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꼬 이야기 저자가 자신이 쓴 책은 전부 사실이라고 했더군.
그 말이 맞을거다.. 퇴각하는 일본군에게 한국아이들이 돌팔매질
하는 장면을 영상 다큐멘터리에서 흑백필름으로 본적도 있고..
일본 패망 후, 분노에 찬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폭행하고, 강간도 했다는
소리, 나도 들은적이 있다..
문제는 그 소설을 교재로 삼은 미국 학교의 의도가 무었이냐는 거다..
미국에도 한국인 혐오하는 사람들 참 많다..
한국에도 미국인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듯이..
내가 쓰는 글도 그렇다, 특히 대학원 이야기 할 때는 단 한 마디라도
거짓을 쓴다면, 명예회손으로 고소당할 각오하고 쓰기에, 손이 파랗고,
차갑게 변한 상태에서 자판을 두들긴다.. 용문탕 사건 쓸 때도 그랬다..
대학원 때 있었던 싸움 이야기를 했더니 무식한 애들 경사났더군..
"거 봐.. 대학원생도 싸우면서 왜 무식한 사람 욕해.." 이런 식이더군..
글쎄 학생과 사회인은 분명히 다른것 같은데..
사회 나와서도, 싸움이 불가피 할 때는 싸울수 밖에 없는 거겠지..
그 정도면 그래도 무식한 애들 싸움에 비하면 양반싸움인것 같은데..
낫은 내가 들은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살인 미수이다.
그러니까 내가 심교문을 트라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그랬기에 심교문은
나에게 얻어 *고도 그 당시 고소할수 없었던 거고..
거기 실험실 싸움에서 내가 맞았다면, 글쎄 이틀 전 토요일날 정강이 2대
채인것 까지 합해서 즉각 고소하던지,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그냥 가만히 있지는 않았겠지..
이건 생화학과에서 있었던 대자보 사건과는 성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심교문은 자신이 67년 생이란 이유로, 68년생이지만 한 학번 위인 나를
동생취급했다.. 생화학과 대학원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군대에서 나이가 무슨 필요야? 계급이 먼저이지.. 그리고 악교에서 나이가
무슨 필요야? 학번이 먼저이지.. 내가 조그맣고 만만하니까 그랬겠지..
그리고 학부시절과는 달리, 대학원에 위로 선배라고 86학번 몇명있겠어..
87학번들이 대다수이지.. 군 출신도 큰 문제 였지..
생화학과도 그랬지만, 농대도 마찬가지였다..
나하고 같은 군 출신이 없었다.. 교수님 까지도..
6개월 방위출신은 사람들이 민방위 취급하고, 스스로 단기사병 출신이기를
부인하기에 친해 질수도 없다.. 하극상 일어나기 딱 좋은 상황이지..
심교문은 선배,선배 하면서 존댓말 했다가, 반말했다가 하면서 날
갖고 놀았지...
난 그 실험실에서 심교문을 몇대 때리지도 못했다..
낫 집어들고 덤비는데, 나도 같이 낫들고 덤볐으면 둘 중 하나는 죽었겠지..
어쨋든 학부생의 도움으로 내가 심교문을 몇 대 때린건 사실이지만,
그 싸움이후, 심교문은 계속 실험실을 나갔고, 난 심교문에게 낫 맞을까봐
실험실을 안 나간것도 있지만, 취직도 박사과정 진학도 포기한 상황이라
나갈 필요가 없었지..나중에 논문관계로 실험실을 몇번 들리기는 했기만..
결론적으로 내가 실험실에서 심교문에 의해서 쫓겨난것 처럼 보였겠지..
심교문과 나는 실험하는 온통 화학약품 병들이 가득차 있는, 실험실에서
싸운것이 아니라, 같이 장소를 옮겨셔, 학부생들 실험 가르치기 위한
목적의 실험실에서 싸웠고, 그곳 책상은 책상 중간에 화학약품이나,
비이커 등을 올려놓는 선반 자체가 없는 곳이고, 농대에서 추수 때 쓰기위한
낫과, 간단한 실험기자재 정도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실험실 복도 건너, 맞은 편 강의실에서는 강의가 있었으니,
수 십명의 학생들이 싸움소리를 들었겠지..
내 고함 소리만 들었지, 심교문이 고함소리는 한 마디도 못 들었지?
