 그쪽 덕에 한번 가보고 좋죠. 가요”
남자는 트렁크에서 내려와 운전석 문을 열더니 이내 가방 하나를 끌어 내렸다. 그리고 차 문을 잠그고 채원에게 어서 가자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운동선수야? 아니면 혹시 저 가방안에.. 연장? 채원은 앞서 가는 남자의 뒤를 마치 어린 아이가 제 부모 뒤를 졸졸 따라 가듯 뒷서 걸으며 그 남자의 가방의 용도에 대해 생각했다.
“뭐해요? 빨라와요. 차문 열어줘야죠!”
남자가 어느새 채원의 차 운전석 쪽에 서서 멍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채원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남자에게 차를 타도 좋다고 했었던가? 채원은 차에 기대 채원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고 있는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뭘하는거지?
“혼빠진 사람같네요. 그렇게 배고파요?”
남자는 넉살좋게 웃어보였다. 이상하게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당신 왜 그래요? 전 당신과 동행할 마음이 없어요. 이렇게 왜 말을 못하고 있는거지? 채원은 남자에게 차 키를 건냈다. 남자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차 키를 건내 받아 차 문을 열어주었고 채원 역시 그렇게 자신의 차에,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에 올라탔다. 남자는 친절하게 조수석에 올려 두었던 음식물들을 치워주었고 남자의 친절에 채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먹다 말고 내버려둔 핫바의 기름 냄새는 차안에 이미 가득 베어 있었기에 채원은 창문을 내렸다. 남자는 익숙하게 시동을 걸고 미끄러지듯 휴게소를 빠져나가 고속도로를 부드럽게 달렸다. 남자의 운전 솜씨는 좋았다. 속도도 일정했으며 과속을 하지도 않았고 정신없이 차선을 바꾸지도 않았다.
“오랫만에 제 엉덩이가 호강을 하네요”
남자가 뜬금없이 엉덩이 이야기를 꺼냈다. 채원은 남자의 갑작스런 이야기에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생각하진 말아요. 제 차보다 좋은 차를 운전하고 있으니 제 엉덩이가 호강을 하는거죠. 안그래요?”
남자의 설명에 채원은 큭하고 웃어버렸다. 웃겨. 엉덩이가 호강을 하다니. 말도 안돼
“이름이 뭐예요?”
남자는 말이 끊어지게 무섭게 다른 말을 꺼냈다. 이름.. 내가 이 남자에게 내 이름을 말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뭐지.
“한.채.원”
“이쁜 이름이네요.. ”
남자는 채원을 향해 살짝 웃어주며 채원의 이름이 이쁘다고 말해주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무작정 나선 길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하지도 않고 그대로 길을 따라 내려왔다. 그러다 배가 고팠다. 손을 씻고 싶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휴게소로 들어갔다. 손을 씻고 먹을 것을 샀다. 그리고 남자를 만났다. 남자가 함께 동행하길 원했다. 동승을 원했고 이제는 동행을 해 주겠노라 말을 했다. 갑자기 내 인생에 끼어든 이 남자는 누구지. 채원은 창밖을 내다 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채원의 긴 머리칼을 가볍게 흔들고 내려놓고 장난을 해댔다. 나는 왜 이 남자와 동승을 한걸가. 이 남자의 동해을 왜 받아들였을까.
“운전 자주 안하죠?”
“네?”
남자의 갑작스런 질문에 채원의 생각들은 다시 조각 조각 끊어져 불어오는 바람 따라 사라져 버렸다. 채원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차를 자주 몰면 차에서 이런 냄새가 나지 않거든요. 오래 주차해 두면 차 안에서 공기 순환도 안되고 그래서 퀘퀘하고 머리 아픈 냄새도 나거든요”
남자의 말은 맞았다. 채원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운전을 하질 않는다. 회사는 집과 고작 10분 거리며 쓸데없이 기름 낭비한다고 늙은 여우에게 잔소리나 들을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오래된 차를 끌고 서울 한복판을 활보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적어도 채원은 남자처럼 차에 대한 끔찍한 애착이 있는게 아니니까. 그때 채원의 전화가 경쾌하게 소리를 냈다. 채원은 생각에 잠겨 있느라 벨소리를 듣지 못했다. 남자는 채원의 전화와 채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전화 안받아요?”
씽하고 스쳐가는 자동차와 귓가에 파닥거리는 바람소리에 채원은 남자의 말을 듣지 못했다. 여전히 빤짝거리며 울어대는 전화기.
“채원씨!”
