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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사랑해요.....

바보딸 |2006.08.03 21:48
조회 163 |추천 0

저희 가족은 대표적인 핵가족입니다. 그런데다 서로 개인주의가 심해 서로의 일을 방해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런 가족이었어요. 만나는 것은 저녁시간 잠깐, 밥시간도 서로 다르고

각자 해결. 모두가 돈을 벌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도 각자 해결.

 

4월 어느 날 부터 아빠가 기운이 없어하셨어요.

어느 날은 고열이 펄펄 끓더니, 어느 날은 또 멀쩡하고,.

환절기 감기가 참 독하기도 하다.. 하고 생각했지요. 평소때 너무 건강하셨던 데다가

원래 아빠가 병원이라는 곳 자체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병원에도 안가시고 2주를 넘겼답니다.

병원도 안가면서 아프다고 사람을 얼마나 들들 볶던지 답답한 마음에

친구들을 만나러 나와버렸지요.

친구들과 만나서 오랫만에 영화도 보고 신나게 놀다가 집에 들어가니

아빠는 기력이 다해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시더군요... 

너무 미안한 마음에 약은 먹었냐, 밥은 먹었냐 물었더니 돌아오는 것은 신경쓰지 말고

가서 잠이나 자라는 냉정한 한마디..

원래 아빠가 말을 매정하게 하시지만 오늘은 왠지 짜증이 나길래 얼른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어요. 직장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닌데, 아빠까지 아프신데다가

엄마랑은 싸운상태.. 집에 참 들어가기 싫더군요. 매일 저녁을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늦게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휴일날, 아빠가 하루종일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시길래 가까이 보니 열이 심해

반 실신 상태셨어요.... 얼른 차에 아빠를 태우고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향했어요.

몇시간이고 검사가 이어지고. 의사선생님은 원인을 모르겠다며 큰 병원으로 옮겨 가자고 하셨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엄마가 병원으로 왔고 우린 아빠가 큰 병이 아닐꺼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요. 하지만 큰 병이 아닐꺼라고 단정 짓기에는 아빠의 상태는 일반인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38도가 넘는 열이 매일 계속 되었고 2주째 식사도 전혀 못하시는 데다가,

팔, 다리 조차도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가눌 수가 없게 되셨어요.

우린 직장이고 뭐고 모두 아빠의 곁을 지켰지요. 처음으로 가족의 온기를 느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 위안하며 2주가 넘게 계속되는 온갖 검사들 속에서 아빠를 지켜야 했습니다.

가장 기본 적인 검사부터 CT, MRI, PET, 마지막은 골수검사까지 하기에 이르렀고,

그 와중에도 아빠는 해열제를 맞은덕에 정신이 돌아오셨는지 저에게 냉담한 이야기를

퍼 부으시더군요..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오던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저를 조용히 부르면서 말씀하셨어요.

"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급성림프성백혈병입니다. 일종의 혈액암 이죠. 진행이 빨라서 검사가

힘들었고, 오래걸렸습니다. 약물치료중 돌아가실 수도 있으시니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꿈 속을 걷는 것 같이 몽롱한 기분의 연속이었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일상생활을 할 수있을 꺼란 생각이 강렬했습니다.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 백혈병이라는 것을

알려 드렸어요.

다리 한번 부러진적 없는 아빠가.. 잦은 병치레도 안하셨던 정신력 강한 우리 아빠가..

상의 끝에 엄마는 직장생활을 하시고 저는 병원을 지키게 되었어요. 열심히 병간호하면

완치되어서 나갈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병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수혈을 받게되자 아빠는 기운도 차리시고 식사도 하시고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처음으로 아빠세수도 시켜드리고, 발도 닦아드리며 빨리 나으시기만을 기다렸지요.

하루가 지나가면 아무일없이 하루가 지나감에 감사드렸고, 자다가도 문득 아빠가 열이 나진 않을까

곤히 주무시면 그것 조차도 감사했습니다.

