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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나이 서른하나 금값이라더니.... 이제서야 알았네요. T_T

행인 |2003.01.17 17:41
조회 1,635 |추천 0

올해 드뎌 3자 달았다.

맨날 주말에 방콕, 방글라데시........

어쩌다 영화를 봐도 서울서 직장 다니는 고교동창하고나 같이......

 

어찌어찌 친구가 소개팅건을 잡았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맨날 키큰 남자 키큰 남자 노래를 부를 때마다 쫑크에 야유에 갖은 구박을 다 하더니,

그래도 친구랍시고 생각해서 키큰 남자랑 약속 잡았댄다.

근데, 전라도 사람이라고....

난 내가 직접 당하거나 그런 일 없어서 지역감정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울엄마가 그동네 사람들 별로 않좋아하는 분위기에서 커서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다.

(짱돌 날아오면 맞아야지 뭐... -_-;)

 

서울서 나서 서울서 자라고 서울서 학교 나왔고 역시나 서울의 집근처에로 직장을 다닌다.

고교 동창 말고도 인터넷으로 채팅하다가 알게된 친구, 이렇게 두명 모두가 경상도 가스나라 경상도 사투리에는 익숙하고 때로는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서 친근감이란, 하도 많이 들으니까 익숙해지고 정이 간다는 뜻이다.

 

소개팅 주선한 고교친구 말이 "그 사람,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전라도 사투리 팍팍 쓴다"고 했다.

(광주에서 나서 광주에서 자라고, 광주에서 학교 나와서 서울로 취직했으니 당연하지.)

나는 웃으며 "어우, 야~ 적응 안될것 같다, 어떡해..."라고 했다.

그렇지만.... 소개팅이라고 약속은 잡았으니 나가야지...

 

약속한 날.

약속 장소에 내가 5분 정도 먼저 나갔다.

마음은 탈탈 털어내워 비웠고, 정말 아무 기대도 안하고 나갔다.

5분 뒤, 정확한 약속시간에, 친구가 그 사람을 데리고 왔다.

헉..................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순간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인상 좋은 사람을 데리고 나올 줄이야... -_-;

기대 안하겠다던 5분 전의 자포자기는 어디로 사라지고,

와.... 라는 낮은 탄성만 가슴속에 퍼져간다.

 

정말 친구 말마따나,

허여멀겋게 멀쩡히 생겨가지고 말투에 착착 배어나오는 전라도 사투리....

근데.... 근데 말이다.

그게 하나도 안 부담스럽더라 이말이다. -_-;

인물 잘난 사람이 말도 잘하고 유머도 있고 그랬으면 정말 주눅 들어서 아무말도 못했을텐데,

사람의 허를 찌른다고 해야 하나....

정말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사투리톤이 나오니까 의외로 긴장은 한결 풀렸다.

 

친구는 분위기 띄운다고 1시간 정도 있다가 가고,

둘만 남아서 1시간 정도 더 이야기했다.

 

사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단둘이 마주않아 이야기 하는데 이 남자에게로 휴대폰이 계속 온다.

이야기 하다가 중간에 끊기고 끊기고를 한 세번.....

바보같이 그때 그걸 몰랐다.

 

그저, 전화받는 그 총각 손이 어찌나 희고 곱던지,

그거만 눈에 보였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가무잡잡하고 주름이 많은 내 손을 내놓기가 창피해서 테이블 밑으로 얼른 끌어내렸다.

세상에, 남자가 어쩜 저렇게 손이 이쁜거냐.....

울엄마는 딸네미라고 해도 나같이 낳아놓으셨구만... ^^;

 

저녁 9시. 이 멀쩡하고 키큰 총각이 그만 일어나잔다.

일어나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왔다.

마땅히 할 말이 없는 약간은 어색한 침묵속에,

이런 저런 시간때움용 발언을 주고받고.....

 

이 총각, 근처에 회사 상사가 살고 있다고, 온김에 그 사람 만나서 술한잔 더 하고 간단다.

그때 정말 확실하에 눈치채야 했었는데.... 바보같이 몰랐다. -_-;

전철역이 저기 보인다.

헤어질 시간이다.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고개를 약간 숙이는데 이 멀쩡한 총각 마지막 치명적인 멘트를 날린다.

"전화할께요."

 

나쁜........

하기는 개뿔이나 하냐.....

그냥 잘들어가시라고 했으면 기대나 안하지....

나같이 순진하다 못해 멍청한 여자한테 그런 접대성 거짓말을 날리면 어케 하냔 말이다.

그 마지막 한마디 때문에 그날 이후 1주일 동안을 마음이 걸레짝이 돼서 보냈다.

 

사실.....

진짜 전화 한다고 그랬으면 나한테 전화번호 물어봤겠지....

바보같이, 물어보지도 않은 전화번호를 어케 알아내서 전화를 한다는건가 생각하다가,

내 친구한테 물어봐서 전화를 한다는건가 하고 이런 멍청한 생각을 했다, 내가.

내가 나이를 옆구리로 먹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루 이틀 사흘......

생전 오지도 않을 전화를 기다리느라 스트레스는 극도로 쌓이고,

신경이 예민하니 소화도 안됐다.