남자가 채원의 이름을 불렀다. 채원은 화들짝 놀라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채원에게 전화기를 가르켰다.
“아.. 네”
채원은 버튼을 눌러 창문을 올렸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 발신을 확인했다. 지원이였다. 채원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원은 분명 어디냐고 물을 것이며 뭘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이 남자 이야기를 굳이 할 건 없지만 분명 채원은 숨기지 못하고 버벅대고 말것이다. 그래서 지원의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건 이 남자를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아니 거의 남자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어야 했지만. 함께 이렇게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채원은 이렇게 차를 몰고 이곳까지 와야 했던 이유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가슴이 아팠던 2주의 시간, 민준에게 그렇게 버림받고 아파했던 몇 달간의 시간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도망치듯 이렇게 나왔는데.. 차의 시동을 거는 순간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마냥 답답한 마음이 조금 풀렸는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남자친구예요?”
남자가 또다시 상념에 잠긴 채원에게 물었다. 남자는 한쪽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쪽 손은 이마를 짚은채 물었다. 채원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그런데 왜 전화를 안받아요? 죄 지은거 있어요? 아니면 빚쟁이라도 있나봐요”
남자는 채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채원은 얼른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죄 지은게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린 모두가 죄인인데.
“그냥 전화를 꺼버려요. 그렇게 울어대는 전화 보면 마음이 풀려요? 난 심란해 지기만 하던데. 그래서 기분이 안좋은 날은 아예 전화기는 두고 나와요. 전화가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서 생각을 정리할 수가 있어야죠. 웃기죠. 사람이 편하려고 만든 전화가 사람을 구속하는게. 사실 그 놈의 전화는 족쇄예요. 눈에 보이질 않아서 그렇지 이미 발이 묶인 거나 다름없죠. 안그래요?”
남자의 말은 다 맞는 말이다. 지원의 전화 한통에 잠시 잊었던 기억이 다시 끄집어 나왔으니까. 구속당하다. 그래.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채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남자를 만나 처음으로 채원이 먼저 말을 꺼낸 셈이다. 그만큼 이 남자에 대한 불안감이 사그라 들었다고나 할까. 남자 역시 채원의 질문이 반가운 모양인지 호탕한 웃음 소리를 들려주었다.
“저한테 질문하는거 맞죠? 우리가 만난지 정확히 2시간 45분만이네요. 하하하”
2시간 45분?.. 이 남자를 내가 2시간 45분전에 만났다는 말인가? 이 남자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근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해준거 같은데요. 이 길 끝까지 갑니다. ”
“네..”
그러고 보니 아까 남자가 채원에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고 남자는 이 길 끝까지 가는 길이라고 말을 했었다. 그렇구나. 그런데 왜 이 남자는 이 길 끝까지 가는 걸까.
“특별히 정해진 목적지가 없는건 우리 둘다 비슷한거 같죠?”
남자가 말을 했다. 목적지가 없다.. 무작정 나선 길이다. 공통점. 남자와 내가 같다. 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래도 당신에겐 이 길 끝이라는 이유라도 있는데 난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당신이 저보단 낫네요. 그런데 왜 이 길 끝까지 가려는 거예요? 길 끝에 뭐가 있을까. 당신도 아픔이 있어요?
채원은 아무말 없이 운전중인 남자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목적지가 없다는 말이 채원의 가슴에 맺혀왔다. 이 남자.. 이 남자도 아픈걸까.
“뭘 그렇게 봐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남자는 채원을 바라보지도 않은채 물었다. 채원은 화들짝 놀라 다시 고개를 돌리고 뻥뚫린 길을 바라보았다.
“바다 좋아해요?”
바다.. 언제나 막연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바다. 자주는 아니지만 바닷가에 놀러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 모래 사장을 맨발로 걷는 그 기분. 발끝에서 간질 간질 느껴지는 그 감촉. 멀리서 들려오는 갈매기 울음소리. 아니 그건 웃음 소리일지도 모르지. 왔다 갔다 멀미 날정도로 끊임없이 드나드는 파도. 그 파도의 거품. 그리고 간지러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바다..
“동해, 서해, 남해 어디가 좋아요?”
동해는 수학 여행때 가봤어. 강릉 앞바다. 그리고 민준이와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간적도 있었는데. 무박으로 떠난 여행이였지. 그때 너무 추웠어. 남들은 새해 떠오르는 일출을 보겠다고 주문진을 찾았는데 우린 그런 사람들이 모두 빠져버린 그 휑한 바닷가를 찾아갔어. 그랬구나.. 동해는 추워..
