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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와 삼족오 그리고 삼신상제의 관계

김현갑 |2007.05.31 23:32
조회 805 |추천 0

금오(金烏) ·준오(踆烏)라고도 한다. 태양에 까마귀가 산다는 신앙은 《초사(楚辭)》 《산해경(山海經)》에서 볼 수 있는데, 세 발 달린 까마귀 설화는 전한(前漢) 시대부터 시작된 것 같다. 고유(高誘)가 쓴 《사기(史記)》나 《회남자(淮南子)》의 주석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태양이 하늘을 건너가기 때문에 조류와 관련시킨 얘기는 이집트나 한국의 고구려 벽화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한(漢)나라 때의 책인 《춘추원명포(春秋元命包)》는 태양이 양(陽)이고, 3이 양수(陽數)이므로 태양에 사는 까마귀의 발이 세 개라고 풀이하고 있다




↑ 삼족오 그림 


고대로 부터 북방민족과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의 대권은 봉황과 용과의 전쟁으로 기술된다.
배달민족(고조선) 이후, 아니 고구려의 광개토대제 이후로는 우리민족의 상징인 하늘 새인 봉황이 용에게 눌리고 말았다. 바로 동이족이 한족에 밀리면서 부터이다.
이때부터 봉황이 용보다 낮은 단계의 상징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전에는 한족들이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봉황의 문양을 업신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족은 동이족의 상징동물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해 용을 황제의 상징으로 하면서, 봉황은 황후의 상징 문양으로 사용한 것이다. 용맹하고 굽힐 줄 모르는 동이족의 상징을 여성화시킨 것이다. 역사의 조작이 어이 이것 하나뿐이겠냐?

상징의 높고 낮음은 특정 토템을 가진 집단의 흥망성쇠와 함께 한다. 뱀을 토템으로 하는 집단이 권력을 쟁취하게 되면 낮은 단계 뱀에서 상상의 동물인 용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무엇보다 봉황 위에 군림하는 영물로 만들은 것이다. 우리의 봉황은 용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잘못임을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상징 문장도 봉황을 쓰고 있다. 두 마리의 봉황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의 문장을 대통령이 수여하는 상장이나 상패 혹은 휘장 등에 새겨 넣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용이 아니라 봉황을 상징 문장으로 삼은 데는 특정 종교단체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종교도 한 몫 한 것 아닌가 싶다. 용과 드래건을 동일시하여 반대하는 바람에 정부에서 봉황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1998년 대한민국 국새제작 당시에도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께서 “용은 사탄 아닌가요?”라는 한마디에 봉황 인뉴(손잡이)로 급선회했다는 후문이 나돌기도 했다.)

봉황은  동이족의 상징인 삼족오에서 출발한 영물이다. 중국 사학자 왕따이유(王大有)의 <용봉문화의 원류(龍鳳文化源流)>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용봉문화(龍鳳文化)에 대해 용과 봉 각각의 기원 용봉문화의 형성과, 전개과정 용봉문화의 전파에까지 가장 체계적이고 폭넓게 연구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왕따이유는 이 책에서 봉황은 동이족의 상징 토템이었으며, 그 원조는 삼족오라고 설명하고 있다. 삼족오가 분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봉황, 주작 등의 여러 모습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삼족오는 천손민족의 상징

삼족오를 까마귀로 보는 것은 우리 문화의 상징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 결과다. 삼족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고, 검은 새는 무조건 까마귀로 본 것은 분명 잘못인 것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한 민족의 고유한 전통문화 속에는 그 민족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상징의 숲’이 있다. 거기에는 과학적 접근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깊은 의미가 심연에 내재해있다”고 밝히고 있다. 상징은 상징으로 이해해야지 현재의 과학기준으로 상징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럽의 독일이나 신성로마제국, 러시아에서는 머리가 둘 달린 쌍두 독수리를 상징으로 삼았으나 누구도 기형독수리로 보지 않는다. 삼족오 역시 ‘세발달린 기형 까마귀’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우주관을 반영한 상징물인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하늘로부터 시작된 천손민족(天孫民族)이다. 천신(天神)을 숭배해온 한민족은 하늘을 상징할 수 있는 태양을 그 대상으로 했다. 태양 속에는 ‘세발 달린 검은 새’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태양 속에 살고 있는 ‘세발 달린 검은 새’는 현조(玄鳥), 혹은 삼족오(三足烏)라 불렸는데 이는 태양조(太陽鳥)의 명칭이다. 태양조가 ‘세발 달린 까마귀’로 잘못 알려진 것은 ‘오(烏)’를 까마귀로 해석한데서 생긴 오류이다.

