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탕~ 쿠당!
우악스럽게 성규의 멱살을 잡고 반쯤 일으킨 추림은 성규의 얼굴을 화장대 거울앞으로 들
이 밀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성규는 추림의 손에 이끌린 채 반응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집안은 더 엉망이 되었지만 세명 중 그것을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아라! 이게 니 모습이다. 음악이 좋아 늘 웃던 김성규의 모습이다. 한 여자가 미치도록
사랑해서 믿고 의지하던 그 김성규다! 불쌍한 어머니가 눈물로 밤새어가며 수없이 잘돼라
빌고 빌어주던 대상인 그 김성규다! 반드시 성공하리라 눈물로 친구앞에 다짐했던 그 김성
규란 말이닷!"
추림이 거울앞에 강제로 성규의 얼굴을 처박고 윽박지르자 성규의 눈에 진한 아픔이 스며
들었다. 입은 툴툴거리며 웃고 있지만 눈은 아주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개자식! 너 누구야? 누군데 그 모습하고 있는거야? 씨발놈아 제발 이제 그만하란 말이다!
명화씨가 불쌍하지도 않아? 어머니가 가엽지도 않느냔 말이다! 최소한 내게 이런 모습 보
이지 말아야 하는 너란 말이닷! 이 씨발놈아 널 아주 보내버리겠어!"
추림의 주먹이 휘둘러지면서 힘없이 늘어진 성규의 안면에 정통으로 틀어 박혔다.
코를 맞은 성규가 금새 코피를 쏟아내고 신음을 흘렸다.
"크흑......!"
추림의 손이 다시 움직이고 난타가 이어졌다. 고통스러운지 성규가 추림의 팔을 잡고 벗어
나려 발버둥 쳤지만 추림의 손은 쇠집게처럼 요지부동으로 풀리지 않았다.
"으흑! 커억... 컥!"
"넌 인간말종이다. 도저히 사람으로 살아갈 자격이 없는 새끼란 말이다. 사람소리 흉내내
지 말아라. 널 죽여버리고 명화씨는 내가 데리고 살겠다. 개새끼! 술에 쩌들고 약물에 의지
하는 더러운 새끼... 널 사람으로... 인격적으로 대해주던 이들에게 넌 이제부터 더럽고 추악
한 벌레다. 입 다물어라. 입 다물란 말이다!"
방바닥으로 널부러진 성규를 추림은 발과 손을 동원해 찍고 두들기고 내려치고 해가며 인정
사정 없이 마구 두들겨 팼다.
입과 코에서 피를 게워내며 성규가 컥컥 거리는데도 추림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만... 잘...못했다... 그만... 그마안......!"
"입 다물라했다! 네겐 말할 자격도 없다. 일하지 않아도 좋다. 평생 놀고 처먹어라. 하지만
왜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고 피해를 줘야하는데? 왜? 니가 사람이냐? 순진한 여
자를 꼬여 인생 조져놨으면 책임지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거 아니야? 술 처먹을 돈 마약 구
해 니 배때기에 처 넣을돈 있으면 차라리 오늘 양식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거 아니냔 말이닷!"
누군가 지금 추림의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 도저히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조용하게 말했고 밝게 웃을줄만 아는 남자였을 줄 믿었을테니까. 하지만 정말
추림이 화가나면 친구들조차도 멀리 달아난다는 사실을 그를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알 도리
가 없을 것이다.
추림의 광분한 몸짓이 도를 넘기려하자 눈물을 흘리며 한쪽에 서있던 명화가 추림을 가로막
으며 말렸다. 고개를 도리질치며 명화가 슬픈 얼굴로 추림을 응시했다.
"저리 비키세요. 이놈을 오늘 죽여야겠어요. 명화씨도 이놈 때문에 사는걸 아예 포기했는데
이놈만 없으면 명화씨는 더이상 구속받지 않아도 돼요. 저리 비겨요! 둘 다 포기했으니 한명
은 사라져야 다른 한명이라도 살것 아닙니까! 그러니 어서 물러나요.!"
