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이런저런 일들이 덤벼서 바빠졌습니다.
한 때는 일 없어서 심심한 때도 있었는데....
바쁘긴 해도 역시 일을 해야 사는 맛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모쪼록 성공적인 결과가 있길 바라며....
========================= 그러니까 제대로 취직을 해 =============================
연극 D-13.
액션 연습이 한창인 연습실.
박군 - 이런 애새끼! 죽어! 앙!
‘뻑, 빡! 뻐억!! 빠박!’
김군 - 크윽! 어억!
밤낮으로 그칠 줄 모르는 매질 소리에도
연출의 표정은 어두웠다.
연출
- 그만! 그만, 그만, 그만!!
.... 아니야, 뭔가 200% 부족해, 어설퍼!
결국 한탄하듯 무릎을 두드리며
연습을 중단시키는 연출.
박군 일당에게 뭇매를 맞고 있던 김군은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라는
원망 섞인 표정으로 연출을 쳐다봤다.
연출
- ...뭐랄까, 전혀 안 아파 보여.
때리는 놈들도 성의가 없어 보이고
빈 깡통이 요란하다 뭐 그런 느낌이야.
회계 - ....역시 진짜를 써야 하나?
연출 - 그럴까?
김군의 원망어린 표정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점점 위험한 쪽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박군 일당도 이젠 지쳤다는 듯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버렸다.
연출
- 작년에도 뻑하면
‘액션이 약하다’ ‘임펙트가 떨어진다.’
그런 소리가 나오더니
이번에도 된통 깨지게 생겼네, 이거.
회계 - 하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상황이 잘 안 풀리자 담배부터 물고 보는 회계.
그의 얼굴에 드리운 수심으로 말하자면
청년 실험 50만 시대에
군에서 갓 전역한 청년의 고뇌가 담겨있는 듯 했다.
하지만 회계가 라이터에 불을 켜기 전
수능 날 늦잠자서 오후에 일어난 삼수생의 절망이 담긴 표정의 연출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엄지손가락을 바깥으로 향해 출입문을 가리켰다.
연출 - 담배는 나가서 피우라니까.
회계 - 아.... 또 쪼잔하게 구네.
회계는 연출의 연습실 금연정책이 영 내키지 않는 듯 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연습실 곳곳에
=담배 피우다 걸리면 담배빵 =
이라는 살벌한 경고판이 붙은 만큼
입에 물었던 담배를 손으로 옮겨 잡고
꾸물꾸물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무튼 혼자 나가기가 좀 허전했는지
주변을 둘러보던 회계는
연습실 한 쪽에서 분위기 잡고 앉아있는 김양을 불렀다.
회계 - ..... 김양아, 한 대 태우러 가자.
김양 - 싫어.
회계 - 돛대 줄게. 같이 가자~.
마지막 한 개비가 들어있는 담뱃갑을 흔들어 보이며
김양을 유혹하는 회계.
김양 - .......
돛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흔들릴만한 제의에
김양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김양과 회계가 밖으로 나가고
연출은 손에 든 조그만 연습장에
알 수 없는 메모를 끄적거리며
중얼거리다 한숨쉬고, 중얼거리다 한숨쉬고를 반복했다.
처음엔 나름대로 머리를 맞대고 있던 박군일당도
이젠 더 이상 모르겠다는 듯 딴청을 부리고 있을 때
갑자기 연출이 연습장을 밥상 엎듯 집어 던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연출 - 악~~쑌!!!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박군 일당과 김군은
불빛에 바퀴벌레 흩어지듯 구석으로 몸을 피했고
난 우연찮게 근처에 떨어진 노트를 집어 들었다.
빨간 볼펜으로 거칠게 그려진 낙서와
그 밑에 붙어있는 캡션들이 매우 인상적인 연출의 연습장.
그곳엔 이런 메모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실감나는 액션 구현을 위한 대책 연구=
각목 강화를 통한 두려움의 극대화
-> 손잡이로 때린다.
-> 주변에 못을 박는다.
-> 무게 및 강도가 강화된 각목 주문.
= 비용 문제 발생. 첫 번째가 제일 유력.
김군 대역 고용?
-> 말도 안 되는 소리.
박군 일당의 파워업
-> 김군의 숨겨진 만행을 폭로. 분노 에너지 충전
-> 지속적인 근력 트레이닝.
= 준비기간의 문제 발생. 전자가 더 경제적.
..........
김군, 위험하다.
연출
- 자! 다시 한 번 해 보자.
박군, 넌 아까 발을 쳐들 때가 좀 리얼해 보이더라.
이번엔 들기만 말고 아예 밟아봐.
어깨, 덩치 너희들도 좀 더 그루브하게
너무 각목에 집착하지 말고,
차고 싶으면 차고, 주먹으로 치고 싶으면 그냥 날려!
김군 -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연출
- 넌 인마 연극이 장난이야?
그딴 각오로 임하니까 리얼리티가 안 나오는 거 아냐!
연극의 주연을 맡았다는 녀석이
그렇게 설렁설렁해서 설렁탕이라도 끓일 생각이냐?
당근과 채찍이 미묘하게 결합된 연출의 일갈에
김군은 말없이 주먹을 부르쥐었다.
그리고.....
=뻐억!! 빠악!! 퍼벅! 퍽! 쿠직 쿠직....=
잠시 후 겁나게 맞았다.
김군의 분발에도 불구하고
연출이 설레설레 고개를 젓고 있을 때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김군 - 아악! 자, 잠깐! 크윽! 그만!!
갑자기 김군의 연기가 몹시 리얼해진 것이다.
박군 일당을 향해 손을 내젓다가
공격이 들어가는 즉시 몸을 웅크리고
어떻게든 몸을 피하기 위해 바닥을 구르는 그의 모습.
