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야기들...[특별편집]
♡ 어머니의 힘...♡

차가 아이를 업고 있는 여자에게 덥쳤다.
아이가 다칠라 어머니는 자신의 몸으로 차를 막아섰다.
그리고 암흑...
배고푸다 울부 짖는 아기의 울음 소리에
생사의 갈림 길에서도 정신을 가다듬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시는 어머니...
자신의 목숨보다 아이의 배고품이 더욱 걱정 되시는 어머니...
사랑하는 내 아가야...
엄마는 항상 널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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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리취와 홋잎의 맛이 그리워 산으로 가셨나요 ♡

오랜만에 시장엘 들렀다. 작은 그릇에 산나물을 놓고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
수리취, 고사리, 홋잎들을 담아 놓고, 봄나물을 식탁에 올리려는 나를 기다리는
둣하다. 그 할머니는 올해로 일흔여덟이 되는 내 어머니의 모습과 똑같다.
봄이 오면 어머니는 옆집 아주머니와 함께 새벽밥을 드시곤 먼 산을 향해 떠나
신다. 어머니가 가는 곳이 어딘지 알지 못해 그 바쁜 걸음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곤 했다.
온종일 어머니는 봄산을 헤매셨다. 앞치마에는 훗잎과 대나물을 , 왼손에 든
자루에는 고사리와 취를 뜯어 넣으셨다. 어머니는 어둑어둑해져서야 돌아오신다.
어머니의 나물 보따리에는 따뜻한 봄의 향기가 넘쳤다. 펼쳐 놓을수록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산나물이다. 내게 주는 선물이라며 '수영'이라는 식물을 꺾어다
주셨다. 몹시 신맛 외에 특별한 맛은 없었지만 나는 매우 기뻐하곤 했다.
다음날이면 어머니는 나물을 데쳐서 시장에 이고 가신다. 나도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간다. 어머니 머리 위의 그릇 속에는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들어 있다.
이것저것 팔아 한 푼 두푼 모은 돈은 오빠와 나의 학비로 쓰였다.
농촌에서 특별한 수입 없이 대학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물려줄 재산이 없으니 학교 교육만큼은 시켜야겠다는 것이 어머니의 비장한 결심
이었다. 한글 해독조차 못하신 어머니의 교육열은 실로 엄청났다.
아버지는 5년 동안이나 암으로 고생하시다가 내가 고3이 되자 돌아가셨다.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 해는 가뭄이 심했다. 철길 건너 천수답에 물을
대러 삽을 들고 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하늘은 별만 총총 비가 올 기색이 없다.
삽자루를 깔고 앉아 하늘을 보며 엄마와 약속했다. 돈이 덜 들고 취직이 보장
되는 사범 대학에 가서 고생하신 어머니를 잘 모시겠노라고.
내가 대학에 합격하던 날 어머니는 나를 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께서 그토록 기뻐하신 기억은 없다. 쌀 한 가마니 빚내어 결혼식을
올릴 정도로 가난한 집에 시집와 홀시어머니와 다섯 시누이를 열 여섯 살부터
모시고 산 어머니다.
어머니는 돌이 지나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계모 밑에서 고생하며
공부 못한 것을 늘 한스러워 하셨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아버지와 가마니를
치셨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어머니가 바늘로 짚을 먹이면 아버지는 바대를
내리치셨다. 나는 가마니 치는 소리에 새벽 잠을 깨곤 했다.
채소며 도토리묵, 참외와 수박등, 어머니의 머리 위에는 항상 무거운 보따리가
올려져 있었다. 그 속엔 다섯 남매가 함께 들어 있어서 더욱 무거웠을 것이다.
가지고 간 물건이 다 팔리지 않으면 돌아오시지 않고, 이 집 저 접 다니며 싼값
에 주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과 바꿔 오시던 어머니. 그렇게 늦는 날이면 십리나
되는 신작로를 따라 어머니를 마중했다. 어머니의 사랑을 뼛속 깊이 간직하면서.
