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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9화> 탐색전

바다의기억 |2005.11.01 15:35
조회 11,242 |추천 0

요즘 약속이 많아서 그런지

 

시간이 몹시 빨리 흘러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방부 시간만 빼고.

 

제대까지 앞으로 350일여.

 

알차게 보내보렵니다.

 

========================= 2006년은 안온다니까  ============================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낸 지 3일.


연극이 내일 모레로 다가온 시점에서


난 아직도 그녀에게 문자 한 통 보내질 못하고 있다.


40여 글자밖에 안 들어가는 문자메시지는


나의 애달픈 마음을 전하기에 너무 짧았던 것이다.



......사실 너무 긴지도.



어제 최종점검을 마치고


결전의 날을 대비해 연습을 쉬는 오늘.


간만에 제 시간에 집에 가려 버스 정거장으로 나오니


전철역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길 막힌 드라군처럼 늘어서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민아한테 문자나 보내볼까.



=지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혹시 근처에 있다면 같이 가는 게...=



아냐. 이러면 은근히 이쪽으로 오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 같잖아.


우선 근처에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그렇다고 하면 내친김에 같이 가자는 쪽으로....


오케이. 그쪽이 낫겠다.



=지금 어디야?=



.....



=실례지만 지금 어디 있는지 물어봐도...=



......



=혹시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어?=



.......아아아아악!!!!!!



대체 어떻게 써야 한단 말인가...


창작의 고통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렇게 익숙하지도 않은 번호판을 또각 거리며


문자를 썼다 지우기를 십수 번.


길었던 줄은 어느새 줄어들어


다음 버스 정도면 탈 수 있을 정도였다.



..... 이대론 글렀다.



=내일 모레가 공연이네- 집에서도 열심히 준비 해야겠어=



왜....어쩌다 이런 내용이 되어버린 거지?



하아.... 전송.



=빠바바밤빠밤빠바~ 빠바바밤빠밤빠바~=



이, 이놈에게 왜 문자를 보내는데 지가 울려?



전화번호를 찾아 확인버튼을 누르는 순간


갑자기 울린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한 난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잡고 액정을 확인했다.



=전화 왔습니다.=



누구얏!! 문자 날려먹었잖아~ !!


수백 번의 망설임 끝에 힘들게 보낸 건데~!!!

(당시 휴대폰은 전화가 오면 쓰던 문자가 날아갔다)



나의 힘겨운 첫 도전을


이런 식으로 망처 버린 상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기에


난 적의가 가득한 낮은 톤으로 전화를 받았다.



기억 - ....예.


?? - ...여, 여보세요?



.... 웬 여자 목소리야?


또 무슨 축하할 만한 일이 터진 건가?


세금으로 39800원만 내면


시가 70만원 상당의 슈퍼 건강식품을 준다거나...


뭐 아무튼, 목소리는 예쁘네.



민아 - 저기......여보세요?


기억 - .......예.


?? - 기억이 휴대폰 아닌가요?


기억 - 맞습니다만.


?? - 뭐야~잘못건 줄 알았잖아. 나 민아.



........ 오우 쒯.


이게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기억 - 아, 예. 어쩐 일로 전화를 다....


민아

- 아니... 그냥 집에 가는 길인데


혹시 시간 맞으면 같이 가려고...



기억 - 그래? 나 지금 셔틀 줄 서있는데...


민아 - 응? 어디쯤이야? 우리 지금 줄 맨 끝에 섰는데.


기억 - 여기가 앞에서 5, 10, 15.... 32번째.



=우리= 라는 말이 못내 신경 쓰이긴 했지만


난 그녀가 오기 전에 버스가 도착할까봐


서둘러 내 위치를 말해주었다.



민아 - 어머나, 잘 됐다. 그리로 갈게~.


=삐리릭.=



그렇게 끝난 그녀와의 첫 통화.



-통화시간 00:56-



1분 가까이 맡은바 기능을 발휘한 핸드폰은


간만에 너무 무리를 했는지


애처롭게 액정을 깜빡거렸다.



휴대폰 = 하얗게 불태웠어...



장하다....자식.


지금 그녀가 이리로 오고 있다.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기 위해...



몇 초 안 되는 기다림이었지만


내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차왔다.



그리고 그 설렘은


한 순간에 묵직한 쇳덩이가 되어


내 가슴 한 구석에 쿵...하고 떨어졌다.



안군 - 여!



민아와 함께 있는 건 다름아닌 안군.


왜 안군이 민아와 함께 있는 거지?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안군

- 이야.... 나 보자마자 표정이 삭 바뀌는데?


민아 혼자 올 줄 알고 있다가 실망한 거야?



안군의 말에 난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입가와 미간을 어루만졌다.


안군과 둘이 있었다면 별 신경을 안 썼겠지만


그녀에게 내 싫은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민아 - 전화하길 잘 했네. 앉아서 가겠다.



내 반응이 그리 티가 나진 않았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내 옆에 서는 그녀.


기분 같아선 당장


그녀에게 안군과 같이 온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기가 몹시 껄끄러웠다.


안군이 뒤에 있는 것도 그렇고


=어디야?= =뭐해?= =왜?= 같은 질문들이


내겐 너무나 어색했다.


난 지금껏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삶엔


아무 관심도 없었고


참견 따윈 더더욱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에겐 묻고 싶다.


어디서 뭘 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군 - 그런데 혼자 줄서있던 거야? 친구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안군의 질문이


시비조로 들리는 건 내가 지나친 걸까.



기억 - 보통 혼자 다니는 편이라.....