원래 맞는 넘은 고함을 못지른디..
그리고 난 몇 대 때리지도 못했다.. 그 넘이 낫 집어드는 바람에..
그 실험실엔 심교문과, 나 그리고 싸움을 말리려고 실험실 까지 일부러
쫓아온 학부생, 이렇게 3명 뿐이었다..
모르지 그 싸움 이후 난 실험실을 안 나갔고, 심교문은 계속 실험실을
나왔으니, 심교문이 나를 때린걸로 교수님은 착각했을 수도 있겠지...
싸움이 있은지, 얼마 후 교수님을 논문관계로 방문 했는데, 교수님은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시더군.. 어디 맞은데 없나하고..
그 상황적응 잘하는 심교문이 교수님에게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상 모든 대학원생들이 논문쓰던 시기이어서, 취직이나, 박사과정 진학을
원하는 학생은 계속 실험실을 나가 교수님과 매일 얼굴 대하겠지만, 나야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안 나갔다..
실험실 나갈 필요도 없는 상황에서, 실험실 나가가지고, 또 심교문 하고
싸울 필요 없잖아.. 실험 모두 끝나고 논문만 쓰면 되는데..
컴퓨터야 학교 밖에도 얼마든지 있고, 난 취직도 진학도 포기하고,
외국나가서 사업가가 되겠다는 허무맹랑한 꿈을 꾸었으니까..
무식한 애들에게, 좋은 빌미 잡히고, 자연대생들이 들으면 행복해 할,
이런 별로 좋지않은 농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도 싫다..
처음엔 심교문도, 박대호도, 교수님도 나를 고향에 돌아온 자식처럼
잘 대해 주었다, 하지만 자연대 학생들이 나의 실험실 위치를 알아내고,
지나가면서 실험실에다가 욕하고, 나에 대한 좋지않은 말들을 듣고,
그리고 난 농대에서 또 점수 공개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농대 학생 한명이
자연대 4호관과 테니스장 앞에 있는, 마을에서 자연대 쪽으로 통하는 길 옆
공터에서, 자연대 학생으로 추정되는 낯 모르는 지나가던 학생과,
밤에 말다툼 끝에 칼에 찔리는 사건이 있었고..
나의 실험실 위치가 알려진 후...
나와 같이 생활하는 심교문, 박대호, 학부생, 교수님까지..
농대실험실 사람들 모두가, 농대 밖으로 나가면, 나 때문에 같이 왕따당하는
상황이었지, 밖에만 나갔다 오면 모두가 화나고 초췌한 얼굴이 되어서,
나에게 화풀이 하고, 나는 그걸 받아줄수 밖에 없었고, 농대 실험실에서
지내는 것 또한 힘들게 되었지.. 결국 자연대 학부생들의 완벽한 승리였지..
그들은 이 글을 보면 행복해 할거야...
필리핀만 빼고, 필리핀 귀국 후 한국에서도, 다시 호주에서도, 호주 귀국
후에도, 현재 인터넷 상에서까지 그들은 계속 나를 망치고 있지만,
대책이 없다.. 그들은 게릴라 이니까.. 그리고 난 혼자이기에..
그들의 숫자는 세월이 가면서 점점 늘어만 가고...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명예 k대 자연대생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왜 그럴까? 이유야 간단하지.. 그들은 다수이고 누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이고, 알려져 있으니까, 조금만 내가 사람들에게 언짢게 행동하면,
"저러니까 대학원에서 그렇게 생활했지.." 라고 나만 빌미 잡히는 거지..
첫번 째 실험실의 이미정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실험실 용어를
숨도 안쉬고 내 앞에서 마구 늘어 놓으면서, 나를 *신 취급했지..
그리고 *신처럼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보면서 매우 행복해했지..
아마 박사과정 학생아리도 새로운 실험을 배울 때, 그렇게 숨도 안쉬고
빨리 말한면서, 주어,동사,목적어 다 빠트리고 무슨 오줌마려운 강아지 마냥
초조한 목소리로, 윽박지르듯이 짜증 내면서 가르쳐 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사람 *신 만들어 놓고, 그 때 만들어진 이미지는 나의 2번 째
실험실에서도, 아는 후배 한명도 없는 3번 째 농대 실험실에서도 이어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