대학 입학금을 가까스로 마련한 어머니는 돼지 두 마리를 사 오셨다. 음식점
에서 구정물을 얻어다 먹여 키운 돼지는 학기마다 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팔려 갔다. 객지로 자식 다 보내고 혼자 집을 지키며 농사를 짖고 짐승을 키우
셨다. 그러느라 관광은 커녕 친척 집 나들이도 한 번 못 하셨다. 대학 3학년 때
어머니는 경운기를 타고 시장에 다녀오시다 사고를 당했다.
60을 넘긴 어머니에겐 심한 충격이었다. 돌봐주는 이 없이 혼자 고생하신 어머니
는 그후 큰 병을 얻으셨다. 관절염에 위암까지 겹쳤다.
그토록 고대하던 나의 졸업식장에도 못 오셨다. 선생이 되어 발령장을 받던 날,
어머니는 국립 의료원에 입원하셨다. 어머니의 병은 날로 악화되었다.
내게 마지막 말조차 할 수 없던 어머니. 어머니는 그토록 바라던 딸의 선생됨을
보시긴 했으되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 찔레꽃 하얗게 핀
고향의 봄산에 아버지와 나란히 누우셨다. 어버이날을 단 하루 남긴 채.
나는 한동안 몹시 괴로워했다. 무리한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던들, 어머니 곁에
있었던들, 그토록 외롭고 처절하게 가시진 않았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이를 다 빼고 틀니도 해 넣지 못하셨던 어머니다. 첫 월급을 타면
먼저 틀니를 해 들이려 했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제대로 씹어 잡숫지 못하
신 어머니의 마음. 왜 산나물을 좋아하셨는지, 왜 국물만을 잡수셨는지, 나는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음식의 맛조차 느끼지 못하고 사셨던 나의 어머니.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지는 어머니의 사랑, 더욱 보고픈 어머니의 모습.
외할머니와 외갓집을 모르는 내 아이들이다.
산나물이 시장에 나오고 온 산이 더욱 푸르러 가는 어머니의 계절이 왔는데
어머니는 다시 오시지 않으신다. 긴 겨울 동안 희망처럼 간직해 온 산나물
뜯으러 가려던 봄나들이 계획도 이루지 못한 채 떠나신 어머니. 그토록 좋아
하시는 수리취와 홋잎의 맛이 그리워 그렇게 산으로 가셨나?
이번 5월 7일 어머님 1주기 제사엔, 두 애들과 함께 어머니 묘소를 찾아 잔을
올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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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명한 화해 ♡

그냥 사람사는
평범하고도 지혜로운 야기입니다.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가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싸움을 한 다음,
할머니가 말을 안 했습니다.
때가 되면
밥상을 차려서는
할아버지 앞에 내려놓으시고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을 합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식사를
마칠 때쯤이면
또 말없이 숭늉을 떠다놓기만 합니다.
할아버지는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가
한마디도 안하니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할머니의 말문을 열어야겠는데
자존심때문에
먼저 말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 입니다.
어떻게 해야 말을 하게 할까?`
할아버지는 한참동안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빨리 할머니의 침묵을 깨고
예전처럼
다정하게 지내고 싶을 뿐입니다.
잠시 뒤 할머니가
다 마른 빨래를 걷어서
방안으로 가져와
빨래를 개켜서 옷장안에
차곡차곡 넣었습니다.
말없이 할머니를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옷장을 열고
무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뒤지고 부산을 떱니다.
처음에 할머니는
못본 척 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점점 더 옷장속에 있던 옷들을
하나둘씩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가
가만히 바라보니 걱정입니다.
저렇게 해놓으면
나중에 치우는 것은
할머니 몫이니까요.
부아가 난 할머니가
볼멘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뭘 찾으시우?"
