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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마음

권보성 |2006.12.02 20:01
조회 59 |추천 0
한 소년이 있었다. 여느 소년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유치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별날 것 없는 사춘기를 거치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보통의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역시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친구들을 사귄 소년은 당시 하나 의 유행처럼 번져 있던 '도둑질'에 맛이 들어서 친구들과 떼를 지어 다니며 서점이 나 레코드 가게에서 잡지나 CD등을 몰래 훔치기도 하였고 공사중인 건물 속에 몰래 들어가 호기심으로 술도 마셔 보고 담배도 피워 보고 하였다. 가끔은, 물건을 훔치다가 걸리기도 하였는데, 그때마다 소년은 '튀어!!'라는 소리와 함께 친구들과 무작정 도망치기도 하였고, 도망갈 상황이 안 되면 안면을 싹 바꿔서 '정말 잘못했어요 아저씨!! 엉엉~~~'하며 눈물을 한 웅큼 쏟아내는 연기를 하기도 하였다. 그날도 소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레코드 가게에 가서 음반을 훔쳤었고 소년의 생각으로는 '참으로 재수 없게도' 주인에게 걸려 주인 아저씨 앞에 무릎을 꿇고 비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저씨!!!! 너무나 갖고 싶었던 음반인데 돈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으흐흑!!..." "아무리 갖고 싶다고 해도 그렇지 다 큰 학생이 도둑질을 하면 쓰나!" 소년의 연극이 얼마나 리얼했던지 처음엔 화가 잔뜩 나서 펄쩍 뛰던 주인 아저씨는 오히려 소년의 오열에 안쓰러워 하시며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그때였다. "저기... 아저씨..." 중학생 교복을 입은 한 여자아이가 그들 앞에 가만히 나섰다. "오빠... 용서해 주시면... 안 되시는지..." 이렇게 말하면서 그 아이는 두 손으로 조심스레 음반 가격에 해당하는 돈을 내놓았다. "그 음반을 오빠에게 주시길 부탁드려요... 무척이나 갖고 싶어 하는데..." 순간... 거짓 눈물을 흘리고 있던 소년은... 갖고 싶다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알고 있는 듯한 소녀의 진짜 눈물을 보고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 한 켠이 아려 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 소녀가 있었다. 병든 아버지와 장애가 있는 동생을 둔 가장 소녀였다. 돌아가신 할머니 말로는, 예전엔 소녀의 집이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부자였다고 하는데 소녀의 기억에는 그런 사실들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사업에 실패하신 후 당뇨병을 얻으셨다는 병든 아버지와 동생을 낳다가 죽었다는 어 머니의 처녀 때 사진, 폐렴을 심하게 앓은 후 걸음도 제대로 못 걷게 된 장애 동생 만이 소녀에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소녀 가장들에게 지급되는 국가의 연금으로는 아버지의 약값은커녕 세 식구 한달 생활비도 모자랐기에, 소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교의 급식 보조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중학생이 된 지금은 새벽엔 신문 배달, 저녁엔 식당 보조를 하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거의 실명 상태에 있는 아버지와 걷지도 못하는 동생이 언제나 안타까웠던 소녀는 그들이 집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선물하기로 마음 먹고 식당에서 받은 월급 중 2만원을 떼어 내 음반 하나를 사러 레코드 가 게로 향하였다. 물론, 생활비가 빠뜻한 소녀의 가정형편으로는 음반을 한 장 구입한다는 것도 사치에 가까웠지만 다가오는 동생의 생일 선물로, 또, 예전엔 음악회를 무척이나 많이 다니셨다는 아버지가 좋아할 생각을 하니 소녀는 신나는 마음에 들떠 있었다. 음반 가게에서 신중하게 이것저것 살펴보던 소녀는 마침, 도적질하다 걸린 소년이 주인 아저씨에게 무릎을 꿇고 비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 갖고 싶은 음반인데 돈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으흐흑!!!" 소년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던 소녀는... 