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깊고 무한하고 원시적인 자연 안에서는 삼지창을 든 신의 제왕, 제우스도 실재를 드러낼 것만 같다. 로터루아는 신비와 전설의 기운이 성스러운 안개처럼 발산되는 땅이다. 오클랜드에서 비행기로 40여 분 거리에 있지만 불도저보다 강력한 도시의 기세는 이곳에 흘러들지 못했다. 청정하고 울창하며 무엇보다 신비스럽다. 그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 밀도가 옅어지지 않는 유황 냄새에 있다. 후각에 뿌리를 둔 기억의 잔영은 시각적인 것보다 훨씬 길고 강렬한 유효 기간을 지니니, 나는 몸 안의 온 조직과 신경을 나른하게 하던 로터루아의 영험한 기 氣를 잊지 못한다. 가이드는 자랑스럽게 설명한다. “이곳에서 불과 두 시간 거리인 타라나키 Taranaki에서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를 촬영했고, 지금도 세계의 수많은 영화감독들이 로터루아를 필름에 담기 위해 정부에 두꺼운 촬영 제안서를 넣습니다. 지구상에 이만큼 거대하고 울창하며 ‘뜨거운’ 자연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뉴질랜드 전역의 도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 지역을 작게는 한두 개, 많게는 수십 개씩 가지고 있으며, 스파와 머드팩, 머드 크림은 이 지역 최고의 효자 상품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로터루아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시간과 자연의 위대함이라 답하겠다. 웃음과 눈물이 혼합된 역사라 말하겠다.

1886년, 이곳에 재앙과도 같은 화산 대폭발이 있었다. 로터루아 중심부에 꼬깔콘 같은 모양으로 우뚝 솟아 있는 타라웨라 Tarawera 산은 6월 10일 새벽,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벼락치듯 폭발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용암과 진흙, 화산재는 주변의 생명을 뿌리째 태우며 추상적인 수치보다 훨씬 잔인하고 긴 거리인 17킬로미터를 흘러내렸다. 재앙은 네 시간 동안 한 번도 숨을 고르지 않고 계속되었다. 포효하는 듯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화산의 폭발음은 오클랜드에까지 들렸다. 고요했던 마을은 암흑 속에서 박제되듯 묻혔다. 대폭발이 있기 전 마을의 서정은 아련하고 안타깝다. 1800년대 후반이었으니 마을은 만화 에 등장하는 동산만큼 작고 정겨웠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전경과 모습이 이웃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마을은 주거하는 사람들과 방문하는 사람들의 환영과 열기로 언제나 활기찼다. 사람들은 자연 안에서 이웃처럼 한 데 어울렸다. 관광 호텔 개념의 ‘핑크&화이트 테라스 Pink&White Terrace’가 숲 속에 들어선 것은 그 즈음이었다. 그곳은 전망 좋은 집이었고, 꿈결처럼 아늑한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2층으로 된 원목의 숙소에 짐을 풀고, 이른 아침 작은 나룻배를 타고 호수로 나가 낚시를 하고, 무지개송어를 보았다. 존재는 없어도 추억은 남으니 후세 사람들은 마을의 풍경과 서정, 핑크&화이트 테라스의 낭만을 가슴으로 짐작한다.

이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타라웨라 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낸 또 다른 자연을 여행한다. 와이망구 화산 계곡 Waimangu Volcanic Valley은 이를테면 재앙이 잉태하고 출산한 축복이다. 화산 폭발을 계기로 지형이 수십 차례 변형을 거듭하며 예닐곱 개의 새로운 분화구가 만들어지고 기암괴석과 계곡 곳곳에서 수증기가 분출되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바로 와이망구 화산 계곡이다. 깊이가 50미터에 이르는 분화구와 크고 작은 호수, 내천을 가로지르는 증기 구멍과 맨발로 걸으면 뜨거운 열기가 전해지는 황톳길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은 영화 의 무대가 되기에도 손색이 없다. 가이드가 말한다. “이런 곳이라면 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라도 문제없습니다. 산비둘기, 방울새, 공작비둘기, 흰담비, 야생고양이, 사슴, 돼지 등 이곳에는 온통 기름진 자연뿐입니다. 섭씨 75도보다 뜨거운 곳에서도 살 수 있는 블루 그린 조류의 수가 많고, 호수의 평균 온도는 섭씨 50도가 넘습니다. ‘뜨거운’ 땅 위에 생명을 내린 나무와 풀과 호수는 언제나 경이롭습니다.”
계곡의 규모는 버스 정류장이 세 곳이나 될 만큼 방대하다.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은 버스를 타고 탐험하듯 자연의 소리를 듣고, 보트를 타고 로토마하나 Rotomahana 호수를 유영한다. 산딸기가 지천이고 이름 모를 새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온다. 시야에 들어오고, 귓가에 울리는 소리는 이곳이 자연의 심장임을 실감케 한다. 레이디녹스 간헐천 Lady Knox Geyser은 참으로 신기하다. 매일 오전 10시 10분경이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해 정확히 15분경이면 물줄기를 뿜어내는데, 그 높이가 30미터에 이른다. 한때 절멸 위기에 처했던 초목과 생물은 이미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해 아마존 늪보다도 강성한 자연을 다시 탄생시켰으니 자연과 시간은 언제나 위대하다.
베리드 빌리지 The Buried Village는 타라웨라 산 폭발로 묻힌 마을을 복원한 곳이다.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실제 집과 일터를 복원해 놓았는데, 그 느낌이 흉물스럽거나 스산하기는커녕 눈부시고 아름답다. ‘뉴질랜드 자연’의 위력은 이곳에서도 퇴색하지 않아, 하늘만큼이나 높은 포플러 나무는 복원된 마을의 풍경을 전원적이고 목가적으로 채색한다. 마을 한쪽으로 흐르는 개울에는 재앙이 마을을 덮치기 전,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무지개송어가 산다. 그곳은 차라리 더이상 화산 폭발의 끔직한 흉터를 찾아볼 수 없는 공원이고 초원이다.