그러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이제야 임자 목소리를 찾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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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 앞에서 울던 날 ♡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혼자 힘으로 우리 팔남매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의
가장 큰 걱정은 우리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을 준비하러 부엌에 들어간 어머니는 쌀통 앞에서 주저앉아
한숨만 쉬고 계셨다. 어머니는 벌써 일주일 가깝게 물로만 배를 채우며 우리
들에게 보리밥을 해주셨는데, 그나마 보리가 얼마 남지 않아 마지막 저녁을
짓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던 것이다.
조금씩 나눠 먹으면 어떻게든 한 끼가 해결되겠지만, 어머니는 유난히 투정이
심한 막내형이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막내형은 자기 밥그릇에 밥이 가득 담겨
있지 않으면 아예 수저를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어찌하여 저녁밥을 지은 뒤, 그릇에 밥을 퍼담던 어머니는 끝내 소리없이
눈물을 훔치셨다.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던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얼른 방으로
들어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저녁상을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뒤 어머니가 들여온 저녁상에는 어찌된 일인지 막내형 밥그릇에
밥이 수북했다. 나는 맛있게 밥을 먹는 막내형 얼굴과 어머니의 퉁퉁 부은 눈을
번갈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막내형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
렸다. 우리는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해 있다가 형의 밥그릇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는 새하얀 행주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곧 어머니도 왈칵
울음을 터트리셨다.
"얘야, 미안하구나. 밥은 모자라는데, 난 네가 아예 밥을 먹지 않을까 봐..."
어머니는 형에게 자꾸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자 막내형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철없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며 흐느꼈다. 옆에 있던 우리 식구는 모두
밥상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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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마중 ♡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더니 금세 비가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 보니 저쪽에서 누군가 나에게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목
처럼 여윈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웃고 계신 분은 다름아닌 아버지셨다. 아버지는
말없이 나에게 우산을 하나 건네 주고는 당신 먼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셨다.
얼떨결에 우산을 받아 든 나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 다음엔 할말 없어
잠자코 뒤따라갔다.
그 뒤 비가 올 때마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우산을
건네 주셨다. 그러자 나는 아버지의 마중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아주 당연
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 그날도 나는 아버지가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와 계실
거라 생각했는데 웬일인지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중 나오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그대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갔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집에
들어선 나는 잔뜩 부어오른 얼굴로 아버지를 찾았다.
그런데 잠시 뒤 나는 가슴이 뜨끔해졌다. 아버지가 갈고리 같은 손에 우산을 꼭
쥐신 채로 누워 계셨던 것이다.
"그렇게도 말렸는데도 너 비 맞으면 안 된다고 우산 들고 나가다가 그만 몇
발자국 못 가 쓰러지셨단다."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밭고랑처럼 깊게 패인 주름살에 허연 머리카락을 하고 맥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
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워졌다. 마중 나온 아버지에게
힘들 텐데 그럴 필요 없으시다고 말하기는 커녕 아주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나는 그날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뒤늦게 깨달으며 한참을 울었다.
20여년이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때가 떠올라 가슴이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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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 ♡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외출할 일이 생겨 서두르다가 큰며느리의 친정 아버지 생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선물을 사기도 어렵고 며느리가 친정에 갈 때 적당한 선물을
사가지고 가게 하면 되겠다 싶어 봉투에다 약간의 돈을 넣었다. 하지만 이른
아침에 불쑥 찾아가는 것도 그렇고 아이들 단잠을 깨울 것만 같아 망설이다가
며느리를 동네 입구로 불러내어 전해주고 싶었다.
몇 번이나 다이얼을 돌렸는데도 받지를 않았다. 마음은 급하고 하는 수 없이
아들네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벨을 눌렀더니 “누구세요?”하는 며느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은 잠에서 덜 깬 듯한 아들아이
였다. 들어오라고 했지만 밖으로 나오게 해서 봉투만 전해주고 돌아섰다.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간 것이 그리도 못마땅했을까? 주책스런 시어머니라고
인사조차 하기 싫었던가? 하필이면 왜 자는 사람을 깨워서 문을 열라고 하였
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범벅이 되어 마음을 어지럽혔다.
