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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13화> 티켓

바다의기억 |2006.06.09 22:24
조회 9,801 |추천 0

편도염과 고열로 2일간 헤드스핀 돌다가

 

간신히 회복되었습니다.

 

역시 주말이 다가오니 몸이 낫는군요.

 

후후훗.... 이 백수 근성을 어찌하리요.

 

========================= 퇴근 시간 되도 날라다녀요 ======================

 

 

 

핸드폰 - 쿨럭. 이건 뼈 속까지 아프다.



이미 한 번 좀비로 부활한 경력이 있는 핸드폰은


강렬한 충격를 견디지 못하고 사지가 분리되었고


현재 모든 생명활동이 정지된 상태다.


물론 지난번처럼 마음먹고 고치자면


다시 새로운 삶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럴 생각이 전혀 들고 있지 않다는 것.



기억 - 네가 나한테 이럴 순 없는 거야.



책상 위에 널려있는 핸드폰의 유골을 내려다보며


난 핸드폰에게 하는 것인지


민아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넋두리들을 늘어놓았다.



기억 - 내가 그동안 어떻게 버텨왔는데...



하루 10시간을 어두 침침한 관속에 누워있으니


피부는 햇빛을 못 봐서 누렇게 떴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호출벨의 후유증으로


버스 부저 울리는 것만 보면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졌다.


게다가 마지막날은 남자 두 명에게


아무 이유 없이 구타당하기까지...



단지 오페라 입장권 두 장을 위해....


몇 시간이 될지 알 수 없는 공연 하나를 보기 위해


난 일주일동안 그런 생활을 계속했다.


간신히 정상궤도를 회복해가던


학교 생활을 전부 포기해 가면서까지....



물론 그 사실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는 게 아니다.


오페라건, 추상화건, 정체를 알 수 없는 행위예술이건


그녀가 보고싶어하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일이라면


이보다 더 한 고생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기억 - ....... 그런데 왜!



물론, 사정 설명을 제대로 안 한 내 잘못도 있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들은


결국 내가 했던 말들이 돌아온 것뿐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게 해명의 기회 정도는 줬어야 했다.


이렇게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받아칠 게 아니라....



기억 - ........ 쪽팔리잖아.



내 자신이 초라했다.


이런 종이쪼가리 하나를 못 구해서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야 하는 내 자신이 쪽팔렸다.


그래도.... 오페라는 보여주고 싶었다.



이 생각이 뭐가 잘못됐는지는 몰라도


결과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공연을 4일 앞두고


나와 그녀는 여전히 저기압권 내에 있었다.


핸드폰은 집에 버려 두고 다닌 지 오래고


만나면 나누는 인사는


=요즘 바쁜가봐?= =응= =나도 그래=


같은 레파토리로....


완전히 남만 못한 사이였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울컥하는 기분을 참아가며


그녀가 내 사정을 눈치채주기를,


아니, 물어라도 봐 주길 기다렸지만


결과는 False.


점점 정신적인 피로가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공연 2일 전.


견디다 못한 난 표를 환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상황으론 오페라를 보러 가자는 말도 못 하겠고


간다고 해도 결코 기분이 좋을 것 같진 않았다.



어차피 전화예매였으니


전화 한 통이면 끝날 일이다.


귀찮을 것도 없고 힘들 것도 없다.


그냥 없던 일로 하고


천천히 상황을 수습해 보자.



상담원 =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기억

- 아...네, 이번... 라트라비아타 공연....


표를 예매했다가.... 환불받으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상담원

= 예매번호를 불러주시면 본인 확인 후에


계좌로 환불해드리고요


환불금액에선 20%의 수수료가 공제됩니다.



기억 - 아....네.


상담원 = 그럼 예매번호를 불러주시겠습니까?


기억 - 아, 그러니까요....



24만원의 20%면 48000 원.


그걸 뺀다고 해도 192000원이니


그동안 갖고 싶던 Bosh사의 전동 드릴에


B&D 사의 그라인더를 사도 돈이 남는다.


밥을 먹어도 76그릇이고


월요일에서 금요일 아침저녁을 먹어도 2개월을 버틴다.


교통비로 치면 3개월을 타고 다닐 수 있고


학교 셔틀버스를 이용해 전철비만 치면 5개월도....



상담원 = 고객님?


기억 - 아, 네, 죄송합니다. 예매번호 적어놓은 게 안 보여서....



....그렇지만.... 난 그걸 위해서


그 난리를 쳤던 건가?