‘오(烏)’는 검은 색을 지칭하는 글자이기도 하다. 즉 삼족오는 ‘세발 달린 까마귀’로 보기보다는 ‘세발 달린 검은 새’로 봐야한다. 모든 닭이 금계가 아니듯 검은 새라고 해서 모두 까마귀가 아니다. 사전에서는 삼족오에 대해 ‘태양을 다르게 가리키는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족오는 그 자체가 태양인 것이다. 삼족오의 가장 완벽한 원형은 고구려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인들은 태양 속에 산다는 태양조 三足烏를 각저총(角抵塚), 오회분(五회墳) 4호묘, 덕화리 1, 2호분에 벽화로 표현, 하늘민족임을 강조하고 있다.

고구려 문화 유물에는 태양(해) 안에 ‘세발 달린 검은 새’를 넣은 그림이나 조각이 여러 점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진파리 7호 무덤에서 나온 ‘해뚫음 무늬 금동장식품(日光透彫金銅裝飾品)’을 들 수 있다. 이는 왕의 장식품으로 추정되는데 중앙의 구슬을 박은 두 겹의 태양 동그라미 속에 황금빛 ‘세발 달린 검은 새’를 불타오르듯 절묘하게 넣었다.

물론 중국에도 태양조는 등장한다. 중국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양오(陽烏: 태양조)’가 그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때의 ‘태양조’는 모두 ‘두발(二足)’ 달린 새다. ‘세발달린 검은 새(三足烏)’는 오직 동이족과 그 후예들에게만 있었다.

‘세발 태양신(太陽神)’에 대해 박은식(朴殷植)은 고조선의 국교는 삼신교(三神敎·神敎)라고 하면서, 3신은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다. 태양조는 한국인의 우주관, 생명관의 반영이기도 했다. 태양의 둥근 형태는 ○형으로 온 누리를 뜻하고, ‘1’이라는 새의 한 몸에 3개의 다리를 지님으로써 지혜와 생명의 끝없는 순리를 뜻하고 있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왜 태양 속에 새가 산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물상(物像)적 근거는 바로 태양의 흑점이라는 주장이 있다. 흑점은 태양의 광구(光球)에 나타나는 검은 반점으로 이 흑점의 움직임에 따라 지구 환경은 매우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 흑점은 고대인들에게 마치 ‘해 속에 사는 새’처럼 보였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태양을 상징하는 청동거울을 만들고, 그 속에는 태양 속에 사는 삼족오를 새겼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에 왕권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세발 달린 검은 새, 즉 삼족오(三足烏)가 있었다. 현재 일본축구협회에서 삼족오를 상징물로 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동이족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삼족오를 쓴다는 이유로 새로운 국새의 상징으로 삼족오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은 30년 때문에 3,000년 역사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조선 문명의 흔적인 삼족오가 북미인디언이나 마야문명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왕따이유의 연구에 따르면 동이족(東夷族)은 서쪽으로는 바이칼호, 동쪽으로는 쿠릴열도, 남쪽으로는 중국의 창청(長城), 북쪽으로는 대싱안링(大興安領)까지 영역을 확장했으며, 일부는 베링해협을 지나 북미와 마야 인디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북미 인디언이나, 마야족의 벽화에는 태양조가 어김없이 표현되어 있어 문화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족오(三足烏)는 다리가 셋이고, 날개가 둘이며, 머리에 뿔이 하나 있는 까마귀다. 늘 붉은 해 안에 있기 때문에 ‘일중(日中)삼족오’라고도 하는데, 해를 상징하는 새다. 삼족오는 북방 민족의 침략을 받아 남진을 해야 했던 한족(漢族)에게는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새였다.
 
전쟁을 하면 많은 사상자가 났고, 그 후 처리는 하늘에 까마귀떼가 나타나 시체 처리를 하는 것을 본 중국인들은 북방민족의 국조인 까마귀를 불질의 징조로 생각했었고, 까마귀를 보면 의례이 북방민족을 생각이 났으니 까마귀를 너무나 싫어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그들 중국인들이 얼마나 북방민족이  두려웠으면 만리장성을 쌓았겠는가?
 