좀 처연한 기분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어머니!” 하고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큰며느리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머니, 그토록 마음 안
쓰셔도 되는데요.” 하며, 머리를 감던 중이라서 남편에게 문을 열게 했다는
것이다.
머리는 물기에 젖어 있었고, 한여름에나 입을 수 있는 티셔츠를 입은 채 비를
맞고 있었다.
“감기 들겠다. 어서 들어가거라.” 하며 비를 맞으면서까지 나온 것을 나무
라고 돌려보냈다. 돌아서서 발길을 옮기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잠시나마
오해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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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일생 ♡

* 내 나이 5살...
오늘은 엄마의 젖을 만지며 놀았다.
옆에서 부러운 듯 보고있던 아빠가 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내가 악을 쓰고 울자 엄마가 아빠를 야단쳤다...
아빠는 참 못됐다...
나처럼 이쁘고 착한 아기를 때리다니...
* 내 나이 18세...
몰래 포르노 비디오를 보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들어와 담배를
하나만 달라고 했다...
나는 놀라서 비디오를 얼른 끄고 노크도 없이 들어오냐고 소리쳤지만
할아버지는 아직 내가 무슨 비디오를 봤는지 모르는 눈치다...
내가 아버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슬쩍하는 것을 이미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 얻으러 온 모양이다...
남들은 고2인 방에는 얼씬도 못한다는데 우리 집은 이게 뭐야...
나에게 담배 한가치를 얻어서 할아버지가 나가자 나는 창문을 열어놨다.
어휴~~ 냄새... 할아버지에게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
나는 늙으면 저렇게 되기 전에 죽어버려야지...
깨끗하게 살다가 가야지 저렇게 추하게는 안 살 것이다...
참! 비디오를 마저 봐야지...
매일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잊을 길은 비디오뿐이리라...
빨리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었으면...
* 내 나이 26세...
오늘은 미스김을 결혼하겠다고 부모님에게 소개하자 엄마는 놀란 눈치다.
미스김이 돌아가고 난 후 아버지는 나를 불렀다.
결혼은 일찍 하면 후회라며 다시 한번 잘생각해보라고 했다.
후회라니...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데 후회를 하다니...
나는 결혼하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 내 나이 28세..
요즘은 아들녀석이 얄미워주겠다...
사랑스런 나의 아내를 혼자 독차지하고...
아내의 젖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들녀석이 미워져 아내 안볼 때 쥐어박자
아들은 까무러치듯 울어댔고 아내가 나에게 잔소리를 했다.
오늘도 또 혼자 독수공방 해야하나...
으이구... 그럴 줄 알았으면 아기를 좀 늦게 가질걸...
* 내 나이 35세...
초인종을 누르자 자다가 나왔는지 부시시한 머리를 하고 마누라가
나왔다. 문을 열어주고는 금방 돌아서 주방으로 가는 뒷모습을 보니
푹 퍼진 몸매가 정말 정 떨어진다...
마누라가 이불 속에서 요란하게 방귀를 뀔 때면 나는 정말 사기 결혼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녀 때는 그렇게 내숭을 떨더니...
벌써 권태기인가...
* 내 나이 38세...
옆에서 김대리가 신발 끈을 하루종일 매고 있다...
박과장은 지갑을 안 가져왔다며 이쑤시개로 이빨만 쑤시고 있다.
치사한 녀석들 같으니...
하긴 점심은 내가 사겠노라고 항상 동료들을 데리고 와서
신발 끈을 메는 척 하다가 다른 동료가 돈을 내면 그제서야 내가
내려고 했다고 우긴 것은 항상 나였으니까... 아마도 오늘은 둘이서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기로 짰나보다...
내가 돈을 내자 뒤에서 웃고있는 녀석들의 얼굴이 카운터의 거울을
통해 보였다.
* 내 나이 44세...
머리를 빗을 때마다 빗에 머리카락이 한무더기가 뽑힌다.
