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정찬우의 저택.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고 있었으며, 맹장은 이미 정해진 전략에 따라 흩어져 있었다. 지금 그들은 모두 초조해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그곳에서…
황도의 어느 저택.
그곳에서는 지금 때아닌 작은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련님!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어서 물러나지 못하겠느냐?”
“도련님!”
“물러나지 않으면 여기에서 너를 베고 아버님께 갈 것이다.”
“도련님!”
“당장 물러나라 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진 실랑이 끝에 집사는 어쩔 수 없이 명을 어기고 장찬우의 아들을 수행해서 그의 저택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아버님의 신변에 큰 문제가 있음이다. 그런데 아들인 내가 어찌 목숨을 구명하기 위해 피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정찬우의 어린 아들은 말을 타고 황도의 대로를 지나 이미 자신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대로를 걷고 있을 때에 멀리에서 거대한 함성과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곳은 틀림없는 자신이 지금 가고자 하는 방향이었다.
“아니?”
이 갑작스러운 소란에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은 정찬우의 아들은 급히 말을 달렸다.
“아니? 도련님!”
그러나 집사가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말은 이미 그 소란의 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버님!’
황도의 내성 북쪽에서는 이미 큰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적령과 호위병들이 한데 어우러져 큰 싸움이 벌어진 때문이었다. 암살자가 겹겹에 쌓여 있는 덫을 뚫지 못하고 발각되자 그 자리로 일시에 저택 주변을 호위하던 병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곧 맹장들도 그곳에 속속 도착했다.
“멈추어라!”
무비의 명에 거친 싸움이 갑자기 멈추어지면서 주변은 적막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적막 속에서 병사들 사이에 장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먼저 무비가 암살자에게 물었다.
“어찌 이번에는 소란스럽게 등장하여 스스로 덫에 걸린 것이냐?”
“…”
무비의 이 물음에 적령이 두건 사이에 드러난 눈빛에서 미소를 보내자 무비가 말했다.
“이미 알고 있었나?”
“네?”
“장군!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은밀히 덫을 놓고 그를 기다렸습니다. 겹겹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덫을 장수들이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어디에 정장군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겠죠. 지난번처럼 한데 모여 죽기를 기다리지 않은 한은…”
“우리를 모두 이 자리에 모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이 소란을 피웠단 말입니까?”
“아마도… 하지만…”
무비는 적령에게 다시 물었다.
“네 목적대로 이 자리에 모두 모였다. 자! 이제 어찌할 것이냐?”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적령은 정찬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정찬우게 묻겠다.”
“…!”
“1:1 승부다.”
“뭣이?”
1천여의 병사들에 둘러 쌓인 단 하나의 적이 지금 장수 정찬우에게 승부를 청한 것이었다.
‘이런… 요망한…’
그때, 이미 그곳에 모인 맹장들은 적령의 술수에 넘어간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정찬우가 이 싸움에 응할 것임을 알고 있었고, 또 자신들은 말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그때 정찬우가 다시 적령에게 물었다.
“승부로 날 이길 수 있다 확신하는 것이냐?”
“그 대답은 검으로 하겠다.”
“그렇다면, 날 죽이고 어찌 빠져나갈 것이냐?”
“그건, 그 다음의 일이다.”
“그래…”
긴 침묵… 적령은 지금 정찬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의 아무도 이 대결을 감히 말리려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누가 말려도 정찬우가 이 대결을 승낙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이미 전장이었다.
“받아들이겠다.”
이리 말하며 정찬우가 앞으로 나아가자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역시 무영 이었다.
“장군님?”
“그만 두게!”
“하지만…”
무비를 비롯한 모든 장수들은 이미 이 결전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결전의 장을 병사들 사이를 비집고 멀리서 장찬우의 아들이 말에서 내려 다가오고 있었다.
“결투를 하기 전에 이유를 물어도 되겠는가?”
“이리 많은 자들이 있는 곳에서 밝힌다면 오히려 네가 불리해질 것이다.”
“…그런가?”
정찬우는 자신의 진검을 양 손에 빼어 들었다.
‘이도류…!’
적령이 귀절도를 뽑으며 달려들었다.
“먼저 간다!”
“와라!”
그렇게 1천의 병사들에 둘러 싸인 가운데 황도에서 결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소란은 더 이상 주위의 눈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너무나 고요한 밤에 공명하듯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쇠의 울림은 공포가 되어 황도 전체로 번져가고 있었다.
‘젠장!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닌가?’
두 사람은 이미 30여 합을 경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결전에서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구나.’