슬프게도 우리가  오랜 시간 전에 대국인 중국(당나라)의 힘을 빌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부터 북방민족이 가진 위대한 포부는 자연스럽게 좁디좁은 반도 내에 안정내지 안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위대한 북방민족의 끓는 피는 좁은 반도 안에서 중상과 모략으로 몇 천년을 삭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게 한(恨)이 되지 않겠는가?
(말로만 대한민국이라고 하지.. 슬프지 않나..과연 삼국을 통일했다는 김춘추나 김유신을 위인으로 생각을 해야겠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대국인 중국의 눈치를 봐야 했고, 그들의 문화와 생활 방식과 교육을 따랐다. 하물며 이 나라 왕을 대국의 허락을 받아야 왕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폐위도 시키기도 하였다. 이렇게 중국을 동경하는 마음이 몇 천년이 흐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대주의가 우리 사상에 일상생활에 오랫동안 남아서 오래 전 부터 그들이 꿈꾼 대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글을 읽는 친구들이라도 옛날 우리 북방민족의 조상들이 삼족오를 받들던 정신과 잃어버렸던 수 천년의 우리의 과거를 되찾아,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힘으로 배달민족의 땅도 다시 찾고 (다물정신)  찔기디 찔긴 사대주의 정신도 타파하기도 하여야 겠다.)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의 핏줄인 북방민족의 국조를 불질의 징조라 생각하고 까마귀 울음소리를 듣기 싫어했다. 아니  까마귀를 보는 조차 싫어하게 되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새를 너무  멀리해왔고, 급기야는 삼족오의 존재와 의미마저 잊고 말았다. 우리 정신에서 잃어버린 삼족오를 되찾아 대국으로 부터 정신적 독립부터 해야겠다.

고대 북방 민족들의 장례는 높은 산, 바위에 그 시신을 올려놓아 까마귀에게 자기 몸을 마껴서 그 시신이 까마귀의 먹이가 되도록 하였다. 자기의 육신이 먹이가 되어 그 까마귀와 하나가 되어 까마귀 날개를 통해 같이 배달나라 위로 날고, 까마귀의 눈으로 넓디넓은 대륙을 같이 본 것이다.  죽어서도  그들은 자유로 왔다. 우리는 북방민족 조상님들의 높은 정신세계를 가진 위대한 후손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벽화들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로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또한 주몽이 동부여를 탈출할 때 가장 충실한 신하로서 오이가 있었고, 신라 관품에는 대오(大烏)·소오(小烏) 등 까마귀 오(烏)자가 들어간 이름이 있었으며, 신라 아달라왕 때 일본 열도로 건너가 소국의 왕과 왕비가 된 연오랑과 세오녀는 까마귀로 상징된 신이다.

우리 민족은 하늘의 피를 받은 선택된 집단이며 빛을 신령스럽게 여겼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 부여 건국신화의 동명,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야의 김수로왕 등은 하늘과 해의 자식임을 자임했는데, 하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삼족오였다. 그리고 다리가 셋, 날개가 둘, 뿔이 하나인 삼족오는 ‘3’에서 ‘1’로, 다시 ‘1’에서 ‘3’으로 변화 순환하는 우리 식의 변증법(‘3’의 논리)을 표현한다.

삼족오를 흉조로 보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대신에 용이나 거북은 중국 문화의 영향으로 신성시된 동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새는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우주 질서를 표현하는 신성한 동물로 만드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삼족오를 우리의 상징으로 되찾아 와야 한다.

三足烏, 즉 풀이하면 "세발(三足)달린 새(烏)"이다.
고대의 우리민족은 세 발 달린 새가 태양 속에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  새를 "신(神)의 사자(使者)"로 귀히 여겼다. 또한 한님이나 해신을 상징하는 동물로 단군의 지팡이 머리에 새를 조각함으로써 단군이 "신의 사자"임을 나타내었다.
 
중국신화에서는 새를 "현조(玄鳥)"로 북방을 지키는 새로 인식한다.
바로 오행사상에서 나온 것인데, 북방을 검정색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한 북방은 오행(五行)에서 수(水)를 차지하고 있고, 이 ‘水’의 의미는 "탄생과 시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신의 전령인 성스런 신물(神物)에 왜 발이 세 개가 달린 걸까?
이는 우리 고유의 삼사상(三思想)에 유래한다고 보인다.

바로 삼신을 일컫는 것으로 완성의 숫자로 삼(三)을 숭상한 것이다.
발이 두 개인 신의 전령 새는 단순히 천(天)과 지(地) 즉, 신의 뜻만을 전달하는 의미이지만, 이 불완성체의 까마귀에 인간을 상징하는 발 하나를 더 붙여 "세발달린 새"가 되어,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하는 완성체적인 "신의 전령"이 된 것이다.
 