"추림씨.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 흐허엉... 제가 다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명화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피를 흘리고 있는 성규를 품
에 안았다. 손으로 성규의 얼굴을 훔쳐내며 서럽게 울었다.
"성규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응? 우리 같이 죽어버리자! 너무 사는게 힘들잖니 차라리 같
이 죽어서 우리 그만 편안해지자 성규야! 흑흐흐 흐헝......!"
"명화... 울...지...마! 미안... 너무 미...안해...! 그래 같...이 죽...어. 쿨럭! 흐으......"
눈을 부릅뜬 추림은 턱을 강하게 악다물고 성규와 명화를 응시했다. 생활이 어렵고 힘들어
도 포기해선 안되는 것이다. 성규가 못나고 나약하다면 명화라도 정신을 강하게 차려야 하
는 것이다. 이들은 둘 다 포기해 버린 생활을 해가고 있었다.
명화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장녀로서 도리를 배우며 살아왔기 때문
에 여느 여자와는 달랐다. 예쁘장한 얼굴에 부끄러움을 많이타 누가 말만 걸어도 고개를 숙
여 버리는 그녀였지만 생활력 만큼은 굳굳하게 지켜나갔고 정신력을 헤이하게 만들지 않았
다. 성규로 인해 힘들었을 것이다. 설득하고 부탁하고 화도 냈을 것이다.
그러나 성규의 나태와 방탕에 질린 그녀도 지쳤갔을 것이고 살아갈 의미를 잃었을 것이다.
떠나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스믈둘에 성규를 만나고 그에게 처녀를
줌으로써 사랑을 확인했다. 죽을 심정으로 힘든 생활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녀를 여
태껏 성규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성규의 삶은 피곤하고 삐뚤어진 상처로 얼굴져 있었다.
가계도가 복잡한 탓에 성규는 어려서 부터 부모의 사랑과 가정의 행복 따위와는 별개로 지내
왔다. 성규가 세살 때 어머니가 새 남자와 살림을 시작했는데 새로운 가정엔 각기 배가 다른
세 무리의 자식들이 모여들었다.
성규의 엄마는 직업이 무척 특이했다.
누군가 성규에게 너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시니 하고 물으면 성규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어머니는 무속인이예요' 하고 모기목소리로 대답하곤했다.
예나 지금이나 무당이란 존재는 신비하면서도 꺼려지는 부분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복잡한 가계도와 계부의 무관심, 어머니가 막대하게 진 빛을 대신 갚아주고 식모살이 하는
거나 집배없는 조건으로 합친 살림... 성규의 동생이 된 사내아이를 계부는 끔찍하게 아끼
고 어여삐 여겼다. 같이 자라는 입장인 성규는 늘 뒷전이고 무시당했다. 힘든 삶 때문에 어
머니마저 그런 성규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늘 눈치를 보아야 함을 당신도 피곤해 하심을
어린 성규가 일리 없었다.
친 형과 누나는 일찍 도회로 나가 혼자 남게된 중학교 입학후엔 그것들이 더욱 심해져 성규
의 삐뚤어진 관념은 병적으로깊어졌다.
성규를 어려서부터 거두다시피 한것이 추림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추림의 부모님이었다.
성규의 어머니와 친분이 돈독하셨던 추림의 아버지는 성규를 남의 자식으로 규정하시거나
나몰라라 하지 않으셨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규는 추림의 집에서 일주일에 이삼일을 자곤했는데 그것이 습관화되어
중학교 때는 아예 눌러 살다시피했다.
성규가 나중에 알았지만 성규의 어머니는 추림의 집에 가끔들러 한과 설움을 피눈물을 쏟
아내시며 통곡하시곤 했다.
혼자인 여자가 살아가기 힘든 세상! 어린 자식을 셋이나 둔 채 빛더미를 짊어진 어머니가
살아 가기엔 벅차고 두려운 세상! 그것을 감당해내기 위해 새 남자와 살림을 시작했지만
어린 성규나 그의 형과 누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성규가 가출한 것은 고등학교 겨울 무렵이었다.
