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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14)

운운 |2005.09.09 10:07
조회 911 |추천 0

 

 

-새로운 인연(7)-

 

 

 

 

 

“멈추어라 -「시바」여.”


단영은 눈을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그녀는 너무 놀라 정신을 그대로 놓칠 뻔 했다.

분명히 도화였다.

공중에 붕 뜬 채로 그는 허공을 성큼성큼 걸어왔다.

치켜떠진 두 눈동자는 짙은 보랏빛 막으로 덮여있었다. 하얗다못해 검 푸른빛이 감도는 피부와, 하늘로 솟아올라 넘실거리는 흑단 같은 머리칼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걸어오는 인영을 보며 단영은 생각했다.

저것은 나의 아들이 아니라고. 결코 도화일 리가 없었다. 자신이 사랑스러운 아들을 못 알아 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시바」는 흠칫 놀라는 듯하다가 그를 향해 돌아서서 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녀를 짓누르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날 소환한 존재가 그대인가」

  “.......”


순식간에 시바는 조용히, 하지만 웅장하게 흐르는 장강과 같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처음 그는 매우 분노했었다. 어떤 이유를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의해 자신은 어디론가 끌려왔다.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감히 어떤 존재가 신계의 최고 삼신중 하나를 소환한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이 끌려온 장소가, 차원을 넘어선 인간계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을 느꼈다.

신계의 전쟁이고 머고 다 집어치우고, 오늘 이 땅 위에 지옥을 열리라 마음먹었다.

그 화풀이로 눈앞의 버러지 같은 두 마리의 인간을 막 짓이겨 놓으려 할 때였다.

단 한마디의 말로 그의 기세를 제압하는 존재가 홀연히 등장했다. 시바는 알 수 있었다.

 소환주는 그다!


「다시 묻겠다. 그대인가」

  “.........”


여전히 그 대상은 묵묵부답이다. 답답한 심정은 단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존재는 대답대신 오른쪽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볍게 슬쩍 대각선으로 한번 휘저었다.

간단하지만 우주의 모든 것을 담은 동작이다.

슈욱

순간 바닥의 도형들이 일장정도 미친 듯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터질 듯한 빛 무리의 압력으로 주변의 공기가 압사될 듯 울부짖었다.

부웅-우웅! 

휘웅웅...!


그때였다.

쏴아악

빛기둥은 찰라 간에 그 반경을 두 배로 확장했다. 처음보다 더 찬란하고 형형한 빛들로 인해 단영은 눈을 뜨고 있기 조차 힘들어졌다.

도화를 중심으로 시바까지 그 빛기둥 안에 가두어졌다.

허물어져 가는 단영은 그것이 일종의 결계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그녀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다. 전신으로 피칠 갑을 하고 쓰러져 있는 백아를 한번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빛기둥을 한번 보는 그녀다.


‘화야...’


그렇게 그녀는 백아의 옆에 쓰러졌다.




 

“그렇게...저는 정신을 잃었어요..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한참이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그날의 상황을 작약과 현에게 설명했다. 군데군데 미흡한 부분은 백아가 정확하게 다시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작약과 현은 경악에 가깝게 놀랐고 또 안타까워했다. 온몸의 땀구멍으로 피를 쏟는 대목에서는 작약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리고「시바」가 등장한 대목에서는 ‘현’이 부들부들 떨며 잠시 정신을 잃어, 작약이 혼비백산하고 그녀의 혈을 짚어 의식을 되살렸다.


“한참을 지나고 제가 먼저 깨어났지요.. 거짓말처럼 방안은 아무런 흔적 없이 처음과 같았습니다. 정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백아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휴우.

단영이 큰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곧 제가 깨어났어요. 물론 저와 백아 모두 아무런 상처 없이 그대로였습니다.”

“아..아아..” 


‘현’의- 두장의 꽃잎 같은 입술이 벌어지며, 깊은 한탄이 새어나왔다. 현은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녀는 천천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빛 무리라...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화 녀석은!”


성미 급한 작약이 대뜸 단영을 다그쳤다.


“도화도 역시 아무 상처가 없었어요. 그리고 아이는 그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무에라? 아무런 상처 없이 그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예에.. 의식을 치르기 직전, 손끝에 맺힌 핏방울을 본 것이 녀석의 마지막 기억이더군요.

 우리 도화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결연한 표정의 단영이 두 손을 꼭 쥐며 말을 이었다. 백아도 곁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단영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이놈들! 그럼 네놈들이 단체로 꿈을 꾸기라고 했다는 말이냐!! 허허...”


하지만 단영의 진심어린 눈을 본 ‘현’은 곧 고개를 떨어뜨리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도화가...「시바」를 소환한걸까?’


분명 4개월 전이면 자신이 천문을 헤아리던 그날이다. 그 끔찍한 사념을 지니고, 천외봉을 향한 것은 신계의 최고삼신중 하나인 시바임이 틀림없다.

어떻게 모든 일이 꿈이었던 것처럼 그들이 상처하나 없이 무사할 수 있었는지?

광명의 신선 ‘발귀리’라 하더라도 그리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닌듯했다.

아름다운 현의 고운 이마에 작은 주름이 깊게 패었다. 그녀의 고운 입술이 푸르르 떨리며 다시 한번 단영을 향해 물었다.


