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가 바로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솔로여러분들은 커플들의 애정공습에 대비하여주시고
각종 요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선
가격인상으로 한 몫 잡으시길 바랍니다.
============================ 얼쑤? ============================
기억 - ..... 농담이시죠?
유니 - 그런 것 같니?
기억 - .......
이건 아니다.... 절대 이건 아니다....
그녀는 진지하게 비책이라고 말을 한 듯 했지만
내가 생각할 때 그건 명백한 자살행위였다.
차라리 휘발유로 샤워하고
8옥타브로 =아일 비 뷁(I'll be break)=을 외치며
용광로에 다이빙 한 뒤
공대생의 사랑이야기 3편으로 돌아오는 게
차라리 현실적이었다.
유니 - 내가 볼 때 넌... 그 정도는 해야 뭔가 좀 풀려.
기억 - 나사가 풀리겠죠... 눈이 풀리거나...
유니
- 갑자기 나온 개그에 애써 웃음을 참으며....
아니 아니... 스위치가 켜진다고 해야 하나?
지금 네가 오르막길을 못 올라가서 멈췄다고 하면...
그런 극한의 상황을 만들어줘야
터보스위치가 탁 켜지면서 오르막길을 쫙 올라가는 거야.
기억
- ..... 터보가 아니라 니트로 아닙니까?
터보는 배기압으로 흡입밀도를 높이는
과급시스템으로 별도의 스위치 같은 건...
유니 - .... 지금 그게 중요하니?
기억 - .....아뇨.
이런 습성 때문에
공대생은 문과생과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다...
그녀와 이야기를 마치고
연습실을 나와 학교 안을 배회하는 동안
내 머릿속은 그녀가 했던 말들로 심난하기만 했다.
과연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걸까?
믿지 않는다고 하면 다른 해결책은 있는가?
지끈거리는 머리와 쌓이는 스트레스에
걷는 것조차 정신 사납다는 생각이 든 난
도서관 근처 벤치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달달달 떨리는 다리와 치솟는 심박수....
파리한 안색에 어쩔 줄 모르는 산만함까지
누가 봐도 명백한 금단증상의 표준이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벤치 근처를 빙빙 돌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
누군가 곁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
- 어머나, 인상에 귀기가 흐르시네요.
혹시 도에 관심 없으신가요?
기억 - 이걸 믿어 말아 아주 돌아 미쳐 그냥..... 예?
?? - ......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기억 - 아... 제가 담배를 안 피워서...
?? - 네. 그럼, 실례했습니다.
아깐 그 말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잘 못 들었나?
아... 아무튼 진짜 돌아버리겠네.....
정신분열 초기 증상으로
=도를 아십니까?=에게조차 소외당한 뒤
오후 수업에 들어가서도
내 마음은 저 먼 아틀란티스 대륙에서
보아와 댄스 연습을 하고 있었다.
보아 - 돌아 BOA요! 미쳐 BOA요!
기억 - 이~히!
결국.... 아무 결론도, 해답도 못 얻은 채
시간은 흘러 흘러 저녁 연습시간.
아무 대책 없이 그녀를 봐야만 한다는 부담감에
연습실 문이 지옥의 문 같기만 했다.
기억 - 후우....
....... 가자, 마계로.
민아 - ....응....?
기억 - .....어라.
기세 좋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연습실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달랑 민아 뿐.
횡하기 이를 때 없는 분위기에
체온이 싸늘하게 식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억 - 허허.... 아직... 시간이 이른가?
난 질문도 혼잣말도 아닌
애매한 중얼거림으로 어색함을 떨치려 애쓰며
과장된 몸짓으로 시계를 들여다봤지만
도저히 그녀 혼자 있을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에 힐끔 그녀를 쳐다봤지만
두 손을 무릎사이에 끼운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기억 - .... 큼, 큼...
철저히 외면당한 듯한 분위기에 심히 무안해진 난
괜한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적당한 거리에 있는 다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째깍 째깍 째깍....
촉각을 잔뜩 곤두세운 채
한참을 꼼짝도 않고 자리에 앉아있자니
평소엔 있는 줄도 몰랐던 벽걸이 시계의
초침 가는 소리까지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다림에 지친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삑, 뽁, 뽁, 띡, 뽕~.........=
기억 - ....풋.
썰렁한 분위기를 확 깨는 까불거리는 버튼음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민아 - ........
그 소리에 휙 날 돌아보는 그녀.
난 가슴이 찔끔해선 손으로 입가를 쓸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왜 갑자기 웃음이 나왔지?
정말로 내가 미친 건가?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
?? = 여보세요?
너무나 조용한 분위기에 탓에
제법 떨어져 앉은 나에게조차
선명하게 들리는 수화기의 음성.
상대가 남자인 건 확실했지만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다.
민아 - 아.... 오빠. 오늘 왜 안 와요? 다른 사람도 없는데...
?? = 응? 다른 사람... 아무도 없어?
민아 - ......... 기억이 있어요.
??
= 아.....그래? 무, 문자 보냈는데?