이그러지고 얼룩진 생활에서의 탈출은 그리 쉬운것이 아니었지만 성규놈은 야반도주를
택함으로서 자신의 외로움가 한을 보상받으려했다.
이미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던 추림에게 성규의 어머니가 찾아오신것은 그해 12월이었다.
달랑 편지 한통만 남기고 사라진 성규를 기다리시다가 남몰래 마음졸임을 숨겼고 눈물마
저 감춰야 했다고 하셨다. 추림도 어려운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남의 일로 여기지 않았다.
성규를 만나면 전해 달라며 긴 장문의 편지 한통과 남몰래 어렵게 구하셨을 오십만원을
건네고 시골로 돌아가셨다.
석달뒤 추림은 성규를 의정부에서 찾아냈다. 서울을 알리 없는 놈은 이리저리 휩쓸려 다
니면서 하이에나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나이는 추림보다 많았지만 하는짓은 그렇지가 못
했다. 의정부 미군부대 근처 술집에서 하루 고용되는 웨이터로 생활하고 있는것을 추림이
힘들게 찾아내고 가장먼저 어깨를 감싸주었다.
한 어머니의 설움과 한... 그리고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 올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일생이
성규 어머니가 남긴 편지의 내용이었다. 성규는 눈물을 참지 않고 하루내내 울었다.
외롭고 두려웠다고 했다. 배고프고 피곤하다고 했다.
놈을 다시 시골로 보내려했다. 지금가도 늦지 않았다. 충분히 학력을 유지하며 공부할 수
있었지만 놈은 끝내 거부했다.
대신 추림에게 약속했다. 열심히 살며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했다. 외롭고 힘없는 놈의 선
택은 겨우 그것이었지만 추림은 결국 그 약속을 받아 들였다.
그뒤 성규가 약속을 지킨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스와 본드에 빠져들었고 술에 탐닉했다. 단 한번도 추림의 손을 벗어나지 못한 성규는
그때마다 마지막 용서와 이해를 원했지만 지금까지 지켜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봄에 명화와 살림을 합치는 동거에 들어갔다.
음악에 미쳐 직업마저 그 계통으로 빠진 놈을 지독하게도 쫒아다닌 명화를 성규도 사랑한
것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그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고 정상적이지 못했다.
밤에 일하는 성규와 낮에 직장을 다니는 명화는 늘 피곤해했고 어두운 그림자를 가셔내지
못했다. 서로에게 미래와 꿈은 있었지만 성규의 심약한 성정과 삐뚤어진 의식과 개념은 큰
병이되었다.
성규가 마약류에 손을 댄것이 재작년 무렵이었다.
싸구려 마약류를 밤업소에서 만난 이에게 구입해 조금씩 투여하고 복용하더니 지금은 중독
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이년 전 성규의 집에 들렀던 추림은 몽롱함에 쓰러져있는 성규를 발견하고 기겁한 채 그를
동네 병원으로 데려갔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약류에 취해 있다는 진단결과가 나온 것이다. 믿을수 없는 사실에 몇번을 확인했지만 역
시 의사의 말은 한결 같았다.
정신의 분열! 현실과의 단절! 미래의 회피!
놈이 지닌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망가지고 일그러진 육신과 정신으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마는 추림은 놈을 포기하지 않았다. 끝없이 설득하고 책질질을 가했다.
명화와 동거를 하면서 낳아지는가 싶었지만 채 삼개월이 지나기 전에 놈의 방탕은 다시
시작되었다.
놈을 돌보느라 착실하게 다니던 직장마저 포기해버린 명화의 삶마저 악몽으로 변했고 상
처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한 집안의 장녀로 힘든 집안 형편을 도우던 명화의 인생이 한순
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놈은 아귀가 되어가고 있었다.
검은 악령에 물들어 무엇이든 집어 삼키고 파괴시키려는 생명체로 둔갑해 가고 있었다.
추림이 바란것은 명화의 활력이었다. 성규놈을 이제 포기하자, 하지만 명화는 그럴수 없다.
