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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43화> 정신분열

바다의기억 |2006.04.12 21:39
조회 12,213 |추천 0

요즘 머리결이 푸석해진 게

 

폐인 티가 풀풀 나네요.

 

조금 더 신경써서 관리해야겠습니다.

 

======================= 피부가 장난이 아니네 ==============================

 

 

유니가 생각해낸 특훈이라는 건


생각보다 간단했다.


연극부 전체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과 이야기 할 때는 정상모드,


다른 그룹과 이야기 할 때는 사이코모드로 이야기함으로써


자연스레 두 가지 자아를 가지게 한다는


이른바 ‘정신분열 유도 시스템.’


연극연습을 평소로 연결시키는 데도 모자라


생체실험 레벨로 끌어올린 이 프로젝트는


나를 제외한 다른 부원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만장-1)일치로 통과되었다.



유니

- 자, 그럼 이제 그룹을 나눠야지.


이건 기억이 너한테 직접 맡겨 줄게.


대신 자주 이야기 하는 사람이 골고루 섞여야 돼.



.... 병 주고 약 주기냐.



프로젝트 실행 일주일 후.


본래 공부는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연극부에 있는 내내 사람들을 나눠서 대하다 보니


나의 모드 체인지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빠르고 분명해졌다.


단지 하나의 문제점이라면


이 두 가지 자아가 어느덧 내 신경계를 장악해


연습 시간이 아닌 평소 생활 중에도


종종 튀어나오기 시작했다는 거다.



김씨브라더스, 민아시스터즈와 함께


영화를 보러갔던 휴일.



김씨 - 여! 오랜만이다!


기억 - 쿡... 그래... 날 보고 싶었나? 쿠쿠쿡..


김씨 - ..... 야, 민아야. 얘 왜 이러냐.


민아 - 아.... 저기..... 그게....


한나 - 오빠, 괜찮아요?


기억 - 하아...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


허씨 - 무슨 일 있었냐?


기억 - 무슨 일? 쿡쿡쿡.... 아무 일도. 아무 문제 없어....



이후에도 이런 사건이 종종 일어나면서 세간에는


=사채업자 기억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발언 파문=


=샴쌍둥이의 원혼, 숨겨진 인격이 눈을 뜨다=


같은 소문이 급속히 퍼져나갔고


가뜩이나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오던


주변 사람들과의 친분관계는


거의 아싸레벨로 전락해갔다. (아싸 = 아웃사이더)


이렇게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 두 인격은


무사태평을 모토로 살아온 나에겐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이었고


날이 갈수록 초췌해져가는 내 모습에

(단지 초췌해져가는 문제가 아니다. 종합적인 분위기의 문제다)


어지간해서는 별 내색을 안 하시는 어머니도 깊은 염려를 보이셨다.



어머니 - 요즘 몸이 안 좋니?


기억 - 아뇨, 조금 피곤할 뿐입니다.


어머니

- 이제 나이가 웬만큼 들었다고 해도


고민 같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려무나.


도와줄 수 있는 데까지 도와줄 테니까.



기억 - 쿠쿡... 크흠!.... 예.



위험했다.... 위험했어....


이때 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께서 누구시던가....


나와 아버지에 관해서라면


눈치가 9단, 직감이 8단, 합이 17단인 분이셨다.



결국, 그날 저녁 부모님 사이엔


나의 동태에 관한 심각한 회의가 개최되었다.



어머니 - 요즘 기억이가 좀 이상해요.


아버지 - 실연이라도 당한 건가.


어머니 - 아니에요, 오늘도 전화오고 했는걸요.


아버지 - 흠...... 그렇다면....


어머니

- 아무래도 애가 영 불안해 보이는 게....


마치 누구한테 쫓기기라도 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 - 순경 애들 몇 명 붙여 볼까.


어머니 - 그럴 것까지야....


아버지

- 음... 아무튼 그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감시를 소홀히 하지 마.



지금 그 말.... 진담이신 건가.


그렇게 팔자에 없는 미행까지 당할 뻔하고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간혹 혼잣말을 하다가도 인격이 바뀌는


혼자 놀기의 진수를 뽐내가며 연습에 몰두한 결과


난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월요일 연습이 끝나고....



민아 - 기억아, 집에 가자.


기억 - 아.... 그래.


민아

- 요즘 정말 많이 좋아진 것 같아.


