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어화(解語花)-말하는 꽃(2)-
별 하나 없는 칠흑같이 깜깜한 어둠이 대지에 내려앉은 밤이다.
웅장한 홍룡(紅龍) 한마리가 막 똬리를 풀고 용솟음치려는 놀라운 진풍경이 재현되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등불(燈)이었다. 사람의 몸통만한 수만 개의 홍등(紅燈)이 팔백 여장에 달하는 담장위에 놓여져 붉은 용의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담장의 높이도 그에 맞추어 구불거리는 용의 몸통에 따라 높낮이를 달리하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누런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의 머리는 거대한 기와대문에 얹혀져 있었다.
대문은 그야말로 건물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멋들어지게 완성시키는 화룡정점(畵龍點睛)이었다. 갖은 보옥과 홍옥이 빼곡히 박힌 커다란 두 기둥이 엄청난 수의 천장기와와 용머리의 무게감을 턱하니 떠받들고 있었다. 장정 대여섯 명이 팔을 벌리고 둘러서야 그 둘레를 감싸 안을 수 있을 만큼 기둥은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또한 겉면은 은으로 도금이 되어 있었고, 그 위를 상천하는 용의 형태로, 수많은 보석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빛을 받은 보석들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어, 건물의 입구가 뿌연 빛 무리에 잠긴 듯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기둥 아래에는 군청색 비단옷을 길에 늘어뜨려 입은 키가 작고 비쩍 마른 중년인이 이리저리 바삐 오가며, 띄엄띄엄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검은 장막으로 휘장 쳐진 으리으리한 가마가 들어가기도 했고, 비단옷을 멋지게 빼입은, 귀한 집 자제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감탄스러운 눈길로 대문에 눈을 빼앗긴 채 안으로 들어서기도 했다. 그때마다 중년 남자는 그들을 각각의 인사법으로 정중히 맞이한 다음 이리저리 급하게 장부에 메모하며, 담장 안쪽으로 늘어서있는 일련의 사내들에게 손님들을 정해진 전각에 인도하게끔 했다. 사내들은 모두 흑의를 단정히 갖추어 입은 이들로, 중년인에게 호명될 때마다 일각의 지체도 없이 잽싸게 달려왔다. 그리고 손님들을 그가 일러준 전각으로 공손히 인도했다. 계속 이어지던 손님이 잠시 뜸 하자 그제야 중년인은 한시름을 덜은 듯 허리를 펴고 큰 숨을 쉬었다.
“국주어른~ 오늘은 홍루의 엉덩이를 만지러 안가십니까?”
“예끼! 이놈이!”
“어제 홍루가 울고불고 보채어 진땀 꽤나 흘리셨다지요? 낄낄..”
“이 놈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후우.. 내가 네놈들과 말해 무얼 하겠냐..쯧쯧”
“클클클..”
줄서있던 흑의를 입은 놈들 중 하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익살스런 표정으로 그에게 농을 걸어왔다. 국주라고 불린 중년사내는 신경질적으로 가느다란 수염을 매만지며, 혀를 끌끌 찼다. 주변의 흑의 사내들도 연신 낄낄거리며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중년사내는 이곳에서는 꽤 높은 신분으로 보였으나, 아랫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듯 소탈한 성격인 것 같았다. 잠시 짬을 틈타 서로 장난을 치고,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던 이들은, 갑자기 왕국주가 정색을 하고 허리를 굽히며 손님 받을 채비를 하자, 모두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지며 다시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고 섰다. 왕국주는 다가오는 일행을 보며 보일 듯 말 듯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혀를 찼다.
‘에잇.. 세상이 어찌되려고, 저 나이에 벌써부터 기루출입이라니!’
그의 문지기(?) 인생 30년. 딱 보아하니 답이 나왔다.
곱상한 도령하나가 옆에는 유모로 보이는 듯한 할멈, 그리고 호위로 보이는 무사까지 나란히 대동하고 이곳을 향해 바삐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무언가를 주렁주렁 매단 흰 개 한 마리도 보였다.
‘그래, 그래.. 저만한 나이 때는 이것저것 호기심도 많은 법이지 쯧쯧.. 어디보자......흐음, 초향이 년 정도가 괜찮겠구나.’
