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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의 속물을 인정하라.

정수진 |2006.04.26 12:35
조회 55 |추천 1

속물을 인정하면 인생의 해법이 보인다.

 

사람들은 '속물'이라는 말을 너무나 싫어한다. 그래서 돈, 명예, 인기 등등 속물들이 흔히 좋아하는 것으르 자신 역시 좋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20대 여성들은 속물적인 가치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과 그런 현실을 핏대 올려 비판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본인들은 그것을 '젊은날의 아름다운 방황' 쯤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0대 때와는 달리 20대의 삶의 무대는 연습이 아니라 실전이기 떄문이다. 이러한 갈등은 20대인 당신의 영혼과 미래를 갉아먹을 뿐이다.

눈앞에 놓여진 모든 문제의 선택에 있어서 후회가 적은 쪽을 택하게 하는 것이 '속물 마인드' 다. 스스로 철저히 속물이 되자 다짐하고 나면 현실적이고 확실한 선택을 하는 데 갈등이 줄어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20대 시절의 불만, 짜증, 갈등은 대부분 우스운 일이 되기 쉽다. 친구가 말한마디 어쨌다고, 상사가 구박 한 번 했다고 울고불며 술잔에 빠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C는 얼마 전 치열한 취업관문을 뚫고 꿈꿔 왔던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첫출근을 한 날, 자신의 직장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감했다. 자신의 직속 상사가 직장 내에서 '성격파탄'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평소 성격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 C는 조금만 이해하면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상사와 일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심한 말을 했고, 제대로 하는 일도 트집을 잡으며 괴롭혔다. 그러다 보니 일을 배우기는 커녕 주눅이 들어서 더 실수만 잦아졌고, 그 때문에 잠을 못이루는 일이 많아졌다.

 

나중에는 상사의 성격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자신감도 잃어갔다. 상사의 부당한 대우에 말대꾸 한마디 못하고 속만 끓이는 자신이 초라했다. 하지만 결코 사표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몇 달만에 말할 수 없이 초췌한 몰골이 되어버린 C에게 나는 정신과 상담을 권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멀쩡한 처자 하나 처녀귀신 만들겠다 싶어서였다. 그녀는 누가 봐도 우울증 환자였다.

 

그로부터 대여섯 달 후 다시 만난 그녀는 예전의 생기가 되살아나 있었다. 한결 밝아진 그녀는 정신과 의사의 조언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처음 몇 번 상담을 하는 동안 의사는 조용히 그녀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을 들어 주었다. 간간히 한마디씩 해줄 뿐이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기분이 들어서 꾸준히 상담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천성이 순하고 사심이 없거든요. 그런 저를 왜 괴롭히는 걸까요?"

"잠깐만요."

 

의사는 그녀의 말을 막더니 처음으로 긴 조언을 해 주었다.

 

"전부터 본인을 순하다, 착하다 하시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C양은 굉장히 머리가 비상하고 계산적인 성격입니다. 그 악랄한 상사에게 대항하지 않는 것도 그게 본인에게 유리하기 때문이죠. 겉으로 당하고 있는 것 같아도 지금 현실적으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C양입니다. 그 동안의 계산된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결국 C양의 편으로 만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본인의 약은 본성을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그 동안의 인내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C가 병원을 나올 때 그 동안의 피해의식은 씻긴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자신이 사실은 상사를 이용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자 더이상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전과는 달리 앞에서는 당해주는 척하고 뒤돌아서 털어버렸단다.

 

나중에 정말 그 상사는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켜 사표를 썼고 C는 만족스럽게 회사생활을 잘하고 있다.

 

세상의 주인이 되려면 먼저 속물이 돼라.

 

C는 의사와 상담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수없이 '착한 네가 참아라', '성격 좋은 네가 참아라'하는 위로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런 말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할 뿐이었다. 매정한 현실 속에서 언젠가는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막연한 위로는 오히려 절망감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그 의사는 그런 원리를 이용한 것임이 틀림 없다.

 

C는 누가 보아도 남달리 계산적인 성격은 아니다. 보이지 않게 타인보다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조금 클 뿐인데 그 의사는 C의 그 부분을 부각시켜 주었다. 상사를 증오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던 C의 마음은 자신이 그를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너그러워졌다. 스스로 사람을 조종할 줄도 아는 속물이라고 인정하고,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그만큼 분양의 아량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것이다.

 

이쯤 되면 증오로 이성을 잃지 않고도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C는 사표를 내거나 상사와 앙숙이 되어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차분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죄가 없는데,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들은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고 생각하라. 세상에서 늘 승리하는 게임은 다같이 이익을 보는 'win-win' 게임이다. 자기만 이기는 게임을 하려고 발악하는 사람들은 언제고 침몰하게 되어 있다. 세상이 아무리 부당케 보여도 악하기만 한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법은 없다. 더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괴롭힘을 당한다'는 피해의식을 버리면 된다. 결국 그들 스스로 화를 자초할 때까지 당신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며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인간관계의 본질이 바로 이 '기다림'이기 때문에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나는 여우 같은 속물이다.'

 

이 다짐 한 마디가 그 기다림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한 가지. 내가 속물이라고 남에게 광고하고 다니지는 마라. 누구나 갖고 있는 본성에 솔직해지는 것 뿐인데 굳이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색안경 끼고 보게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작가 남 인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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