그것이 추림의 순간적인 생각이었다. 명화는 불쌍한 여자였다. 한없이 착하고 여려 자신보
다 남을 더 생각하고 배려하는 여자였다. 심지가 굳고 속이 깊었다.
배려와 사려심이 남달랐고 눈물이 많아서 정에 자주 나약해지곤 했다.
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전문대졸의 학력이라 혼자 살아가기엔 무리가 전혀 없는 여자였다.
그녀가 성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추림의 판단이었다.
추림에게 미안하다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너무 복잡한듯 성규와 차라리 죽자고 말하고 있었다. 성규의 나태와
방탕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음을 그녀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성규를 잊을수 없다면 차라리 같이 죽음을 택하려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냉장고를 열자 예상대로 먹다남은 소주가 서너병이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이 남은 병을 집어 입안에 쏟아부었다. 쓴 소주가 뱃속에서 부글거리며 싸하
고 후끈한 열기를 피어 올렸다.
허벅지에 성규의 머리를 받치고 명화는 계속해서 그의 얼굴을 닦아냈다.
힘없이 피를 흘리며 늘어진 성규도 눈물을 흘리며 고통과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한손을
들어 명화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놈의 손은 앙상하게 말랐고 손목은 어린아이처럼 가늘었
다.
저 둘은 저렇게 사랑하는 것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사랑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간다면 더 사랑할 것이고 행복해 질텐데 성규의 그러지 못한 점이 너무 애석
하고 안타까웠다.
소주를 마신탓에 답답한 가슴이 어느정도 가라앉는것 같았다.
눈 자위가 시큰해 질 만큼 이 둘의 생활은 엉망이었다. 미래가 없다면 현실에 최선을 다하
다보면 미래는 저절로 생기는것을 그들은 모를까?
"추림씨. 죄송해요. 미안해요. 이런모습 너무 자주 보여드리는것 같아서 볼 면목이 없어요."
얼굴이 눈물에 얼룩지고 코와 볼이 붉게 변한 명화가 눈을 훔치며 맹맹한 소리로 말했다.
"죄송한것을 아십니까? 제가 지난번에 말했지요? 포기하기 이전에 다른길을 택하라고?
집이 이게 뭡니까? 도대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겁니까? 명화씨 기운내라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 하는말 하지 않겠어요. 그런 것은 누구나가 바라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한가지는
말하고 싶어요. 자신의 모습에 책임을 지고 당당해 지세요. 명화씨는 현재의 모습을 인정
하지 않잖아요? 인정하세요. 기왕이면 더 떳떳하고 당당하게 인정하세요. 방법을 알려 드
려요? 서로를 사랑하는 그 마음 절반만 현실에 투자하세요. 죽도록 사랑한다면 서로에게
짐이 안되도록 혹은 도와줄 수 있는 힘을 갖추세요. 저놈이 저렇게 개 돼지처럼 더럽게 살
아가는 모습이 싫다면 명화씨가 바꾸어 버리세요. 아니면 이 우리를 벗어나 버리던지 하세
요. 왜 같이 포기하려는 겁니까! 행복하세요 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제발 행복한 척이라
도 하며 살아가면 안됩니까? 명화씨가 그런 여자였어요? 성규를 왜 택하고 사랑하셨어요?
이러지 마세요. 고개좀 들어보세요. 명화씨는 자격이 있는 여자예요. 저 개자식을 내버리고
다른길을 갈 자격이 충분해요. 내일 제게 오세요. 여기 있는 짐 다 버리고 오세요. 제가 명화
씨가 갈 길을 알려 드릴께요. 아니 지금 일어나세요. 갑시다 저와 이 더러운 곳을 빠져 나갑
시다."
추림이 쉬지 않고 흥분한듯 말하자 명화가 놀라 추림을 바라보았다. 아마 추림의 그런 모습
을 처음 대한 탓일 것이다.