하지만 그들이 입구에 당도했을 때, 그는 장부에 이름을 적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의외로 일행의 행색이 남루했던 것이다. 하지만 감탄의 눈망울로 휘황찬란한 대문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도령의 얼굴을 본 순간 왕국주는 그럼 의심을 딱 털어버렸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저렇게 아름답고 품위 있어 보이며 ‘나는 매우 존귀한 분이시다’하는 것을 온 얼굴로 말하고 있는 귀공자(貴公子)는 본적이 없었다.
“어서 옵쇼~ 이곳은 처음이시지요? 적당한 처소로 제가 지...!”
타앗-
왕국주는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벼락 맞은 것 같은 고통에 머리를 감싸 쥐어야 했다.
온갖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빼 꼼이 들어 대상을 올려다봤을 때, 그는 하마터면 소리를 버럭 지를 뻔 했다. 어이없게도 유모로 보이는 검버섯 핀 쭈그렁 노파가 지팡이를 쥐어 들고 서있었다. 억울한 자신의 눈빛을 보고 다시 한번 지팡이를 두드려 댈 기세다.
‘이 할망구가..!’
하지만 그의 마음속 울분도 길게 가지 않았다. 옆에 있던 무사로 보였던 이가 노파를 제지하는 듯 했다.
“그만 좀 하세요! 이 상황에서도 매질부터 하시기에요?”
무사를 올려다본 왕국주는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그는 늘씬하게 키가 큰 여인이었다. 그리고 뒤에 누군가를 업은 듯 보였다. 노파는 무안했던 듯 그제야 급한 목소리로 국주에게 서둘러서 말했다,
“흠흠. 이 아이를 아느냐! 한시가 급하다!”
“갈대숲에서 괴한들에게 당하는 걸 보고 구했소. 여기 초로가 기적이던데-”
그녀는 업고 있던 누군가를 살짝 옆으로 돌려 왕국주가 얼굴을 확인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침착하게 대상을 확인했다. 피비린내로 속이 메스꺼워 오는 듯 했다. 얼굴은 얼마나 맞았는지 원래 형태를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노련한 눈썰미인 그는 금방 그 대상이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이럴 수가! 업힌 자는 해루였다.
‘아아아..! 어찌 된 일인가!! 이를 어찌...! 이런 몹쓸 놈들!’
그는 속으로 온갖 욕지기를 해댔고, 얼굴은 분노로 벌겋게 상기되었다.
“이 아이를 여기서 죽일 셈이 아니라면, 어서 처소로 안내해! 시급을 다투느니!”
“예..옙!”
그는 노파의 말에 서둘러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노련한 노장답게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해 나갔다. 순식간에 장내가 정리되었다.
“일아! 그리고 황아! 여기서 나머지 손님을 맞도록 해라. 행적은 그동안 보아왔으니 적당한 처소로 네가 알아서 인도하고.. 국아 너는 여기 핏물을 치우도록해라. 그리고... 장이 너는 나를 따르도록 해라. 그리고 금이 너는 ... 그분께 해루가...해루가.. 흐음..아니, 되었다. 그건 내가 직접 보고하도록 하마.”
“네엣!”
“옙!”
“국주어른 걱정 마시고, 해루를 어서 옮기십시오!”
대답을 하고 지시를 따르는 사내들도 한결같이 표정이 어두웠다. 그들도 다들 해루라는 이 여인과 안면이 있는 듯, 안타깝고 걱정가득한 표정이다. 왕국주가 서둘러서 일행을 전각의 컴컴한 뒷길로 안내했다. 그의 발걸음도 안타까움으로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일행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총총히 사라져갔다.
“노모!! 얼른 나와 보시게! 해루가 큰 화를 입었네!”
“아이고~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해루야!! 이 녀석아 눈 좀 떠 보거라!!”
“아악! 해루야!!!”
“장아 너는 밖에서 보초를 서거라. 누구 보는 눈이 없는지 유심히 살피어라.”
“예, 국주님!”
작은 전각으로 인도 받은 일행은, 왕국주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 나온 노파하나와 젊은 여인을 만났다. 노인은 다친 여인을 보자마자 벌써부터 오열하기 시작했다. 속이 비치는 하늘하늘한 풀색 비단옷 하나만 달랑 걸친 젊은 여인의 눈에도 놀라움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길을 안내한 왕국주는 젊은 여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홍루야! 너는 어찌하여 여기 있는 게야!”