관광객들로 하여금 유황과 함께 로터루아를 영험한 땅으로 느끼도록 하는 개체는 원주민, 마오리족이다. TV 프로그램 에도 심심찮게 모습을 드러낸 마오리족의 인지도는 아프리카의 마사이족만큼이나 높다. 캐나다에서 온 앤드루 Andrew, 호주에서 온 제니 Jenny, 독일에서 온 슈테판 Stefan은 마오리족을 보기 위해 로터루아로 날아왔다고 했다. 사람들은 나선무늬 패턴으로 얼굴 전체를 뒤덮는 문신을 하고, 추장의 통치하에 종족 생활을 영위하며, 야성적이고 용감한 영혼을 지닌 그들의 문화(물론 지금은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지만)를 모든 것이 인공적이고 기계적이며 시스템화된 21세기에 동경한다.
우리에게 마오리족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로 시작되는 노래 ‘연가'는 먼 옛날 마오리족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편곡한 것이다. 하지만, 지구상에 더 이상 오지 혹은 문명과 고립된 삶을 누리는 부족은 없는 듯하다. 열 대가 넘는 대형 버스는 수학여행길에 오른 고등학생들 나르듯 시내에 운집한 여행객들을 마오리 마을로 실어 나르고, 마오리족은 그들을 위해 전통 춤을 공연하고, 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대접한다. 그들은 마을에 살지 않으며 오직 ‘쇼 타임’을 위해서만 옆 동네에서 차를 타고 이동한다. 마오리 마을에서의 시간이 유쾌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라지는 종족을 만나는 듯한 희열과 기대는 접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오리족의 문화를 알고, 이해하며, 체험한다는 거창하지 않은 기대와 함께 그들과의 시간은 의미 있다.

마오리 마을에서 마오리족과 관광객이 처음 만나 행하는 일종의 의식은 흥미롭다. 관광객들이 운집하면 창과 방패를 든 마오리 전사는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모습으로 이방인이 적이 아닌 친구임을 시험한다. 손바닥으로 연신 가슴팍을 때리고, 눈을 부릅뜨고 혀를 내미는데 이는 적을 위협하기 위한 도전과 무시의 표시다. 마오리 전사가 평화의 상징인 표적(테카 teka)을 두고 가면 관광객들은 비로소 그들의 땅에 입성한다. 입성 후, 본격적인 환영 공연이 시작된다. 탄탄한 근육과 강한 야성을 자랑하는 마오리족 남성과 풍만한 몸매의 마오리족 여성은 한데 어울려 전사들의 무기와 손동작, 음악, 전통 춤을 선보인다. 남성들의 춤은 역동적이고 파워풀하며 여성의 춤과 노래는 하와이 원주민의 그것을 연상시키듯 부드럽고 여유롭다. 하카 haka(전투 전에 승리를 다짐하는 동작과 소리)라 불리는 민속 공연을 보고, 항이 hangi라 불리는 전통 음식을 먹고 돌아오는 버스 안, 그 자신 마오리족의 후손인 운전사는 마오리족의 언어와 인사법을 관광객들에게 가르쳤다. 베네수엘라,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핀란드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구동성으로 운전사가 가르친 언어를 반복하며 웃고, 노래 부르고, 애국자가 되어 자기 나라를 소개했다. 그날 밤, 버스는 ‘세계’를 싣고 달렸다.
로터루아의 모든 빛깔이 영험하고 신비로운 것으로만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스파 여행 혹은 어드벤처 투어로서의 매력 또한 온전하다. 세계적 인지도를 갖는 가 선정한 세계 10대 스파 중 하나인 폴리네시안 스파, 로터루아 시내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농고타하 Ngongotaha 산까지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그곳에서 삼륜 라이드 기구인 루지 Luge를 타고 트랙을 달리는 일정은 로터루아 여정을 완성하는 마침표다.
YOU&나와 함께하는 여행 club.cyworld.com/U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