"전... 그럴수 없어요. 추림씨 말처럼 다시 시작해 볼께요. 어떻게 저 혼자만... 어찌 되겠지
요. 고마워요 이렇게 와 주시고... 또... 좋은말 해주셔서요."
힘없이 말하는 명화의 모습에 추림은 안타까워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자신이 돌아가도 절
망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방법은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전화한것이 그 방법
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지만 명화는 묻지도 못하고 있었다.
"명화씨. 혹시... 임신하셨어요?"
"......!"
추림이 대뜸 그렇게 묻자 명화가 고개를 들고 당혹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추림아... 그만해라."
성규가 나직하게 추림을 부르며 말했다. 정신을 차렸는지 엉망이 된 성규를 추림이 응시하
다 얼굴을 일그렸다. 너무 심하게 때린것 같았다. 여기저기가 터지고 찢어진 채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너 조용히 해라. 잠이나 자둬. 명화씨 그런 것이군요?"
"어떻게......?"
추림이 한숨지으며 눈을 빛냈다. 명화의 두번째 임신이었다.
명화의 기색이 처음 볼 때부터 수상적었고 하고싶은 말이 있는듯해 넘겨 짚은것인데 그 말
이 정학한 지적이 된 것이다.
"내일 점심때 회사로 오세요. 저 새끼는 데리고 오지 마세요. 한시 전까지 꼭요. 아셨어요?"
"네? 아... 알겠어요."
아마 지금쯤 이들에게 남은 돈은 얼마 되지도 않을 것이다.
명화가 아이를 낳을수는 없다. 그것은 더욱 비참한 현실을 만들 뿐이다. 더럽고 추악하며
서글픈 일이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이미 첫번째의 임신에서 그것이 학인되었다.
자신들의 삶도 어쩌지 못하는 이들이 아이의 삶을 행복하고 윤택하게 해줄수는 없었다.
잠시의 침묵이 이어졌다. 성규는 어느새 힘겨운 얼굴로 명화의 무릎을 베고 잠에 빠져 있
었다. 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추림은 코끝이 시큰해져 옴을 느꼈다.
'불쌍한 새끼! 개자식아 왜 그렇게 힘들게 사니.'
추림은 성규의 삶을 이해하고 용서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제 명화까지 있으니 두명
으로 늘었지만 그 전엔 친구들이 있어도 추림이 유일했다. 추림이 성규에게 행한 무참한
폭력은 성규의 한이었고 절규였으며 통곡이었다. 놈의 그런것을 추림이 대신 그런식으로
풀어주고 쏟아낸 것임을 성규도 알고 있었다.
개같이 살지만 남에게 해꼬지 하거나 못된짓은 절대 하지 않는 착한놈이었다.
저런놈이 열심히 산다면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추림은 늘 안타깝고 슬프게 여기
고 있었다.
"식사하셨어요?"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자 명화가 민망해져서 그렇게 물었다.
"참 나! 그러는 명화씨는 언제 밥 드셨어요? 한 사나흘은 굶은 얼굴이구만."
"......!"
안봐도 뻔했다. 제대로 된 식사는 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잡티하나 없이 새하얀 얼굴이 까칠하게 변했고 야윈 모습이 학연했다.
지갑을 꺼낸 추림이 지갑안에 든 모든돈을 꺼내 들었다.
"저새끼 약좀 사 먹이고 명화씨 마음데로 하세요. 빌려주는 거니까 다음에 이자 쳐서 갚아
야 해요."
방바닥 한쪽으로 돈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추림이 밝게 말했다.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런일
은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고개를 들지못하고 명화는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삼십만원 이었다.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
지만 명화의 임신 소식에 추림은 턱도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내일 명화보고 회사로 오라고
한 것이다.
방안을 다시 둘러보자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아마 양식은 떨어지고 지금 돌고 있는 기름보일러도 곧 꺼질지도 몰랐다. 추림은 오길 잘했
다고 생각했다. 며칠 더 가면 이들은 정말 자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명화씨! 힘들면 짐 싸가지고 제게 오세요. 제가 한 삼십년쯤은 행복하게 해 드릴께요.
