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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 19. <양수리 성솟대>

스토커 |2007.03.28 10:18
조회 669 |추천 0

양수리 성솟대

  강민지는 두 시간 전에 시간이 어떠냐는 자신의 의견도 묻지 않고서 두 시간 후에 오겠다는 일방적인 이경아의 전화를 받았다. 한동안 아무 연락 없이 지내다가 갑자기 전화해서 만나고 싶다는 이경아였기에 그녀는 의견을 물었어도 거절을 못했을 것이지만,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는 염려를 하면서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샤워를 하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손질하고, 얼굴 화장을 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서 두 시간이 채 안되어 강민지가 집을 나왔을 때 벌써 이경아의 빨간 승용차는 집 앞에서 시동을 걸어놓고 주차되어 있었다. 지난번 스물여덟 번째 생일날 그녀에게 한 번도 인사시킨 적이 없는 애인이 선물한 것이라고 이경아가 상기된 얼굴로 자랑했던 차였다.

  강민지가 차로 다가가 고개를 숙여 차안을 들여다보자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있던 이경아가 조수석 차창을 반쯤 내리고서 그녀에게 어서 타라는 손짓을 보냈다.

  “많이 기다렸어?”

  조수석에 앉은 강민지가 안전벨트를 메고 나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 무슨 일이 있는지 불안정하고 초췌해 보이는 이경아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 방금 왔어.”

  강민지는 평소 같지 않은 이경아의 목소리를 듣고서 그녀에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

  이경아는 강민지의 질문을 받고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한일자로 꼭 다문 채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전진 기어를 넣은 후 차를 출발시켰다.

  “무슨 일이 있는데?”

  이경아가 아무 말 하지 않자 강민지가 화가 난 듯 다시 큰 소리로 다그치듯 되물었으나, 그녀는 대답 대신 담배를 피워 물고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차창을 반쯤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어왔다가 그녀가 내뿜는 담배연기와 함께 차창 밖으로 밀려나가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나한테 말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거니?”

  이경아의 태도에 짜증이 난 강민지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강민지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입에 담배를 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초보자답게 운전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는 말해줄 수 있겠니?”

  “…….”

  이번에도 이경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대체 지금 어떤 기분인지, 무슨 일 때문에 강민지를 만나자고 했는지 전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을 하고서 왼손으로만 핸들을 잡은 채 피우던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벼 끈 다음 차창을 닫았다.

  “네가 모르는 내 친구가 있는데, 절실하게 돈이 필요해서 룸살롱에 나가던 친구야.”

  차가 광장동 사거리를 지나 천호대교로 접어들면서 차량이 약간 뜸해지는 듯 하자 이윽고 이경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저수지에 빠진 돌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강민지가 당장 듣고 싶어하던 대답은 아니었다.

  “…….”

  애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지? 생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친구의 이야기를 불쑥 꺼내고, 그것도 룸살롱에 나가던 친구의 이야기를……. 강민지는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듯이 이경아를 쳐다보면서 그 이유가 뭔지를 속으로 생각해봤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는 천호대교를 지나 올림픽대로로 접어들더니 미사리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달리기 시작했다.

  “넌 룸살롱에 나가는 여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니?”

  “안 좋게 생각해.”

  강민지는 거두절미하고 딱 잘라 단호하게 대답했다. 얼음처럼 냉랭한 목소리였다. 순간 이경아가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고, 속도계의 바늘이 크게 움직이면서 차는 금방 시속 120킬로미터까지 속도가 높아졌다. 초보자가 겁도 없이 속도를 120킬로미터까지 높이다니, 그녀는 덜컥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너 지금 어디로 가는 거니?

  이경아의 갑작스런 돌발적인 행동에 당황한 강민지가 아주 낯선 사람을 보듯이 그녀를 쳐다보며 아까 대답을 듣지 못한 질문을 다시 했다.

  “나도 처음엔 너처럼 룸살롱에 나가는 여자들을 경멸했었어. 돈을 번다는 목적으로 어떻게 몸을 팔 수 있냐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경아는 강민지의 물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옥타브 높아진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 친구가 룸살롱을 다니고 부터는 그 여자들을 이해하게 되더라. 오죽하면 몸을 팔면서까지 돈을 벌겠냐고. 그리고 죽으면 썩어 뭉그러질 몸뚱이인데, 아껴서 뭐하겠냐고.”

