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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오르다 -3화- (어제를 등지고)

점심이슬 |2006.04.11 20:03
조회 354 |추천 0

3장, 어제를 등지고 ...




“인희야! 너 언제 올라갈거니?”


“어 이번주 주말쯤 갈거 같아, 아빠가 그때 시간이 되실 것 같다네..”


“이궁.. 너희 아버지 참 대단하시다. 몸도 편치 않으신데 그렇게 까지 챙겨주시다니 인희 넌 정말 잘 해야될거야.”


".... 그래 알지.. 알아..“


15살 여름이었나 보다. 인희의 친부가 간암으로 세상을 등지고 엄마와 인희는 지금 살고 있는 시골마을로 이사를 왔다. 끔찍했던 친부와의 생활들 그리고 고모들의 '서방잡아 먹은년’이라는 억지에 집과 재산, 친구와 가족들을 등지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 삶을 살기를 엄마는 간절히 원했고 인희는 그런 엄마를 말없이 따라 나섰다.


오십여 가구가 모여서 사는 작은 시골마을은 두 모녀에게 전에 없던 행복한 삶을 가져다 주었다. 후덕한 시골인심과 조용한 전원생활... 그리고 2년 후 인희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평소 엄마와 인희를 보살펴 주시던 할머니의 아들이 사고로 가족을 잃고 혼자 살고 있다며 엄마를 소개시켰고 그 사람은 인희의 새 아버지가 되었다. 새 아버지 정식은 정말 좋은 사람으로 두 모녀에게 진심으로 잘 대해 주었다. 어딘가 모르게 늘 불안하던 엄마도 안정을 찾고 새 아버지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아내가 되었다. 물론 인희도 처음엔 낯설고 서먹했지만 정식의 따뜻한 배려와 씀씀이에 고 3이 되면서 아빠로 호칭을 변경했고 그날 눈물을 흘리며 인희를 가슴에 끌어안고 사랑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이며 다정한 부녀가 되었다.


"인희야 너 교복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으응.. 엄마 그냥 버렸으면 하는데...”

 

"그래.. 엄마는 너 보고 싶을 때 마다 이거 보믄서 위안 삼으려고 했는데 ...”


“..... 엄마 좋으실대로 하세요..”

 

"인희야 엄마는 니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한지 모르겠다.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갖은 맘고생 다 하고 힘들었을텐데 떡하니 한국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그것도 사범대에 합격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말이야... 너무 고맙구나. 니 아빠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엄마 좋은데 왜 울어.. 울지마요.. 내가 더 잘할께. 선생님 되서 꼭 엄마 소원 풀어드릴거야"

 


엄마가 집에서의 마지막 저녁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나가시자 인희는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 눈물이 쏟아졌다. 수능이 끝나고 얼마되지 않아 분명히 분리수거함에 꽁꽁싸매서 버려두었는데 다시 보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 날밤 끔찍한 일을 당하고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이 일을 부모님이 몰랐으면 하는 마음에 마당 한켠에 있는 수돗가에서 온몸이 꽁꽁 얼도록 교복과 혈흔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소리가 새어 나갈까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과 꽉 잠긴 목, 꽉 개물어 헤어진 입술을 감추려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서 도착한 학교에서 그만 복받치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또 울었다. 그때부터 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 얼굴 없는 남자들이 비웃듯 놀려대는 웃음소리와 징그러운 뱀들이 온몸을 휘감고 숨통을 조일 때 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이 샘솟는다. 흑흑... 불현듯 생각이 난다. 엄지 손톱만 하게 살점이 뭉게진 다섯 개의 상처.. 마치 별의 꼭지점을 연상케 하는 흉터였다. 달빛에 어렴풋이 비춰진 쇄골뼈에 새겨진 그 상처..  그리고 또 한사람.. 시종일관 큰소리로 비웃던 그 남자.. 덕배라고 했다.. 덕배.. 이마의 정 중앙에 위치한 큰 물사마귀... 인희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우려 애썼다.


 

 


  활짝 핀 목련이 소담스럽게 몽우리를 터트리는 봄이 오고 인희는 4학년이 되었다. 곧 다가올 임용고시를 위해 아르바이트 외에는 독서실에서 모든 시간을 다 소진했다. 친구 배정은  미팅도 하고, 엠티도 가고, 축제에도 참가하고 대학생만의 특권을 좀 누리라고 지겹도록 노래를 불렀지만 넉넉지 못한 형편에 학비에 생활비까지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 흔한 휴대폰 조차도 없어 답답하단 푸념을 늘어놓는 배정에게 그저 웃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오늘도 수업을 미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분식집을 가기위해 교문을 나서고 있는데 지혜가 인태선배와 정답게 걸어온다.


“인희야!! 알바 가는 거야?”

 

“어..엉.. 안녕하세요? 선배..”


인태선배가 영 껄끄러운 인희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인태는 제대 후 복학준비로 학교에 들른 길에 인희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여름방학이 지나 정식으로 복학을 한 인태는 노골적으로 인희에게 접근했고 인희는 인태의 무차별적인 데이트 신청을 냉정하게 거절해 왔다. 4학년이 되면서 인태도 지쳤는지 더 이상 인희에게 후배이상의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그 눈빛만은 뜨거운 열정을 내뿜고 있었다.