서해는.. 안면도에 갔었는데. 배를 타고 바다 낚시를 처음으로 해보았어. 흔들리는 배위에서 요리조리 실을 던져 기다리는 것은 지루함 그 자체였는데 그리고 일렁이는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배안에서 내 속도 함께 울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서해 바다... 모기에 징창 물려서 눈물까지 짜게 만든..
남해.. 친구들과 부산 해운대에 여행을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지치기도 했지만 그 하얀 모래가 너무 좋아 뒹굴었던, 기억이 나네.. 남해는 뭐였을까.
“글쎄요...”
“어디가 좋은지 딱 정할 수는 없겠죠.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그런데 전 남해를 좋아합니다. 동해는 너무 깊어서 슬퍼보이고 서해는 왠지 모르게 조금 안타깝죠. 그냥 제 느낌이니까 오해하진 말아요. 남해는 좀 활동감이 넘치죠. 그게 좋아요”
그랬던거 같아요. 남해는 그런 느낌이였어요
“바다 좋아해요?”
남자가 다시 물었다. 그렇구나 그 대답을 하지 못했구나.
“좋아해요”
채원은 대답해 주었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바다는 왜 물어요?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채원은 아무말 하지 않았다.
“바다 갈래요?”
남자의 갑작스런 제안에 채원은 남자를 바라보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남자는 그런 채원에게 살짝 어깨를 들썩이고는 씩 웃었다
“이대로 한 두시간만 더 가면 바다예요.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 걱정말아요. ”
“한 두 시간만 더 가면 된다구요?”
“몰랐어요? 우리 지금 꽤나 많이 내려온거. 운전 안하니까 몰랐어요? 아니면 다른 생각 하느라고 자기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도 잊어버린 거예요? 어쨌든 저야 감사할 뿐이죠. 중간에 내리세요 그럴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목적지가 비슷한 것 같으니까요”
남자는 또 다시 껄걸 웃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멀리 왔어. 서울에서 이렇게 멀리 왔어.
“좋은 바다가 있어요. 그런데 그 바다가 그 도시의 끝자락에 있거든요. 그래서 두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거예요.”
“여기가 어디죠?”
“그것도 몰라요? 허허. 여기 전라도예요. 이미 그쪽이 전라도 아니 전라남도 끝자락에 와 있는거라구요”
서울에서 전라남도? 충청도를 지나 전라도... 그것도 끝자락.. 채원은 창밖을 내다 보았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거라곤 산과 간간히 보이는 들과 드문 드문 몇 채의 아담한 집이 전부였다. 이 곳이 어딘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낯선 남자와 바다를 가다! 좀 웃기나?”
조금이 아니구요 많이요. 지원이가 날 죽이려고 할 지도 모르는 일이죠. 채원은 아무말 없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차를 오래타긴 정말 오랜만이다. 그런데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았다니. 3시가 죽은 시간이라고 생각을 잠시 했는데 그 이후 4시간을 모조리 잊어버렸어. 세상에.
“배고프죠? 일단 밥 먹고 바다 갑시다.”
“네..”
이젠 남자에 대한 긴장도 어느정도 풀린 모양인지 채원은 마치 오래전 알던 사이인냥 편안해졌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배가 고팠고 슬 잠이 밀려들었다. 채원은 창문을 시원스레 모조리 내리고 손을 뻗었다. 바람이 시원하게 채원의 팔을 흔들었다
“7년 사귄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랑 오늘 막 헤어지고 나오는 길이예요.”
남자가 말했다. 채원은 바람 소리에 그 남자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차문을 다시 반쯤 올렸다.
“많이 아플 것 같죠?”
남자가 채원에게 웃어보이며 물었다. 7년 사귄 여자와 헤어지고 오는 길이라고? 그런데 어쩜 저렇게
태평할 수가 있는거지? 세상에.
“안 아프면 그게 이상하죠. 7년이 짧은 시간도 아닌데. 안그래요?”