  강동대교를 지나쳐 신호등이 시야에 들어오자 이경아는 차의 속도를 늦추고,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으며 정지선 앞에 차를 멈췄다. 그 동안 제법 익숙해진 운전 솜씨였다.

  “참, 지금 어디로 가냐고 물었지?”

  그제야 이경아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강민지를 쳐다보았다.

  “그래,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니?”

  화가 난 듯 강민지의 목소리엔 냉기가 감돌았다.

  “너하고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어. 가보면 너도 틀림없이 좋아하게 될 거야”

  이경아는 또 차창을 열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은 다음 불을 붙였다. 그녀가 내뿜는 담배연기가 바람에 의해 차창 밖으로 날아올랐다.

  “그런데, 룸살롱에 다녔던 친구에게 문제가 생기고 말았어.”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자 이경아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왼손으로만 핸들을 잡은 채 차를 서서히 출발시키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고, 강민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느 여자의 고백을 듣는 사람처럼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룸살롱에 다닐 때 그 친구에게 애인이 생겼는데, 그 애인은 그 친구보다 열일곱 살이 더 많은 유부남이었어. 그 친구는 그때부터 가진 게 돈밖에 없는 그 애인의 도움으로 룸살롱에 나가지 않아도 여유 있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어. 무엇보다도 그 친구는 룸살롱에 다니면서 마시기 싫은 양주를 토하도록 마셔야 하고, 남자들의 노리개 감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에 큰 행복을 느끼고 좋아했었지. 그런데…….”

  “그런데?”

  강민지가 처음으로 이경아의 이야기에 반문하면서 관심을 나타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며칠 전에 애인의 부인한테 관계가 들통나고 말았어. 다행히 심지가 깊고 체면을 중요시하는 부인이라 머리칼을 쥐어뜯기는 봉변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는 그 동안 애인으로부터 받았던 여유 있는 풍족한 생활을 되돌려줘야 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 거야.”

  이경아는 피우던 담배를 차창 밖으로 그냥 내던지면서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과 절망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럼, 다시 룸살롱에 다니면 되겠네.”

  강민지는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고 나서, 문득 미루나무에 걸린 연처럼 기억의 끝 부분에 걸려 있던 파편 하나가 생생히 떠오르면서 자신이 말을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이경아는 강민지를 불쑥 찾아와 친구 이야기를 꺼냈던 적이 있었다.

  “네가 모르는 친구가 있는데, 중학교 때 친한 친구야.”

  “중학교 때 친구? 그 친구의 이름이 뭔데?”

  “이름을 말해도 넌 모르는 친구야.”

  내가 모르는 친구가 있었나? 이경아의 친구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모르는 친구가 있다는 그녀의 말에 강민지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그 친구가 왜?”

  “아빠가 열다섯 살이나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워서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한다나 봐.”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이경아는 반사적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민지를 노려보았다. 분노와 모욕감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리고 휑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잘 있으라는 말도 없이 가버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강민지는 이경아가 말한 그 친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한 그 친구는 그녀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위로라도 했어야 옳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강민지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그리고 나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친구로서 죄의식을 느꼈었다.

  강민지의 염려와는 달리 이경아는 조금 전처럼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으면서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이경아를 잘 안다고 믿고 있었다. 하루 이틀 사귄 친구가 아니 잖은가.

  이경아와 친해지고 나서부터 강민지는 여태까지 무슨 일을 하든 그녀보다 뭐하나 뚜렷하게 앞선 것이 없었다. 그녀는 무슨 일을 하든 자신감이 넘쳐흘렀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었다. 항상 빈틈없는 단정한 모범생활로 그녀는 선생님이나 교수님에게 사랑을 흠뻑 받았으며, 같은 여자가 봐도 아름다울 정도로 미모 또한 뛰어나 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온몸에 받았다.

