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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34화> 위험한 동거

바다의기억 |2006.03.18 01:34
조회 11,411 |추천 0

공대생의 사랑이야기의

 

출판 및 영화화가 결정되었습니다.

 

축하해 주세요.

 

=========================== 가지 가지 하는 구나 ================================= 

 

 

한나 - 잘 가~ 다시 잡히지 말고~.



삼일 동안 호의호식 하며


잡히기 전보다 더 쌩쌩해진 토끼를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른 우리.



운전석 쪽 자리에 탄 몇몇을 제외하고


남은 사람 모두가 뒤쪽에 있는 짐칸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덜컹거리는 산길을 내려가는 모습은


피난민 행렬을 연상시켰지만


그 표정만큼은 하나 같이 해맑았다.



..... 단지 문제는 두 명.



연출

- 이야.... 결국 어떻게 건 일은 풀리는구먼.


회계야, 육포 먹을래?



회계 - 됐다~ 너나 마~이 묵어라.


연출 - 에이 자식... 삐졌냐?


회계 - 가서 보자고, 가서.



뒤늦게 인심을 베풀어 보려는 연출과



김군 - .......


박군 - ........



박군과 신경전에 한창인 김군이었다.


연출이야 무시하면 그만 이라지만


김군과 박군은 언제 붙어도 한 번 붙을 기세다.



잠시 후.


구세주처럼 나타났던 제설차는


우리를 근처 기차역까지 태워주고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을 찾아 떠나갔다.



119대원

- 하하핫! 또 보자고! 친구들!


인연이 있으면 만나게 되겠지!



한나 - 안녕히 가세요, 오빠~.


119대원 - 하핫! 오빠라니! 하핫! 가자 알바트로스!!



산길을 내려오는 사이에


서로 상당한 친분을 쌓은 듯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는 한나와 119대원.


하지만.... 직업의 특성을 생각하면


다시 안 만나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



고속버스를 돌아가는 버스 안.


모두가 설렘과 흥분으로 분주히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주말 이후 귀가 권장=


이라는 아버지의 문자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국 지금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다는 소린데


밥도 먹어야 되고.... 흐음.



설거지건 장보기건 다 할 수 있지만


밥 만들어 먹는 건 너무나 귀찮다.


그건 그간 시도했던 요리의 결과가


건강에 유해할 만큼 안 좋았던 탓도 있지만


아싸리 나와는 적성이 아니다.



이런 저런 해결책을 떠올리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민아에게 은근슬쩍 묻어가 보자는 것이었다.



기억- 저기... 괜찮으면, 우리 집에 안 올래?


민아 - 응?


기억 - 그.. 주말까지 부모님이 안 오신데서.


한나

- 어쩜 어쩜~ 음흉해~.


‘여긴 우리 둘 뿐이야. 이리 와~.’


이러려고요? 꺄아~ 어떡해 어떡해~.



기억 - 아, 아녜요! 밥도 먹어야 하고...


민아 - 피이.. 내가 파출부야? 밥 해주러 가게?


기억 - 아아아니... 그게....



한나의 갑작스러운 개입으로


엉겁결에 본래 목적이 드러나 버린 탓에


빼도 박도 못할 상황에 처해버린 난


재빨리 사태를 수습할만한 말을 찾아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내 뒷수습 보다


민아가 새로운 방안을 내놓는 것이 빨랐다.



민아

- 차라리 우리 집에 며칠 묵는 게 어때?


한나만 남겨두고 가기도 그렇고....


둘이 같이 가서 있기도 그렇고....


우선.... 내가 좀.... 밖에 돌아다니기가 그래서.


그쪽이 더 나을 것 같지 않아?



기억 - 아... 뭐..... 나야.... 한나만 괜찮다면....


한나 - 싫어요. 어떻게 여자들만 있는 집에...


기억 - 에엣?



거기서 덜컥 튀어나온 한나의 반론.


충분히 수긍할 수는 있는 내용이었지만


속으로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라고


손가락을 튕기고 있던 나로선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나 - 킥... 농담이에요.


기억 - ..... 하아.


민아 - 한나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날 보며


한나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민아.


그 와중에도 나를 향한 한나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불안한 직감이 온몸을 엄습해왔다.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온 서울.


부원들은 이제야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너나없이 격양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연출

- 으아~ 이 살짝 썩은 듯한 그리운 공기!


드디어 서울로 돌아온 거냐?



회계

- 이거 이거.... 이대로 흩어지기엔 아쉬운데?


생각 있는 사람들은 한 잔씩 하고 가지?



박군 - 에... 저 갈래요.


김양 - 나도 갈래.


회계 - 다른 사람들은?


어깨 - 아유 저는... 들어가 봐야죠. 일주일만인데....


회계

- 아직 시간도 이른데 뭘....


그냥 고기뷔페 가서 밥이나 먹자고.



말은 그렇게 해도


회계와 연출이 무리 중심에 자리 잡은 이상


결코 밥이나 먹는 레벨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 자명했지만


어차피 서울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빠진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알콜로드 위에 몸을 실었다.



회계 - 기억이 넌 안 갈래?


기억 - 아...예, 저는.... 좀 피곤해서요.


연출 - 민아는.... 아, 맞다. 미안하다.


민아 - 이잇! 연출오빳!



말로는 연출을 탓하면서


주먹으론 내 어깨를 때리는 민아.



그래... 내가 죄인이다.



그렇게 사람들과 헤어진 우린


전철을 타고 민아의 성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민아는 내 팔에 손을 걸고


어깨에 몸을 기댄 채 잠을 잤다.