“아니, 국주어른? 노모에게 물어보니 해루가 여태 들어오지 않았다 길래 걱정이 되어..흑흑”
“그래.. 차라리 잘되었다. 이분들을 돕도록 해라.”
“네, 어른.., 아아 해루야..정녕 너니? 이 몰골이 머야...! 어찌 된 거야!”
왕국주는 고개를 돌려, 작약과 한영을 어찌해야 할지 묻는 듯한 눈빛으로 안타깝게 응시했다. 작약은 대뜸 노모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다.
“우선 뜨거운 끓는 물을 한소끔 준비해 오너라! 약재를 끓일 탕약기도 준비하고!”
“예예! 아일 살려만 주십시오! 으흐흑. 무엇이든 준비 합지요!”
노모는 눈물을 뿌리며 허둥지둥 주방으로 달려갔다. 홍루라고 불린 젊은 여인은 한영에게 달려가 팔을 슬며시 잡아끌며 말했다.
“이리로 따라 들어오시어요. 제가 방을 비울게요!”
한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여인이 이끄는 대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흰둥이의 목에 걸린 짐 안에서 이것저것을 챙겨 꺼내어든 작약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막상 하얀 침상위에 여인을 눕히고 보니, 그 상태가 더욱 위중해 보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인지 얼굴과 전신의 살색이 파리하니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간혹 몸을 푸르르 떨었다. 작약이 말했다.
“홍루라고 했느냐? 아이야 너는 어서 이 아이의 몸을 깨끗하게 씻기고 상처부위를 정확히 가려내도록 해라.”
“네에.”
홍루는 노모가 준비해온 끓는 물에 흰 무명을 빨아서 해루의 온몸의 상처를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한영도 옆에서 그를 거들었다. 그사이 작약은 바늘과 실과 몇 가지 약초를 보따리에서 주섬주섬 꺼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잘되었다. 도화야! 혹여 화(火)의 기운을 다룰 줄 아느냐? 이 바늘과 기구들을 좀 달구어 보련?”
“네에! 걱정 마세요!”
도화는 결연한 눈빛으로 간단한 주문을 외웠다. 소년의 몸에서 허연 빛 무리가 이는 듯싶더니, 어느 순간 뿌연 기운이 손바닥으로 집중되어 강렬한 붉은 빛을 띠었다.
“갈!! 화(火)염!”
소년의 외침과 동시에 작은 불꽃이 일었다. 손바닥위에서 춤추는 듯한 붉은 화염 속으로, 소년은 망설임 없이, 크기가 다른 칼과 바늘 등 수십 개의 작약의 신비스런 기구들을, 하나하나 집어넣어 소독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뜨거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 그 손길에 전혀 거침이 없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노모와 홍루 그리고 왕국주의 눈에는 놀람과 감탄이 가득했다. 또한 해루를 살릴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샘솟았다.
‘저 어린 나이에 화기를 다루다니! 이들은 예사 인물이 아님에 틀림이 없다!’
왕국주는 속으로 생각하며, 하나하나 이들 일행을 다시금 주의 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홍루와 한영의 정성스런 손놀림에 어느덧 여인의 나체위의 상처가 정리되어갔다. 어디 한구석 성한 곳이 없었다. 얼굴과 전신은 시퍼렇고 붉은색으로 여기저기 멍이 가득했고, 군데군데 크게 찢겨져 있었다. 피를 다 닦아내고 보니 그 처참함이 더했다.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배꼽을 중심으로 크게 들은 멍은 이제 완연히 검은색을 띠고 있었고, 작약이 맥을 짚으며 기를 불어 넣을 때 마다, 기이하게도 멍이 살아 움직이는 듯 출렁이며 점점 더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멈추었던 하혈도 이제 조금씩 다시 비치기 시작했다. 색도 점차 검정에 가까운 검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이..이런....! 내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이냐!”
천천히 혈도를 두드리며 맥을 조심스레 잡아보던 작약이 탄성 음을 내질렀다.
“아이고! 신선님! 무슨 일이십니까! 제발, 제발...!”
“무슨 일이에요?”
“......!”