30여 합을 통해 정찬우의 싸움에 대해 모든 것을 간파한 적령의 마지막 일격이 그의 심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죽어라!”
그러나 그녀의 계산과 달리 정찬우는 죽지 않고 한 팔만을 잃었다.
‘젠장!’
정찬우는 그 동안 적령이 싸워온 지금까지의 장수들처럼 굽히지 않고 아직 하나 남을 검을 들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적령도 그에게 최후의 일격을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허나, 바로 그때에 정찬우의 아들이 그 싸움에 갑작스럽게 뛰어들었다.
“안돼!”
이리하여, 두 사람의 마지막 일격이 교차하는 순간…
‘헉!’
적령은 그만 정찬우의 앞을 막서선 그의 아들과 마주했다. 그리고 그녀가 망설이는 찰나의 순간… 정찬우의 검이 적령의 살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런 데서 망설일 수는 없다. 절대로…’
적령의 검은 다시 무참히 정찬우의 심장을 갈랐다.
“안돼! 아버님!”
정찬우의 아들은 피를 쏟는 아버지를 안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안돼~”
그리고 그 순간, 적령은 정찬우의 칼을 맞아 피를 쏟는 몸을 이끌고 순식간에 병사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소리…
“아아악~”
“막아라!”
일 순간 황도에서 더욱 거대한 혼돈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아~”
적령은 피가 솟는 어깨를 움켜 쥐었다.
‘젠장…’
그녀는 피와 땀에 범벅이 되어 어둠 속에서 계속 도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황도에 쫙 깔린 1천여의 병사를 모두 벨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상처를 입은 몸으로는 이제는 가망이 전혀 없는 일이었다.
“안돼!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절대로…”
바로 그때, 놀랍게도 복면을 한 또 다른 자객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넌?”
“살고 싶다면. 날 따라라!”
“…”
갑작스러운 이 사태에 그녀는 머리가 복잡해 졌다. 그러나 오래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둠 저편에서 벌써 그녀를 쫓는 거대한 소음이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또 다른 자객을 통해 그녀가 인도된 곳은 바로 창원군의 저택이었다.
“여긴…”
“여기는 황족의 저택이다. 밖의 군사도 감히 이 집은 수색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그 순간 덫에 걸렸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 이었다.
‘젠장…’
복면을 한 자객은 그녀를 한 골방으로 안내 했으며, 그의 말대로 그녀는 무사히 추격자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병사들이 감히 창원군의 저택을 수색하지 못하고 물러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밖의 소란이 가라앉자 자객이 다시 적령이 숨어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러한 그에게 적령이 물었다.
“목적이 무엇이냐?”
“이제 곧 나리께서 오실 것이다.”
“나리?”
자객의 이 말이 있은 후, 곧 그녀가 숨어 있는 방에 창원군이 들었다.
“당신은…”
“나는 창원군이라 한다. 상처는 좀 어떠하냐?”
“…목적이 무엇이냐?”
“적의 적은 나의 벗이라 하지 않더냐?”
“…”
적령은 너무나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창원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을 받아라.”
창원군은 두루마리 하나를 던져 주었고, 적령은 그가 건네준 두루마리를 펴 보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명단이었다.
“살생부…”
“그렇다.”
“풋!”
그러나 창원군의 기대와 달리 적령은 그가 건네준 살생부를 그 자리에서 찢어 버렸다. 그러자 복면을 한 자객이 칼을 뽑아 들었다.
“정녕 죽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순간 복면을 한 자객은 자신의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피를 쏟으며 목이 달아났다.
“감히… 날 협박하는 것이냐?”
눈으로 차마 확인할 수 조차 없었던 그 귀신과도 같은 발도에 창원군은 그만 자신도 모르게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렇게 목이 달아난 자신의 수하를 한참 내려다보던 창원군이 다시 담담하게 말했다.
“역시, 대단한 솜씨군. 맹장들의 목이 차례로 달아날 만도 하구나.”
“당신도 베어줄까?”
“…그… 그리고… 아무래도 너를 쉽게 다룰 수는 없을 듯 하구나.”
“그래서?”
“…되었다. 협상이 결렬된 이상 너는 죽지 않고 계속 지금의 일을 하면 된다.”
“…!”
그 말을 하고 창원군은 황급히 그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렇게 방을 나온 그에게 방 밖을 지키던 그의 아들이 따라서며 물었다.
“아버님. 정말 저 자를 그냥 두어도 되는 것입니까?”
”그냥 두지 않으면? 너는 지금 당장 저자의 칼에 내 목이 달아나야 이 사태를 직시하겠느냐?”