난.... 그런 걸 하기 위해서 일주일동안


하루 10시간씩 관속에....



상담원 = 저.... 고객님.


기억

- 아, 쫌 기다려봐요 거!


..... 취소 안 하면 될 거 아녜요!


취소 안 한다고! 취소 못해요!


내가 그걸 왜 취소해!


그걸 어떻게 산 건데!


내가..... 내가 누구랑 보려고 산 건데....!!


좋은 하루 되세요!! 끊습니다!



왠지 못 이기게 분한 기분이 들었던 난


=탕= 소리가 나게 전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씩씩거리며 거실을 맴돌았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 일을.....




공연 하루 전.


점점 깜깜해져만가는 상황 속에


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몸서리를 치곤했다.


그녀완 3일 째 얼굴도 못 보고 있고


표는 여전히 취소를 못하고 있는 상태다.



기억 - ......



그리고 난 다시 전화기 앞에 앉아있다.


=찰칵.... 철컥..... 찰칵.... 철컥....=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는 20번.


전화기가 조금만 무거웠으면


알통이라도 나왔을 텐데...



기억 - 후우......



=띠띠뚜뚜띠떼또....뚜르르르르르....=


오랜 망설임 끝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단숨에 눌러버린 번호.


마음은 아직도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받고 바로 끊어버리면 어떡하지?


또 바쁘다고 하는 거 아냐?


왜 전화했냐고 하면 뭐라고 해야하지?


진정해라 기억아, 진정해라 기억아...



민아 = 여보세요?


기억 - .....!!


=타앙!=



........끊어버렸다.


왜지? 너무 빨리 받아서 당황했나?


...... 난 대체 뭐 하는 놈이지?



기억 - 아아아아악!!



난 가슴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답답함에 비명을 지르며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기억 - 후우...후우....후우...



만나서 이야기하자... 내일 만나서....!!



공연일 당일.


결국 오기에 환불을 포기한 난


매표소가 문을 열자마자 찾아가 티켓을 받았고


곧장 민아의 집으로 달려갔다.


상황 자체가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일단 티켓을 손에 쥐고 보니


마음에 확신이 들었다.



안 본다고 하면 손목이라도 잡아서 끌고 갈 거다.


일단 오페라부터 보고,


그 다음에 뭘 해도 하자는 게 지금 마음이었다.


이렇게 멧돼지처럼 밀어붙이는 게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오기에 화기가 겹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일단 들이 밀고 보자!!



=딩동~ 딩동~=



기억 - 오케이, 좋아, 후우....



그런데.... 왜 초인종을 누르고 나니


덜컥 겁이 나는 걸까?



기억 -  ......



그리고 잠시를 기다렸지만,


인터폰에선 아무 응답이 없었다.


집에 아무도 없나?


그래도 피카츄는 있을 텐데?



문득 핸드폰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졌지만


내가 싫다고 안 고친 걸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앉아서 기다려보는 수밖에....



얼마나 지났을까,


제법 쌀쌀한 날씨에 점점 몸이 식어 가는 게 느껴졌다.


공연시작까지 앞으로 세 시간....


공연장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으니


2시간 이상은 여유가 있다.


물론, 그 안에 그녀가 온다는 보장은 없다.



조금은 궁상맞은 자세로 현관문 앞에 쪼그려 앉아


그녀를 기다리길 한시간 30분 여.


슬슬 나이에 비해 노화된 무릎 관절이 시려왔다.



어차피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그녀를 기다리는 내내 집 앞엔 차 한 대 지나가질 않은 데다


그녀가 올라오는 길은 현관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했기에


난 입고 있던 잠바를 당겨 무릎을 집어넣고


머리 달린 쓰레기봉투 같은 꼴을 해서 앉았다.



기억 - 쓰읍... 이제 좀 낫네.



겉보기엔 이상해도 효과는 기대이상이었다.


단지 안 좋은 점은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



=꿍...꿍...=



오랫동안 쌀쌀한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으면


치질 발병의 위험성이 있다고 느낀 난


난 몇 번을 뒤로 쓰러져 문에 기대면서도


꿋꿋하게 쪼그려앉기 자세를 고수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지지해줘야 할 문이 열려버렸다.



기억 - 억!



무릎이 잠바에 갇혀있는 처지라


내가 생각해도 굉장히 볼썽사납게


벌렁 구르듯 쓰러진 나.



민아 - ....기억아?



그리고 그 뒤엔....


비참하기 짝이 없는 내 몰골을


황당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민아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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