"선배랑 영화보고 오는 길이야.”


갑자기 지혜가 인태의 팔짱을 낀다. 아마 평소 인희를 향한 인태의 마음을 알기에 그를 짝사랑해오던 지혜의 작은 항변이리라. 인태선배는 인희의 눈치를 보면서 슬쩍 팔을 빼서 가방을 옆구리에 낀다.


“힘들지 않어? 피곤해 보인다....”


“괜찮아요... ”인희는 고개를 숙이고 만다.


“......”


“늦었어요. 이만 가볼께요.. 지혜야 있가가 가게서 보자”


뭐라고 덧붙이는 지혜의 말을 뒤로 하고 뛰다시피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인희가 알바를 하고 있는 '대학가’분식집은 같은 과 친구인 지혜의 집이었다. 지혜 어머니가 워낙 솜씨가 있으셔서 그런지 멀리서 이곳의 떡볶기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일이 마치는 10시까지 숨 돌릴 틈도 없이 움직여야 했다. 일이 끝나면 녹초가 되고 발이 퉁퉁 붙기 일수지만 워낙 인심 좋으신 분이라 돈도 넉넉히 주시고 엄마처럼 잘 대해 주시니 1학기 까지만 하자고 맘 먹고 있던 터였다.


멀리서 보이는 '대학가’앞은 여전히 자리 나기를 기다리는 학생들로 꾀나 붐비고 있다. 요즘 들어서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한 옆 건물 때문에 손님들이 여간 불편을 느끼는게 아니다. 먼지다, 소음이다, 또 인부들까지 지혜어머니의 손맛에 푹 빠져 더욱 자리 차지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빨리 가서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건물 외벽 페인트 칠이 진행 중인 줄도 모르고 뛰었다. 순간 페인트 통이 삽시간에 인희의 몸을 덥었다. 페인트가 얼마 남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두터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통 모서리에 부딪히는 바람에 몇 바늘을 꿰메야 하는 상처를 입었다.


"쓰라리시죠? 3바늘 꿰멪어요. ”


말끔한 양복 차림에 허여멀건 얼굴에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지만 그 눈만은 슬픔으로 가득찬 한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우성건설 기획실장 공영식’


“인부들에게 안전교육을 시켰는데 잠시 실수가 있었나 봅니다. 본의 아니게 이런 일이 일어나 죄송합니다. ”


“네..."

 

"인희..  박 인 희씨 되시죠?"

 

"어떻게 제 이름을..."

 

"병원으로 옮기면서 책에 쓰여진걸 봤어요. 이름은 알아야 할것 같아서"

 

"네..."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됐습니다."

 

"조심하지 않은 제 탓도 있는걸로.. 괜찮아요.”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기.. 혹시 모르니까 입원하셔서 정밀검사라도 한번 받아보시는 것이 어떠실런지요?”


“아니예요. 이만한 일로 무슨... 제가 급한 일이 좀 있어서요”


인희는 일손이 딸려서 힘들어하실 지혜 어머니가 맘에 걸려 더 이상 지체 할 수 가 없었다.


“그럼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차로 가시죠”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극구 사양하는 인희를 반강제로 차에 태우다 시피 했다. 이대로 그녀를 보낼 수 없었다. 어렵게 인연을 만들었는데 어떻게든 이어 나가야 했다. 그래야, 그래야 자신이 지은 죄값을 조금이나마 치를 수 있을것 같았다. 영식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한 마디라도 더 하면 그날 울부짖던 인희의 비참한 애원이 떠올라 눈물이 한바탕 쏟아질것 같았다.

 


 

부릉...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차의 꽁무리를 쳐다보며 그 사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영 개운치 않았다. 인희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 마치 조그만 충격에도 깨져버릴 얇은 유리조각처럼 안타깝게 쳐다보는 것이 맘에 걸렸다.

 

 복숭아처럼 보송보송한 피부와 쌍꺼풀이 없어도 유난히 크고 맑은 눈, 가녀린 체구, 볼을 적당히 덥고 있는 단발의 생머리.. 한없이 연약한 듯 하면서도 강해보이는 눈동자, 이지적이면서 차가운 듯하지만 따듯한 미소..인태를 비롯해 강의실이나 '대학가’에서 사귀자고 종종 치근덕대는 남학생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네들의 바라보던 눈빛과는 사뭇 다른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자신보다 너 댓살은 많아 보이는데 아무리 가해자의 입장이라고 해도 지나 치리만큼 깍듯하게 경어를 쓰는 것 등등 맘에 걸리는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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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또 한편을 마쳤네요...

갈수록 자신이 없어져서 괜히 시작했다 싶은데...

그래도 열심히 해 볼랍니다. 그래야 실력도 늘고 더 좋은 글이 나오겠지요?

하루종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때문에 괜시리 뭉클해지는 가슴을 쓸어담으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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