거울을 보니 이마가 잠실 야구장 만하다. 잡지에 나온 가발 사진을
보고 전화를 해보니 가발 값이 엄청나게 비쌌다...
퇴근길에 지하철은 타니 한 학생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앉아서 가서 몸은 참 편해서 좋은데 기분은 한마디로 더러웠다.
내일 당장 카드로 가발을 사야지... 아니... 신성우처럼 푸짐한 머리카락을
심으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 내 나이 49세...
어제 분명히 담배가 8가치가 남아있는 것을 적어놨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6가치이다... 그 동안 담배가 자꾸 줄어들고 있어 짐작은 했지만...
드디어 오늘에서야 물증을 잡았다. 아버지는 시골 내려갔고...
남은 것은 아들녀석... 나는 아들을 불러 추궁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발뺌을 하던 녀석이 내가 개수를 적은 담뱃갑을
내밀자 자신의 짓을 실토했다.
나는 그것만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고 하자 아들은 고개를 떨구고
빌었다. 나는 강력하게 말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을 용서해도
내 담배를 슬쩍하는 것은 용서 못한다고... 나의 말에 마누라와 아들이
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능력 없으면 끊어야지... 왜? 내 담배를 훔치는 거야... 나쁜 자식...
* 내 나이 55세...
눈을 뜨니 남인수가 떨어지고 말았다.
몇 가닥 안 남은 나의 머리카락에 이름을 붙여주었었다.
김정구, 남인수, 고복수, 이미자, 나훈아, 현인, 김세레나...
그런데 오늘 그 중에서 남인수가 떨어지고 말았다.
소중하게 주워서 화장을 시키듯 재떨이에서 불을 붙여 태워주었다.
그리고는 좋은 곳에 가도록 빌어주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마누라가 옆에서 혀를 차며 바라본다.
안녕~~ 남인수여...
* 내 나이 63세...
손자녀석이 귀여워 쓰다듬으니 찝찝한 표정으로 노려보더니
며느리에게 가서 나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인상을 쓰며 투털된다.
싸가지 없는 자식... 지는 안늙을줄 아나?
작년에 탑골공원에서 만난 할망구에게서 삐삐가 왔다...
음성메시지를 들어보니 집이 비어서 못나온다고 메시지가
남겨져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시뻘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저께 김영감이 자식이 사줬다며 핸드폰을 들고나와 자랑하는 것을
관심 있게 보더니, 아마도 김영감을 만나고 있을거다...
망할놈의 망구같으니... 그따위 지조없이 핸드폰에 고무신을 꺼꾸로 신다니...
하긴 나는 그 흔한 시티폰 하나 없으니...
여자는 늙어도 여자인가 보다...
어제 아들에게 핸드폰 사달라고 말을 꺼내려다 못하고 말았다.
지팡이를 들고 나오려고 하자 며느리가 집이 비웠으니 집을 보라고 한다...
나는 못들은 척 시침을 떼고 나와 버렸다. 못된 것들...
젊은것들은 우리 늙은이들이 집 지키는 개인줄 아나?
오늘은 다른 망구를 꼬셔봐야지...
* 내 나이 74세...
오늘 그만... 똥을 싸고 말았다... 나는 그냥 방귀를 꼈는데...
며느리가 알면 눈을 치켜 뜨고 '내가 못살아'를 연발하겠지...
그리고는 더 이상 치매 걸린 노인은 양로원에 보내자고 아들을
닥달하겠지... 며느리 눈치가 무서워 옷장 밑에 속옷을 감추었다...
손자 방에 담배를 하나 얻으러 들어갔더니 이상한 비디오를 보다가
깜짝 놀라 끄면서 손자녀석이 소리를 지른다...
노크도 없이 들어왔다고...
여자가 홀랑 벗은 모습을 보았는데도 춥겠다는 생각만 든다...
이제 나도 죽을 때가 다된 모양이다.
먼저 간 망구가 그립다...