저는 먹는 것이야 어찌되었든 백혈병 환자에게 2차 감염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빠입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것이든 뜨겁게 소독하고

매일 주변을 소독약으로 닦으며 손에 허물이 벗겨지도록 손을 닦았습니다.

아빠가 낫기만 하신다면 이까짓것은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처음으로 아빠가 미안하다.. 하셨어요.

"우리 하나 밖에 없는 딸.. 아빠가 이렇게 고생시켜서 미안해.."

땀을 흘리며 병원 바닥을 무릎으로 기어다니며 소독을 하고 있는 저를 보며

" 아빠는 너 하나밖에 없어.. 사랑해."

처음 듣는 사랑한다는 소리였어요. 너무너무 슬퍼서 들은척 하지않고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얼굴에서는 물이 뚝뚝흐르고 있었지요...  

주말이나 되야 오실 수 있는  엄마와 통화하면서 처음으로.. " 보고싶다.. 빨리와라. 알았지?"

여태껏 아빠께 못되게만 굴어서 내가 이렇게 반성할 기회를 주신 것 같았어요.

열심히 수발을 들어서라도 용서가 된다면 정말 다행이지만요...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지만 우리 아빠에겐 탈모도, 구토현상도 오지 않았어요. 식사도 씩씩하게

잘하시고 열심히 걷기운동도 하셨지요. 간호사들도 매일매일 좋아진다며 희망을 주곤했습니다.

하지만 퇴원을 일주일 남짓 남겨둔 어느 날, 열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해열제를 맞아도

열이 내리지 않고 저는 수시로 열을 체크하며 차가운 물수건을 짜 날랐지요.

그렇게 꼬박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녁에야 잠깐 잠이들었는데 아빠혼자 일어나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혼자 화장실도 다녀오시고 걸으시기에 괜찮으신줄 알았는데 아직도 열은 펄펄끓고..

가래침에서는 피가 섞여 나오더군요. 그렇게 걱정하던 2차감염이 되어 감기가 온것이었습니다.

폐가 괴사되고 있기때문에 숨소리가 거칠어 지시더군요. 그때부터는 긴급상황이었습니다.

" 아빠. 정신차려야 돼. 중환자실에 가서 치료받을꺼야 알았지?"

" 나.. 중환자실 가기 싫다.. 아빠 중환자실가면 죽어.. 아빤 괜찮아.."

아빠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셨어요. 하지만 쉽지는 않으셨지요..

중환자실이 없어서 병실에서 응급처치를 시도했어요. 목에 관을 뚫어 산소주입기를 연결하고

수시로 혈액에 산소량을 보며 산소를 공급했어요. 정말 주저 앉을것만 같았지요..

산소주입기를 뺄때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더군요. 기절할 것 같았지만 차분하게 엄마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40분만에 엄마가 오셨고, 우린 아빠를 불렀어요. 정신차려보라고 눈좀 맞춰보라고.

하지만 이리저리 눈을 쉽게 한 곳에 두지 못하시더니 눈이 돌아가 버리고 말더군요.

4시간 뒤..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이미 침대시트는 피로 흥건했어요..

하지만 중환자실로 옮겨진지 6시간도 안되어 아빠는 고통이 없는 곳으로 떠나셨어요...

 

다음 주면 49제가 끝이 납니다. 가끔 힘들때는 아빠방에 혼자 들어가 펑펑 울곤해요.

모든 것이 제 탓인것만 같고 벌을 받는 것 같아서 끝없이 땅속으로 꺼지는 기분인데,

이렇게 손만 놓고 있으면 하늘에서 아빠가 싫어하실 것 같아서 다시 천천히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남은 두 식구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 수 밖에 없게 되었어요.

아빠가 계실 때 조금 더 잘해 드릴껄... 하는 바보같은 후회만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아무한테도 이야기 못했던 속마음 보인 것 같아 조금은 후련하고

시원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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