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시쯤 직장에서 와이프 전화를 받았다. “나, 올해도 교회 안 간다고 해서 짤릴 거래.” “잘 됐네 뭐. 이 기회에 푹 쉬어. 애들도 좀 챙기고...” 뭐 간단한 내용이었다. 해직 당하는 아내와 그 소식을 듣는 남편의 대화치고는 꽤 밋밋했나? 그렇다고 뭐 오늘 당장 짤린 건 아니고 3월 1일로 예정된 재계약을 안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었는데 뭘...
그랬다. 와이프는 작년 3월에 파주에 있는 한 공고에 취직했다. 늦깍이로 도서관학과에 편입해서 졸업하고 사서자격증까지 가지고 학교에 취업했지만 사서교사로 간 것은 아니고 도서관 계약직 사서로 간 것이다. 그래도 40이 다 돼서 자기 일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좋았기에 애들이나 나나 좀 불편해도 참아왔는데...
원래 와이프는 대학에서 사대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입시학원에서 10여년간 강사를 하다 내게 시집왔다. 작은 언니의 손아래 시누이가 송파구에서 낸 입시학원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도와주었는데 시집가서 애배고 월급이 다른 강사 두 배가 되니 올케 동생이고 뭐고 짤라 버리는 비정함을 느꼈을 때는 나이가 들어, 실력도 없어 학교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도서관학과에나 가라고 권해서 학사편입했고 졸업한 뒤 들어간 게 이번 고등학교 계약직 사서였다. 나는 사서가 이미지 산뜻하고 애들 공부에도 도움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권해서 된 것이지만 사서직을 택한 건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인적자원관리를 전공하고 진로지도에 대해서 그나마 잘 안다는 남편이라는 게 결국 아내를 해직자로 만들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말만 독서교육, 논술교육 어쩌구 하면서 기적의 도서관이니 뭐니 지어댔지만 정작 도서관의 안내자인 사서들은 갈 곳이 없는 현실을 몰랐었다,
도서관 학과 나와서 정사서자격증 따고도 사서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니 정사서들이 다 계약직으로 날파리 목숨인 것을 어찌 알았으랴. 목숨만 날파리가 아니라 계약직이니 국어선생이 하는 도서담당 교사의 지휘를 받는단다. 교사자격증이 두 개가 있는 우리 와이프가 느꼈을 심적 고충이 어땠을까?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자기 과시욕이 지나쳐 이용자도 별로 없는 학교에 5층이나 커다란 도서관을 짓고 딸랑 사서 하나 채용해서 그 건물을 통째로 맡겼다고 했다. 공고라서 학생들이 잘 오지도 않는 도서관을 혼자 지키며 청소도 다 맡아서 하고 잔심부름까지 해야 하는 와이프는 차라리 초등학교 도서실 근무가 낫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었다.
미국에서는 여성 직업중 가장 유망한 직업이 사서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홀대받는 직업니다. 영영사나 간호사는 정식교사로 채용해도 사서는 앞으로 10년간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와이프나 동창들의 생각이다. 나도 그렇다. 우리 딸애에게 어떤 경우든 가지 말라고 권할 학과가 도서관학과(사서학과)다. 그래서 사실 본인도 그만두고 싶다고 했고 나도 그러라고 하던 차에 이번에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으니 아쉬울 건 없는데, 내 생각이나 와이프나 이심전심으로 느꼈던 것은 그럴줄 알았으면 먼저 사표낼 걸, 비정규직 고용법 어쩌고 하는 바람에 은근히 기대를 갖고 버텨볼까 하던 것이 부끄럽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 비참한 것은 와이프가 다니는 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이 86세나 된 목사라는 점이다. 오늘 가서 재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이유가 일을 못했다거나 뭐 그런게 아니라 언제부터 교회에 다닐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와이프는 그냥 다닌다고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어차피 다닐 것도 아닌데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다른 선생님들이 그 얘기를 듣더니 자기들도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그냥 다닌다고 했는데 확인도 않더라며 ‘선생님도 그러시지 그랬냐’고 하더란다. 그래서 그랬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든이 훨씬 넘은 분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속이는 것도 싫었지만 조그만 자리 하나 놓고 믿음을 강요하는 게 역겨웠다고 했단다.
그래서 내가 잘했다고 그랬다. 그래도 내가 안 짤리고 네가 짤린 게 낫잖아. 애들 돌 볼 어머니로 돌아오게 돼서 좋잖아. 별로 호감가지 않는 교회 안다녀서 좋잖아. 이슬람교가 선교할 때 ‘너 죽을래 믿을래’ 한다더니 꼭 그 짝이라고 하면서, “그 목사님께 ‘그렇게 믿게 만든다고 진심으로 믿겠느냐? 앞으로 오실 분은 진심으로 교화시키는 게 어떻겠느냐고. 그리고 목사님을 위해 제가 기도드리지요’ 라고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와이프도 대충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종교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라고 가르칠 건데 왜 어떤 사람은 그런 훌륭한 가르침을 스스로 설교하시면서 편가르기나 하려는지, 그 사람들은 왜 사람들이 자신들을 4대 마피아라고 하는지를 알기나 하는지... 난 도대체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난 '너 죽을래 믿을래?' 하고 누가 윽박지르면 '차라리 죽을래' 라고 말할 거 같다. 참새도 죽을 때는 짹한다고 하던데...
오늘부로 와이프가 다니던 학교에서 실직 예정자가 됐다. 뭐 교사도 아니고 다닌 지 딱 1년밖에 안된 계약직 사서였으니 아쉬울 것은 없지만, 급여가 많나, 일이 재밌나, 가사에도 애들 교육에도 자기계발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다닐 가치도 크지 않았던 직장이었지만 짤린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은 못된다. 그래서 오늘부로 우리 부부가 기독교 싫어할 건수가 또 하나 늘지는 않을까. 전에 와이프가 창업공신으로 일하다 애 배고 돈 많이 줘야 하니까 짜른 그 원장도 목사 사모님이었는데 말이다.
하긴 그 이전에 이미 우리와 교회는 친하기 어려운 선을 넘은 관계이긴 했으니 뿌린 대로 거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잖아도 교회가야 한다면서 일요일이면 가족모임도 거부하는 열렬신도인 와이프의 두 언니들이 싫어서 결혼 초부터 늘 우리 부부에게 교회 다니라고 하면 “냅둬유. 우린 지옥가서 재밌게 살거니까...”라고 말했더니 이제는 아예 우리 식구 한테는 교회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예방주사 맞은 셈 아닌가 이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늘 와이프와 내가 종교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천주교에 적을 두고 있고 와이프는 절에 가면 삼배를 하니 서로 같은 종교를 믿어서는 아니지만 종교관이 같아서일 것이다. 애들의 장래 종교에 대해서도 우리는 합의한 바가 있다. 불교든 천주교든 개의치 않겠지만, 교조적일 것 같은 종교, 다양성을 저해할 종교만은 안된다는 대원칙을 머리 속에 예방주사 맞히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