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두둑
-이제 다시 길을 가볼까..-
밤이 되어 다시 맞추어진 뼈다귀를 이끌고 나는 루비를
찾는 길을 재촉했다. 아침에 꼬마들에게 당한 일 따윈
이미 내 있지도 않은 뇌리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내게는 더욱 큰일이 있는 것이다. 꼭 찾아야하는 나의
마지막..그것마저 잃게 된다면 나는 다신 생각을 할 수
없으리라..그런데 세바스찬의 거친 혓소리가 나의
두개골에서 울렸다.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못마땅한
혓소리를 내는 것이다. 아마도 세바스찬은 분통이
터지겠지..흐흐흐..그러나 세바스찬 그런 꼬마들에게
복수를 해서 무엇하겠느냐...하하하..
터벅거리는 발바닥뼈와 비가 온 탓인지 조금 질퍽거리는
길과의 마찰음과 함께 저 건너편에선 나의 눈을 자극하는
빛의 무리들이 있었다. 마을인가...마을이었다. 그러나
마을은 마을이지만 그 마을에서 나오는 불빛은 일렁이는
불길이 만든 것이었다. 이름 모를 마을은 불길에 휩싸여
그 마지막을 내게 알리고 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서둘러 그 마을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세 아이의 모습..뭔가 이상하다..
이 알 수 없는 불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마을에
도착하자 알 수 있었다. 집들은 불타오르고 이곳 저곳에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져 있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났던 것 같은 모습..그리고 들려오는 처량한 아이들의
울음소리..그 울음소리는 내 잠들어 있던 생전의 기억의
한편을 조금이나마 움직인다. 무참하게 죽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나도 검을 휘두르고
타오르는 불길아래 던져지는 어린아이들의 몸..쓸데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조금 큼직한 집이 타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다른 집들과는 달리 유달리 큰집..그리고 그 앞에서
이미 숨져 쓰러진 한 남자를 부둥켜안은 체 흐느끼는
4명의 아이들..아침에 보았던 코르타스와 레온,에필
그리고 이름 모를 소녀 한 명이었다. 나는 몸을
숨긴 체 귀를 기울였다.
"흐흐흑..아버지 아버지이...."
"대장...아니..형..어째서 으헝.."
"으아아아앙.아부지."
"...으아아아아..앙"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증오가 느껴진다..
저리도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준 자는 대체 누구인가..
씁쓸한 마음이 든다..하는 수 없지..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이 내 눈에는 아직 타지 않은 무기를
그려놓은 간판을 볼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이런
것은 변하지 않는구나..서둘러 그 안으로 들어간 나는
조금 그을린 체로 있는 갑옷더미들을 찾았다. 그리곤
알아서 껴 맞추며 서서히 뼉다귀들을 가리기 시작했다.
그냥 아이들을 이곳에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모습을 가려야 했다. 어느 정도 몸이 가려지자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그와 동시에 무기점은
불길과 함께 폭삭 주저앉았고 아이들의 눈은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지..마에스트로의 잔당인가."
코르타스의 말은 듣는 이가 소름끼칠 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아니..나는 이곳의 불길을 보고 달려온 나그네에
불과하다.."
인간의 목소리로 인간을 가장했지만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의 눈에는 증오와 의심의 빛이 역력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아이들의 뒤편에 있던
집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 이대로 있다가는 아이들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서둘러 4명의
아이들을 기절시키고 마을을 벗어났다. 이 이상 이곳에
있는 건 위험했다.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며
주위는 불길로 인해 더욱 뜨거워진 것이다..들쳐 맨
아이들의 눈에선 제각기 눈물이 맺혀 있었다.
???
처음 눈을 뜬것은 코르타스였다. 역시 아이들의
대장답게 일찍 일어난 것이다. 나는 피우던 모닥불을
이리저리 휘적거리며 일어난 코르타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어났냐.."
나의 물음에 코르타스는 잠시 의심스런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코르타스의 무섭도록 침착한 반응에서 나는 그 상처
입은 동심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긴 너희들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다..너희
마을은 완전히 불탔다."
"그럼..아버지. 저희 아버지는....."
다시 슬픔이 밀려드는지 아이의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너희가 부둥켜안고 있던 그 남자의 시체는 건물이
무너짐과 동시에 묻혔다..그런데 너희는 모두 형제냐..."
코르타스의 고개가 끄떡여 졌다.
"제가 맏이고 저 세 아이는 제 쌍둥이 동생들입니다."
더 참을 수 없는 듯 굵은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자도록 해라.."
나는 재빨리 코르타스의 뒤를 쳐서 기절시켰다.
이런 때는 재워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기절시키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이 전부였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한 뒤 숲을 걸음을 옮겼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고플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숲에는 보면 알 수
있는 과일들이 많이 열려 있었다. 내가 비록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과정도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한 열댓 개를 따서 모닥불가로
돌아와 보니 다행히도 아이들은 잘 자고 있었다.
크레네..당신이라면 이 아이들을 위로할 수 있겠지...
오늘도 달님은 떠 있지만 그 모습은 어쩐지 슬퍼
보인다.
?
다음날 아침 네 아이들은 제각기 사이좋게 눈을
떴다..그들에게는 내가 급히 마을의 잔해를 뒤져서
가져온 반쯤 타다만 모포들이 덮여져 있었다. 나는
일어난 아이들에게 사과와 다른 과일 몇 가지를
건넸다. 처음 먹을 것을 받은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지만 곧 슬픔과 비장함이 교차되며 내가
건넨 과일들을 먹기 시작했다. 무서운 정신력이었다..
고작 열 살쯤 된 아이들이 눈앞에서 부모를
잃었는데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사실 아이들이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조금
놀라웠다. 그리고 전날 아이들이 내게 보였던 격식
있는 공격을 봤을 때 이들의 부모가 보통사람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식사를 끝낸 아이들과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13살의 코르타스 12살의 레온과 에필 그리고 라나..이
아이들은 모두 한 형제로 지금은 불타버린 바레스타
마을의 촌장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어제까지는... 그런데 어제 그들은
아버지와 마을을 회색의 질풍이라 불리는 도적단
마에스트로에게 잃고 고아가 된 것이다. 왜
마에스트로가 자신들의 마을을 공격했는지는 아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에 대해 물음을
던질 때 나는 단지 나그네라는 말로 대답했다. 그 외에
내용은 일체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 아이들은 나를
경계하는 듯 했지만 차츰 마음을 열고 나를 받아들였다.
갑작스레 아이들의 보모가 된 것인가..
"코르타스,레온,에필,그리고 라나..너희들은 아는 친척이
있니?"
"크넵 산맥의 너머에 크넵스란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큰아버지께서 계십니다."
슬픔에 말투가 어른스러워진 아이 코르타스의 대답이었다.
"좋아...크넵 산맥은 어디에 있지."
그러자 네 아이들은 모두 손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동쪽 태양이 떠오른 곳..그곳에는 많은 산들이 얽힌
모습의 산맥이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갈 것을 마음먹었다.
이 아이들을 빨리 친척들에게 대려다 주고 싶었다. 아마도
과거의 기억이 나를 이렇게 하라고 충고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