늙은 노모의 절박한 눈에는, 작약일행이 신선으로 비춰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영의 날카로운 일갈이 이어졌다. 홍루는 놀란 마음에 눈물만 그렁그렁 할뿐 입을 크게 벌린 채로 차마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웬만한 궂은일은 다 겪어 보았다는 왕국주의 눈에도 두려움과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
“사산된 태아를 꺼내야 하는데.. 무언가 이를 막고 있어. 이런, 이런..”
“사산된... 태아라니요? 아니, 그럼..?”
계속해서 해루의 몸 안의 기를 일주천 시켜보려 시도하는 작약의 얼굴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노모의 얼굴은 이제 막 통곡을 하기 직전이었다. 한영은 고개를 홱 돌려 노모의 얼굴을 외면했고, 홍루역시 동생 해루와 노모를 번갈아 보며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그렇네. 배안에 든 아이는 이미 명을 다했어. 쯧쯧.. 아무런 맥도 짚이지 않으니..
지금은 그 아이의 사체가 제 어미를 갉아먹는 극독(劇毒)이야.“
“아이고...아이고.. 이 불쌍한 년... 결국은 잃을 것을...결국은 잃을 것을.... 흐흐흑”
“이미 시독이 퍼지기 시작했느니. 장과 위장과 방광으로 독 기운이 흩어져 번지기전에
어서 빨리 자궁을 들어내야 될게야.”
“자궁(子宮)을 들어내다니요? 몸 밖으로요? 그런 소리는 들어 본적도 없습니다!”
깜짝 놀란 얼굴로 왕국주가 소리쳤다. 몸에 칼을 대어 장기를 끄집어낸다라니! 그도 실은 이런 병을 잘 알고 있었다. 실상 성병(性病)에 걸린 기녀들의 말로는 대게가 이러했다. 제대로 된 약 한번 써보지 못하고 이와 비슷한 질환으로 몸에 독이 퍼져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런 국주에게는 눈길한번 주지 않고, 작약은 눈썹도 꿈쩍 안고 제 할 일만 거듭할 뿐이다.
그래 ..예전에 한번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의술의 신 화타나 혹은 그와 버금가는 의선 작약과 같은 이들은 사람의 몸을 칼로 도려내고 봉합하여, 죽은 이도 되살린다고 했다. 그런 일을 지금 이 눈앞의 노인이 행하려 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점점 더 경악으로 둥그레졌다. 그는 머라고 항변하려다가 홍루의 말에 막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노모는 계속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해루의 손과 얼굴을 비벼대며 흐느끼고 있었다.
“불쌍한 년아...아이고..이 가련한 것을 어찌할꼬...흐흐흑”
“국주어른~ 노모 진정하세요!!! 할머니, 살릴 수 있는 것이지요? 부탁드려요!”
홍루는 단호한 눈빛으로 입술을 깨물며 작약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이 순간 그녀는 동생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흐음... 인명은 제천인 게야.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아이고..흐흑.. 불쌍한 것입니다. 신선님, 어여삐 여기시어 제발,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살려주세요, 할머니 아아..!”
“......”
한영은 묵묵히 꿇어앉은 여인과 노모를 일으켰다. 왕국주는 큰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마른 그의 두 어깨가 유난히 쳐져 보였다. 그리고 한영은 결연한 눈으로 작약을 향해 돌아서 물었다. 그녀의 두 손이 꽉 쥐어져 있었다.
“전 무얼 해요?”
작약은 대답 없이, 두 눈을 감은 채로 낮은 신음성만 흘릴 뿐이다. 모두의 긴장된 이목이 가느다란 손목을 쥐고 있는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흐음.... 이상한 일이지..이상해... 이것은 마치, 마치... 무엇인가가...”
“무엇인가가? 뭐요?”
“제발.....!”
한영은 긴장된 마음으로 작약을 다그쳤다. 옆에 선 이들도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작약이 땀방울을 연신 흘리며 막 무어라고 대답하려고 할 때였다.
“으악! 세상에!! 악귀가.. 악귀가 저 누나의 몸 안에서 배를 움켜쥐고 있어요!!!”
소년의 깜짝 놀란 목소리가, 작은 전각의 방안에 쩌렁 쩌렁 울렸다.