  이경아는 강민지가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그런 이경아가 친구라는 사실이 즐거웠고 기뻤고 자랑스러웠다. 다른 친구들처럼 뒷구멍에서 이경아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런 이경아가 룸살롱에 다녔다니, 거기서 유부남을 만나 사귀다가 그 부인에게 들통이 났다니,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에 놀라움보다는, 그 동안 마음 고생이 무척 심했겠구나 하는 동정심보다는, 강민지는 ‘네가 어떻게 내게 그럴 수가 있는가’ 라는 배신감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룸살롱에 다녀야만 될 정도로 생활이 곤란했으면 아무리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한 마디쯤은 자신과 상의를 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면 룸살롱을 나가지 않아도, 유부남과 어울리지 않아도 보다 좋은 방안이 강구될 것이 아닌가. 적어도 10년을 넘게 사귄 친구 사이인데, 강민지는 몹시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강민지는 이경아의 어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와 이경아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길게 이어지자 강민지는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는 영화 ‘킬렁필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인 시드니 쉔버그와 디쓰프란이 재회하는 순간 감동적으로 울려 퍼지던 존 레논의 ‘상상(Imagine)’에 이어서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수많은 심금을 울렸던 프랭크 시내트라가 부른 ‘나의 길(My way)’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경아가 강민지를 데리고 간 곳은 그녀가 오승구와 가끔 찾아갔던 양수리의 남한강 근처에 있는 한 음식점이었다. 대문 위에 ‘양수리 성솟대’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고, 우리나라의 전통 한옥 구조를 하고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위하여 그 마음 입구에 높이 세운 붉은 장대를 솟대라고 하는데, 그 끝에는 푸른 칠을 한 나무로 만든 용을 달았다. 그래서 그런지 음식점 입구에는 솟대가 세워져 있었다. 아마 음식점 주인의 성이 ‘성 씨’라 ‘성솟대’라고 이름을 지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빈 테이블을 찾아 앉자 개량한복을 입은 스무 살 가량의 여종업원이 물컵과 메뉴판을 가져와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그녀를 기억하고 인사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조개가 패는 귀여운 여자였다.

  “된장찌개로 주세요.”

  종업원의 미소에 이경아도 미소로 답하면서 메뉴판을 펼쳐 보지도 않고, 강민지의 의견도 묻지 않고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이 집은 게장정식과 돌솥밥 정식도 맛이 있지만, 특히 북어머리와 달래 뿌리를 삶은 물에 된장을 풀고 냉이를 얹어 맛을 낸 된장찌개 맛이 일품이야.”

  겨우 된장찌개 하나 먹자고 이 먼 곳까지 자신을 끌고 왔나 싶어, 강민지가 어이없어 할 때 이경아가 그녀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주문한 것에 대해 해명하듯 된장찌개 맛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밥은 돌솥에 지어서…….”

  “이 집 자주 왔었니?”

  강민지가 계속 이어지는 이경아의 말꼬리를 끊으며 물었다.

  “몇 번, 룸살롱에 다녔던 친구하고.”

  “그 친구하고?”

  “응. 그 친구하고.”

  강민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이경아에게 ‘룸살롱에 다녔다는 그 친구가 바로 너 아니니?’ 라고 반문하려다 너무 노골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에 그녀가 당황할까봐 입을 다물었다. 오늘은 그냥 남의 말하듯이 하는 그녀의 말을 남의 말 듣듯이 들어주는 편이 좋을 듯 싶어서였다. 그녀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스스로 진실을 이야기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강민지는 잘 알고 있었다.

  물김치와 총각김치, 이름 모를 산나물 등 여덟 가지나 되는 기본반찬이 먼저 나오고 곧이어 주문한 된장찌개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따라 나왔다.

  “어때? 맛있고 구수하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맛을 보는 강민지를 조심스러워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경아가 물었다. 마치 시집 와서 처음으로 요리를 해서 상을 차리고 시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는 새 며느리처럼. 그런 이경아에게 그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고, 구수하다고.

  식사를 하면서도 이경아는 강민지가 듣던 말던 상관없이 고집스럽게 그 친구의 이야기를 계속 꺼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두서 없이 하다가, 얼마 전 그 친구가 보험회사 생활설계사 아주머니의 소개로 보기 싫다는 맞선을 억지로 봤는데 상대 남자가 마음에 꼭 들었으면서도 자신의 처지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할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면서 ‘너라면 어떻게 했겠니?’ 라고 조심스러워 하는 목소리로 강민지에게 물었다.

  “글세?”

  이경아가 자신의 고민을 이런 식으로 털어놓으면서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의도를 잘 알면서도 강민지는 마땅히 할 말이 없어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 남자도 그 친구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는데, 만약 모든 걸 속이고 그 친구가 그 남자를 만난다면 큰 죄를 짓는 거겠지?”

  “그 남자가 그 친구를 사랑하게 된다면 과거가 뭐 그리 대수겠니?”

  “그럴까?”