일어나려다 발에 차이고, 바짓단을 붙잡는 김군의 연기는
리얼리티의 궁극을 달리고 있었다.
김군의 리얼함에 때리는 박군 일당도 흥에 겨워
더욱 더 강력하게 김군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연출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
뭔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뭔가 깨닫기 시작했다!!
‘퍼억! 따악!! 따악!! 뻐어억!! 따악!!’
담배를 태우고 돌아온 회계와 김양이
김군이 맞는 소리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섞여 난다는 걸 깨닫고
그를 고통의 지옥에서 구조해준 건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이야기다.
그렇게 김군이 전신타박상을 입고 알아 누운 다음
연출은 심각한 고뇌에 빠져들었다.
=정말로 각목을 강화해야 할 것인가?=
생존본능에서 비롯한 김군의 몸부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 이지 ‘연기’가 아니다.
아직은 다른 방도를 찾아봐야할 일이다.
연출 - 기억아, 아까 내 연습장 주웠지?
기억 - 아, 여기 있습니다.
연습장을 받아든 연출은 예의 그 빨간 볼펜으로
페이지 구석에 작은 메모를 덧붙였다.
숙달된 액션 조교 영입.
= 대체 어디서?
......
다음날 서양음악의 이해 강의실.
난 김씨와 허씨의 초빙을 추진하기 위해
그들을 기다렸다.
이윽고 강의시간을 10분여 남겨놓았을 때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그들이 나타났다.
김씨 - 씨익.... 씨익....
허씨 - 허억....허억....
지금 막 소싸움판에서 격돌한 것처럼
습한 백색 입김을 푹푹 뿜으며 들어와
자리가 들썩할 정도로 푹 주저앉은 둘은
이내 서로 죽일 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 혹시 지금 말 걸면 안 되는 분위긴가?
난 다른 사람들 간의 시비에 말려서
=야, 내 얘기 좀 들어봐! 이 새끼가...=
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 건 몹시 싫어했기에
잠시 분위기를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 김씨, 허씨와 가깝게 지내던 엑스트라 한 명이
둘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noname01 - 야... 둘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김씨 - 야, 말도 마라. 이런 X.... 이 새끼를 그냥....
김씨는 돌아가는 야마에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주먹을 부르쥐며 분을 삭였다.
noname01 - ..... 둘이 싸웠어?
허씨 - 하...씨.... 그럴 수도 있지 남자 새끼가 쪼잔하게....
noname01 - ...... 무슨 일인데?
김씨
- 허, 쪼잔? 그럴 수도 있어?
너 나와 봐 이 새꺄.
너도 똑같이 한 번 당해보고 그딴 소릴 해.
내 살다 살다...
noname01은 이름만큼이나 존재감 없는 단역이었지만
그 덕분에 난 김씨, 허씨의 지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씨
- 야, 나 오늘 이 새끼 때문에 쪽팔려 죽는 줄 알았네.
어제 얘가 내 방에서 자고 기숙사에서 둘이 같이 나왔거든?
근데 이 새끼가 기숙사에서 여기까지 존내 뛰면
4분 만에 끊을 수 있다고 그러는 거야.
허씨 - ..... 어쨌거나 그 안에 오긴 왔잖아.
김씨
- 넌 쫌 닥쳐봐, 그냥 확 받아 버릴까보다...
아무튼 된다, 안 된다 입씨름을 하다가
실제 뛰어서 와보기로 했거든?
늦는 놈이 음료수 사기로...
naname01 - 응. 그래서?
김씨
- 근데 이 새끼가 겁나 잘 뛰더라고.
그래서 이 빡세게 물고 막 따라잡는데...
허씨 - 내가 복싱을 좀 했거든.
김씨
- 안 다물어? 너도 그냥 확 내려버린다?
아...씨. 아무튼 막 따라잡는데
이놈이 앞에서 발목이 꺾여가지고 휘청하더라고
그래서 이때다 싶어서 딱 추월을 하는데
이놈이 자빠지면서 내 바지를 확 잡아내리는 거야!
기숙사 앞에 그 골목, 응?
사람들 다 이제 등교하려고 줄 서있고
앞에 버스 정거장도 있고 막 그런데
발목까지 내려갔잖아!
하..나 씨 쪽팔려가지고 존내 뛰었네.. 진짜....
내일부터 아침 일찍 나오든가 해야지... 밖에 못 나간다 진짜.
허씨
- 아니.. 그러니까... 그게 고의가 아니라....
워낙위험한 상황이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씨
- ...너는 내 바지가 지푸라기냐? 응?
나도 지푸라기 한 번 뜯어볼까?
허씨
- 아따.... 야광 입고 다닌다고 소문 좀 나면 또 어때?
응? 정력빤스라고 하면 될 거를 쪼잔하게...
그 한 마디에 인내심이 끊어진 김씨는
무릎 팔꿈치, 머리, 주먹 발 할 것 없이
신체 모든 부분을 이용해 허씨를 구타하게 시작했다.
김씨 - 네가 당해볼래? 응? 네가 당해볼래? 응? 내가 당해볼래?
허씨 - 끄아아아악~!!!
허씨의 머리를 잡아 앞에 있는 의자 등받이에 찍어대는
김씨의 만행을 보다 못한 noname01은
부실한 몸을 던져 둘을 말리려 했다.
noname01 - 야야, 그만해. 그러다 죽겠다.
김씨 - 에이씨... 됐어, 그냥 장난치는 거야. 이미 지난 일을...
허씨 - 우리 이러는 거 처음 보냐?
방금 전 그 무자비한 공격에
하얗게 질린 noname01이 쌩뚱맞을 만큼
너무 태연하게 다시 자리에 앉는 두 사람.
...... 저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