만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만 해도


똑바로 앉아서 자거나


옆에 기둥 같은 곳에 기댔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연인들에 비하면 사소하기 그지없는 변화에


혼자 심취해 뿌듯해 하고 있을 때


민아 옆에 앉아있던 한나가


불쑥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기억 - 어라, 무슨 일이세요?


한나 - 나도 어깨 좀 빌려줘요.


기억 - 예?



뭐라 말할 틈도 없이


팔짱을 낀 채 내 옆에 바싹 붙어 앉는 그녀.


높은 굽을 신으면 나와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만큼


훤칠한 키를 가진 그녀였기에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는 민아와 달리


어깨 뒤쪽을 비스듬히 밀착시키고 고개를 숙인 자세였다.



기억 - 저기... 이러시면 조금 곤란한데요.


한나

- 여자 혼자 졸면서 가기 비참하잖아요!


모르는 사람한테 기대서 자기도 쪽팔리고.



기억 - 아....아 네.



그렇게 전철을 타고 가는 내내


난 주위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살기에 몸을 떨어야 했다.



= 빌어먹을 자식! 양 손에 꽃이냐?!


= 저 복에 겨워 보이는 찐따 녀석은 뭐야!


= 너 같은 놈이 있으니까 우리가 솔로인 거야!!



주변 공기를 무겁게 할 만큼 이글대는 사념의 덩어리들.


칼날처럼 날아와 박히는 그 눈살 속에서도


은근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건


남자의 본능인 걸까? 허허, 이것 참.


살얼음 위에 있는 왕좌에라도 앉은 듯한 기분이다.




잠시 후 도착한 민아의 집.


우리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발견한 건


거의 아사직전 상태에 빠져


정원 한 가운데에 뻗어있는 피카츄의 모습이었다.



민아 - 꺄악!! 피카츄!!


피카츄 - 붸엙....



자유자재로 줄을 풀고 다닐 수 있는 덕에


정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칼로리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섭취한 듯 했지만


불행히도 때는 겨울.


그나마 폭설이 내린 직후였다.



민아 - 어떡해.... 밥이 얼마 없었구나...



피카츄가 엎어놓은 커다란 버킷을 보며


민아는 짧은 탄식을 흘렸다.


버킷에 한 번 왕창 부어 놓고


알아서 퍼먹게 놔뒀던 건가....


왠지 종에 비해 몸집이 너무 비대하다 싶었다.



당장 사료로 삼을 만한 게 없던 탓에


피카츄를 근처 동물 병원에 입원 시키고


다시 돌아온 집.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민아의 후회는 멈출 줄 몰랐다.



민아

- 사료가 떨어질 때가 됐다고


어렴풋이 생각은 했는데....


어떡해... 나 바본가 봐....



한나 - 괜찮아, 피카츄는 그 정도로 안 죽어.


민아 - 그럴까? 그렇겠지?


한나 - 나랑 있을 때는 열흘도 버텼는걸.


민아 - 그거 다행.... 잠깐, 열흘씩이나 굶겼었단 말야?!


한나

-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바닷가에 놀러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민아 - 아.... 그것 참... 뭐?! 그건 변명이 안 되잖아!



이것 참... 재밌긴 한데


사이에 끼어서 웃기는 좀 그러네.



한 바탕 소동을 겪고야


집에 들어선 우리는 우선 여장을 풀고


시원한 음료수 한 잔씩을 들이켰다.



한나 - 하아.... 살겠다.


민아 - 이제 집으로 돌아온 것 같네.


한나

- 아후.. 우선 무조건 씻고 봐야지.


샴푸가 없어서 머리도 제대로 못 감았잖아.



민아 - 나도.



잔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몸을 씻으러 가는 두 사람.


나야 어차피 막 자란 공돌이라


간간이 몸에 물이나 적시면 불만이 없는 편이지만


두 사람은 제대로 된 샤워에 대한 열망이 강했나 보다.


화장실은 1층과 2층에 하나씩.


거실까지 희미하게 들리는 물소리에


뒤숭숭한 기분으로 앉아있던 난


그냥 TV나 보고 있기로 마음먹었다.



=네, 오늘의 굴다리 토크쇼에서는

장안의 화제, 만인의 형님인 싱하씨를 모시고

애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형 왔다. 지금 채널 돌리는 새퀴들은 삐- 맞는 거다.

6번, 7번 그런 거 필요 없다. 무조건 고정이다.


상당히 다이내믹한 토크쇼였지만


평소 TV를 거의 안 보다 보니


내용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싱하가 뭐하는 사람인지....


왜 애정이 있는데 사람을 패는 건지.



한나 - 빰빠라바바빰! 빠바밤, 빰! 빠바밤~빰빠밤!



그 때 뒤에서 귀에 익은 탱고풍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한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본 순간 내가 본 것은...



한나 - 빠바바바밤~ 유후~.



목욕타월만 두른 채 뒤로 돌아


어깨춤을 씰룩씰룩 추고 있는 한나의 모습이었다.


볼륨있게 굴곡진 하얀 수건 아래도


미끈하게 흘러내리듯 뻗은 두 다리.



= 삐잉- =



다음 순간 급격히 눈앞이 어둑어둑해지면서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 게 느껴졌다.



한나

- 짜라잔~ 사실은 튜브탑에 핫팬츠!


꺄하하~ 놀랐죠? 놀랐죠?



이미 완전히 깜깜해진 시야 저편에서


한나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울렸다.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속에 옷을 입은 채로 장난을 친 것 같지만...



털썩.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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