여보~~ 보고 싶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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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동 한그릇 ♡

- 지가 이글은 접 할때마다 울었던 가슴 뭉굴한
내용인데 아마 3번도 더 울었나 합니다 -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우동집으로서는
일년 중 가장바쁠 때이다."북해정"도
이날만은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보통 때는 밤 12시쯤이 되어도 거리가 번잡한데
그날 만큼은 밤이 깊어질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10시가 넘자 북해정의 손님도 뜸해졌다.
사람은 좋지만 무뚝뚝한 주인보다 오히려
단골손님으로부터 주인 아줌마라고 불리우고 있는
그의 아내는 분주했던 하루의 답례로
임시종업원에게 특별상여금 주머니와
선물로 국수를 들려서 막 돌려보낸 참이었다.
마지막 손님이 가게를 막 나갔을 때,
슬슬 문앞의 옥호막(상호적힌 막)을 거둘까 하고 있던 참에,
출입문이 드르륵하고 힘없이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6세와 10세 정도의
사내들은 새로 준비한듯한 트레이닝 차림이었고,
여자는 계절이 지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라고 맞이하는 주인에게, 그 여자는 머뭇머뭇 말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곁의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주방 안을 향해,
"우동, 1인분!" 하고 소리친다.
주문을 받은 주인은 잠깐 일행 세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면서,"예!"
하고 대답하고, 삶지 않은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둥근 우동 한 덩어리가 일인분의 양이다.
손님과 아내에게 눈치 채이지 않은 주인의 서비스로
수북한 분량의 우동이 삶아진다.
테이블에 나온 가득 담긴 우동을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고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카운터 있는 곳까지 희미하게 들린다.
"맛있네요." 라는 형의 목소리.
"엄마도 잡수세요." 하며 한 가닥의 국수를 집어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가는 동생. 이윽고 다 먹자 150엔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했다.
신년을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나날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12월 31일을 맞이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끝내고,
10시를 막 넘긴 참이어서 가게를 닫으려고 할 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 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주인은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무늬의 반코트를 보고,
일년 전 섣달 그믐 날의 마지막 그 손님들임을 알아보았다.
"저...... 우동...... 일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 여주인은 작년과 같은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우동 일인분!" 하고 커다랗게 소리친다.
"네엣! 우동 일인분." 라고 주인은 대답하면서
막 꺼버린 화덕에 불을 붙인다.
"저 여보, 서비스로 3인분 내줍시다." 조용히 귀엣말을 하는
여주인에게, "안돼요. 그런 일을 하면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거요." 라고 말하면서 남편은 둥근 우동 하나 반을 삶는다.
"여보,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좋은 구석이 있구료."
미소를 머금는 아내에 대해, 변함없이 입을 다물고
삶아진 우동을 그릇에 담는 주인이다.
테이블 위의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싼 세 모자의
얘기소리가 카운터 안과 바깥의 두사람에게 들려온다.
"으...... 맛있어요......"
"올해도 북해정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 먹고, 150엔을 지불하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에 주인
내외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날 수십번 되풀이했던 인삿말로 전송한다.
그 다음해의 섣달 그믐날 밤은 여느 해보다
더욱 장사가 번성하는 중에 맞게 되었다.
북해정의 주인과 여주인은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10시를 넘긴 참이어서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은,
벽에 붙어 있는 메뉴표를 차례차례 뒤집었다.
금년 여름에 값을 올려 '우동 200엔'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표가 150엔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2번테이블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져
있다. 10시 반이 되어, 가게 안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모자 세 사람이 들어왔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 형이 입고있던 잠바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엄마는 색이 바랜 체크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
라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엄마는 조심조심 말한다.
"저...... 우동...... 이인분인데도...... 괜찮겠죠?"
"넷...... 어서 어서. 자 이쪽으로."라며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거기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카운터를 향해서 소리친다.