안군 - 오~ 아웃사이더? 외인구단 뭐 그런 거야?



.... 시비 걸려는 게 맞는 것 같다.



기억 - ..... 그런 거 같네요.



민아와 함께 있는 장소에서


서로 신경전을 벌일 생각은 없었기에


난 적당히 흘리듯 말을 마무리 지었다.



안군

- 흠....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자리를 잘못 온 거 같은데?


혼자 싹 분위기 잡으면서 가야하는데


방해한 건 아닌지 몰라?



민아 - 오빠도 참....



하지만 순식간에 민아를 끌어들여


대화를 계속 이어가버리는 안군.


사소하다면 사소한 그의 이런 행동 하나 하나가


내겐 몹시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냥 확 받아버릴까.... 라는 생각까지 들 무렵


뒤에서 =끼익-=하는 반가운 마찰음이 들려왔다.



민아 - 아, 버스 왔다.



꾸물꾸물 움직이는 줄을 따라


셔틀버스 안으로 들어갔을 때


빈 자리는 이곳저곳 제법 남아있었지만


문제는 세 명이라는 애매한 머릿수.



기분 같아선 두 명이 앉는 자리에 그녀와 앉고


안군을 다른 곳으로 격리시켜버리고 싶었지만


작전이 잘못될만한 변수가 너무 많았다.



안군이 물귀신 식으로 내 옆에 앉아버린다거나....



민아 - 아, 뒷자리 비었다.



레이디 퍼스트의 율법에 따라


제일 먼저 버스에 올랐던 민아가


뒤에 있는 긴 의자가 아직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쪼르르 안으로 들어가 창가 쪽에 붙어 앉았다.


바로 그녀의 뒤에 따라가고 있던 난


얼씨구나하고 그녀의 옆자리에 붙어 앉았고


맨 끝에 따라오던 안군이 다시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이스 블로킹! 핫핫.



난 생각 밖의 행운에 쾌재를 부르며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자리를 확보했다.


내가 차지하고 있는 그녀와 안군 사이 거리가


1파섹은 되는 것처럼 든든하기만 했다.



=푸르르둥~부우우웅~.=



어느새 학생들로 꾸역꾸역 들어찬 버스가


조금 힘에 겨운 엔진음을 내며 가속운동을 시작했다.



안군 - 아, 민아야, 연극 준비는 잘 되가?



버스의 출발을 신호삼아 민아에게 말을 거는 안군.


중간에 버티고 있는 나를 피해


몸을 앞으로 내민 그를 보며


버스가 급정차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아 - 그럼요~. 기대해도 될 걸요?


안군

- 흐음.... 이대론 망칠 것 같다고 징징거린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또 자신만만하네? 믿어도 되는 거야?



민아

- 아하하. 이런저런 일이 많았으니까요.


지금까지 연극부가 연극 준비하면서


액션 감독까지 스카우트한 건 이번이 처음일걸요?



안군

- 아~ 그 김씨....하고 허씨던가?


어디서 데리고 온 거야?



민아 - 어머나, 아시네요?


안군

- 간만에 연습실 나갔다가 깜짝 놀랬잖아..


왠 험상궂게 생긴 사람들이 머리에 붕대까지 감고...



민아

- 아아, 경찰서 갔던 다음날 오셨었구나.


기억이랑 저랑 수업 같이 들으면서


조별 발표준비 했던 사람들이에요.


둘 다 운동 얼마나 잘 하는데요. 얍얍얍 하고~.



사이에 앉아있는 내가 무안할 정도로


멈출 줄 모르는 두 사람의 대화.


갖은 표정을 지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민아와


슬슬 농을 섞어가며 유창하게 그녀의 말을 받는 안군.


1파섹만 같던 내 공간은 어느새 점점 줄어들어


두 사람사이에 앉아있는 게 버거울 지경이었다.



결국 난 버스가 전철역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도서관 구분벽 마냥 사이에 끼어


중간 중간 =아.= =응. 맞아.= =뭐....그럭저럭.= 따위의


아무 의미 없는 말장구만 쳐댔다.




잠시후, 지하철 역 안.


2호선 특유의 쌍방 승강장에서


민아가 안군에게 물었다.



민아 - 오빠는 어느 쪽으로 가세요?


안군

- 민아 넌 이쪽 편이었지?


유감스럽게도 반대쪽이네.


그냥 삥~ 돌아서 갈까?


어차피 이리가도 저리가도 가긴 가니까...



민아 - 에이.... 또 농담. 전철 왔네요. 저 먼저 들어갈게요~.


안군 - 그래. 연극 기대할거야~.


기억 - 아.... 잘 가.


민아 - 응~ 바바이~.



그렇게 민아가 먼저 전철을 타고 들어간 뒤


나와 안군만이 남은 결코 반갑지 않은 시간이 찾아왔다.


이대로 전철을 타고 계속 갈 걸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지만.....


안군이 민아와 함께 가버린 쪽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인가.



기억 - ....어디까지 가십니까?


안군

- 나? 난 다시 학교로 갈 거야.


차 세워 놓고 왔거든.



기억 - .......


안군 - 뭐, 그렇게 알고. 잘 들어가게나. 파이팅, 응?



내가 뜨아해서 서있는 사이


안군은 특유의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고는


개찰구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럼 그렇지.=



그의 생각이 뒷모습을 통해 전해져왔다.


철저히 무시당한 것 같은 참담한 기분.


나도 모르게 꾸욱 쥐어진 오른쪽 주먹을 왼손으로 주무르며


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빚은 내일 모레 연극에서 꼭 갚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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