돈이 없어서 훔쳐야만 했던 소년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들에게 한 발자국을 내딛게 되고 만다... "그 음반을 오빠에게 주시길 부탁드려요... ... ... " 레코드 가게에서의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지 채 얼마 안 되는 토요일 오후 소년은 쇼파에 길게 누워서 리모컨으로 가요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었다. 부모님이 모두 외출한 후라 집엔 아무도 없었고 소년은 온 아파트가 시끄러울 정도로 텔레비젼 볼륨을 올려 놓고 있었다. 그때였다. "딩동딩동!!" 누군가 현관문의 초인종을 눌렀고 소년은 혹시 부모님인가 싶어 기겁을 하며 텔레비젼을 끄고 현관문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신문값 받으러 왔는데요..." 순간, 소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 여자아이다...' 얼마 전, 레코드 가게에서 자기 대신 돈을 내어 줬던 그 여자아이... 현관문 밖엔 그 아이가 서 있었던 것이다 "지금 부, 부모님이 없어서... 돈이 없는데요..." 소년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는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하며 열리지도 않은 현관문에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돌려 내려갔다. 소년은 심장이 뻥 뚫린 마음으로 멍하니 현관문 앞에 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 대신 돈을 내 준 여자아이는... 돈이 많아서 선심 쓰듯 내 준, 낭만에 가득찬 사춘기 소녀가 아닌... 가슴 한켠이 왜 아려 왔는지도 몰랐던 그 때의 소녀였다... 소년은 황급히 옷을 입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소년은 소녀의 뒤를 천천히 미행하기 시작했다. 소녀가 몇 군데의 아파트를 더 돌고 몇 군데의 주택가를 더 돌고 신문사 보급소에 들어가서 맥빠진 얼굴로 나와서는 터벅터벅 어딘가로 향할 때까지 소년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따라갔다. 소녀는 어디론가 한참을 걷더니 오른쪽의 정육점을 물끄러미 보더니 왼쪽의 슈퍼마켙으로 들어갔고 곧 슈머 아줌마와 생선 몇 마리를 고르고는 또 다시 터벅터벅 걸어 올라 가더니 어느 허름하게 생긴 집 앞에 서고는 한숨을 길게 쉰 후 믿을 수 없는 생기로운 표정을 지은 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그 집 앞에서 한 시간을 서 있었다... 처음 삼십 분간은 멍하니 서 있었고... 그 집에서 풍겨져 나오는 생선 냄새를 맡으면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토요일은 신문사 대금을 수금하는 날이었다. 동시에 소녀의 월급날이기도 하였다. "수금이 다 되지 않으면 월급은 줄 수 없다" 보급소 소장 아저씨의 말을 듣고 소녀는 굳은 각오를 하고 나섰다. "사람이 나올 때까지 벨을 누를 거야... 그리고, 집에 사람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금을 받아 내고야 말겠어..." 그러나... 소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지금 부, 부모님이 없어서... 돈이 없는데요..."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던 소녀는... "지금 애 아빠가 없는데... 나중에 받으러 오면 안 될까?" "얼마? 6천원? 돈 없어! 나중에 와!" "한 달은 서비스 기간 아니었나? 그냥 서비스로 해 줘" "신문 넣지 말라는데 왜 넣고 지랄이야!!!" 결국, 수금을 하지 못한채로 보급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수금을 못 해 오면 니 월급에서 까는거야! 니가 알아서 해!!" 소녀는 힘 없이 보급소를 나왔다. '누나, 오늘 월급날이니까 우리 고기 먹겠네!!' 기대에 찬 동생의 얼굴이 떠 오른 소녀는 정육점에 들어갈 생각은 엄두도 못 하고 주머니에 들어 있는 잔돈 푼을 만지작 거리면서 큰 숨을 몰아 쉬고 슈퍼로 들어갔다. "아줌마 ^^ 생선 한 마리도 팔 수 있으시죠?" "혜진이구나^^ 생선 한마리??? 음... 마침 시간도 늦었고 하니까 그냥 줄 테니 가져 가거라" "어머! 그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혜진은 아주머니가 특별히 골라 준 생선을 들고 다시 집으로 향하였다. 언제나 후하게 물건들을 주시는 아줌마에게 죄송한 마음도 들고 약속한 고기 대신 생선을 들고 가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집 앞에 도착한 혜진은 한숨을 크게 쉬고는 활짝 웃으면서... "아빠! 저 왔어요!" 사랑을 듬뿍 담아 생선을 요리하였다... "나 고백할 게 있다" 소년은 공사중인 건물에서 친구들을 모아 놓고 폭탄 선언을 하였다. "나 이제부터 술 끊고 공부만 졸라게 하련다" 술을 마시던 친구들은 소년의 말을 듣고 당황스러워 했다. "너 술 취했냐!" 