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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이영주 |2007.01.18 19:06
조회 33 |추천 0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조라 닐 허스턴 | 이시영 역 | 문학과지성사 (2001)       내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벌써 몇 달 지난 이야기다. 지금은 블로그를 닫으신 아델님이 쓰신 이 책의 리뷰를 읽자마자 꼭 찾아 읽어야지, 하고 메모를 해두었다. 헌데 칠칠치 못한 내 성격에 막상 책을 사려고 하니 도통 메모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는 거다. 이미 아델님은 블로그를 닫으신 이후였고 책 제목이 아주 길었다는 것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으니 대략 난감이었다. 결국은 서점에서 책을 사지 못하고 포기할 생각으로 지내던 중, 며칠 전 서점에 들렀는데 문득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라는 문장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거다. 맞다! 이게 책 제목이었지. 생각나자마자 곧바로 다이어리를 꺼내서 메모를 했다. 이번엔 절대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하고. 서점엔 이 책이 없었고 인터넷 주문을 해서 얼마 전 내 손에 들어오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내 손에 들어와서 그런가, 쉽사리 읽혀지지 않았다. 금강산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첫 장을 펼쳤지만, 여행 중에 책을 읽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게다가 눈과 입이 호강하는 금강산 여행인데. 금강산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책장을 펼쳤다.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번역한 분이 우리말을 참 잘하시는 분인 것 같았다. 글투가 한마디로 '쫀득쫀득'했다.   사실 나는 아델님의 블로그에서 이 책의 리뷰를 보기 전까지 '흑인문학', 그 중에서도 '흑인여성문학'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물론 한창 여성학 공부할 때 앨리스 워커 이야기를 들으면서 흑인여성들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은 잠시 했지만,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이 책을 쓴 조라 닐 허스턴이 흑인여성문학의 시조가 된다는 것은 책장을 펼쳐 책 날개에 쓰인 저자 소개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 그만큼 나는 흑인여성문학에 대해 무지했다.   이런 무지한 상태에서 아무런 잣대 없이 이 책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선 앞서 말했듯 쫀득쫀득 읽는 맛이 나는 글투가 눈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미국사회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 그 중에서도 흑인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교훈이나 설득의 강박 없이 생생하게 전달하는 편안함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재니가 인종차별과 여성억압의 고리를 끊고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극적인 결말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책의 맨 뒤에 실린 옮긴이의 글을 읽어보니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조라 닐 허스턴의 글쓰기는 흑인문학의 주류에게 '간접적으로 백인의 구미에 부합한다'는 혐의를 받아야 했다. '흑인예술이 흑인 민중의 권리 획득을 위한 선전과 사회개혁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주류 흑인문학의 문학관에 비춰보았을 때, 조라 닐 허스턴의 소설에 나오는 흑인들은 결핍도 없고 인간적이고, 매우 낙천적이기까지 해서 인종문제가 그리 첨예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내겐 이 책이 참 좋았다. 바보처럼 결혼이란 제도에 연거푸 배신을 당하면서도 끝내 더 나은 결혼,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괜찮은 남자 이상의 욕망을 가져보지 못하는 주인공 재니가 참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 시대(남북전쟁 직후)가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더 나은 남자를 통해 해방을 갈구하는 제니의 도전이 그리 바보처럼만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백인 주인에게 강간당해 어머니를 낳은 외할머니와 흑인교사에게 강간당해 재니를 낳은 어머니의 딸로 자라면서 흑백이 아닌, 남녀가 아닌 너 자신을 찾으라고 어느 누구도 일러주지도 않았는데도, 배꽃이 피고 꿀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자연을 보면서 자기 안에 숨겨진 '참 자아'를 찾겠다고 결심하고 결국 마흔이 넘어서도 그 꿈을 잃지 않는 재니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신을 보고 있는 그들의 눈. 그것은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을 회피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 재니의 눈이다. 백인들이 아무리 깔아뭉개도 같은 흑인이면서도 흑인여자는 머리에 뇌가 없다고 생각하는 흑인남자들의 개무시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꽃씨를 찾아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으려는 재니들의 눈은 이미 신과 통해 있다. 나의 눈을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혹여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귀찮다는 이유로, 세상은 원래 다 그렇다는 체념으로, 회피하고 애써 무시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재니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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