그때 마침 흰둥이에게 잠시 마실 것을 주러나갔던 도화가 막 문을 열고, 전각 안으로 다시 들어온 참이었다. 도화는 방문을 닫고 일행을 쳐다 본 순간 너무나도 놀랐다. 작약은 해루의 맥을 쥐고 기(氣)의 흐름을 뚫어 보려 애쓰고 있었고, 나머지 한영과 홍루는 식어가는 그녀의 손과 발을 애타게 문지르고 있었다. 왕국주는 정신없이 흐느끼는 노모를 달래고 있었다. 왕국주, 그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화는 외침소리와 함께 품안에서 4장의 부적을 꺼내어 들고 사방으로 던지며 외쳤다.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부적들은 살아있는 생명체 마냥 날아가서는, 해루와 작약을 중심으로 동, 서, 남, 북 네 방위에 터억 걸쳐지고는 허공에서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동방위신, 서방장군, 남방후제, 북방군위! 네 방위의 이름으로 결(結) 하라!”
치지이익-
츠읏-
도화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적들 사이 마치 번개와 비슷한 빛줄기가 둥그스름하게 결계를 맺었다. 완성된 결계 안에서는 작약과 해루 그리고 한영과 홍루가 각기 몹시 놀란 표정으로 도화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결계 밖의 왕국주는 노모를 안은 채로 너무 놀라 그만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버렸다.
그때였다.
누워있던 해루의 배꼽 부근이 부들부들 떨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일행이 보기에는 갑자기 누운 여인의 골반부근이 움찔 움찔 거리며 솟아오르고 바닥에 내팽겨 쳐지며 요동을 치는 듯이 보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끈이 여인의 골반부근을 묶고는 격하게 흔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배꼽을 중심으로 아까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검은 멍은 이제 본격적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멍은 마치 괴롭고 갑갑한 듯 불룩 불룩 살 위로 튀어 나오기도 했고, 여인의 몸으로 뻗어 나가려는 듯 위아래로 요동치기도 했다. 작약도 너무 놀라 그만 쥐고있던 여인의 맥을 놓쳐 버렸다. 시체와 다름없이 누워 있는 여인의 몸이, 갑자기 허공에 골반부분만을 반장정도 띄운 소름끼치는 광경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는 검은 멍이 살아있는 생명체 마냥 불쑥 불쑥 튀어 나오며 여인의 몸 안에서 요동쳐 대고 있었다.
“아아아...이게 대체! 해루야! 헉!”
홍루는 너무 놀라 뒤로 그만 땅에 주저앉은 채로 몇 걸음 앉은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치이익-
부적이 만드는 빛의 결계에 등이 닺자 실제로 감전되는 듯한 충격이 왔다. 너무 놀란 그녀는 정신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결계 밖에서는 왕국주와 노모가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으로 해루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직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한영이었다. 울먹이는 눈으로 그녀는 해루와 한영을 번갈아 쳐다보며 막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려했다.
“저..저저저...저저...기..”
“괜찮아 울지 마. 마음을 굳게 먹어.”
“도화야 무슨 일이냐!”
작약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한영은 그래도 술법가문의 혈통답게 사악한 기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마귀(魔鬼)냐?”
“네에! 저 누나의 배안에 웅크리고 있어요. 결계의 영향으로 괴로워 몸부림 치고 있어요!”
“아니 이거 원 참 보이지 않으니 답답해서...! 끌끌..”
“누나! 할머니! 이것을 받아요!”
도화는 영적인 존재들을 보이게 하는 개안부(開眼符)를 일행 쪽으로 던졌다.
“진리여! 근본의 눈을 뜨이게 하라! 현!(顯)”
갑자기 작약과 한영 그리고 덩달아 홍루의 이마께가 따끔한 충격과 함께 정수리가 서늘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들 해루와 도화를 번갈아 보았다. 이제야 어렴풋이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아...!”
“헉!”
“아니...저, 저것은!”
작약과 한영은 동시에 식은땀이 한 줄기가 등으로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일을 난생 처음 겪는 홍루는, 비명이 새어나오려는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두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고 눈물이 줄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천한 아귀야- 어찌하여 여인의 배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냐!”
“이이이...이!”
작약이 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한영은 한껏 살을 먹인 시위를 당겨들고도, 여인을 쏠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저 놈은 피에 굶주린 아귀에요! 저 누나의 몸에 들어간 지 두시진이 채 안되었어요!
이제 막 깨어나려는 중이에요! 저 놈이 ..... 지금!“
“머라고? 두 시진이 안 되었다면..?”