"우동 이인분!" 그걸 받아, "우동 이인분!" 이라고 답한 주인은
둥근 우동 세 덩어리를 뜨거운 국물 속에 던져 넣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고,
이야기도 활기가 있음이 느껴졌다
카운터 안에서, 무심코 눈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짓는 여주인과,
예의 무뚝뚝한 채로 응응,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이다.
"형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둘에게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실은,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 사고로,
여덟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보험으로도 지불할 수 없었던 만큼을,
매월 5만엔씩 지불하고 있었단다."
"음------ 알고 있어요." 라고 형이 대답한다.
여주인과 주인은 몸도 꼼짝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
"지불은 내년 3월까지로 되어 있었지만,
실은 오늘 전부 지불을 끝낼 수 있었단다."
"넷! 정말이에요? 엄마!"
"그래, 정말이지. 형아는 신문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쥰이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던 거란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을 해서 회사로부터 특별수당을
받았단다. 그것으로 지불을 모두 끝마칠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준비는 내가 할 거예요."
"나도 신문배달, 계속할래요. 쥰아! 힘을 내자!"
"고맙다. 정말로 고마워." 형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지금 비로소 얘긴데요, 쥰이하고 나, 엄마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요...... 11월 첫째 일요일,
학교에서 쥰이의 수업 참관을 하라고 편지가 왔었어요.
그 때, 쥰은 이미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아놓고 있었지만요.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콩쿠르에 출품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에 이 작문을
쥰이 읽게 됐대요.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드리면..
무리를 해서 회사를 쉬실 걸 알기 때문에 쥰이 그걸 감췄어요.
그걸 쥰의 친구들한테 듣고...... 내가 참관일에 갔었어요."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너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전원에게 작문을 쓰게 하셨는데, 쥰은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
으로 써서 냈대요. 지금부터 그 작문을 읽어 드릴께요.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죠.
작문은......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많은 빚을
남겼다는 것,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
내가 조간석간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는 것 등...... 전부
씌어 있었어요.
그리고서 12월 31일 밤 셋이서 먹을 한 그릇의 우동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것..
셋이서 다만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해주신 일. 그 목소리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
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었어요."
카운터 안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주인과 여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카운터 깊숙이 웅크린 두 사람은, 한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길 듯이 붙잡고,
참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작문 읽기를 끝마쳤을때 선생님이, 쥰의 형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와주었으니까,
여기에서 인사를 해달라고 해서......"
"그래서 형아는 어떻게 했지?"
"갑자기 요청받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말이 안나왔지만......
여러분,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
동생은 매일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클럽활동 도중에 돌아가니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방금 동생이 우동 한 그릇이라고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처음엔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고 있는 사이에,
한 그릇의 우동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형제가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쥰과 사이좋게 지내주세요 라고 말했어요."
차분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웃다가 넘어질 듯이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작년까지와는 아주 달라진 즐거운 그믐날 밤의 광경이었다.
우동을 다 먹고 300엔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깊이깊이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을, 주인과 여주인은 일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전송했다.
다시 일년이 지나 ------
북해정에서는, 밤 9시가 지나서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2번 테이블을 비우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북해정은 장사가 번창하여, 가게 내부수리를 하게 되자,
테이블이랑 의자도 새로이 바꾸었지만 그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새 테이블이 나란히 있는 가운데에서,
단 하나 낡은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 하고 의아스러워하는 손님에게,
주인과 여주인은 우동 한그릇의 일을 이야기하고,
이 테이블을 보고서 자신들의 자극제로 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줄지도 모른다,
그 때 이 테이블로 맞이하고 싶다, 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 이야기는, '행복의 테이블'로써, 이 손님에게서 저
손님에게로 전해졌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테이블이 비길 기다려 주문을 하는 젊은 커플도 있어
상당한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나서 또, 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해 섣달 그믐의 일이다.
북해정에는, 같은 거리의 상점회 회원이며 가족처럼 사귀고
있는 이웃들이
각자의 가게를 닫고 모여들고 있었다.