농담 아니니까 새겨 듣고 있다가 기억나면 언제든 오세요."
의미는 다른 말이지만 아마 명화는 알아 들었을 것이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하고 찾아 오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이미 몇번을 써먹었다.
"고마워요 추림씨 매번... 할말이 없네요. 면목없고."
"명화씨가 왜요? 나중에 저 새끼안테 다 보상 받을건데? 다시는 그런말 하지 마세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 하는 말입니다. 자자! 기운좀 내시고 제가 가거든 일단 맛나
는 것 부터 사드세요. 약속하는 거예요? 차분하게 밤을 세워서 생각해 보시고 무엇이 둘에
게 가장 필요한지 판단하세요. 두명이면 저보다 유리해서 더 잘 살수 있고 즐거울텐데 겨우
울기만 하는 건 반칙입니다. 다음주가 구정인건 아시죠? 시골도 다녀와야 하잖아요.
저놈은 제가 데리고 갈 꺼니까. 그렇게 아시고 일단 내일 회사로 오세요. 제가 맛있는거 사
드릴께요. 아셨죠? 대답해 보세요?"
"네에 그렇게 할게요. 추림씨."
"좋아요. 한결 낳네요. 뭐좀 드시고 잠좀 자세요. 에그 얼굴이 그게 뭐예요?"
추림이 분위기를 바꾸려 애쓰자 명화도 그제서야 밝게 웃었다. 원래가 낙천적인 여자인 것
이다.
힐긋 성규를 바라본 추림이 음흉하게 표정을 지었다. 놈이 깨어있는 것이다.
"저새끼 다시 약하고 술 처먹으면 경찰에 꼭 신고하세요. 그게 낳아요. 그럼 요양원에 보내
지고 아마 한 육개월 살면서 병을 고칠 수 있을 거예요. 그게 저놈을 위한 길입니다. 꼭 그렇
게 하셔야 해요? 가엽다 불쌍하다 하면서 내버려 두면 저놈을 더 망가뜨리는 거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
"대답해 보세요? 그러겠다고. 어서요!"
"네에... 그럴께요."
마지못해 명화가 겨우 대답하자 추림이 싱글거렸다. 아마 성규놈이 듣고 가슴이 쿵닥 거릴
것이다. 정말 그런일이 일어날수도 있음을 자각할 것이다.
"저 이만 가 볼께요. 가볼곳도 있고 할 일이 태산이라서요."
"미안해서 어쩌지요? 차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에이 그런말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 하는 말입니다. 아이고 늦었다. 클났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순식간에 바뀌고 추림이 정말 일이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명화가 더 민망하고 미안해지기 전에 가려는 것임을 그녀도 알고 있을 테지만 이러
는 것이 이런 순간에 도와주는 길이었다.
"내일 한시전에 오셔서 전화하세요 꼭요. 옷 따듯하게 입고 나오시고... 야 존만아 형 간다!
씻고 밥 처먹어 새끼야! 한번더 그랬단 봐라. 정말 죽일지도 몰라. 술먹고 싶으면 찾아와 새
끼야. 진담이야. 대신 명화씨랑 같이와라. 명화씨 내일 뵈여."
추림이 이런 저런 소리를 하며 일어나자 성규를 조심스레 바닥에 눕힌 명화가 따라 일어섰
다.
"나오지 마세요. 그게 편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며 명화의 배웅을 말리던 추림이 말을 딱 자르고 멈추어섰다.
"......!"
"......?"
"선주야? 너 여기......?"
좁은 마당에 선주와 지선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잔득 웅크린 채 서 있었던 것이다.
오랜동안 그렇게 서 있었는지 그녀들의 얼굴이 추위에 질려 있었다.
"하도 안 나와서... 그냥......"
선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더듬거렸다. 지선도 같이 웃었지만 굳은 얼굴에 표정이 제대로 나
지 않았다.
"너 여기까지 따라온거냐? 거짓말 하네? 하도 안나와서 내 흔적을 찾아 왔다고? 니가 무슨
개냐? 냄새로 찾아오게! 내가 못살겠다."
