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입니다.
드디어 내일은 휴일을 만끽할 수 있겠군요.
다들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프라이데이를 즐기시길...
============================ 그래도 저녁 6시까진 괴롭다 =============================
입원 15일 째.
난 변함없이 한나와 함께 재활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기억 - 아... 많이 왔다. 이제 좀 쉬자.
한나 - 에이~ 저기 슈퍼까지만 더 가요. 예?
기억 - 가는 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다시 돌아갈 길을 걱정해야지.
어느새 보조기에 의지해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나.
비록 속도는 세발가락나무늘보 중
좀 빠른 녀석 정도 밖에 안됐지만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한나 - 슈퍼까지 가야 기념으로 과자라도 사먹죠~.
기억 - 한나 네가 사는 거야?
한나
- 음... 원랜 얻어먹을 생각이었지만....
까짓 거, 상 주는 셈 치고 사죠, 뭐.
기억 - 후... 이거야 원, 안 갈 수가 없게 됐는데?
평소 군것질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난 한나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병원 정문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까지 보조기를 밀고 들어갔다.
슈퍼에 도착하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맛있는 과자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녀.
어린 아이 같은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을 때,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빠바밤빠밤빠바~=
기억 - .....예.
?? = 나다.
기억 - 아, 예 아버지.
아버지 = 잡았다. 그리 간다.
=삐리릭=
그 짧은 두 마디만을 남긴 채 끊어져버린 전화.
순간적으로 내용이 파악되지 않았던 난
잠시 대화를 되짚어 보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아니지 여기서 어떻게 더 요약을 해? 반대로 풀어써보면...
=범인들을 잡아서 지금 네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다.=
한나 - 무슨 전화에요?
기억 - 범인들이 잡혔데.
=후두둑!=
하나같이 칼로리가 걱정되는 과자들을
품안 가득 안고 내게 다가오던 한나는
그 말에 놀라 과자봉지들을 땅에 떨어트렸다.
황급히 물건들을 수습하며 내게 되묻는 그녀.
한나 - 저..정말요? 언제요?
기억
- 아마 지금 막 잡힌 것 같아.
아버지께서 여기로 오신다는 것 같던데.
한나 - ...... 범인들이랑 같이요?
기억 - 그건 정확히 모르겠어.
워낙 내용이 심하게 요약되어 암호나 다름없었기에
그런 세세한 내용까진 알 수가 없었다.
단 두세 글자를 힌트로 오군의 말을 이해하는
유니 선배라면 모르겠지만....
잠시 후 병실로 돌아온 한나는
애써 불안한 기색을 감추는 듯 했지만
평소보다 1.6배 빨라진 과자 섭취 속도는
그녀의 심리적 상황을 알려주는 단편적인 지표였다.
좀 전 슈퍼마켓에서도 그렇고...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한 시간 쯤 지나 경찰관 3명을 대동한 아버지께서
범인들과 함께 병실로 들어오셨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범인들의 상태는 지극히 양호했고,
아버지 또한 이성을 잃지 않으신 듯 했다.
이제야 일이 좀 풀리는 구나.
공연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렇게 돼서 어떡하니 안군?
아버지 - 이 세 명 맞냐.
기억 - 네.
아버지 - 알았다. 김경사, 데리고 가
기억 - 앗, 아버지, 잠깐만요.
아버지 - 뭐냐.
기억 - 저... 잠깐 이 세사람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아버지 - 해라.
기억
- 아뇨, 그게 좀 개인적인 거라....
잠깐만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일단 아버지에게 안군의 일을 말씀드리는 건
그의 혐의가 확정된 뒤라도 늦지 않는다고 판단한 난
그들과 따로 면담을 가질 시간을 요청했고,
아버지는 잠시 주변 정황을 살피신 뒤
경찰관들과 함께 자리를 피해주셨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세 사람.
내 맘속에서 그들을 향한 분노는 이미 사그라진 지 오래였고,
오로지 안군을 격퇴할 앞으로의 일에 대한
기대감만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기억 - ..... 누가 시킨 거야?
남1 - .......
기억 - 안군이란 놈이 시킨 거지?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드는 내 질문에 세 사람의 눈이 커졌다.
분명 제대로 짚은 거라고 마음속으로 확신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남2 - 아, 아녜요.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기억 - 모른다고?
남2 - 예. 그런 이름 들어본 적도 없어요.
기억 - ........ 거짓말 하지 마! 이놈이 시킨 거 아냐?
난 이날을 위해 준비해둔 안군의 사진을 꺼내 그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하지만 전혀 동요가 보이지 않는 그들의 표정.
오히려 처음의 깜짝 놀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남2 - ....... 이게 누굽니까?
기억 - 시치미 떼지 말고! 너도 몰라? 너도?
남1 - 나도 처음 보는 데....