북해정에서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동료들과 그 가족이 모여 가까운
신사에 그 해의 첫 참배를 가는 것이 5, 6년 전부터의 관례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도 9시 반이 지나 생선가게 부부가 생선회를 가득
담은 큰접시를 양손에 들고 들어온 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평상시의 동료 30여명이 술이랑 안주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어 가게 안의 분위기는 들떠있었다.
2번 테이블의 유래를 그들도 알고있다.
입으로 말은 안해도 아마, 금년에도 빈 채로 신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은 비워 둔 채 비좁은 자리에
전원이 조금씩 몸을 좁혀 앉아 늦게 오는 동료를 맞이했다.
우동을 먹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서로 가져온 요리에
손을 뻗히는 사람,
카운터 안에 들어가 돕고있는 사람, 멋대로 냉장고를 열고
뭔가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들썩하다.
바겐세일 이야기, 해수욕장에서의 에피소드, 손자가 태어난
이야기 등,
번잡함이 절정에 달한 10시 반이 지났을 때, 입구의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몇 사람인가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며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를
멈추었다.
오바를 손에 든 정장 슈트차림의 두 사람의 청년이 들어왔다.
다시 얘기가 이어지고 시끄러워졌다.
여주인이 죄송하다는 듯한 얼굴로 "공교롭게 만원이어서"라며
거절하려고 했을 때 화복(일본 옷) 차림의 부인이 깊이
머리를 숙이며 들어와서, 두 청년 사이에 섰다.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침을 삼키며 귀를 기울인다.
화복을 입은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저...... 우동...... 3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의 얼굴색이 변했다.
십수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밀어 젖히고,
그 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진다.
카운터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주인과,
방금 들어온 세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저...... 저...... 여보!"
하고 당황해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14년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금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교토의 대학병원에
소아과의 병아리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내년 4월부터 삿뽀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겸 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교토의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 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여주인과 주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넘쳐 흘렀다.
입구에 가까운 테이블에 진을 치고 있던 야채가게 주인이,
우동을 입에 머금은 채 있다가 그대로 꿀꺽하고 삼키며
일어나, "여봐요 여주인 아줌마! 뭐하고 있어요!
십년간 이 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잖아요, 안내해요. 안내를!"
야채가게 주인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여주인은,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2번 테이블 우동
3인분!"
무뚝뚝한 얼굴을 눈물로 적신 주인, "네엣! 우동 3인분!"
예기치 않은 환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게 밖에서는
조금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갓 내린 눈에 반사되어 창문의 빛에 비친
북해정 이라고 쓰인
옥호막이 한 발 앞서 불어제치는 정월의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 우동 한그릇 --- 후기 ***
지난 89년 2월 일본 국회의 예산심의 위원회 회의실에서
질문에 나선 공명당의 오쿠보의원이 난데 없이 뭔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대정부 질문중에 일어난 돌연한 행동에 멈칫했던 장관들과
의원들은
낭독이 계속되자 그것이 한편의 동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야기가 반쯤 진행되자 좌석의 여기저기에서는 눈물을
훌쩍이며 손수건을 꺼내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끝날 무렵에는 온통 울음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정책이고 이념이고 파벌이고 모든 것을 다 초월한 숙연한
순간이었다.
장관이건 방청객이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편을 가를것 없이
모두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국회를 울리고, 거리를 울리고, 학교를 울리고 결국은
나라 전체를 울린
'눈물의 피리'가 바로 우동 한그릇 이란 동화다.
감격에 굶주렸던 현대인에게 우동 한그릇은 참으로
오랜만에 감동연습을 시켜준 셈이다.
"울지않고 배겨낼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한 번
읽어보라"고
일본 경제신문이 추천한 이 작품의 화제는 전 일본을 들끓게
하더니 급기야 전세계로 확산되고있는 중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체험한 어른들과,
가난을 모르고 자란 요즘 어린이들에게 이 우동 한그릇은
어떠한 실체로 투영될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들의 작은 봉사활동이
우동 한그릇처럼 어려운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으면… 해서 "퍼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