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후회를 한다고 저런 말을 하는건지...뭐가 그리도 자신만만한건지...내가 그렇게 쉽게 보이는건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지훈이 녀석 그렇게 사늘한 표정은 처음인데...고등학교때도 한번도 그런 표정은 본 적이 없는데 괜히 신경쓰인다.
전화라도 한번 해볼까???
생각과 동시에 이미 전화버튼은 눌러지고 신호는 가고 있었다.
"여보세요....지훈이....??"
"응"
"그냥 해봤어...급한 약속이었나봐...?"
"응"
"그래...담에 또 할께"
"응"
뭐야...응외에는 아무 말도 없잖아..영 뻘쭘하고 기분 묘하네...갑자기 복잡하다...
그녀석이 신경쓰이고 지훈이에 응이란 대답이 신경쓰이고 복잡하다.
그날 하루 종일 체육관에서 대련을 하며 아무것도 모른 제자들을 상대로 앞치기 뒤치기 이모저모 기술을 선보이며 복잡함을 풀었다. 다음날 멍든 피부를 보이며 날 원망하는 그 제자들을 애써 외면한채 태연해 보려 했지만 결코 쉬운일은 아닌것 같다.
10시가 되고 회원들도 하나둘 집으로 가고 혼자 도복을 입고 거울을 보고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
삼수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서야 하는 이 시점에서 그 잘난 얼굴들 때문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조금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생각이 깊었는지 체육관에 누가 들어왔는지도 몰랐다.
아마도 한참을 그렇게 나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언제까지 발차기만 할꺼야??"
순간 깜짝 놀라 하마터면 발차기 하다 뒤로 넘어질뻔 했으니까...녀석이다.
언제나 깔끔하게 세미 정장을 입는 녀석이다...물론 세번밖에 안봤지만...지금이 네번째지만...항상 단정한 모습이다. 웬만해서는 어울리지 않는 샤기컷도 그렇고 끼가 다분한 녀석이다.
"다리는 짧은데 많이는 올라간다 제법인데??"
"왠일이야?"
"심심해서...여기 다닐려구"
"뭐?"
"얼마야? 오늘부터 당장"
"오늘은 끝났어"
"그런게 어딨어..난 개인교습..회원비 세배. 오케이?"
"웃기시네...누구 맘대로..."
"내맘"
"장난하지마."
"진심"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이 의외로 예쁘다.
남자가 가지는 날카로움과 강인함과 함께 여자가 가지는 단정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도복 줘"
"신청해야해...짧을거야"
"그거라도 줘...이거 입고 할수는 없잖아"
"짧을텐데...기다려봐"
정말 짧았다. 평균 173cm에 맞춰진 도복이 몇벌 있긴 해도 대부분 키가 180이 넘어가면 도복을 신청을 해야했다. 위아래 짧은 도복을 입은 녀석을 보자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짧긴 하다..."
"웃기다..."
서로 거울을 보며 한바탕 웃고 나니 어새함이 한결 없어진것 같았다.
"내가 진짜 싫어?"
"친구"
"친구 말고?
"싫어"
"왜?"
"삼수할것 같아 쪽팔려"
"삼수???"
"나 머리 안좋아..."
"그건 알아!"
"이게...친구해"
"그래 친구부터 시작하자"
"뭐든 맘대로야...하여튼 넌 오늘부터 죽었어....사부라고 불러"
"오케이 사부...날 길들여보셔"
무의식중에 스친 스킨쉽은 상대방을 무의식중에 친밀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 무의식중에 행해진 모든 감정이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를 모른채...그 무한한 힘을 잠재하며...
그나저나 일주일째 연락이 없는 지훈이 녀석이 은근히 걱정된다.
그런 생각들이 표정으로 나타나나 보다.
"나랑 있을땐 다른 생각은 하지 마라...티난다."
"무슨 생각을...제대로 해.."
"티난다니까...대련신청"
"무슨 대련...신입한테는 대련 신청 접수안한다"
"그런게 어딨어...내가 하자면 하는거지"
다자고짜 내 띠를 잡는 녀석이다....태권도 유도 합기도 경계가 없다. 녀석 맘이다. 무슨 맘으로 회원등록을 하러 왔는지 그 본심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싫지만은 않다.
가까이에 녀석이 닿을때면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잠시 정신을 잃고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내 무릎 안쪽에 발을 걸어 나를 넘어뜨린다...불리하다...사제간을 떠나 이성간에 이런 상황은 언제나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체육관과 아래위로 포개어진 이성간에 이루어지는 감정을 자제하기엔 너무나 호기심과 피가 끓는 나이니까...
그리고 언제나 생각과 함께 행동이 먼저 나가버린 나를 너무 잘 아니까...
채 종이 한장 들어갈만큼 맞대어진 얼굴과 얼굴...칠흙같이 검고 깊은 눈동자와 깊은 속눈썹...정말 수술을 의심할만큼 정교하게 오똑선 코...촉촉한 입술...나도 모르게 녀석에 입술에 입을 맞추고 말았다.
정신이 아찔할만큼 묘한 기분이다. 그 녀석에 그 한마디만 아니어도 끝까지 기분이 황홀할 뻔 했다.
"신고하러 가자..."
"어?"
"니 가슴 실종됐어..."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듯 일어서서 거울을 보며 땀을 닦는다.
"너...아무리 내가 멋져도 허락없이 입맞추고 그러지 마라...오늘은 특별히 봐주는거야~~"
그리고는 돌아서서 날 보며 환한 미소를 보인다...녀석....멋지다.
나 삼수할것 같다...저 미소에 빠지면 헤어나지도 못할 중독성이 있는것 같다.
나에게 일어서라고 다가와서 손을 내민다.
그리고는 힘껏 잡아당긴다.
나도 모르게 그 힘에 이끌려 녀석에 가슴에 안기고 말았다.
"사귀자...못참겠다."
"하지만...."
"내가 삼수 안하게 해줄께..."
"후회하면 ..."
"나 놓치면 니가 후회할껄? 그래서 오늘 한번더 기회줄려고 온거야~"
"하지만..."
"토달기 없이...사귀는거다..."
"왜 꼭 굳이 사귀어야 하는거야...친구...."
그리고 순식간에 내 입술에 촉촉한 감촉이 와닿았다.
"친구면 안지도 키스도 못하잖아...그거 싫어"
"단지 그럴려구??"
"좋으니까...좋은데 바라만 보기 싫으니까....됐지?"
뭔가 가슴 벅찰 일이 생긴건 분명한데...뭔가 자꾸만 행복하지만은 않을것 같은 슬픈 예감이 싫다.
이 녀석 너무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