남3 - 야, 말 높여....
내 질문엔 아랑곳없이 엉뚱한 일로 옥신각신하는 그들.
이놈들이 짜고 나를 놀리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점점 마음속의 확신이 사라져가는 나였다.
기억
- 그럼 뭐야, 그냥 너희들끼리 한 거야?
버스에서 시비 걸었던 것도?
남1
- 그러니까... 그게 말하자면 좀 복잡한데.....
굳이 설명하자면 지난 번 버스 일은
다른 사람이 시켜서 그런 게 맞고....
이번 일은 뭐라고 해야 하나....
우리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달까...
그 때 워낙 취해있었던 데다....
기억 - 그래? 그럼 버스 땐 누가 시킨 건데! 다른 사람이 시킨 거라며!
안군이 아니면 누가 그런 일을 시킨단 말인가?
잠시 서로 눈치를 주고받던 세 사람은
쭈삣쭈삣 손을 들어 한나를 가리켰다.
남2 - 쟤...쟤가... 시비를 걸라고....
기억 - ......... 뭐?
너무 기가 찬 상황에 난 일순간 할말을 잊고 한나를 쳐다보았다.
더 황당한 건 정색을 하고 들고 일어서야 할 그녀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는 것.
기억 - 정말이야? 한나 네가 시킨 거야?
한나 - ........ 미안해요.
기억 - 아! 그럼 안군이 너한테 시킨 거구나!! 그래서 네가 다시....
한나 - 아뇨, 그냥... 제가 부탁한 거예요.
기억 - .....왜?
상황이 이쯤 되자 나만 이상한 세계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꿈인가? 꿈도 뭐 이런 개꿈이 다 있어?
기억 - 그럼 이번엔 왜 그런 거야?
남1
- 그 때.... 시비 걸어주기로 하고 연락처 받았는데....
갑자기 일이 커지면서 다쳐서 고생도 했고....
나중에 연락해보니 연락은 되지도 않고....
학교생활도 쫑나고... 그러던 차에 불꽃놀이 보러 갔다가 마주쳐서...
따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당신이 나타나서....
남2
- 우린 생각하기에 아, 둘이 연인사인데
저 여자가 우릴 가지고 놀았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황당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녀석들의 설명은 일목요연했고 따질만한 곳도 없었다.
단지 궁금한 건, 왜 한나가 처음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했냐는 건데...
기억 - 한나야, 대체 왜......
한나 - .........
그녀는 마냥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뭐야 그럼... 난 지금까지 뭘 한거야?
아니, 안군 그 놈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기억
- 아냐, 안군이 시킨 게 맞아.
그렇지? 너희들 잘 생각해봐!
이 놈이 시킨 거잖아? 이놈.....이놈이....
이제 민아에겐 뭐라고 해야 하나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했다.
이일을 다 어찌한단 말인가....
참담하리만치 황당한 결말 속에
내가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침묵을 지키던
남3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남3 - 저기.... 그놈이 시켰다고 하면.... 합의해 줄 건가요?
기억 - ....... 응?
남3 - 그...사정은 잘 모르지만.... 우리가 그놈이 시킨 거라고 물고 늘어지면....
그런 수가 있었구나.
사실 여부 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삼인성호라고 마음먹고 물고 늘어지면
안군에게 누명 하나 씌우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다음은? 무고죄로 항소에 모해위증에.....
무엇보다 사실이 밝혀졌을 때 한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기억
- 차라리 셋이 그냥 한 걸로 해줘요.
한나 이야기는 빼고 일단 버스에선....
난 일단 안군을 걸고넘어지기보다
한나를 구하는 쪽으로 말을 맞췄다.
이야기를 마친 그들이 병실을 나선 뒤, 한나가 나에게 물었다.
한나 - ...... 언니한텐 뭐라고 할 거예요?
기억 - 몰라..... 이제 나 어떻게 해야 하지?
한나 - 미안해요... 정말로....
기억 - 대체 왜 그랬어? 아무리 생각해도....
한나 - ....... 미안해요.
이런 내 애타는 질문에도 그녀는 눈물과 사과의 말 일변도였다.
대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그동안 내 곁을 지켜온 걸까?
어떻게 그 시간 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버틸 수가 있었을까?
일단 이번 사태의 최대 원인은 누구인가가 문제였다.
처음 발단이 된 한나?
그런 부탁을 실행에 옮긴 그?
단지 시비에서 끝날 일을 싸움으로 번지게 만든 나?
그럼 안군은? 안군은 아무 잘못도 없나?
기억 - 나... 나 좀 잘게. 일단 한 숨 자고..... 그 다음에 생각하자.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에
난 억지로나마 잠을 청해보기로 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지금 꼬여 있는 문제들 중
하나라도 해결이 되어있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