소년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반드시 전교 1등을 해서 의대에 가고야 말겠다!" 소년의 친구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씨발롬! 취했군!!" 소년은 그들을 휙 돌아보며 말했다. "임마! 너희는 내 맘을 몰라!" 그리고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세상을 다 주고 싶은 여자가 생겼단 말이다... 그 아이는... 졸라 슬픈 눈을 가진 그 아이는..." 소년은 울먹이며 모든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씨발... 존나 슬픈 이야기 하네..." 사춘기 막 지난 고 1의 남학생들은 예상외로 로맨스적인 구석이 있었다. 순식간에 전부 울음바다가 되어서는 너도 나도 한 마디씩 하였다. "그래 임마! 나중에 그녀를 평생 행복하게 만들어 줄 멋진 놈이 되거라!!" "넌 할 수 있을 거야 임마! 근데, 의사보다는 변호사가 돈 더 많이 벌지 않냐?" "아냐, 변호사는 졸라 사기꾼들 많잖아. 차라리 의사가 되는 것이 낫지" "의사도 사기꾼 많잖아. 그것보다 경영학과에 가서 사업을 하는게 어떠냐" "사업을 하려면 대학에 가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부터 하는 게 낫지! 정주영이도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였다잖아" "어? 정주영이 초등학교는 졸업한 거 아니었어?" "아냐! 초등학교 졸업 안 했다고 나왔는데?" "씨발! 거짓말 하지 마! 내가 전에 봤는데 초등학교 졸업했다고 했어!" "지랄 쌈 처 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초등학교 졸업 안 했어!" "어쭈! 지랄 쌈 처 먹고 옆차기하다 귀신 씨나락 까 처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초등학교 졸업했어!" "개 풀 뜯어 먹다 쌈 치러 가고 귀신 좃 빠지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초등학교 졸업 안 했다니까!!" 역시 저 또래 남자아이들의 로맨스라는 것은... 정주영이 초등학교를 나왔는가 못 나왔는가 정도의 문제만으로도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가 보다. 어느 날인가부터... 혜진이에겐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누가 또 왔었나봐" 혜진의 동생은 삼겹살이 들어 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누나에게 흔들어 보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누군가가 그녀의 문지방 앞에 삼겹살 한 근씩을 놓고 갔다. 혜진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누군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혹시... 하늘의 천사가 내려 준 고기가 아닐까?" 평소 방에만 틀어박혀 공상과학소설을 자주 읽던 혜진의 남동생은 자기 식구를 불쌍히 여긴 외계인이 주었을 거라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차마 누나에겐 외계인이라고 말 할수 없어 천사라고 바꿔 표현하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계속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혜진은 안 되겠다 싶어 문지방에다 이렇게 써 붙여 놓았다. '누군지 모르는 분에게 도움을 받을 순 없습니다... 누구신지 밝혀 주세요..." 이렇게 써 붙여 놓은지 여러 날이 지난 후.. 드디어 고기 봉지에 메모 한 장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난 천사를 지켜 주는 수호천사요. 앞으로는 상추와 깻잎도 사다 놓겠오' 그 뒤로... 혜진은 문지방에 자신이 쓰던 일기편지를 놓아 두는 버릇이 생겼고 검은 봉지가 놓인 날 혜진의 일기도 어김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혜진은 그 수호천사가 분명 '키다리 아저씨'일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소년은 놀랄만큼 변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던 소년은 생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은 채 '한 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오직 공부만을 하면서 하루를 소비하였다. 수업 시간엔 쉴새 없는 질문을 던져 선생님을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쉬는 시간엔 예, 복습으로 수업 준비를 하여 친구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어느 새 전교 10등 안에 들어간 성적표로 부모님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고,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더니..." 