“…”
적령은 그날 밤이 잠잠해 지고, 피가 멎자 곧 은밀히 저택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도성을 빠져 나와서는 이미 그녀를 미행하고 있던 창원군의 자객을 천산 기슭에서 주살하고는 다시 태연하게 황도로 들어섰다.
창원군의 저택.
그는 지금 적령을 쫓던 무리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한심한 놈들. 부상자 하나 제대로 미행하지 못하고 당했단 말이냐?”
“송구합니다. 나리.”
“젠장… 이래서는 그자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가 없지 않는가?”
“…”
“그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차후에라도 그자의 목을 틀어쥐고 완벽하게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인데… 역시, 맹수를 쉽게 길들일 수는 없음인가? 쯧…”
그의 아쉬움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황궁.
정찬우마저 죽게 되어 황제는 또 한번 대노 했지만, 이제는 무영만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미 이 일에는 용의 전 군부가 개입하고 있음이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지난날의 맹장들마저 당해내지 못하는 자라니… 그런 자가 형님말고 또 있단 말인가?’
그는 지금 일생 최대의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20
어느 날 창원군이 예원을 찾았다. 그는 지난날 검무를 인상 깊게 보였던 수랑을 찾아 일부러 발걸음을 한 것이었다.
“창원군 나리 아니십니까?”
“그간 잘 있었나?”
“다 나리 덕분입니다.”
“그런가? 허허…”
“안으로 드시지요.”
“그러세.”
서운량은 그를 안으로 들이고 곧 술상을 준비시켰다.
“한잔 받으시지요.”
“고맙네.”
그렇게 술상을 받아 담소를 나누던 창원군은 한참 기회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요즘 예원에 출중한 인재가 하나 들은 것 같더군.”
그의 이 말에 이미 그 같은 일이 많이 있었던 듯 서운량은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왜 웃는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리께서는 수랑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어허, 이 사람 눈치 하나는 여전하구먼.”
“헌데, 이를 어쩌죠? 그 아이는 이미 마음을 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서운량의 이 말에 창원군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그 아이를 보기 위해 이미 여러 관료들이 왔었지만, 그 아이를 만나 이미 마음을 준 자가 있음을 알고는 모두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흐흠… 헌데, 그 수랑이라는 아이가 마음을 주었다는 남자는 누구인가?”
“네? 그것은…”
“자네 입으로 말하기 곤란하다면 그 아이를 불러주게.”
“나리…”
“허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어서 불러주게나.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직접 들어보아야겠네.”
창원군의 명에 서운량은 어쩔 수 없이 수랑을 불렀고, 수랑이 곧 그 자리에 합석했다.
“이름이 수랑이라 하였느냐?”
“그러합니다. 나리!”
“그래, 네가 마음을 주었다는 그 남자는 누구냐?”
“네?”
“내 너를 만나러 왔는데 이리 헛걸음이 되었으니, 억울해서라도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않느냐? 적어도 선수를 친 그 남자가 누구인지는 알아야겠다.”
“그는… 무영이라 합니다.”
“무영?”
사실 이 순간 창원군을 크게 놀랐다. 사실 무영은 누가 보아도 예원을 드나들며 여색을 탐할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에게는 또 다른 큰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정말 하늘이 이 나를 돕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그는 짐짓 놀라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사실이냐?”
“그러합니다.”
“어허, 이런 한심한 노릇이 있나?”
창원군은 짐짓 노기를 발하며 말했다.
“중대한 임무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자가 하찮은 천민 따위에 빠져 국사를 게을리 하고 있다니?”
“나리…?”
“왜? 무엇이 잘못 되었나?”
서운량은 지금 무엇보다도 창원군이 예원의 자신들을 천민이라 칭한 것에 문제를 삼고 있음이었다. 비록 자신들이 어느 한 신분계급에 속하지 않는 예술가지만 천민이라 부르는 그러한 처사는 선대왕조에서도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잘 알면서도 창원군은 일부러 역정을 내고 있었으며, 서운량도 노기를 드러내고 만 것이었다.
“저희는 예술을 하는 자들 입니다.”
“예술이 뭐 귀한 것이라고? 흥!”
창원군의 이 말에 수랑도 서운량을 거들며 말했다.
“천민의 신분은 이미 이 나라에 없는 줄로 압니다.”
“뭣이라?”
창원군은 수랑의 이 말에 더욱 발끈하여 일부러 그녀의 따귀를 때렸다. 그것은 실상은 무영을 도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더욱 언성을 높였다.
“법도가 바뀌었다 해서 그 씨가 근본부터 바뀐 다더냐? 고얀 것! 이것은 네가 감히 제상의 자재를 희롱하여 높은 신분이 되고자 함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리고 바로 그때, 그 자리에 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러왔다.
