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초가을 저녁 바람이 선선하던 지난주 어느날
멀리 울산에 있는 국에게 전화가 와서는
착 가라앉은 회색톤의 목소리로 평소와 다르게 말을 하였다.
" 잘 있냐?......
나 결국 미에게 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야 말았어.
그런데 참 담담하게 받아 들이더라. "
국의 아내 미는 나와 같이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여직원이였다.
고교를 나왔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눈이 높고 똑똑한 여자였었고
어느날 내 친구들을 보러 시내 갔다가 우연히 같이 만나서
경주를 놀러 갔던게 그둘의 인연이 되었었다.
" 잘되었지..뭐..
내가 몇년동안 너 땀시 망설여 왔던것을 생각하면
속이 후련하다.좋은 아내 만난지 알아라.."
미는 알뜰한 숙녀였고 자신을 좋다고 하던 같은 직장의 민도 마다하고
그곳의 대학을 나온 국과 연애를 하였다.
경영대를 나와서 안정된 직장도 못잡았던 국과 어떤 인연에 끌렸는지
나날이 즐겁게 데이트를 하고 96년 그해 가을이 끝날쯤 결혼식을 했었다.
국은 그래도 그 도시에서는 조금은 돈이 있는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고
결혼하던해에는 형과 함께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자동차 영업을 시작했다.
그해 가을은 찬연하리만큼 푸르른 하늘을 가지고 있었고
국과 미가 결혼하던 울산의 예식장 주변은 그어느때 보다 아름다운 단풍이 있었다.
'네...지금부터 신랑 국군과 신부 미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낯익은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그 둘은 미를 보내며 아쉬워하던
같은 직장의 민의 부자연스런 박수를 받으면 그렇게 평범한 결혼식을 올렸다.
'평생 서로를 의지하고 믿고 사랑할 것을 맹서합니까?'
'네..네'
피로연장에는 국과 미의 친구들이 많이 있었고 돈까스에 맥주를 마시며
둘의 앞날을 축하하고 있었다.몇시간이 흘렀을까?
하얀색 줄리엣에 깡통을 매달고는 그 둘은 떠났다.
" 자식들..얼마나 알뜰하게 살려고 친구들을 이렇게 내비려 두고 가냐?
경주가서 논다고 돈도 얼마 안들텐데..."
어려서부터 생활력이 강한 미가 아마도 순진한 국에게 이야기 한모양이였다.
친구들 관례가 비행기 안타면 경주가서 저녁먹고 호텔방까지 데려다 주는 거였는데...
쩝..울산 언양간 고속도로로 달려가는 하얀색차가 눈에 들어 온다.
좋은 부모님 만나서 대학교만 나와서 혼자 가계를 일으키기가
엄청난 노력없이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국에게나 나에게,
난 직장생활을 헀지만 중소기업 수준의 급여를 주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국은 자동차 영업을 시작하자마자 얼마안 되어서 IMF에 직면하게 되었다.
신혼여행 경비를 절약하여 신랑의 빚 300만원을 갚아주었던
미도 아이가 늦게 생겨 고민을 하였지만 전세를 옮기며 불경기속에도
알뜰하게 전세 5천만원짜리 집에 살수 있게 되었다.
2000년 한달에 차 두세대 밖에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국은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당시 시장은 미친년 널띠기를 지속했고
"기술이니 텔레콤"이니 하는 것만 붙은 코스닥 종목은 몇일째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 야..국아..너 임마..차도 안팔리는데 어디나서 주식을 하냐?"
" 응.미..모르게 천만원 빌려서 했어.요즘 재미 좀 보고 있어."
소주 한잔에 얼큰하게 취해 몇달째 빽차 탄다던 국이가
오랫만에 밝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당시 국이가 사주던 도수 높은 하이트가 참 달았었고
미에게 오랫만에 차 팔았다고 월급을 조금더 가져다 주었다 했다.
그리고 일이년이 지났다.
내가 서울로 올라온진도 몇년이 지났다
2002년 봄..서울의 아파트값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제가 살아나는 듯 해 보였다.
"뭐~ 빚이 3천을 넘었다구?. 야..천이면 몰라도 3천이면..."
" 나..미에게 이야기 한다."
"야.걱정마.차 많이 팔리면 해결된다구.절대 안돼."
집에 와 국의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다.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라 남같지 않은데 그런 문제는 부부가 푸는것이라며
끼어 들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 경기가 좋아지면 차도 많이 팔리겠지.
그리곤 재작년 가을.
