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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그들만의 슬픔2

박범성 |2002.11.06 16:30
조회 95 |추천 0

  초조한 마음에 자꾸만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와 상봉장에 있는 시계를 번갈아 봤다. 어제 알려준 예정된 시간이 넘었는데도 어떻게 됐는지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근 50년만의 만남, 그 꿈같은 일이 이제 몇 분 후면 현실이 된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지금이라도 '장난 이였습니다!' 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예전에 1차, 2차 상봉을 TV로 보면서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던 나였기에 더더욱 이런 분위기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어릴 적 부모님이나 형의 모습에 대한 기억은커녕 그들과 함께 한 기억조차도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들은 내게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다. 가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이 못 견디게 보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까.  상봉장에 들어오지 못해 지금 밖에서 애를 태우며 서있는 그들처럼 말이다.

  이곳에 들어오면서 슬쩍 보니 그들은 저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고 쓴 피켓 같은 것을 들고 있다. 그 피켓에는 저쪽에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가족의 이름과 주소, 나이, 헤어진 사연 등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안쓰럽다는 느낌보다는 대체 무엇이 저들을 저리도 애태우게 만드는지가 궁금해졌다. 물론 그것은 내가 선택되어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지만…….

  이곳 상봉장인 센트럴 시티라는곳은 대단히 넓었다. 하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들어서는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 북측 방문단이 도착했습니다. 장내에 계신 분들은 자리에 앉아 계십시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북측 방문단이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 방송이 들리자 순간 뭔가가 걸린 듯 가슴이 답답해 져오는 것이 느껴졌다. 가슴은 이미 두근거리고 그 고동소리가 이곳 상봉장 내에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상봉장 중앙에 있는 문이 열리면서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는 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상봉장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뒤를 이어 가족을 만난 기쁨에 그리고 복받쳐 오르는 슬픔에 못이긴 통곡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본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를 찾으려고 했지만 무슨 일인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니,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갑자기 두려워졌다. 타인보다 더 타인같이 느껴져서였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게 누군가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민석아∼"

  순간 나는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세상의 시간이 모두 정지 한 듯 내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가 않았다. 단 하나의 소리만 빼고는…….

  "민석이가 맞니? 정말 민석이니?"

  그 목소리는 점점 흐느낌으로 바뀌어 갔다. 고개를 숙인 체 그 목소리를 들은 나는 일어나야 된다고, 일어나서 당신의 아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원망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당신 없이도 잘 살았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의 얼굴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는 이제 오십이 넘은 나의 까칠한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 손길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든 나의 눈에 꾸부정한 허리를 하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비춰졌다. 한복을 단아하게 입은 그 모습. 나의 기억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 기억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나의 몸은 어머니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생각과는 다르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

  내 생에서 처음 불러보는 단어였다. 그 동안의 삶을 증명하듯 주름살이 깊게 패인 모습,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난 오십이라는 나이도 잊은 채 어머니의 품에 안겨버렸다. 마치 세 살난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듯이…….

 

  달마저도 삼켜버린 어두운 밤이었다. 평소에는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 민석이의 귀에 이날따라 그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지난번에 이장 어르신께 무장공비에 대한 얘기를 들은 이후로 민석이는 며칠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바람에 풀잎이 굴러가는 사소한 소리에도 신경이 쓰여서였다.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민석의 귀에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순간 잘못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분명 사람의 발자국 소리였다. 점점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 오자 민석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살짝 문을 열었다.

  어둠 때문인지 처음엔 잘 안보이던 모습이 어느 정도가 지나 웬만큼 사물을 구별 할 수가 있게 되자 마당 한 쪽에 서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의 모습을 더 또렷이 보기 위해 신경을 집중하는 순간 저쪽 학바위가 있는 쪽에서 총소리가 났다. 학바위는 민석의 집에서 얼마 떨어져있지않기 때문에 그 총소리는 더욱더 크게 들렸다.

  총소리가 나자 그 남자는 뭔가를 결심한 듯 할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총소리와 웬 낯선 남자가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자 그렇지 않아도 무장공비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민석은 겁에 질려 방문을 꼭 닫은 채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버렸다.

  '학바위에서 소리가 났으니까 금방 사람들이 올 거야.  사람들이 오면 할아버지를 구해줄거야!'

  민석은 겁에 질려 소리를 치는 것조차 잊은 채 어서 사람들이 와서 할아버지를 구해 주기를 빌었다. 총소리는 점점 민석의 집을 향해서 났고 얼마 후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댓 명의 사람들이 민석의 집으로 들어섰다.

  "주인장! 여기 주인 없소?"

  민석의 집에 들어 선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불렀고 잠시 후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혹시, 이 집으로 무장공비 한 놈이 숨어들지 않았소?"

  "모르겠소. 내내 방안에만 있어서……."

  "그럼 혹시 모르니 집안 좀 수색하겠습니다."

  군인 같아 보이는 남자가 손짓을 하자 뒤에 서있던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헛간과 부엌 등을 조사했다.

  "근데 여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분명히 마을로 내려가시라는 얘기를 들으셨을 텐데요. 무장공비란 놈들 아주 지독한 놈들입니다. 청석골에서도 마을 사람들을 여섯이나 죽인 놈들이라고요."

  "걱정 마시오! 내 그놈들을 보거들랑 즉시 연락하리다."

  "연락이고 뭐고, 할아버지께서도 해 안 당하시려면 빨리 마을로 내려가세요."

  "알겠소. 내 조만간 그러리다."

  집안을 수색하던 사람들이 수색을 끝내고 오자 남자는 할아버지에게 빨리 마을로 내려가라는 말을 한 뒤 집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는 소리를 듣던 민석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왜 할아버지께서 거짓말을 하셨을까? 그 무장공비가 위협을 해서 그런가? 지금이라도 내가 가서 군인들을 불러올까?'

  날이 어떻게 샜는지도 몰랐다. 밤새 할아버지의 그 이상한 행동에 대해 생각을 하다 새벽녘에 얼핏 잠이 들었던 민석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의 고함 소리로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아침잠이 덜 달아나서일까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민석은 간밤의 일어났던 일들이 마치 악몽을 꾼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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