발(足)이 세 개인 것은 이 삼족오 말고도, "삼족정(三足鼎)"라는 것이 단군 조선의 유물로 나타나고 있다. "세발달린 솥"은 단군왕검시대의 제기(祭器)로 국가를 다스리는 이념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국가 치도(治道)의 이념을 상징한 것이 "세발달린 솥"이라면, 군왕 즉 단군왕검을 상징한 왕가의 문양이 바로 "세발달린 새"인 것이다.
 
"삼족오"는 태양에 살면서 태양의 불을 먹고 사는 태양의 전령으로 전설에 나타나는데, 태양은 바로 하늘 혹은 밝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더 올라가면, 환(桓)이 되는 것이고, 배달(밝달)이 되는 것이다.
 
천지인(天地人)이라는 만물의 완성체를 가장 완전한 것으로 인식하여, 삼신사상이 유래 되었는데, 단군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삼사상에 입각하여, 국가의 기틀을 삼조선으로 삼아, 일명 진한, 마한, 번한으로 칭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족(天孫族)임을 자처하던 고대의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이 "삼족오"를 숭상의 대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었던 것이다.


 
한국의 삼족오

■ 고구려 벽화
고구려 벽화에는 풍속화, 초상화, 사신도 등과 함께 성신도(星辰圖:천체의 그림)가 많다. 성신도에는 해와 달, 별자리 등이 그려져 있고 해 속에는 까마귀가 그려져 있다. 이 새가 삼족오이다.

해 속의 새는 달 속의 개구리(金蛙, 혹은 두꺼비)와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이 새는 검은 색으로 되어 있고 다리가 셋이다. 이 세 발 달린 검은 새는 해의 상징으로 양(陽)의 뜻이고 개구리로 상징되는 달은 음(陰)의 뜻이다. 즉, 음양론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삼족오는 고구려 쌍영총, 각저총, 덕흥리 1호, 2호 고분, 개마총(鎧馬塚), 강서중묘, 천왕지신총, 장천 1호분, 무용총, 약수리 벽화고분, 그리고 다섯무덤(오회분) 4호묘, 5호묘 등에 그려져 있다.
                                              
다섯 무덤 5호묘은 널길(묘도:墓道), 이음길, 널방(묘실:墓室, 현실:玄室)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널방에는 사신도를 비롯해 많은 벽화가 있다.
동, 서, 남, 북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그려져 있다. 들보란 건물의 칸과 칸 사이에 있는 두 기둥 위를 건너지르는 나무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재목을 말한다. 5호 무덤에서는 네 면의 벽 위에 약간 밖으로 내어 쌓은 부분이 바로 들보에 해당된다. 이 들보 위에는 서로 얽힌 용의 그림이 이어져 있다. 이 용들은 하늘 세계를 받치고 있는 것으로 천상과 천하를 가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들보의 각 귀퉁이에 삼각형의 돌판을 올려서 1단을 만들었는데, 한 변의 길이를 정확히 3분의 1로 나누어 삼각돌판을 올려 모줄임을 했기 때문에 네 귀퉁이에 4면이 나오고, 나머지 벽면과 같은 면에 4면이 나와 모두 8면이 된다(1단).
 
다시 이번에는 벽면 한가운데를 기점으로 각 귀퉁이에 1단보다 훨씬 큰 삼각형 돌판을 얹어 모줄임을 하여 면적을 좁힌 뒤(2단), 그 위에 커다란 천장돌을 올리는 절묘한 건축술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1단은 8각이고 2단은 4각인 특이한 모양을 이룬다. 4호 무덤은 1단과 2단이 모두 4각이란 점에서 차이가 난다. 모서리를 줄였다고 해서 이러한 건축양식을 모줄임(말각조정 : 抹角藻井)이라고 한다.
 
동북쪽(청룡과 현무의 귀퉁이)에 나무처럼 생긴 식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날아오르는 해신과 달신이 있고 두 다리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채 앞뒤로 힘 있게 펼쳐졌으며, 오색의 굵은 꼬리는 아래에서 위로 탄력 있게 휘어 오르고 있다.
 
해신(복희)은 머리에 삼족오가 들어 있는 해를 이고 있으며, 달신(여왜, 여와)은 달을 이고 있으나 달 속의 두꺼비는 사라지고 없다. 그 위쪽 2단에 용을 타고 춤을 추는 신선과 피리를 부는 신선이 있는데, 이들 뒤로 북두칠성과 삼족오가 보인다.

