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wntown, Vancouver. 거의 오늘 하루의 반 이상을 보냈던 곳이다. 많이 걸어서인지 다리가 절여오지만, “오늘”이라는 또 하나의 기나긴 하루를 쉽게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이였다.
오늘은 왠지 혼자 있고 싶었다. 비가 와서 그런걸까.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마음을 낮게 가라앉게 했다. 집에 있게 되면 오늘부터 시작되는 4일간의 “ester holiday”(부활절) 때문에 학교를 안가는 조카들과 놀아줘야 할 운명이였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인터넷을 뒤져 다운타운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들을 대충 머릿속에 구겨넣고, 누나한테 지하철 타는 곳 까지만 차로 태워줄 것을 부탁했다. 누나 집은 Surrrey라는 한인들과 인도인들이 많이 사는, 다운타운에서 약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서 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먼저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간 후 다시 다운타운 행 지하철을 타야했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앤드류 녀석이 따라겠다고 난리를 쳤다. 비가 와서 날씨도 차갑고, 누나는 누나대로 약속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다음에 꼬옥 데려 가겠노라고 간신히 설득을 한 후에야 떼어낼 수 있었다. 눈치없는 녀석......
차에서 내려 지하철 구내로 들어가니 썰렁했다. 연휴라서 그런지 주위의 가게들도 굳게 문을 닫아 놓았고, 직원 같이 보이는 사람들도 없고, 가끔씩 지하철에서 내린 듯한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을 뿐 이였다. 갑자기 난감해졌다. 표는 어디에서 사고, 어디로 가야하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혼자서 간다는 나를 걱정하던 누나에게 그까짓 것 하며 큰소리만 쳐댔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도움을 청할 때가 아무데도 없었다. 그때서야 그 흔한 여행책자 하나 안 사가지고 온 내 자신이 한심해 보였고, 대충 인터넷을 훝어본 것이 후회스러웠다.
도리가 없었다. 만만하게(착하게) 보이는 사람 하나를 골라 붙들고 묻는 수밖에. 우선 머릿속으로 내가 물어야 할 질문들을 영작해 보았다. 그리고 난 후 주위를 살펴보았다. 입구 쪽에서 담배를 피고있는 대학생인 듯한 금발의 백인여자가 하나 보였다.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나 : Excuse me, I am a stranger here. where can I get a ticket?
금발 : You should use a ticket machine. You can ......$#%@$%$^*(@#$$%%........
나 : Pardon ?
금발 : You can ......#$%%^%^&^*%^%^%$.....$%$#$%$%#$
나 : O.K. Thanks a lot.
무슨 말인가 그 후로 계속 말을 해주고, 다시 한번 반복해 주었는데도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된장~. 내가 알아들었던 거라곤 무슨 machine 이라는 말과, 내가 불쌍 보였는지 끝에 붙인 “Good luck.”이라는 두 단어뿐 이였다. 두 문장도 아닌 두 단어. 캐나다인과의 첫 대화는 그렇게 허무하고도 무지하게 끝나버렸다. 혼자 다운타운을 어테 가야할지 더욱 심란해졌다.
하여튼 그 금발의 백인이 가리켰던 역 한가운데에 서있는 판매기로 다가가 적혀진 사용법대로 구간을 선택하고 준비한 동전을 넣으니 내 손바닥 3분의2 크기만한 커다란 표 한 장이 나왔다. 계단을 올라가 보니 양쪽으로 레일이 놓여 있었다. 어느 쪽에서 타야 다운타운을 가는 건지 다시 고민이 되었다. 왼쪽 or 오른쪽.....?? 어리버리 둘러보니 다행히 작은 글씨로 다운타운이라는 표기가 벽에 붙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인지, 걱정인지 긴 한숨이 나왔다.
지하철에 올라타 보니 한국의 널찍한 지하철과는 달리, 작은 무슨 협괴열차 같이 협소했다. 근데 더 황당한 일은 분명 있어야 할 운전사가 없었다. 무슨 조정실 같은 거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니였다. 제일 첫 칸에 탄 탓에 정면의 앞 유리를 통해서 앞을 훤히 내다 볼 수 있었다. 호기심도 많고, 겁도 많은 탓에 전에 보지 못하던 풍경에 민감해지는게 나 문제 중의 하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 지하철은 "sky train"이라고 불리는데 거의 모든 것이 무인으로 작동된다. 심지어 운전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역내에도 감시 카메라만 있을 뿐 따로 직원들이 없다. 솔직히 처음에는 불안했다. 운전하는 사람이 없다니....아무리 컴퓨터로 작동 한다지만.... "sky train"이란 이름이 특이 했는데, 주행구간이 주로 땅속이 아닌 외부로 다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리고 외부를 주행 할 때는 도로를 따라 높게 세워진 고가 위를 달린다. 아마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표는 무인 판매기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한국과 같이 구간마다 요금이 다르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표를 넣는 개찰구가 없다는 것이다. 따로 표 검사를 하는 직원들도 안 보인다. 그럼 표 검사는 누가 하냐구? 그냥 양심에 맞긴단다.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황당 무개한 말이다. 그만큼 캐나다인들은 양심적이라는 말인데. 그럼 일일이 표 검사하는 우리나라는 양심이 없단 말인가. 가끔 직원들이 불시에 올라타 표 검사를 하는데 운이 나빠 걸리게 되면, 몇 십 배 해당하는 요금을 물어야 한단다. 그 중에서 제일 많이 걸리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는데 아마 나처럼 공짜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닐까. 내가 이곳 캐나다에서 처음 느낀 문화충격 이였다.
세계 3대 미항중의 하나인 아름다운 항구 도시. 산과 바다 그리고 해변 등 수려한 자연 환경을 자랑하는 곳. 캐나다 서부의 관문인 “브리티시 컬롬비아(BC)”주의 최대의 관광지. 주도인 빅토리아, 스키로 유명한 휘슬러, 그리고 밴쿠버 아일랜드와 연결된 교통의 요지.
암튼, 아름다운 도시임에는 틀림없는 거 같다. 주룩 주룩 내리던 비만 빼면. sky train에서 내려 밖으로 나와보니 어디가 어딘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방향 감각이 둔해서 동서남북 조차도 구분 못하는 “방향치”인 내가 다시 한번 난감해지는 순간 이였다. 우여 곡절 끝에 다운타운의 한 쪽 끝인 “B.C. Place” 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지붕이 모두 하얀 천으로 덮인 거대한 스테디움이였다. 비행기가 위로 떨어져도 끄덕 없다는데 정말인지...
번화가인 Robson st.를 따라 콜롯세움 같이 생긴 도서관도 보고, 양쪽 길가로 즐비하게 놓인 음식점, 고급 상점들도 보았다. 40분 가량 걸어가니 다운타운의 다른 한쪽 끝에 다다를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많은 한국 음식점들과 상점들이 있었다. 한글로 된 간판을 보니 왜 그리 반갑던지. 놀라운 건 Robson 거리를 따라 걸으면서 나처럼 생긴 많은 한국 사람을 보았다는 데 거의 젊은 학생들처럼 보였다. 누나의 말에 의하면 많은 어학연수생들이 다운타운에 거주하는데, 많은 ESL 학원들이 다운타운에 있기 때문이란다.
너무 피곤한 탓인지 일기를 쓰는 중간에 잠이 들고 말았다. 훤한 낮에 늦은 일기를 쓰려니 좀 이상타.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이랄까.
조만간 다운타운을 다시 한번 나가봐야겠다. 지도도 챙기고, 우산도 챙기고.....만반의 준비를 해서 말이다.
2006년 4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