먹는게 인생의 몇가지 낙 중 하나였던 내가 밥이 안먹히는 거다, 세상에.... 믿기질 않았다.

그때 알았다.

내가 그 총각한테 정말 뭐가 단단히 씌였었구나 하고..... -_-;

 

그러다 드디어 6일째 새벽,

일이 터졌다.

전날 저녁에도 역시 입맛이 없어 밥 두어숟갈에 물말아서 후루룩 넘기고,

몸이 으실으실 춥길래 쌍화탕인가 한방감기약 그거 물에 뎁혀서 마시고 잤는데,

새벽녘에 위장이 찢어지듯 아픈거다.

잠이 깨서 끙끙거리며 신음을 하다가 결국은 못참고 욕실로 뛰쳐나갔다.

게워냈다.

젠장.... 뭐 먹은게 있어야 시원하게 나오기라도 하지.

저 아래에서 뭐가 계속 울컥거리는데 나오지는 않고,

토악질은 계속 됐다.

 

10분동안 그렇게 난리를 피웠을까.

간신히 멈추고 세면대를 붙잡고 일어서 더운물로 세수를 했다.

거울속의 내얼굴을 보니,

시뻘개진 얼굴에 피죽도 못먹은듯 참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내가 도대체 왜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에,

다시 변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도 못내고 줄줄 눈물만 흘렸다.

 

새벽에 욕실에서 그 난리부르스를 췄으니... 엄마가 깨서 나오셨다.

욕실앞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나이든 딸네미를 보니 기도 안차셨는지,

그저 황당한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만 물으셨다.

'속이 아파서 토했어'라고만 말하고, 비척비척 다시 내방으로 돌아가는데,

그렇게 돌아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엄마가 '아이구야'하고 혀 차는 소리가 내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길로 내방으로 돌아와 6시 새벽에 친구한테 문자 날렸다.

더이상은 힘들고 싶지 않다고, 니가 나 대신 물아봐달라고.

친구, 곧바로 답장 하면서 한다는 소리가,

잠이 확 깬다고, 니가 그렇게 고민하는줄 몰랐다고, 오전중으로 전화주겠다고.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사무실에 나와 앉았다.

메신저가 떴다.

친구다.

일찍 나왔다고.. 너 때문에 새벽에 깨서 설치다가 지각했다고...

나, 미안하다고 그랬다.

친구 말, 안좋은 소식이란다.

그 총각이 말하길, 나더러... 재밌고 착하고 좋은데, 인연은 아닌것 같다고 그랬단다.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고, 알았다고,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그랬다.

 

신기한 것은....

일단 확실히 포기가 되니까 마음이 참 초연해지더란 것이다.

전정긍긍하지도 않고,

수시로 휴대폰 열어보는 강박증도 없어지고.... 진짜 지옥에서 연옥으로 올라온 기분.

 

퇴근하고 나서 집에 왔다.

일찍 씻고 일찍 자리 펴고 불을 다 끄고 누워 생각을 했다.

전화 하지 않을거였으면서 그 사람은 왜 전화하겠다고 말을 했을까.....

거짓말.

 

여자더러 착하다는 말은 인물이 맘에 안든다는 뜻이다.

여지껏 정말 가뭄에 콩나듯 남자 소개받아봤지만,

나도 여자라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안다.

옆구리로 먹었어도 나이는 나이니깐.

 

차라리 내 스타일이 아니라던지,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지,

왜 어쩌구 저쩌구, 그러나 인연은 아닌갑다...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거짓말.

(참 불효막심한 말이지만, 좀 더 오목조목하게 낳아주지 않으신 엄마에 대한 원망이 이 순간 잠깐 스쳤다. T_T)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멍청하고 무식해서 혼자 저지른 생쑈였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좀 더 빠릿빠릿했으면,

에둘러서 말하기 좋아하는 그 전라도 총각이 던지는 그 모든 것을 날쌔게 잡아채서 미리 초장에 알아챘어야 하는건데,

혼자서 멍청하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다가 혼자서 아프고 혼자서 깨달은거다.

헛먹은 나이, 또 확인했다.

 

다음날 아침,

수원에 사는 친구하고 메신저를 했다.

대구 가스나다.

나더러 그런다.

남자 나이 서른한살 금값이라고,

지 혼자 속으로 이리저리 통빡 굴렸을꺼라고.

막말로 지가 뭐가 아쉬워서 3자 단 여자 쉽게 좋다 하겠냐고.

그나이 때는 여자 느낌, 이미지, 별별거 다 따진다고.

인연이 아니니깐 그런거라고.

그래 혼자 계속 속아파 하지 말라고.....

 

아, 빌빌한 청춘....

여자친구들 복은 차고 넘쳐서 바닥에 흘러내리는데,

이나이 먹도록 남자 복이란곤 약에 쓸려도 없다.

정초부터 액땜한번 요란뻑쩍지근하게 하는군.......

 

근데,

이 수원사는 대구 가스나가....

나 위로해준다고 퇴근하자마자 서울로 날 보러 온단다.

서른한살 멀끔하고 키큰 남자한테 차여서 주눅들고 풀죽은 나를 위로하러 온단다.....

흑~ T_T

고맙다 가스나야.... 이쁜것.......

니덕에 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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