그의 친구들은 그의 변한 모습에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삼겹계'를 조직해서 그녀에게 줄 삼겹살 살 돈을 모아 그에게 전해 주었다. "가끔은 목살이나 소갈비 같은 것으로 메뉴 좀 바꿔" "고기보다 돈으로 직접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안돼! 돈으로 직접 주면 동정한다고 안 받을지도 몰라!" "돈 보다는 차라리 상품권 같은 것으로 주는 게 나을지도 몰라 상품권은 백화점에서 다양한 물건들을 살 수 있잖아!" "1만원짜리 상품권으로 백화점에서 뭘 살 수 있냐! 차라리 할인마트 상품권이 낫겠다" 소년은 친구들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고맙다 애들아. 내가 나중에 의사 되면 너희들은 돈 안 받고 치료해 줄게" "후웃! 그거 정말이냐?? 너 그 약속 잊지 말고 지켜라!" "근데 무슨 의사 될 거냐?" "산부인과 의사" "앗! 씨발롬!!" 친구들에게 엄청난 협박과 갈굼을 당한 소년은... 친구들이 늙은 후 금이빨을 무료로 해 주겠다는 약속을 강제로 하게 되고 결국 명문대 치대에 입학을 하고야 말았다... 혜진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녀가 고등학교에 간 이유는 간단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좀 더 돈을 많이 받는 곳에 취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하는 신문 배달은 아무리 많이 해도 한계가 있었고 저녁의 식당일도 고된 것에 비하면 돈은 별로 벌지 못했다. 요즘들어 부쩍 병세가 악화된 아버지의 약값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얼른 고 3이 되어 취업 나가기만 바랄 뿐이었다. "새로 신문배달을 하게 된 김지훈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혜진의 보급소에 대학생 오빠가 아르바이트로 들어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과외를 하지 새벽의 힘든 신문배달을 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빠는 왜 과외를 안 하고 신문배달을 해요?" 혜진은 지훈에게 물었으나... 지훈은 얼굴만 시뻘개지면서 혜진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학생이라서 그런가?' 고등학교 1학년인 자기가 건방지게 물어봐서 오빠가 화가 나 얼굴이 빨개졌다고 생각한 혜진은 더 이상 지훈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 저녁에 자신의 일하는 식당으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지훈을 또 만난 혜진은... "어머 오빠!! 저도 여기서 일해요!!" 생각지도 않은 우연의 일치에 너무 반가운 나머지 지훈의 손을 덥썩 잡아 버렸고, "앗!!!" 지훈은 화가 너무 많이 나 의자를 발로 걷어차면서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미안해요 오빠!!" 자기의 연이은 실수에 오빠가 화가 많이 났을 거라 생각한 혜진은 앞으로 오빠를 잘 보살펴 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 '대학생이면서도 새벽, 저녁으로 일해야 하는 걸 보니 나보다도 사정이 더 안 좋은 가 봐... 다행히 내가 일들을 잘 아니 오빠가 잘 해 낼수 있도록 도와줘야겠어... 대신, 오빠가 화 내지 않도록 조심해서 도와줘야겠네...' 혜진의 머리속엔 아빠와 동생 말고 보살펴야 되는 한 사람의 인원이 추가되었다. 이젠 청년이 된 소년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오늘 혜진 앞에서 행한 실수로 인해 절망하는 것을 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씨발... 존나 쪽팔렸겠다..." 그는 울먹이며 말했다. "나 고등학교 때 이후로 술 한 모금도 안 댔잖냐... 근데, 얼굴이 술 먹은 것처럼 졸라 빨개져가지곤 한 마디도 못 한 거 아냐... 아마 새벽에 술 처 먹고 신문배달 나왔는 줄로 알았을 거야..." "괘안타 임마! 담부터 존나 잘 하면 되잖아" "아냐! 첫 인상이 중요한 건데!! 존나 어설펐어!! 이럴 순 없어!! 으흐흑!!!" 입으론 오열을 하면서 국수를 꾸역꾸역 쳐 넣는 지훈을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친구들은... "근데... 그 여자아이 인제 고등학생 되었으니 좀 컸겠다?" "글쎄 말야... 그 아는 유난히 성장이 느린 거 같은데?" 궁금한 눈으로 쳐다보는 친구들에게 지훈은 엄숙한 표정으로 한 마디 했다. "존나 커..." "......" "그 때랑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커..." 친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슈퍼모델처럼 키가 커졌냐?" "키는 그대로야..." "......" 