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나의 아들을 의료사고로 보낸후 心

홍병록 |2005.11.30 21:22
조회 692 |추천 0

 

지난 2005년 11월 4일 오후 5시 반경에 내 핸드폰에 문이라는 의사의 전화번호가 떴다.

그날은 국회에서 의료사고 때문에 입법공청회가 있었던 날이다.

울분터지는 마음으로 공청회를 끝마치고 나와서 그에게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그에게서 나온 첫마디는 이천만원줄테니 형사고소건을 취소해 달라는 말이였다.

아! 이놈들봐 아직도 돈타령이야 멍한채 속이 뒤집혔다.

난 돈이 필요없어요 진정한 마음의 사과를 원하고 있어요.

대충 이렇게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보름후 다시 전화가 왔다.

우리는 만나기로 서로 약속을 했고 11월 24일 일산병원근처 커피숍에서 장장 무슨말을 했는지 약 6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으로 아들이 죽은후 오늘만큼 가슴이 덜 아픈날도 드물었다.

그와 내가 나눈 이야기는 오늘 이 나라의 의료사고의 문제점과 그렇게밖에 할수없는 의사들의 환경을 공감하며 마음으로 정을 나누었다.

그날 나는 진정한 마음으로 사과를 거듭부탁했고 그렇케 해준다면 그날 합의를 봐주려고 도장까지도 미리 준비를 했었다.

문의사의 용기있는 행동에 찬사를 보내며 나는 깊게 생각했다.

과연 개인적으로 문의사를 용서하는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내아들의 죽음같은 힘든 의료사고의 현장을 그대로 방관해야 하나.

죽은 정섭이가 늘 했던 말 "난 아빠 믿어"하며 싱글싱글 웃던 모습이 나의 뇌리를 쳤다.

나는 문선생에게 몇가지 몇가지 부탁을 했다.

첫번째 - 우리 아들과 관계있던 의사분들의 사과.

두번째 - 누가 재판과정에서 거짓말을 지시했는가.

세번째 - 우리 아들 죽은날 문산에 사는 아주머니가 "아저씨가 정섭이 아빠죠? 정섭이가 알몸으로 우리손주 살려줄께요" 하면서 하늘로 훨훨날아갔다고.

그후 그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회복되었다고 아주머니께 들었다. 난 우리 아들의 정을 찾고자 그 아주머니를 찾아달라고 했다.

네번째 - 뉴스방송한다고 한시간전에 연락이 왔었지만 그날 뉴스가 나오지 않았다.어떻게 국영방송뉴스가 돌연 취소가 되는지 그후 병원장은 모방송국의 의료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이렇케 네가지를 부탁했었다.

소송피해보상금액 약 2억원돈을 포기하면서 .........

나는 네가지 부탁이 다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채 부탁했지만 최소한 방송국건을 빼고는 제대로 이루어질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아쉬운점이 너무 많았다.

그래 용서하자 의사도 살고 나도 이젠 살아보자 .....

그후 11월 29일 저녁부렵에 오만과 자만으로 정섭이를 응급실에서 검진한 여 외과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상투적인 말로 정섭이 아빠 죄송합니다 라고 난 그들에게 진정한 마음으로 사과는 바라지 않았지만 예수님 성찬식에도 참석하려면 그 성찬식에 가야하고 공자님에게 학문을 배우려면 능력이 없으면 짚으라기나 돌맹이라도 가지고 가야 학습을 했듯이 그에게 이렇케 질문을 했다. 당신은 내 아들을 자세히 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응급실에서 걸어다녔다고 말을했습니까 그 말때문에 일심에서 패소하고 말았다. 과연 그 여 의사에게 그 지시를 내린자가 누구냐 그 정돈 가르쳐 달라 난 법으로 할려는 게 아니고 그에게 달려가 따귀라도 한번 갈겨야 속이 풀릴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 또 거짓말을 했다.

과연 내 아들이 의료사고로 죽은것이 개인의사들의 관계인가 아니면 현 의사들이 기득층에 있다는 오만과의 관계인가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면서도 용기내어 나에게 전화를 준 문선생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그렇나 예수님의 성찬식과 공자님의 의식을 무시할수 없는것이 나의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의사 몇명 용서해주는것이 별 문제가 아니다. 그렇나  이들을 그냥 용서해줄 경우에

또 정섭이와 같은 사건은 단군이래 계속 반복할것이다.

과연 나는 어느길을 택해야 현명한지 고민이며 방황해도 명확은 해답은 없다.

깊어 오는 겨울밤처럼 내 마음을 얼어오고 있다.

나 자신이 겁난다. 이것이 우리 아들의 그리움에서 복수심으로 변할 경우 그 피해는 누구에게 갈까...

나는 우리 아들 사건으로 기소가 막 된 의사가 반복해서 오진으로 맹장에서 복막염에서 오진하한것도 보았고 당시 그 사건을 언론화 하려고도 했었다. 그렇나 죽은 내 아들이 아빠 그렇케하지마 하는 말이 내 뇌리를 쳤다. 개인적으로 의사를을 벌을 주는 것은 법으로 하지 않아도 나는 할수 있다. 진정한 용서를 청하려면 어느정도는 움직여야 하는데 아직도 꿈속에서 헤메는 의사들을 보면 연민을 느낀다. 불쌍한 사람들 불쌍한 의사들 ...

참으로 잠잠한 호수가에 놀고 있는 백조의 모습을 보는듯 하다.

그 큰 몸을 움직이려고 물밑으로는 발버둥치는것을 말이다.

이들을 사람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짐승으로 봐야 하나,,, 난 아무것도 확신이 없다.

우리 아들을 보낸지 3년 8개월이 되었지만 아직도 뻣뻣이 굳어있는 알몸인 아들만 머리에 남아있다. 나의 아들을 부검을 하면서 톱으로 두골을 자르며 가죽을 벗기기는 소리를 생각하며 배에서 장을 커내던 모습을 생각하면 용서해 줄 수 없다.

그렇나 그들이 일부러 우리아들을 죽이진 않았을꺼라 믿는다. 그래서 용서해주고도 싶었다,

진정한 마음으로 사과를 하지않는 이들은 신이라면 어떻게 할것인지 신에게 물어본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