  이경아는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가 무언가 더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냐. 남자들은 하나 같이 다 자기 애인은 숫처녀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데, 나중에 그 남자가 내 친구의 과거를 알게 되면 당장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갈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남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거야.”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강민지는 장성우를 생각했다. 그도 자신이 여러 남자와 만나 여러 남자와 몸을 섞은 과거를 알게 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갈까? 아냐, 그는 그런 남자가 절대 아닐 거야.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불안해지는 마음을 속일 수는 없었다.

  어쨌든 남녀관계에 있어서 흠이 되는 과거는 무조건 숨겨야 한다는 것을 주위의 간접경험에 의해 강민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배 위로 가져갔다.

  무척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강민지는 임신 중이었다. 그녀가 임신하게 된 걸 안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이상하게도 싫어하던 신 김치와 시원한 굴이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엔 생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원래 생리가 들쭉날쭉해 한 달 건너뛰는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강민지는 자가검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국에서 구입한 임신진단기구가 반응하는 데는 15분이 걸렸다. 그녀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그것을 바라보며 15분 동안 마음을 졸였다. 지금 임신을 해서는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양성반응이었다. 내가 임신을? 아……, 그녀는 당혹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뱃속의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년이 임신을 했다고, 체면을 매우 중요시하는 아버지가 큰 역정을 내겠지만, 강민지는 추호도 뱃속의 아이를 지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 성우 씨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처음엔 장성우도 자신처럼 기뻐하기보다는 당혹스러워 하겠지만 뱃속의 아이를 지우는 것만큼은 반대하리라고 강민지는 믿었다.

  그러나 강민지는 병원에 가서 완전한 사실임을 확인할 때까지는 당분간 장성우에게 입을 다물고 있을 예정이었다. 자가검사로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려고 했었으나, 그녀는 왠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지금까지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남들처럼 토악질을 할 정도로 입덧이 심하지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친구보고 그 남자를 만나지 말라고 해야 되겠어.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이경아는 강민지를 쳐다보지 않은 채, 질문이라기보다는 혼잣말처럼 힘없이 중얼거렸다.

  “…….”

  강민지는 ‘그래’ 또는 ‘아니’ 라는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이경아의 지금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그녀는 웬일인지 과거를 끝까지 숨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 음식점을 나오면서 이경아는 핸드백에서 허겁지겁 일회용 휴지를 꺼냈다. 그때 명함 한 장이 땅에 떨어지는 게 강민지의 눈에 띄었다.

  “화장실에 좀 갔다 올게.”

  이경아가 핸드백을 강민지에게 맡기고 주차장 끄트머리에 있는 뒷간이라고 쓴 화장실로 급히 걸어갔다. 그녀는 땅에 떨어진 명함을 못 본 게 틀림없었다.

  땅에 떨어진 명함은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어 강민지에게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녀는 이경아에게 중요한 명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뛰다시피 하며 쫓아가 명함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매우 낯익은 명함이었다.

  손에 주워 든 명함을 확인하는 순간, 강민지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면서 스스로 다리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장성우의 명함이었던 것이다.

  성우 씨 명함을 왜 경아가 가지고 있지? 그렇다면……. 믿고 싶지 않지만, 강민지는 애써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식사를 하면서 이경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껴 맞추어 모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이 기다렸지? 갑자기 배가 아파서…….”

  강민지는 코앞까지 다가온 이경아를 못 본 채 계속해서 장성우의 명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명함, 어디서 난 거니?”

  이경아에게 명함을 건네주며 묻는 강민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았으며, 얼굴은 자신도 모르게 일그러져 있었다.

  “명함? 아, 이 명함……. 아무것도 아냐.”

  강민지가 건네주는 명함을 받아 든 이경아는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 대수롭지 않게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명함을 핸드백 속에 집어넣었다. 그런 그녀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룸살롱에 다녔다는 네 친구가, 아니 네가 맞선 볼 때 만난 남자잖아’ 라고, 강민지는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침과 함께 꿀꺽 목구멍 속으로 삼켜 버렸다.

  물어 봤자 어차피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고 해서 강민지는 명함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인데 굳이 물을 필요가 있다면 장성우에게 묻는 편이 더 나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면서도 강민지는 장성우가 그 동안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강민지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담배연기를 한 모금 가슴 속 깊이 빨아들였다. 당장 장성우에게 달려가 화풀이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만 같았다.


  양수리 성솟대에서 나온 이경아는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걸 느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처지를 그렇게나마 친구에게 털어놓았다는 게 위로가 된 듯했다.