“그래그래! 그 놈들 짓 인 게야!”
틀림없었다. 아까의 그 악인들은 여인을 범하고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여 그녀의 배 안에다가 이 악귀를 금제해 놓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 이런 육시할 놈들이 있나...!”
“아악! 할머니 저 놈이 지금! 아이의 혼을!! 아이의 혼을!!”
“머라고?”
“메야!”
“안 돼!!!!!!”
여인의 배안에 웅크리고 있던 검은 기운은, 그자세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 도화를 똑바로 응시했다. 눈과 코와 입은 구멍만 있을 뿐 보기만으로도 소름끼치는 모습이었다.
도화와 정면으로 맞이한 휑하니 뚫린 두 눈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아귀의 두 손에는 희끄무레한 빛 덩이 두개가 잡혀있었다. 두 빛 덩이는 바들바들 떨며 아귀의 손에서 벗어나려 요동쳤지만 역부족인지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아이의...영혼을 소멸 시키려 해요...! 먹어치우려 하고 있어요!”
“이런! 안된다! 그리는 안 된다.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가련한 령(靈)이야!”
「배가고파..배가고파..」
“비켜라! 불쌍한 영을 놓아두고, 그 누나의 몸 밖으로 썩 나와!”
「배가고파....먹어야해」
“나와라! 이승에서 네가 있을 곳은 없어! 더 큰 죄를 짓지 말고 돌아가!”
「먹어야해...」
아귀는 더욱더 빛 덩어리를 콰악 움켜쥐었다. 부르르 떨리던 빛 무리 중 하나가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뿌옇게 소멸되어 아귀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나머지 빛 무리 하나도 거의 색이 희미해지며 절반으로 나뉘어져 아귀의 손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앗!! 안 돼!!”
“저, 저저저!”
도화의 비명소리와 작약의 안타까운 외침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한영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멸된 불쌍한 영이 너무나도 가련하고 안타까웠다. 빛도보지 못하고 배안에서 억울하게 육신 죽임을 당하고는 그 혼령마저도 성불의 기회를 잃고 영원히 소멸되어 버렸다.
도화의 눈에서도 한줄기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결계 밖의 왕국주는, 몹시 두려워서 그만 바지춤에 오줌을 지려 버렸다. 비릿한 냄새가 방바닥을 타고 흘렀다. 노모는 해루의 괴이한 모습을 보고는 그만 혼절하여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국주는 오히려 그편이 부러웠다. 개안부의 영향권 밖이라 안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주워듣는 이야기로 돌아가는 상황은 대충 판단이 되었다. 아마 해루가 변을 당할 때 그 놈들이 해루의 몸 안에다가 귀신(鬼神)을 심어 놓은 듯 했다. 그리고 결계안의 노파와 무사가 그를 저지하려 하고 있었고, 여기 꼬마가 그 중심인 듯싶었다. 왕국주는 홍루의 안위를 살폈다. 홍루는 무엇이 보이는 듯이, 동생 해루를 크게 치떠진 눈으로 올려다보며 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문득 왕국주는 옆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기운에 놀라, 검은 머리의 도령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도령은 성큼 성큼 결계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도령의 몸이 시리고 시린 보랏빛으로 일렁였던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눈이 이상한가 싶어서 고개를 털어내고 눈을 껌벅거리며 다시 보았다. 다시 보아도 도령의 검은 곱슬머리는 어깨부근에서 일렁이며 하늘로 치솟고 있었고, 그의 전신은 기이한 보랏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령의 모습은 어느덧 결계 안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국주는 너무나도 두려웠지만 이 상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려는 듯 안력을 돋우어 결계 안을 주시하고자 마음먹었다.
-------------------------------------------------------------------------------------- 다들 잘 지내셨지요?
미송님, 물푸레나무님, 사이비님, 봄봄님 그리고 야호님.(^^) 오랜만에 실린글에 잊지 않으시고 소중한 리플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다른 모든 사랑스러운 님들!
파안의 가호가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파안이 무엇인지 궁금하시지요? 흐흐 아마도.... 35회 쯤 까지 열심히 보시는 분을 아실수 있을 듯!)
농담이구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이제는 정말 가을인가보구나...싶군요.
환절기입니다. 다들 감기조심 하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