“또한 저는 느꼈습니다. 폭발직후 천외봉의 큰 별(星)근처로 붉은 거성하나가 접근해왔고 지금은 두별이 나란한 궤도로 같이 움직이고 있어요.

그날 ... 너무나 많은 인연의 실이 끊겼으니 그만큼 이 땅위에 피바람이 일 테지요.

그 중심에 ...두 별이 있습니다... ”


단영은 현의 말을 들으며 또 한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붉은 거성? 4개월 전이라면 혹시 한영?

안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 가슴 아픈 아이를 이제야 만났는데 다시 잃을 순 없었다.

자신이 다시 저주받은 운명 속으로 그 아이마저 집어넣은 셈이었다.


“혹 우리 영이를 두고 하는 말이냐...?”


묻는 단영의 목소리가 몹시 떨리고 있었다. 제발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좋은 활을 가지고 있더구나..”


작약이 눈을 내리깔고 안타깝게 대답했다.

맥궁!

단영의 눈으로 뜨거운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백아는 누구보다도 그녀의 마음을 깊게 이해한다. 곁에서 지켜보는 그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단영은 충격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정신이 나간 듯이 읊조렸다.


“..그날 그런 일이 있고...... 저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어요.. 제가 하늘아래 의지하는 건 저희 아버지와 작약어르신 딱 두 분 이시니까요..”


작약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그리고 현은 너무나 안타까운 표정으로 단영을 바라본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허나 소북으로는 도저히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저 하나 살아보겠다고... 30년 전 그렇게 부모를 버리고, 자식과 마찬가지인 조카를 버리고 떠나온 제가 무슨 낯으로 연락을 하겠어요... 처음엔 그저 기다렸습니다.”


그랬다. 단영은 처음엔 그저 하염없이 작약을 기다렸다. 처음 도화가 천외봉에 버려졌을 때, 작약이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서- 때가 되면 오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갔을 때처럼, 이번에도 나타날 줄 알았다. 허나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그녀와 백아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도화는 비록 상처 하나 없었지만, 분명히 변화가 있었어요.”


두근!

날카로운 작약의 시선과 현의 놀란 눈동자가 동시에 단영을 향했다. 단영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당시는 정신이 없어 몰랐지만, 백아가 발견했어요..그날 이후 도화의 키가 10cm정도 자라있었습니다. 분명 아이는 성장을 한 게지요..”

“......!”

“아......!”


현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곤 이내 다시 스르르 감겼다.


“저는 너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마냥 의선 어르신을 기다릴 수도 없었지요..

그래서... 그래서... 소북으로 연락을 넣었습니다... 너무나 염치없이...흐흑“


단영이 소리 없이 흐느꼈다. 백아가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녀는 조용히 낮은 소리로 죄책감을 토해냈다.


“아버님은 폐관 수련중이라고 하셨어요.. 제 연락을 본 그 아이...쪽지를 남겨두고

 우리 영이가 고맙게도 장백산으로 절 만나러 왔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4개월이 지났습니다...“


설움에 북받친 단영은 백아를 붙잡고 다시 구슬피 흐느꼈다. 노안가득 슬픔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내가..내가 그 아이를... 다시 이런 운명에 끌어드리다니...

 백아...나는 죽어 저승에서, 어찌 연화언니의 얼굴을 보겠어요...흐흐흑“


작약은 순간 모든 일이 이해가 되었다.

4개월 전 그날... ‘현’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천외봉에 가야한다고 하소연 했었는지를.. 그리고 그 순간의 자신의 이기심과 고집으로 인해 지금 저 한영이라는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험한 운명에 놓이게 될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마음의 병이 깊은 저 단영이 더욱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앞으로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작약은 스스로 자책감이 일었다. 노파의 얼굴가득 주름이 깊게 패었다.

하지만 다시 그 순간이 온다고 해도 그는 그리 할 것이다.

현이 조용한 목소리로 단영을 위로했다.


“아까 뵈었어요. 그 분은 굳이 이번일이 아니라도 도화와 함께할 운명이셔요..”

“그래 너무 자책하지 말거라.. 다 내 탓이니...끌끌....”


답답한 마음에 벌떡 일어난 작약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풀린 의문은 없고 숙제만 쌓여가는 기분이다. 그런 작약의 뒤를 백아가 따라 나섰다.

방안에 남은 현은 단영을 조용히 보듬어 주고 있었다.


대청마루에 선 백아는 청량한 가을바람에 잠시 머리를 식혔다. 그 일이 있고, 바로 한영이 찾아왔을 때가 찌는 한여름이었다. 아내와 영이가 부둥켜안고 울던 그 모습이 엊그제 일처럼 눈앞에 선한데, 4개월이라는 시간이 화살과 같이 지나갔다.

의선과 현이 돌아온 오늘은 어느덧 가을이 무르익은 겨울의 초입이다.


“다시 또 눈이 찾아오는 계절이 될게야... 시간은 그리 흘러가는 게지...”


높은 가을 하늘의 창공을 바라보며 작약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벌써 주말입니다.

오늘도 비가 오네요(^^)

단영과 백아는 여러분의 소중한 리플에 기운을 얻고 있답니다.

작약도 투덜거리는 말투로 기뻐하고 있지요(^^ㆀ)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오늘은 연참의 선물을 드리고 갑니다! (선물이 맞겠지요 -_-;;ㅋ)

 

다들 멋진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파안의 가호가 늘 함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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