연기도 실감나고... 색깔도 분명해지고.



기억 - 쿡쿡쿡.... 그것 참 다행이네.


민아 - 아잇, 연습 끝나곤 하지 마~. 왠지 무섭단 말야.


기억 - 응? 뭐가?


민아 - 그 ‘쿡쿡쿡...’ 그러는 거.


기억 -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민아 - ...... 방금 그랬다니까?



굳이 말하자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분열되어 있는 쪽에 익숙해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확실히 지금 내 성격이


평균적인 라인에서 저 멀리 벗어나


인성의 표준편차 및 분산을 증가시키게 된 데는


연극부가 공헌한 바가 컸다.



이제 익숙해지다 못해


인지마저 불가능한 레벨에 다다른


정신분열 유도 프로젝트.


그 여파는 금단의 영역이던 집까지 미쳤다.



어머니 - 기억이 왔니?


기억 - 예. 쿡쿡쿡쿡....



내가 곧장 방으로 들어간 직후


거실에선 한 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어머니 - 여보! 기억이가 이상해요!


아버지

- 여보세요, 김경사. 나야.


그래, 애들 한 두 명 정도 불러서.......



다음날부터


난 누군가 계속해서 나를 보고 있다는


망상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공연을 2주 정도 앞둔 시점,


대부분의 개인연습은 제 틀을 잡았고


배역들 간에 호흡을 맞추는 일만이 남아있었다.


이미 가장 큰 난관으로 꼽혔던


정신분열의 벽을 극복한 나였지만


연습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또 다른 문제점이 내 발목을 잡았다.



민아 -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안군 - 소리를.... 듣고 있어.


민아 - 응? 무슨 소리?


안군 - 바람이 바다를 쓰다듬는 소리....


민아 - 에에~ 거짓말. 바다가 여기서 얼마나 먼데...


안군

- 정말이야. 이렇게 조용한 밤엔


바람에 파도 소리가 섞여 와.


들어볼래? 이렇게 손을 귀에 대고....



내가 처음 연극부에 들어와서 봤던


=채워주는 사랑= 공연 때처럼


연인 사이를 맡게 된 민아와 안군.


물론, 연습은 연실이고 현실은 현실이지만


시커먼 구렁이 액기스로 가득 찬 안군의 속내를 알고 있는 이상


연습이라도 마냥 보고 있기는 껄끄러운 일이다.


그렇게 민아가 있는 곳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나를


같이 연습하고 있던 김양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김양 - 뭐 하냐? 안 하냐?


기억 - 아... 예, 죄송합니다. 어디까지 했죠?



김양의 독촉에 서둘러 대본을 뒤적이는 동안


등 뒤로 안군의 비웃음이 싸늘하게 느껴져 왔다.



잠시 후 쉬는 시간.


답답한 기분에 비상계단에 나와 있는 사이


안군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복도 쪽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닫혀있는 문 뒤에 붙어선 그는


조소가 처덕처덕 붙어있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안군 - 연습은 잘 되가나?


기억 - 뭐, 그럭저럭이요.


안군

- 뒷부분으로 가면 제법 하드하던데...


연습할 때 꽤나 고생하겠어?


예전 사채업자 때처럼 말이야.



기억

- 연극은 어디까지나 연극이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더 이상 그런데서 버벅거리지 않습니다.



안군 - ...맞는 말이네. 연극은 연극, 현실은 현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안군의 표정엔


연습시간에 뒤쪽에서 느꼈던 비웃음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괜한 사족(蛇足)을 붙였다.


뒤에 한 마디로 충분할 것을....



안군

- 그렇지만.... 이거 하나만 알아둬.


연극에서도, 현실에서도 이기는 건 나야.


사이코 박사씨.



기억 - .....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안군 - 싫은데.


기억

- 물어봐도 되냐고 안 했거든요.


대답 하고 말고는 선배 마음이지만.



안군 - .... 그래, 뭔데.


기억 - 그러다 맞으면 안 아파요?


안군 - 글쎄, 맞아본 적이 없어서 잘.....



=콰앙!=



기억 - 아파요. 100%.



안군의 얼굴 바로 옆쪽 문에


주먹 관절 모양대로 움푹 파인 자국을 만들어 놓은 난


욱신거리는 주먹을 감싸 쥐고 자리를 피했다.



우리 공주님.... 건드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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