‘오골계(烏骨鷄)’, ‘오죽(烏竹)’, ‘오석(烏石)’, ‘오사(烏蛇)’, ‘오옥(烏玉)’, ‘오수정(烏水晶)’, ‘오동(烏銅)’, ‘오금(烏金)’ 등을 이야기할 때 ‘오(烏)’는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힌다. ‘삼족오(三足烏)’의 ‘오(烏)’도 마찬가지다.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어야 삼족오가 지닌 상징성을 제대로 밝힐 수 있다. 봉황의 전신인 삼족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랍니다.
(퍼온 글입니다) 고대로 부터 북방민족과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의 대권은 봉황과 용과의 전쟁으로 기술된다.
배달민족(고조선) 이후, 아니 고구려의 광개토대제 이후로는 우리민족의 상징인 하늘 새인 봉황이 용에게 눌리고 말았다. 바로 동이족이 한족에 밀리면서 부터이다.
이때부터 봉황이 용보다 낮은 단계의 상징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전에는 한족들이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봉황의 문양을 업신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족은 동이족의 상징동물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해 용을 황제의 상징으로 하면서, 봉황은 황후의 상징 문양으로 사용한 것이다. 용맹하고 굽힐 줄 모르는 동이족의 상징을 여성화시킨 것이다. 역사의 조작이 어이 이것 하나뿐이겠냐?

상징의 높고 낮음은 특정 토템을 가진 집단의 흥망성쇠와 함께 한다. 뱀을 토템으로 하는 집단이 권력을 쟁취하게 되면 낮은 단계 뱀에서 상상의 동물인 용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무엇보다 봉황 위에 군림하는 영물로 만들은 것이다. 우리의 봉황은 용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잘못임을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상징 문장도 봉황을 쓰고 있다. 두 마리의 봉황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의 문장을 대통령이 수여하는 상장이나 상패 혹은 휘장 등에 새겨 넣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용이 아니라 봉황을 상징 문장으로 삼은 데는 특정 종교단체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종교도 한 몫 한 것 아닌가 싶다. 용과 드래건을 동일시하여 반대하는 바람에 정부에서 봉황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1998년 대한민국 국새제작 당시에도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께서 “용은 사탄 아닌가요?”라는 한마디에 봉황 인뉴(손잡이)로 급선회했다는 후문이 나돌기도 했다.)

봉황은  동이족의 상징인 삼족오에서 출발한 영물이다. 중국 사학자 왕따이유(王大有)의 <용봉문화의 원류(龍鳳文化源流)>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용봉문화(龍鳳文化)에 대해 용과 봉 각각의 기원 용봉문화의 형성과, 전개과정 용봉문화의 전파에까지 가장 체계적이고 폭넓게 연구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왕따이유는 이 책에서 봉황은 동이족의 상징 토템이었으며, 그 원조는 삼족오라고 설명하고 있다. 삼족오가 분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봉황, 주작 등의 여러 모습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삼족오는 천손민족의 상징

삼족오를 까마귀로 보는 것은 우리 문화의 상징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 결과다. 삼족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고, 검은 새는 무조건 까마귀로 본 것은 분명 잘못인 것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한 민족의 고유한 전통문화 속에는 그 민족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상징의 숲’이 있다. 거기에는 과학적 접근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깊은 의미가 심연에 내재해있다”고 밝히고 있다. 상징은 상징으로 이해해야지 현재의 과학기준으로 상징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럽의 독일이나 신성로마제국, 러시아에서는 머리가 둘 달린 쌍두 독수리를 상징으로 삼았으나 누구도 기형독수리로 보지 않는다. 삼족오 역시 ‘세발달린 기형 까마귀’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우주관을 반영한 상징물인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하늘로부터 시작된 천손민족(天孫民族)이다. 천신(天神)을 숭배해온 한민족은 하늘을 상징할 수 있는 태양을 그 대상으로 했다. 태양 속에는 ‘세발 달린 검은 새’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태양 속에 살고 있는 ‘세발 달린 검은 새’는 현조(玄鳥), 혹은 삼족오(三足烏)라 불렸는데 이는 태양조(太陽鳥)의 명칭이다. 태양조가 ‘세발 달린 까마귀’로 잘못 알려진 것은 ‘오(烏)’를 까마귀로 해석한데서 생긴 오류이다.

‘오(烏)’는 검은 색을 지칭하는 글자이기도 하다. 즉 삼족오는 ‘세발 달린 까마귀’로 보기보다는 ‘세발 달린 검은 새’로 봐야한다. 모든 닭이 금계가 아니듯 검은 새라고 해서 모두 까마귀가 아니다. 사전에서는 삼족오에 대해 ‘태양을 다르게 가리키는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족오는 그 자체가 태양인 것이다. 삼족오의 가장 완벽한 원형은 고구려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인들은 태양 속에 산다는 태양조 三足烏를 각저총(角抵塚), 오회분(五회墳) 4호묘, 덕화리 1, 2호분에 벽화로 표현, 하늘민족임을 강조하고 있다.