  이경아는 강민지와 헤어진 후 집으로 가지 않고 예전에 룸살롱에 다닐 때 함께 기거했던 친구의 집으로 갔다. 그 친구의 집은 성남시 수진동에 있었다. 친구에게는 이미 며칠 동안 머물러 있어야겠다고 전화를 해둔 터였다.

  그러나 이경아는 친구가 매우 의아해 하며 ‘무슨 일이 있냐’고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사실대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 적당한 핑계거리를 만들어 둘러대었다. 비록 룸살롱에서 사귄 좋은 친구였지만 남보다 입이 가볍다는 결점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룸살롱의 호스테스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는 강민지의 손이 가늘게 떨었다. 이경아와 헤어지고 곧장 장성우의 원룸으로 달려온 그녀였다. 몇 번 계속해서 초인종을 누르고 귀를 기울였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당연히 집에 있어서 초인종을 누르면 그가 문을 열어 주면서 방긋 웃을 줄 알았는데, 그녀의 기분은 아까 이경아가 떨어뜨린 명함의 이름을 확인할 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강민지는 핸드폰 폴더를 열고 1번을 눌렀다. 그의 핸드폰 번호가 입력된 번호였다. 그런데 한 번도 꺼져 있던 적이 없었던 그의 핸드폰이 지금은 꺼져 있었다. 참으로 설사가상이었다.

  강민지는 그냥 돌아가고 싶지 않아 장성우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으로 현관 앞에서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 분 동안……. 그러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무턱대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모한 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장성우가 혹시 금방 모습을 나타낼지 모르므로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려 보겠다는 생각으로 강민지는 핸드백에서 휴지를 꺼내 계단에 깔고 앉았다. 그렇게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강민지의 눈에 현관 문고리에 붙은 광고 스티커가 확 눈에 들어왔다. ‘망우열쇠…….’

  강민지는 벌떡 몸을 일으켜 현관문으로 다가가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망우열쇠 가게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집주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단 침입한 것에 대해 장성우가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직 그를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를 만나 이경아와 맞선 본 사실을 추궁해야 한다는 일념이 머릿속에 가득 찬 지금의 그녀로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처지가 못되었다.

  망우열쇠 가게의 남자는 일이 없었던지 강민지가 전화를 끊고 10분도 안되어 소리가 요란한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했다.

  “열쇠를 잊어 버리셨습니까?”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 계단으로 올라온 남자가 계단에 휴지를 깔고 청승맞게 앉아 있는 강민지를 발견하고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물었다. 그 질문 내면에는 의뢰인이 집주인인지 아닌지를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확인하는 심리적 배경이 깔려 있었다. 남의 집 문을 열어 준다는 일이라는 게 만약 잘못된 일이라도 발생할 경우에는 똥물을 뒤집어써야 하므로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자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사실은 제 집이 아니고 남자 친구 집인데 열쇠를 깜박 잊고 가져오질 않았어요. 다시 갖다 올 수도 없고…….”

  강민지는 솔직히 말했다. 우리 집인데 열쇠를 잊어 버렸다고 거짓말을 해서 남자의 의심을 사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사실 그대로 얘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열쇠를 깜박 잊고 가져오질 않았다는 거짓말은 할 수 없는 노릇이고.

  “그 남자 친구 되시는 분이 멀리 가셨나 보죠?”

  남자의 얼굴에 약간 의심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강민지는 엿볼 수 있었다.

  “바쁜 일이 생겨서 늦는다고 저보고 먼저 가 있으라고 했는데, 제가 가지고 있던 열쇠를 깜박 잊고 가져오지 않는 바람에…….”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제야 남자가 허리를 굽혀 날이 얇고 긴 쇠붙이를 가방에서 꺼내 열쇠 구멍으로 집어넣고 좌우로 서너 번 비트니까 몇 초도 안되어 철커덕 하고 가벼운 금속성 소리와 함께 잠금 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어머…….”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남자의 능숙한 솜씨에 놀란 강민지가 감탄사를 연발하자 남자가 우쭐해진 목소리로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강민지는 남자에게 수고비를 지불하고 안으로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생선가시가 목구멍에 걸리듯 뭔지 모르는 뭔가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지 느낌뿐이었지만 좋은 느낌은 절대 아니었다.

