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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타이거즈..

김모영 |2006.10.06 16:09
조회 47 |추천 0


아버지와 나는 타이거즈 골수 팬이다. 

 

IMF직후 재정이 급격하게 악화된 모기업의 몰락으로, 지금은 기아 타이거즈로 구단의 명칭이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나를 포함한 다수의 골수팬에겐 옛 이름이 품었던 적색의 강렬한 헝그리 이미지가 더 익숙한 편이다...

 

그들은 운동선수의 통상적인 운명을 넘어서는 어떤 기이한 역사적 아픔의 하중을 진 채...80년대의 그라운드를 통과해왔다.

 

5.18, 광주, 김대중등은, 어쩌면 그들에게 부당한 몫으로 주어졌을 역사적 무게를 이루는 중요한 단어들이다..

 

그래도 당시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광주의 무엇이 프로야구였으니까..

 

옛날 말을 듣자하면 경기가 시작되기 전, 서울로 원정을 온 타이거즈를 맞이하는 고향팬들이 홈팀 팬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3루측 스탠드를 채워갔다고 했다..

 

이미 경기 시작 전에 스탠드를 가득 채운 타이거즈 응원단의 규모는 언제나 홈팀의 수를 압도했고...선수들은 잠실구장을 제2의 홈구장으로 받아들인다...

 

한 예로 ..최근 두산과의 더블헤더때 잠실에서 친구와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서울 사람들이 기아 응원을 많이 하더라..

 

옛날엔 경기시작전 선수들 몸풀때 몰래 경기장에 들어가 야구공 몇개 주워오고 몇년 전 간판투수였던 용병 키퍼의 뻐큐세례를 받기도 했었는데.. ㅋ

 

아버지와는 중학교 시절을 끝으로 야구장을 찾을 기회는 거의 없어져 버렸다...

 

내 머리가 굵어진 탓도 있겠지만, 더 이상 야구장은 부자의 공통된 설레임이 향하는 곳이 아니었다..

 

간판투수 선동열의 일본행이나, 일본서 처참히 깨지고온 이종범이나.. 언제부턴가 빈약해진 타자진.. 대구를 연고로 한 국내최대기업의 엄청난 자금력으로 팀의 간판 선수&감독을 가져가는 경우나.

작년 기아의 꼴찌만 하더라도.. 갈 맛이 나질 않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빈번했던 순례의 길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객기만 가득 했던 고등학생 아그들은 이따금씩 또래들과 어울려 야구장을 찾았고..매번 겸연쩍게 담배를 뻐끔거리며 스탠드 한 구석에 앉아 팩소주를 들이키는 1루 스탠드쪽 타이거즈 골수팬 아저씨만 무등구장을 찾을 뿐이다.

 

최근, 기아의 활약으로 야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올해는 10승 할 수 있을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드는것이 야구장을 간만에 가고싶은 충동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다시금 친구들의 이런 전화를 듣고싶다.

 

"오늘 기분도 그런데 야구장이나 가자, 37번 타고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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