처음엔 눈만 말똥말똥 뜨고 지훈을 쳐다보던 친구들은... 이윽고, 그 말뜻을 이해하곤 함께 '브라보!'를 외쳤다. "브라보!! 지훈이 자슥 조~~~~ 켔다!!" "뭐니뭐니해도 여자애덜은 가슴이 빵빵한게 최고여!!" "우리가 매주 고기를 먹인 게 이제야 효과를 보는가 부네!" 지훈은 정색을 하고 일어나 모두에게 꾸벅 인사를 하였다. "고마워. 모두가 노력해 준 덕분이야" "자슥아!! 당연한 거지!!" "임마! 난 금이빨 하나로 만족 못 한다! 암~~ 만족 못하구말구!! 어금니 전체를 금니로 해 줘라!" "난 틀니 전체를 금으로 해 줘 새꺄!!" 그날 저녁... 지훈은 친구들의 축하인사를 받느라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혜진이 고 3이 되던 해... 그 해 초에 혜진의 남동생이 하나님 곁으로 떠나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난한 사람들에겐 유난히 돈 들어갈 곳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집 앞 슈퍼에 가던 남동생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남들은 뺑소니 차를 잡아내기도 하던데 또, 뺑소니 당하고도 보험 처리를 잘 해서 병원비는 내던데 혜진네는 차를 잡지도 못했고, 병원에선 입원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응급조치만 받고 억지로 퇴원조치를 당해 집으로 온 남동생은 교통사고를 당한 지 불과 3일만에 하나님 곁으로 가고야 말았다 '됐어... 이젠 아프지 않아도 되니까... 됐어...' 당뇨의 온갖 합병증으로 인해 사람들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아빠에겐 알릴 수도 없던 혜진은 동네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남동생의 시체를 화장하게 되었는데... "어... 오빠..." 혜진은 화장터에 나타난 지훈을 보며 놀라 말을 잇지 못하였다. "어떻게... 여길... " 지훈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화장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안 나오길래 집에 가 봤더니..." 지훈은 더듬거리며 간신히 말을 하였다. "미안해요... 보급소에 말을 할까 하다가 괜히 걱정 끼쳐 드릴 거 같아서..." 혜진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숙였다. "내가 더 미안해... 내가 더... 정말로... " "오빠가 왜 미안해요..." "아냐... 내가 미안해... 내가 잘 못했어... 전혀 몰랐어... 정말로... " 지훈은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밖으로 마구 달려갔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혜진은 할 말을 잊고 지훈이 사라진 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동생의 시체는 동강에 뿌려졌다. 평소, 동강을 꼭 오고 싶어했던 동생의 소원은 죽어서 이루어진 셈이었다. 뼈를 뿌리면서 혜진은 생각했다. '이젠 아빠만 돌아가시면 내가 태어난 역할을 다 하게 되는 거야... 그 때까진 열심히 살자... 그 뒤엔 세상의 흔적들을 정리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거야... 거기에선 먼저 가신 분들이 날 돌봐 주시겠지... 이제까진 내가 돌봐 드렸으니 앞으론 날 돌봐 주실거야... 아니... 그것까진 바라지도 않아... 그냥 아프지 않은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난 만족해...' 지훈은 열심히 공부했다. 같은 과 동기들이 학점을 D밭에 씨 뿌리건 어쩌건... 하루의 시간을 칼로 세밀하게 쪼개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특히, 혜진의 남동생이 죽은 뒤로는 전쟁을 치루는 듯한 심정으로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혜진의 남동생이 죽으면서 지훈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혜진의 아버지가 죽게 되면... 혜진 역시 삶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그 전에 일을 내야 했다. 지훈이 알아본 바로는 혜진의 아버지는 올해를 넘기기 힘들었다. 지훈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번 학기에 학교 톱을 차지하여서 모교 동창 회에서 장학금으로 주는 5천만원 생활지원비를 타 내어 혜진에게 프로포즈를 하여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장학금을 타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소위 말하는 인재들은 다 모인 이 명문대학에서도 전학년 통틀어 최고 점수를 획득 해야 한다는 것은 그가 대학에 들어오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일지 몰랐었다.