  현관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자 오랫동안 남자 혼자 기거한 증거나 되는 듯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강민지를 맞이했다. 실내가 어두워 그녀는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고 두리번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실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인 재떨이 옆에 벗어놓은 옷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고, 주방 싱크대에는 며칠 째 설거지를 하지 않은 듯 그릇들이 음식물 찌꺼기를 묻힌 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게으르긴……. 강민지는 장성우의 게으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침대가 놓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 커튼을 열어제치는 순간 그녀는 앗, 하고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마치 혼을 빼놓은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동안 꼼짝하지 않은 채 우뚝 서 있었다. 온통 이경아의 사진들로 도배되다시피 되어 있는 한쪽 벽면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형언할 수 없는 좌절감에 휘말렸다.

  강민지는 가슴에 화살이 날아와 꽂힌 듯한 날카로운 고통을 느끼며 몸 속의 핏줄들이, 온몸의 세포들이 한꺼번에 터져 산산이 조각날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일까? 그녀는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란 것이 지금 이걸 두고 한 말인 듯 싶었다.

  이경아와 헤어지고 곧장 이곳으로 올 때만 해도 설마 했는데, 강민지는 자신이 제일 두려워하던 것이 현실로 나타나자 가슴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무너지듯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탄 것처럼 머릿속이 빙글빙글 어지럽게 돌아가며 토할 것 같은 구토가 올라왔다.

  무엇 하나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강민지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한 시간 가량 넋을 잃고 앉아 있었지만, 그때까지 장성우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조금이나마 안정을 되찾은 강민지는 악몽에서 깨어나듯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는 긴 한숨을 내뱉고 나서 입술을 깨물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가슴이 떨리지 않았고, 다리도 후들거리지 않았고, 머릿속이 빙글빙글 어지럽게 돌아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화살이 날아와 가슴에 꽂힌 듯한 날카로운 고통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고, 그녀는 너무 아파 신음소리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강민지는 한쪽 벽면에 온통 달라붙어 웃음을 짓고 있는 이경아의 사진들을 발기발기 찢어 내팽개치고 싶었지만 분노를 애써 삭이며 몸을 일으켰다.

  강민지는 당장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몸을 간신히 지탱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현관문을 닫으면서, 계단을 내려오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는 어떻게 해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직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장성우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이 그거였다. 그의 배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자신만 까마득하게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녀의 마음은 끝없이 분노에 휩싸였다.

  집에 도착한 강민지는 이경아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수화기를 들고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통화 중이었다.

  누구와 통화 중일까? 혹시 성우 씨하고? 강민지는 가슴속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물을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가 냉장고에서 생수 병을 꺼내 유리잔에 채웠다. 그녀는 뜨겁게 타오르는 가슴속의 불을 끄기 위해 물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는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나 가슴속의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그녀에게 고통만 줄뿐이었다.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온 강민지는 수화기를 들고 재발신 버튼을 눌렀다. 이번엔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자 이경아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막상 이경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강민지는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고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세요?”

  강민지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자 이경아의 목소리가 평상시보다 두 배나 높게 올라갔다.

  “나야, 민지.”

  강민지는 어렵게 입술을 떼었다.

  “민지?”

  “응. 잘 들어갔나 걱정이 돼서 전화했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

  “그럼, 나중에 보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강민지가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 통화를 끝내려는 이경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 경아야!”

  이경아가 핸드폰 폴더를 닫으려고 할 때 강민지는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왜?”

  강민지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경아는 핸드폰을 다시 귀에 갖다 댔다.

  “아까 네가 가지고 있던 명함……”

  “그 명함, 왜?”

  “그 남자, 너하고 어떤 사이니?”

  “잘 아는 사이야. 그런데 왜?”

  그냥 어떻게 하다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라고,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이경아의 입에선 준비하지도 않은 엉뚱한 말이 불쑥 새어나왔다.

  “잘 아는 사이라고?”

  “응. 나를 무척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차를 사준 사람이기도 하고.”

  이미 입에서 나온 대로 내뱉은 이경아였기 때문에 끝까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거짓말이었지만, 그 거짓말 때문에 강민지의 가슴이 갈갈이 찢겨져 붉은 피를 토해낸다는 것을 모르는 채, 아무것도.

  

  그 차를 그가 사준 거라고? 그렇다면 지난번 사업자금이 필요하다고 할 때 내가 빌려준 돈으로? 그 동안 자신을 사랑한다는 장성우의 말은 새빨간 거짓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대했던 그의 모든 행동도 진심이 아니었고 계획적이었던 것이다.

  “죽여버리고 말 거야!”

  이경아와 통화를 끝내고 던지듯이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으면서 강민지는 잔뜩 앙심 품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순간 그녀는 정말 장성우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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