고구려 문화 유물에는 태양(해) 안에 ‘세발 달린 검은 새’를 넣은 그림이나 조각이 여러 점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진파리 7호 무덤에서 나온 ‘해뚫음 무늬 금동장식품(日光透彫金銅裝飾品)’을 들 수 있다. 이는 왕의 장식품으로 추정되는데 중앙의 구슬을 박은 두 겹의 태양 동그라미 속에 황금빛 ‘세발 달린 검은 새’를 불타오르듯 절묘하게 넣었다.

물론 중국에도 태양조는 등장한다. 중국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양오(陽烏: 태양조)’가 그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때의 ‘태양조’는 모두 ‘두발(二足)’ 달린 새다. ‘세발달린 검은 새(三足烏)’는 오직 동이족과 그 후예들에게만 있었다.

‘세발 태양신(太陽神)’에 대해 박은식(朴殷植)은 고조선의 국교는 삼신교(三神敎·神敎)라고 하면서, 3신은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다. 태양조는 한국인의 우주관, 생명관의 반영이기도 했다. 태양의 둥근 형태는 ○형으로 온 누리를 뜻하고, ‘1’이라는 새의 한 몸에 3개의 다리를 지님으로써 지혜와 생명의 끝없는 순리를 뜻하고 있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왜 태양 속에 새가 산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물상(物像)적 근거는 바로 태양의 흑점이라는 주장이 있다. 흑점은 태양의 광구(光球)에 나타나는 검은 반점으로 이 흑점의 움직임에 따라 지구 환경은 매우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 흑점은 고대인들에게 마치 ‘해 속에 사는 새’처럼 보였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태양을 상징하는 청동거울을 만들고, 그 속에는 태양 속에 사는 삼족오를 새겼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에 왕권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세발 달린 검은 새, 즉 삼족오(三足烏)가 있었다. 현재 일본축구협회에서 삼족오를 상징물로 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동이족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삼족오를 쓴다는 이유로 새로운 국새의 상징으로 삼족오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은 30년 때문에 3,000년 역사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조선 문명의 흔적인 삼족오가 북미인디언이나 마야문명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왕따이유의 연구에 따르면 동이족(東夷族)은 서쪽으로는 바이칼호, 동쪽으로는 쿠릴열도, 남쪽으로는 중국의 창청(長城), 북쪽으로는 대싱안링(大興安領)까지 영역을 확장했으며, 일부는 베링해협을 지나 북미와 마야 인디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북미 인디언이나, 마야족의 벽화에는 태양조가 어김없이 표현되어 있어 문화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족오(三足烏)는 다리가 셋이고, 날개가 둘이며, 머리에 뿔이 하나 있는 까마귀다. 늘 붉은 해 안에 있기 때문에 ‘일중(日中)삼족오’라고도 하는데, 해를 상징하는 새다. 삼족오는 북방 민족의 침략을 받아 남진을 해야 했던 한족(漢族)에게는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새였다.
 
전쟁을 하면 많은 사상자가 났고, 그 후 처리는 하늘에 까마귀떼가 나타나 시체 처리를 하는 것을 본 중국인들은 북방민족의 국조인 까마귀를 불질의 징조로 생각했었고, 까마귀를 보면 의례이 북방민족을 생각이 났으니 까마귀를 너무나 싫어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그들 중국인들이 얼마나 북방민족이  두려웠으면 만리장성을 쌓았겠는가?
 
