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쪽의 마을엔 해브가 산다.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땅위엔 수많은 길들이 얽히고 설켜 어디를 가든 이어진다.
반대로 나는 어디로든 도망갈 수 없다.
지금으로서의 길은 그와 나를 이어주기 위해 존재한다.
오늘하루 9km를 걸었다.
숲으로 난 오솔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 마을을 두개인가를 지나고
막 모내기가 끝난 논둑길을 걷는다.
어린 벼들은 딱 발목까지만 컸다.
벼가 익으면 사람들은 그것들은 거두어 갈것이다.
물이 자작한 논엔 지는 해와 짙푸른 산들 모두가 들어있다.
그 위로 밀잠자리가 마지막 사냥을 끝낸다.
시골 여관이란 항상 끈적끈적한 그 무엇이있다.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있긴 하지만 대기중에는 시큼털털한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 어떤 입자가 떠다닌다.
tv를 켜놓고 엎드려 눈을 감는다.
몸을 껌처럼 들러붙인채로.
깨어있음과 잠듬의 중간에 서면 내가 누워있는 방은 다른곳으로
부터 격리된다.
문을 열면 어디론가 이어지는 차가운 통로가 나타난다.
높은 중력은 발을 떼기 힘들게 만들고 희뿌연 안개는 사람의
몸을 마모시킨다.
사이다에 빠져버린 느낌이랄까......
해리되어 서서히 녹아 없어지는 ....
누군가가 쿵쿵거리며 통로를 지난다.
2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잔뜩 흐려 있었다.
주변의 식당에서 밥을 사먹고
구멍가게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핥아대며 마을을 돌았다.
면 소재지라고는 하지만 전체를 돌아보는데 채 한시간도 들지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중앙에는 수려한 모습의 45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잘닦인 표지판에 그렇게 씌여 있었다.
마을에 무슨일이 있을 때마다 밤새도록 운다는 나무.
아이들이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는 당산목.
어딜가나 뻔하겠지.
영원한것...오래된것들은 어떤 신성을 띄게 마련이다.
사람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갈수 없으니까.
하얀 모시옷을 입은 지팡이노인이 다가와 벤치에 앉는다.
…….그 옆에 앉는다... 아이스크림을 할짝대며......
먼산을 바라보는 그를 빤히 올려다본다.
수많은 대화가 소리없이 오고갔다.
스물셋먹은 여자아이와 일흔노인과의 사랑이 가능할까?
애석한 엇갈림이 있었을 뿐이다.
작은 오차가 만들어낸 시간의 뒤틀림.
나또한 나이가 들면 이런 작은 마을에서 커다란나무를 바라보며
살게 될것이다.
숙소로 돌아가 짐을꾸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을어귀를 벗어났을때 약한 이슬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회색... 차가운 비가 얼굴을 감싼다.
'가을이 되기 전에 와야해'
얼마나 걸었을까........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
갈길은 아직 멀디멀고 여름내 나는 걸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