남자는 채원에게 동의를 구하는 듯 짧게 물었다. 전 고작 6개월 만나다 헤어졌는데 그렇게 아팠는걸요. 7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안 아플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괜찮아요. 아마 이렇게 헤어질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죠.”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서 채원에게 들려주는 동안 채원의 차는 어느 시골 마을입구에 들어섰다. 작은 시외 버스 정류장을 지나 남자는 어디론가 차를 계속 몰았다. 어디로 가느냐고 채원은 묻지 않았다. 남자의 이별 이야기 때문일까. 차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채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때 만났으니까, 오래 만났죠. 제가 군대 갔을 때도 꼬박 2년을 넘게 기다려 준 여자예요. 하하 그런 여자 다시 만나기 힘들죠. 엄청 착해서 제가 그 꼴통으로 드라이브 시켜주고 데이트해도 군말하나 없었어요. 가끔 같이 여행 다니다가 오늘처럼 말썽 부린 날도 있었거든요. 그래도 싫은 표정 한번 안 지었던 여자예요”
그런 여자와 왜 헤어진거예요? 이렇게 채원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그렇게 물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 헤어지고 무작정 차를 몰고 나온거예요. 서울 하늘 아래 있다가는 아마 죽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정말 간사하죠. 이렇게 좋은 공기 마시니까 아무렇지도 않고 살 것 같네요”
남자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또다시 껄껄대며 웃었다.
“배고프다 그랬죠? 나도 배가 고프네요. 어디서 밥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나려나...”
남자는 차의 속력을 줄이고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 근처에 싸고 맛있는 식당이 있는데 안보이네요...아. 저기 있네요.. 어디 보자. 차를 세울곳이...”
남자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며 작은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내려요. 밥 먹자구요”
남자가 벨트를 풀며 말을 했고 채원은 지갑을 챙겨 들었다.
“밥은 제가 살테니까 그냥 내려도 돼요. 알았죠?”
남자는 채원의 손에 들린 지갑을 가르키며 웃었다. 채원은 지갑을 가방에 넣어두고 남자의 말대로 빈 손으로 차에서 내렸다. 남자는 마치 자신의 차인냥 여유롭게 차문을 잠그고 채원을 식당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바닷가 근처여서 인지 바다 내음이 채원의 콧속을 간지럽혔다. 그것은 상쾌함이였다. 식당안은 저녁을 먹는 사람들로 조금 분주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렸다. 밤이다. 두 사람은 백반을 시켰고 반찬은 무려 20가지도 넘어 보였다
“전라도 식당 특징이예요. 반찬 가짓수도 많고, 조금 맵고 짠맛도 강하죠. 그래도 맛깔스러워요. 전라도 음식에 길들여지면 서울 음식은 싱거워서 못먹죠.”
남자는 놓여진 반찬을 가르키며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고 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고파서인지 밥은 정말 맛있었고 채원은 쌀한톨 남기지 않고 밥을 싹싹 비웠다.
“배가 많이 고팠나보네요..”
남자의 말에 채원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밥이 얼마인지 알아요?”
대뜸 밥값을 물어오는 남자. 채원은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2800원이예요. 원래 3000원인데 주인 아줌마가 커피 마시라고 200원을 빼주거든요.. 인심 죽이죠?”
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2800원짜리 밥..
“나가죠. 여긴 손님이 많아서 우리가 이렇게 오래 자리 차지 하고 있으면 200원 안줄지도 몰라요.하하”
남자는 시원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 남자의 말 그대로 남자는 동전 4개를 채원에게 찰랑 찰랑 흔들어 보였다.
“자요..”
남자는 동전 4개를 채원에게 내밀었다. 채원은 얼떨결에 손을 쫙 펼쳐 남자에게 내밀었고 남자는 채원의 손바닥위로 동전 4개를 땡그랑 소리가 나도록 떨어뜨려 주었다.
“선물입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뒷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꺼냈다. 남자는 담배 한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느긋하게 불을 부쳤다.
“담배 펴요?”
남자가 담배를 채원에게 내밀며 물었고 채원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남자는 다시 담배를 호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깊이 담배를 빨아들였다. 뿌연 연기가 훅 피어 올랐다.. 채원은 빨간 불꽃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기 와봤어요?”
“그럼요. 가끔 아주 아픈 일이 있거나 기분이 안 좋을때 여길 오죠. 한 5시간정도 아무 생각없이 차를 몰고 내려오면 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바닷가에 가죠. 거기서 한참을 있다가 와요. 아무데서나 1박을 하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아무데서나는 아니네요. 들리는 곳이 있으니까. 여기 처음 와봐요?”
남자의 물음에 채원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좋은 곳을 한번도 안와보다니.. 너무하군요. 갑시다. 그런데 시간이 늦어서.. 오늘 올라가는 건 무리란거 잘 알죠?”
남자의 말에 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소개해 주겠다는 곳은 낼 아침 일찍 가죠. 지금 거기 가봐야 보이는 것도 없어요. 대신 지금 가서 보면 좋은 곳 있는데 글루 가죠. 이거 오늘 제가 가이드 노릇 톡톡히 해드리는 것 같네요. 태우고 온 보람 있죠?”
남자의 능청스런 웃음에 채원도 웃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