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해야 하는 지훈은 혜진과 함께 하던 아르바이트를 모두 관두었고 학교 기숙사에 틀어박혀 공부에만 몰두했다. 남은 기간은 불과 몇 달이었다. 그 동안, 혜진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말아야 하고 혜진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지 말아야 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집에 혜진과 결혼하겠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생각이었다. 지훈은 자신의 친구들을 모두 동원하였다. "모두에게 부탁한다. 새벽부터 한밤까지 조를 짜서라도 교대로 혜진에게 눈을 떼지n않도록 해 줘... 혜진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니 한시라도 눈을 떼서는 안 된다... 만약... 혜진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난... 난... " 친구들은 또 다시 울음을 터트리려고 하는 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내가 맹세코!! 혜진을 지키도록 하겠다!! 대신, 나 늙으면 모든 이빨을 금으로 해 줘라" "이빨이 모두 금으로 되면 좀 보기 흉하지 않을까? 난 상아로 해 줘. 코끼리 상아로 말야" "코끼리 상아보단 고래이빨로 하는게 낫지 않냐?" "구라치지 마! 고래 이빨로 어케 이빨을 만드냐!!" "씨발!! 고래 이빨로 만든다는 거 어제 CNN에서 나왔단 말야!!" "지랄 쌈 처 먹고 옆찬다음 귀신 아구창 처 먹이는 소리하네!! 내가 CNN하고 BBC시청 한 개도 안 빼놓고 하는데 그런 말 없어 자식아!!" "개 풀 뜯어먹다 보신탕 당하고 귀신 고스톱 치다 피박 당해서 졸라 쌈 쳐 먹는 소리하고 있네!!! 내 친구가 새꺄 AFKN 시청 할 때도 그딴 말 안 나왔어 새꺄!!" 낼모레면 군대 갈 놈들이 여전히 이딴 일로 싸우는 것을 보면 남자들은 애나 어른이나 존나 유치한 건 어쩔 수 없는 가 보다. 혜진의 아버지가 죽은 것은 남동생이 죽은 지 정확히 5개월 뒤였다. 이미 고등학생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던 혜진은 취업을 나간다는 핑계로 학교를 나가지 않고 아버지를 돌보았지만...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아버지 몸은 망신창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장례식 때엔... 동네 어른들 말고도 처음 보는 청년들 여럿이 와서 장례를 도와 주었다. "어디서 오셨나요...?" 혜진이 이렇게 물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같은 동네에서 오래 살았거든요" 그러나, 혜진은 그들의 모습을 동네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혜진은 아버지 장례를 하면서 자꾸 지훈이 왔는지 안 왔는지 두리번거렸다. 남동생이 죽었을 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난 지훈은 이번 장례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중요한 시험이 내일 있다지 아마?" "그래?? 그 시험 존나 중요한 시험이라구??" "암 중요하지!! 그 시험에 목숨 걸고 있다니깐!!" 동네 청년들이라는 그들은 혜진의 주위에서 자꾸 모를 소리로 크게 대화를 하였다. 혜진은 정체모를 그들에게 신경이 쓰였지만 굉장히 열심히 도와주는 그들을 의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혜진은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동생의 죽음 때엔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고, 마음의 준비도 안 되었기에 많이 힘들 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고, 곧 아버지의 뒤를 따라 간다는 생각 때문에 별로 슬프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부턴 비상사태라지 아마?" "맞아! 24시간 감시체제에 들어가야 될 거야" "한 순간의 방심이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으니 존나 긴장하자구!!" "그래!! 장래 우리의 이빨도 달려 있으니 말야!!" 이상하게도... 저들의 대화가 위로가 되는 것 역시 혜진은 알 수 없었다. 지훈이 시험을 막 끝난 직후 지훈 친구들에게서 호들갑스러운 전화가 왔다. "지훈아!! 내일이 D데이야 임마!!" "내도 말 좀 하자!! 아싸! 지훈이냐!! 혜진이가 아마 내일 죽을 거 같다!!" "뭐라고?" "내일 죽을 거 같다고!! 걔 오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 싹 정리했어!!" "좀만아! 나도 말 좀 해다고!! 아!! 여보시오!!! 지훈이냐? 지훈아 임마야~~ 지훈아~~~ 지훈... 여보시오? 에잇! 끊어졌자나~!!" 