슬프게도 우리가  오랜 시간 전에 대국인 중국(당나라)의 힘을 빌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부터 북방민족이 가진 위대한 포부는 자연스럽게 좁디좁은 반도 내에 안정내지 안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위대한 북방민족의 끓는 피는 좁은 반도 안에서 중상과 모략으로 몇 천년을 삭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게 한(恨)이 되지 않겠는가?
(말로만 대한민국이라고 하지.. 슬프지 않나..과연 삼국을 통일했다는 김춘추나 김유신을 위인으로 생각을 해야겠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대국인 중국의 눈치를 봐야 했고, 그들의 문화와 생활 방식과 교육을 따랐다. 하물며 이 나라 왕을 대국의 허락을 받아야 왕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폐위도 시키기도 하였다. 이렇게 중국을 동경하는 마음이 몇 천년이 흐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대주의가 우리 사상에 일상생활에 오랫동안 남아서 오래 전 부터 그들이 꿈꾼 대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글을 읽는 친구들이라도 옛날 우리 북방민족의 조상들이 삼족오를 받들던 정신과 잃어버렸던 수 천년의 우리의 과거를 되찾아,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힘으로 배달민족의 땅도 다시 찾고 (다물정신)  찔기디 찔긴 사대주의 정신도 타파하기도 하여야 겠다.)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의 핏줄인 북방민족의 국조를 불질의 징조라 생각하고 까마귀 울음소리를 듣기 싫어했다. 아니  까마귀를 보는 조차 싫어하게 되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새를 너무  멀리해왔고, 급기야는 삼족오의 존재와 의미마저 잊고 말았다. 우리 정신에서 잃어버린 삼족오를 되찾아 대국으로 부터 정신적 독립부터 해야겠다.

고대 북방 민족들의 장례는 높은 산, 바위에 그 시신을 올려놓아 까마귀에게 자기 몸을 마껴서 그 시신이 까마귀의 먹이가 되도록 하였다. 자기의 육신이 먹이가 되어 그 까마귀와 하나가 되어 까마귀 날개를 통해 같이 배달나라 위로 날고, 까마귀의 눈으로 넓디넓은 대륙을 같이 본 것이다.  죽어서도  그들은 자유로 왔다. 우리는 북방민족 조상님들의 높은 정신세계를 가진 위대한 후손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벽화들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로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또한 주몽이 동부여를 탈출할 때 가장 충실한 신하로서 오이가 있었고, 신라 관품에는 대오(大烏)·소오(小烏) 등 까마귀 오(烏)자가 들어간 이름이 있었으며, 신라 아달라왕 때 일본 열도로 건너가 소국의 왕과 왕비가 된 연오랑과 세오녀는 까마귀로 상징된 신이다.

우리 민족은 하늘의 피를 받은 선택된 집단이며 빛을 신령스럽게 여겼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 부여 건국신화의 동명,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야의 김수로왕 등은 하늘과 해의 자식임을 자임했는데, 하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삼족오였다. 그리고 다리가 셋, 날개가 둘, 뿔이 하나인 삼족오는 ‘3’에서 ‘1’로, 다시 ‘1’에서 ‘3’으로 변화 순환하는 우리 식의 변증법(‘3’의 논리)을 표현한다.

삼족오를 흉조로 보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대신에 용이나 거북은 중국 문화의 영향으로 신성시된 동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새는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우주 질서를 표현하는 신성한 동물로 만드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삼족오를 우리의 상징으로 되찾아 와야 한다.

三足烏, 즉 풀이하면 "세발(三足)달린 새(烏)"이다.
고대의 우리민족은 세 발 달린 새가 태양 속에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  새를 "신(神)의 사자(使者)"로 귀히 여겼다. 또한 한님이나 해신을 상징하는 동물로 단군의 지팡이 머리에 새를 조각함으로써 단군이 "신의 사자"임을 나타내었다.
 
중국신화에서는 새를 "현조(玄鳥)"로 북방을 지키는 새로 인식한다.
바로 오행사상에서 나온 것인데, 북방을 검정색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한 북방은 오행(五行)에서 수(水)를 차지하고 있고, 이 ‘水’의 의미는 "탄생과 시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신의 전령인 성스런 신물(神物)에 왜 발이 세 개가 달린 걸까?
이는 우리 고유의 삼사상(三思想)에 유래한다고 보인다.

바로 삼신을 일컫는 것으로 완성의 숫자로 삼(三)을 숭상한 것이다.
발이 두 개인 신의 전령 새는 단순히 천(天)과 지(地) 즉, 신의 뜻만을 전달하는 의미이지만, 이 불완성체의 까마귀에 인간을 상징하는 발 하나를 더 붙여 "세발달린 새"가 되어,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하는 완성체적인 "신의 전령"이 된 것이다.
 
발(足)이 세 개인 것은 이 삼족오 말고도, "삼족정(三足鼎)"라는 것이 단군 조선의 유물로 나타나고 있다. "세발달린 솥"은 단군왕검시대의 제기(祭器)로 국가를 다스리는 이념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국가 치도(治道)의 이념을 상징한 것이 "세발달린 솥"이라면, 군왕 즉 단군왕검을 상징한 왕가의 문양이 바로 "세발달린 새"인 것이다.
 