오늘 연습 없다고... 둘 다 못 받았어?
민아
- 문자요? 전 못 받았는데........ 잠깐만요
기억아, 연출오빠한테 문자 받은 거 있어?
기억 - 으으응?! 자,잠깐만. 핸드폰이...핸드폰...
이곳저곳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봐도
어디 있는지 도통 잡히지 않는 핸드폰.
이게 대체 어딜 갔나 기억을 더듬어 보던 중
지난주에 있었던 어느 사건이 플래시 터지듯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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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악!! 핸드폰 빠뜨렸다~!!!
불용물질 배출을 통한 체중 감량을 위해
화장실을 방문했을 때 들려온 애처로운 비명에
=혹시 나도...?= 라는 걱정이 든 난
다시 밖으로 나와 핸드폰을 사물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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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사물함에 놓고 왔는데?
민아 - ....
한참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허탈하다는 한숨을 내쉬곤 연출에게 말했다.
민아 - 그럼 오늘 아무도 안 오는 거예요?
연출 = 으응..... 그렇게 됐다. 그럼....화이팅.
민아 - 예?
?? = 야이 밥팅....!!
=삐리릭.=
갑자기 앙칼진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뚝 끊어져 버리는 전화.
잠시 황당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주변을 한 번 휘- 둘러보더니
바닥을 내려다보며 나에게 말했다.
민아 - ..... 들었지?
기억 - 응....
예전 같으면 쾌재를 불렀을 대행운이지만
지금은 그녀의 기분이 너무 다운되어 보였다.
섣불리 수작을 걸었다간
당장 피카츄를 끌고 올 것 같은 불안감.
그 불안감에 위축된 난
흔들리지도 않는 접이식 의자에서 몸을 삐그덕 거리며
조심스레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까.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
아니면......
민아 - 먼저 들어갈게.
기억 - .......어...?!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는 그녀.
깜짝 놀란 난 고개를 퍼뜩 들고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별 다른 망설임 없이 짐을 휙휙 챙겨
출입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기억 - 자, 잠깐만!
민아 - ....응?
=와락.=
민아 - .......!!
유니 선배.... 분명 그렇게 말했었죠?
무조건 가서 꽉 안아주라고....
그럼 할 말도 다 생각나고
일도 다 잘 풀릴 거라고...
기억 - ....... 허억...... 허억..... 허억.....
그런데.... 왜 아무 생각도 안 나죠?
출입문을 향하는 그녀를 돌려세워
거칠게 품에 안은 난
폭발적으로 뛰기 시작한 심장박동에
연신 가쁜 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몸을 기댔다.
앞이 안 보인다... 눈앞이 캄캄해.... 머릿속은 하얗고.... 세상은 빙글빙글...
민아 - ........
몸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는 중에도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가 날 밀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저 놀란 듯 내 가슴께에 손을 짚고
몸이 맞닿는 걸 막고 있을 뿐....
하지만 몸에서 힘이 쭉쭉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는 지금
그녀가 날 밀치지 않아도
내가 제풀에 기절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빨리 생각해라... 빨리....
=설마 유니선배랑 안군이랑 짜고 날 구렁텅이에....?!=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런 암담한 추리밖에 못하는 난
대체 뭐하는 놈일까.
그녀가 듣고 싶은 말.... 그녀가 가장 듣고 싶은 말....!!
기억 - 내가 책임질게.
민아 - .....
기억
- 그래도 된다면, 네가 원하면, 허락만 해주면
내가 다, 어떻게든, 목숨 걸고 책임질게.
목적어도 없고, 뭘 하겠다는 건지도 불분명한 결의.
그저 꿈속에서 =책임져!=를 외치던 그녀의 모습만이
희뜩희뜩 눈앞에 떠올랐다.
민아 - ...... 뭘?
기억 - 네 첫 키스.
=쿵, 쿵, 쿵, 쿵, 쿵쿵쿵쿵쿵쿵....=
세렝게티 초원을 달리던 얼룩말들이
길을 잘못 들어 가슴 속에 들어온 듯
심장 박동에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기억 - 그러니까....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지 말아줘.
접지 불량의 스위치처럼
중간중간 희뜩희뜩 전원이 들어왔다 나가는 이 기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 쓰러지면....안되는데...
민아 -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 안 해줬어....?
기억 - ....... 그땐.... 너무 당황해서....
여전히 내 가슴을 짚고 서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 그녀.
렉이 걸린 것처럼 뚝뚝 끊어져 들리는 소리에
난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민아 - 전화는 왜 안 받았어?
기억 - .... 지난주에 사물함에 넣어놓고 깜빡해서..
민아 - ...핸드폰을 왜 사물함에 넣어?
기억 - 똥 누러 가는데 빠트릴까봐....
.......
민아 - ........
기억
- 아니... 들어가려는 찰나에
옆 사람이 빠트렸다고 비명을 질러서....
민아 - .........
기억 -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한 마디로 오락가락하던 정신은 단숨에 제자리를 찾았지만....
수습하기엔 이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