지훈은 수원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포장마차에 모여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내가 봤을 때 말야. 혜진이 성격상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죽진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래, 간만에 맞는 말 했다. 아마도 혜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죽음을 사고로 위장할 거란 말이야" 그들이 세운 작전은 아주 단순했다. 그것은... "들어가 임마" 모두가 잠든 새벽녘... 지훈의 친구들은 지훈을 혜진의 집으로 떠밀고 있었다. "잠시만... 제발... 숨 좀 돌리구 자식들아... " 지훈이 숨 돌리는 사이 친구들은 지훈의 복장을 마지막으로 점검해 주었다. "역시 의사 가운을 안 입길 다행인 거 같다. 이 새벽에 의사 가운을 입혀 들여 보내면 혜진이 그걸 보고 얼마나 놀라겠냐" "그렇다고 나비 넥타이에 정장을 입힌 건 좀 너무하지 않냐..." "뭐가 너무해 임마! 생애 최고의 프로포즈인데 그 정도는 입고 해야지!" "그나저나 예전에 혜진이에게 받았던 일기편지들은 다 챙겼냐" "응. 여기에" "장미 바구니도 오케이고, 음... 모든 게 완벽해! 퍼펙트 해!" "저 새끼 영문과 갔다고 존나 영어 쓰네! 그냥 완벽하면 됐지 퍼펙트는 왜 써!" "폼 나자나 새꺄!" 친구들의 투닥거림을 뒤로 하고... 지훈은 혜진이 잠자고 있는 방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예상대로... 혜진은 잠을 자지 않고 유서를 쓰고 있었다... "빼에꼼..." 지훈이 문을 슬쩍 열고 들어가자... "누, 누구세요..." 혜진의 목소리가 들리자 지훈은 깜짝 놀라며 제자리에 우뚝 섰다. "오빠!!" 혜진은 지훈을 보고 금방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저... 저기 말이야..." 지훈은 당황하는 목소리로 준비해 간 대사를 외워 나갔다. "이... 이제까지 말이야... 세상을 한 아버지의 딸로 살아 왔다면 말이야... 앞으로는 손혜진 너 자신을 위해서 말이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물론 한 남자의 아내로도 살아가야겠지만 말이야... 그건 나의 몫으로 남겨 줬으면 하고 말이야... 난 말이야... 앞으론 손혜진의 한 남편으로서 말이야... 한 남편으로써 살아 가려고 한다고 말이야... 그게... 물론, 누구누구의 딸이나 남편... 이런 걸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말이야... 네가 한 아버지의 딸로 살아가면서도 감사했듯이 말야... 나도 한 아내의 남편으로 살아가는 것도 말이야... " 이 어설픈 프로포즈가 혜진에게 통하였을지 아니었을지는... 혜진의 마지막 일기를 살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 에필로그 : 손혜진의 일기 ... 혜지의 고집은 꺾을 수가 없다. 아직 세 살밖에 안 되었는데도 옆집 언니 따라서 학교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엄마가 말했잖니. 수진이 언니는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거야. 놀러 가는 것이 아니야" "아냐아냐! 수진언니하고 갈 거야!! 핵교 갈 거야!!" "혜지는 나중에 학교 가. 지금은 학교 못 가" "안 돼!! 안 돼!! 배 째!! 배 째!! 핵교 갈 거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녀석이 고집은 어찌나 센지 꼭 혜지 아빠를 보는 것 같다. "당신 이름하고 내 이름하고 한 자씩 따서 혜지라고 짓자구" "음... 그럼 지혜가 어때요? 지혜롭게 자라라는 뜻으로 말예요" "안돼! 당신 이름자가 먼저 와야 되. 당신 이름이 먼저 오는 게 당연한 거라구!" "그게 무슨 중요한 거라고 그래요. 혜지 하면 꼭 가입해지할 때 '해지'랑 비슷하게 들리잖아요. 그냥 지혜라고 하도록 해요" "안돼!! 혜지가 좋아!! 절대 안돼!! 무조건 안돼!!!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내 배를 째!!! 배 째!!! 배 째!!!" 요즘엔 두 부녀가 걸핏하면 '배 째!'하며 드러 누워 버리니... 에휴... 평생 누군가의 무엇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인가 보다... 그러나... 평생 누군가의 무엇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한 듯 하다... 아버지를 위한 딸의 마음... 동생을 향한 누나의 마음... 남편을 향한 아내의 마음...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마음... 곧... 한 사람을 위한 각각의 소중한 마음이니... 그 한 사람이 나를 통해 평생 행복하길 기도해 본다... 혜지아빠... 혜지야... 정말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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