신발을 신으며 추림이 선주를 노려보았다.
아마 조금전의 일을 다 듣고 있었을 것이다.
"명화씨... 이쪽은... 아 미치겠다 정말! 명화씨 그냥 갈께요. 어서 나가자."
상황이 애매한 탓에 인사를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곤혹스러워 하던 추림이 선주와 지
선의 등을 떠밀었다.
명화가 어정쩡한 자세와 당황한 모습으로 추림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고마웠어요. 잘가요 추림씨!"
"네. 들어가세요 추워요. 내일 한시 전까지예요. 갈께요!"
서둘러 대문을 벗어나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히힛! 나 다 들었다. 추림 되게 멋졌어!"
지선이 장난처럼 웃으며 말하자 추림이 화난 표정을 지었다.
"너! 두고보자. 약속을 그렇게 안지키니... 선주야 나 좀 편하게 살자!"
그러자 선주와 지선이 서로 마주보며 깔깔 거렸다.
* * *
그녀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진하게 블랙커피를 한잔 타 마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커피 두스푼 반에 설탕 반 스푼의 절묘한 조화는 진한 커피의 맛과 달짝 지근한 끝맛이 잘
어우러져 오래도록 여운을 즐길수 있는 조합이었다.
어떤 소설을 읽다가 따라해본것이 어느덧 습관이 되어 있었다.
오후 두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한시 반쯤에 일어나 씻고 얼굴에 스킨과 로션을 발랐다. 그리고는 추림에게 전화를 했다.
부재중이었다. 세번을 전화했지만 모두 받지 않고 벨만 길게 울렸다.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유미는 추림이 지금 무엇을 할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쩌면 그가 다른 여자들과 어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슬며시 짜증이 났다.
화장대 위에 놓여진 대만의 여류작가 경요의 소설책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아침 일곱시가 넘어 잠들고 일어나자 마자 그를 떠올리고 그를 위해 화장하려 한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가 자신을 생각하지도 않을텐데 자신은 혼자 너무 궁상맞게 구는것 같았
다.
지난 새벽에 석호와의 일이 아무래도 좋지않은 일을 연계시킨다고 괜한 생각이 들었다.
거울속에 미치는 유미의 얼굴이 기초 화장에 의해 번질 거렸다. 표정없이 목각인형같은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우연히 화장대위에 놓인 달력을 보다가 한 날짜에 눈이 딱 멈추었다.
1993년 1월 10일 추림의 생일이었다.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유미는 추림의 집을 떠올려
보았다. 대충 가르쳐 주었지만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도로가 근처여서 그리 어렵지
는 않겠지만 당시엔 어둡고 추운 새벽이라 건성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후회스러웠다.
유미는 이러고 있느니 추림에게 직접 찾아가 보는게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연을 가장해도 좋고 그의 생일을 뒤늦게 축하해준다면 그도 어쩌면 반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에서 일어난 유미는 헐렁하게 입고있던 티를 벗어젖혔다.
잘 발달되고 풍만한 몸이 드러났다. 두 손으로 가슴을 들어 보이며 거울을 보자 간밤에 석호
가 그토록 탐하려 했던 잘 발달된 육체가 그림같았다.
남자에게 강한 무기가 되기도 하고 스스로를 억압하게 만드는 산물이 되기도 하는 여자들
만의 전유물! 유미의 몸은 어깨가 발달되고 등이 넓은 편이지만 옆구리가 잘록하고 피부는
매끄러웠다. 적당하게 발육된 가슴은 유두가 특히 아름다워 언니와 여동생이 가끔 질투어린
말을 던지곤 했다.
"그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추림을 떠올린 유미는 거울을 보며 쓰게 웃었다. 자신이 너무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여긴 것이다.
유미는 외출하기로 했다. 상점에 들러 추림의 선물을 고르고 그의 집을 찾아보기로했다.
그러자 마음이 가벼워진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화장하기 시작했다.
"라라랄... 나나... 으으음......"
(15장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