미는 알뜰하게 생활을하여 아파트를 융자를 끼어서 샀고 거기서 4500만원의
시세차익을 올려 처분했고 남편이 빚이 있는줄도 모르는채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5000만원을 투자하여 울산 근교의 땅에 공동 투자를 해 놓았다.
" 너 임마 내년이면 독일월드컵도 열려.
카드 막는다고 매월 고생하지 말고 미에게 자수해.
그 땅에서 얼마나 오른다고..너 이것은 정말 잘못하는 거야.
임마..너 지금 나가는 이자면 너 월급이 되겠다."
"아냐.정말 될것 같은데..힘드네..나도 이젠 힘들어.."
알뜰하게 산 미에게 자신의 실패를 말하기가 싫었었다.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태어난지 만한살이 되어가는 아이의 아빠로서
알량한 자존심이 국으로 하여금 점점 빚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말해주어야 하는데..그나마 팔거라도 있을때..
나역시 지방 발령 취소로 분양권 잔금을 받으러 갔을땐
서울 아파트값의 급격한 상승으로 프레미엄이 한달새에 몇배나
뛰어 있었고 계약해지를 해서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차익을 더 남길수 있었는데
재테크에 관심이 결여되어 결국 한국 월드컵을 서울 변두리 도시에서 보아야 했다.
거기에 대한 보상 심리로 주식을 하다가 실패하여
부채를 갚느라도 아내와 함께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젠 그 아픔을 다 추스렸지만 최근 몇년은 돈을 버는게 아니였고
갚기만 하였었다.보람이 아니라 허무함의 계절이였다.
" 뭐..1억이 넘는다고? 지난 겨울에 만났을때 한 7천이라며....."
두주가 지나고 있다.
울산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국에게 전화를 하는데 미가 전화를 받았다.
"정말 그럴줄 몰랐어요.친구면 이야기해 주어야지요? 남도 아니고
같이 근무도 헀으면서..얼마나 빌려 주었어요?"
수화기 건너편 미의 목소리가 가시처럼 들려온다.
괜시리 전화를 했군.그래도 오랫만인데...국은 그날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일후. 미는 땅을 헐값에 내 놓았고
국의 어머니는 눈치없는 미를 탓하면서 당신의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국은 1억원 가까운 빚을 해결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2천정도의 빚이 남게 되는데
그것은 알뜰하게 둘이서 2~3년이면 해결할 수 있는 돈일 것이다.
보증금을 빼서 싼데 갈때도 없고 국이네 부부는 10년전 2천만원으로
세월을 돌고 돌고 돌아서 온거였다.
빚을 내어 주식을 한것이 첫번째 잘못이고
차가 팔리지 않으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는 부지런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한게 두번째 잘못이였다.
그런데 가장 커다란 잘못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남자로서의 자존심 이전에 아내를 믿지 못한 국의 잘못에 제일이였다.
아파트 팔아서 돈 남겼다고 부부가 맥주 살때만 말했어도...
나 또한 아쉽기만 하다.
국과 비슷한 마흔의 남자들이여.
커지기 전에 늦기 전에 자수를 하자.
가장의 자존심은 서로에게 솔직할때 지켜 지는 것이며 그래서 부부다.
잊었는가?
'평생 서로를 의지하고 믿고 사랑할 것을 맹서합니까?'
'네..네'
미와 비슷할 수 있는 내 또래 아내들이여.
혹여 남편의 아픔이 있는가 살펴보라.가장이 웃지만 알량한 자존심에
말 못하는 무엇이 있는지?
남편의 직장이 분명히 별로인것 같은데 돈 씀씀이가 커지진 않았는지?
가끔은 붉은색 란제리를 입고 화려한 밤만을 계획하지 말고
계절이 끝날쯤 당신의 남편과 와인 한잔을 마시며 대화를 해 보자.
"자기 말이야. 난 당신이 참 인연이란 생각이 들어.
우리 부부고 친구니까 자기 고민있으면 언제든 말해.
아직 우리 젊잖어."
두시간전에 국에게서 전화가 왔다.내 카드로 빌린것 갚겠다구.
사무실에 앉아 집까지 가려면 100분도 더 걸리는데 내가 간 동네는
오히려 경기북부라고 집값만 떨어지는데...
나의 아내에게 고맙기도하고
국의 부부가 이 위기를 슬기롭게 견디기를 바라기도 하고
부부야 말로 가장 가까운 친구임을 잊지 말라고
386세대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싶기도 하고
가을이라 묘하게 글쓰고 싶은 생각도 들어 이렇게 번잡한 글을 올렸다.
"아내 그 가깝고도 먼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