“그만 하시죠. 나리!”
“뭣이?”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다름아닌 무영이었다. 창원군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무영을 보자 갑자기 이번에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가 감히 아비를 믿고 나에게 명을 하는 것이냐?”
“그런 뜻이 아닙니다.”
창원군은 더욱 노기를 발하여 갑자기 칼을 빼어 들었다.
“이놈이 감히…”
사태가 이리 되자 창원군을 수행하던 자들이 방 안을 뛰어들어 그를 막아 섰다.
“나리!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이미 무영조차 칼을 빼어 들고 있었다.
“저… 저놈이? 감히 내게 칼을 들이대는 것이냐? 이놈!”
“법으로 천민을 구분하지 말라 했는데 그 법을 어겼으니 나리를 적포청으로 모셔야겠습니다.”
“뭣이라? 이… 이놈!”
사태는 이렇게 순식간에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자 그러한 사태의 중심에 수랑이 전면으로 나섰다.
“두분 다 그만 검을 거두시지요!”
“뭣이?”
“무영 장군님! 창원군 나리는 황제의 숙부이십니다. 지금 그가 작은 법을 어겼다 하여 그를 어찌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입니까?”
“…”
“창원군 나리! 무영장군은 제국을 통일한 일등공신인 무린의 외아들입니다. 나리도 당장은 그를 어찌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
“자칫! 제국이 위태롭고 폐하의 심기가 불편한 이 시기에 이러한 사소한 다툼으로 서로 칼부림을 했음이 폐하의 귀에 들어간다면, 폐하께서는 틀림없이 두분 모두에게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은 서로 피해가심이 상책인 듯 합니다. 두분 모두 범을 잡기 위해 어찌 토끼 덫을 놓으려는 것입니까?”
수랑의 이 대담한 중재에 그만 창원군은 이를 갈며 물러났으며, 무영도 곧 예원을 빠져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황도에 퍼져 나갔다.
무린의 저택.
지금 무영은 아버지에게 불려져 그의 방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무영은 이미 무린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아버님.”
“오늘 낮의 일에 대해 들었다.”
“…”
“그러한 일은 숨기려 해서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이제 그만 그 소저를 이 집에 들이거라.”
“아버님?”
“그 소저 일로 네가 더 이상 실수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것… 뿐입니까?”
“낮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소저의 출중함이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에 허락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이리하여 수랑은 예원에서 나와 제상의 집에 기거하게 되었다.
“이렇게 부족한 저를 집안에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다 허락한 것은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영이 수랑에게 가족을 소개하는 자리에 비도 있었다.
“저는 비라 합니다.”
“수랑이라 합니다.”
“말씀을 낮춰 주세요.”
“앞으로는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비는 외국으로 시집을 간 누님의 아들이에요.”
“그래요?”
“자 이제 밖으로 나가죠. 집사와 식솔들을 소개해 줄게요.”
“네.”
수랑이 이미 무린의 집에 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창원군은 더욱 대노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지금 무린과 무영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내 이놈들을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 기필코…”
어느 날 밤.
수랑은 무린의 집 자신의 처소에서 지난날 정찬우에게서 얻은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어디서 다치신 거죠?”
“…!”
갑작스러운 이 부름에 수랑은 크게 놀랐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바로 무린의 손자인 비였다.
“너…”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기에 문을 열어 보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수랑은 상처를 치료하느라 그만 비의 부름을 듣지 못한 것이었다.
“의원에게 보이지 않고 어째서 혼자 치료를 하시는 거죠?”
“어렵게 얹혀있는 처지에 그럴 수 있어야지…”
“그래도 삼촌께서 걱정하세요.”
“고맙다. 그런데 어쩐 일이니?”
“적포청에서 사람이 왔는데 삼촌이 오늘은 집에 오지 못한답니다.”
“그래… 일부러 알려줘서 고맙다.”
“그럼, 저는 이만…”
“그런데, 비라고 했느냐?”
“왜 그러시죠?”
“많이 들어본 이름이구나?”
“사실 비라는 이름은 너무 흔하죠.”
“혹,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지 않니?”
“글쎄요… 전 기억에 없는데요?”
“그래…”
수랑의 처소를 나가는 비를 보며 생각했다.
‘틀림없이 어디선가 본 듯 한데…’
그녀는 지난날 몽롱한 정신상태에서 한번 대면한 아직 5살이었던 어린 비를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방에서 나온 비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틀림없이 검에 베인 상처인데…’
그렇게 비의 비상함이 이미 그녀를 죄어오고 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