"삼족오"는 태양에 살면서 태양의 불을 먹고 사는 태양의 전령으로 전설에 나타나는데, 태양은 바로 하늘 혹은 밝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더 올라가면, 환(桓)이 되는 것이고, 배달(밝달)이 되는 것이다.
 
천지인(天地人)이라는 만물의 완성체를 가장 완전한 것으로 인식하여, 삼신사상이 유래 되었는데, 단군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삼사상에 입각하여, 국가의 기틀을 삼조선으로 삼아, 일명 진한, 마한, 번한으로 칭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족(天孫族)임을 자처하던 고대의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이 "삼족오"를 숭상의 대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었던 것이다.


 
한국의 삼족오

■ 고구려 벽화
고구려 벽화에는 풍속화, 초상화, 사신도 등과 함께 성신도(星辰圖:천체의 그림)가 많다. 성신도에는 해와 달, 별자리 등이 그려져 있고 해 속에는 까마귀가 그려져 있다. 이 새가 삼족오이다.

해 속의 새는 달 속의 개구리(金蛙, 혹은 두꺼비)와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이 새는 검은 색으로 되어 있고 다리가 셋이다. 이 세 발 달린 검은 새는 해의 상징으로 양(陽)의 뜻이고 개구리로 상징되는 달은 음(陰)의 뜻이다. 즉, 음양론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삼족오는 고구려 쌍영총, 각저총, 덕흥리 1호, 2호 고분, 개마총(鎧馬塚), 강서중묘, 천왕지신총, 장천 1호분, 무용총, 약수리 벽화고분, 그리고 다섯무덤(오회분) 4호묘, 5호묘 등에 그려져 있다.
                                              
다섯 무덤 5호묘은 널길(묘도:墓道), 이음길, 널방(묘실:墓室, 현실:玄室)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널방에는 사신도를 비롯해 많은 벽화가 있다.
동, 서, 남, 북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그려져 있다. 들보란 건물의 칸과 칸 사이에 있는 두 기둥 위를 건너지르는 나무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재목을 말한다. 5호 무덤에서는 네 면의 벽 위에 약간 밖으로 내어 쌓은 부분이 바로 들보에 해당된다. 이 들보 위에는 서로 얽힌 용의 그림이 이어져 있다. 이 용들은 하늘 세계를 받치고 있는 것으로 천상과 천하를 가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들보의 각 귀퉁이에 삼각형의 돌판을 올려서 1단을 만들었는데, 한 변의 길이를 정확히 3분의 1로 나누어 삼각돌판을 올려 모줄임을 했기 때문에 네 귀퉁이에 4면이 나오고, 나머지 벽면과 같은 면에 4면이 나와 모두 8면이 된다(1단).
 
다시 이번에는 벽면 한가운데를 기점으로 각 귀퉁이에 1단보다 훨씬 큰 삼각형 돌판을 얹어 모줄임을 하여 면적을 좁힌 뒤(2단), 그 위에 커다란 천장돌을 올리는 절묘한 건축술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1단은 8각이고 2단은 4각인 특이한 모양을 이룬다. 4호 무덤은 1단과 2단이 모두 4각이란 점에서 차이가 난다. 모서리를 줄였다고 해서 이러한 건축양식을 모줄임(말각조정 : 抹角藻井)이라고 한다.
 
동북쪽(청룡과 현무의 귀퉁이)에 나무처럼 생긴 식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날아오르는 해신과 달신이 있고 두 다리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채 앞뒤로 힘 있게 펼쳐졌으며, 오색의 굵은 꼬리는 아래에서 위로 탄력 있게 휘어 오르고 있다.
 
해신(복희)은 머리에 삼족오가 들어 있는 해를 이고 있으며, 달신(여왜, 여와)은 달을 이고 있으나 달 속의 두꺼비는 사라지고 없다. 그 위쪽 2단에 용을 타고 춤을 추는 신선과 피리를 부는 신선이 있는데, 이들 뒤로 북두칠성과 삼족오가 보인다.

‘오골계(烏骨鷄)’, ‘오죽(烏竹)’, ‘오석(烏石)’, ‘오사(烏蛇)’, ‘오옥(烏玉)’, ‘오수정(烏水晶)’, ‘오동(烏銅)’, ‘오금(烏金)’ 등을 이야기할 때 ‘오(烏)’는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힌다. ‘삼족오(三足烏)’의 ‘오(烏)’도 마찬가지다.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어야 삼족오가 지닌 상징성을 제대로 밝힐 수 있다. 봉황의 전신인 삼족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랍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삼족오는 흉이 아니라고 볼수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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