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스산하게 비가 내려 온몸이 으슬으슬한 날, 오랫만에 운전을 해서 영등포에 마중을 갔다
이런 날에는 벽난로가 들어앉은 바람 한 점 허용치 않는 통나무집에 앉아
Grover Washington Jr.와 Bill Withers의 Just the two of us를 듣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서정주가 나를 키운 8할은 바람이었노라고 말했던가
바람은 남자를 끝없이 붙잡아 이끄는 평생의 삐끼나 다름없는것
나조차도 바람에 이끌려 얼마나 많은 젊은 날을 헤메었던가
그렇더라도 때로는 온몸이 허하여 바람과는 담을 쌓고 싶어지는 날도 더러는 있는것
때론 화려한 조명 아래서 검은색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Just the two of us를 불러보고 싶기도 했다
이땐 뒤에서 섹시하고 이국적인 세명의 코러스가 'just the two of us'를
관능적인 율동과 함께 믹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Just the two of us란 노랜 이렇다할 클라이맥스도 없으면서
묘하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어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오래전에 터보가 '시작'이란 제목으로 번안해서 불렀었는데
그건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얼마전 이수영이 부른것도 마찬가지.
언젠가는 한 공연에서 리아가 부르는 모습을 본적도 있다
무대위엔 지금은 불독맨션으로 활동하는 이한철이 있던 지퍼란 밴드와 함께였는데
그때 리아가 입은 의상은 단연 그날의 압권이었다
그 모습이 어떠했냐면 초난강을 능가하는 발그레한 볼화장에
바비인형에게 줘도 유치하다고 갖다버릴만치 찬란하고 얄딱꾸리한 드레스를 입고
마치 공주와도 같은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미친년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만큼은 그녀를 사랑했다
또 다른 언젠가는 술을 마시고 후배 여자아이와 지하철 막차를 타고
영등포역에 내린 일이 있었다
나는 여자애를 보내고 나니 갑자기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져버린듯 했다
그래서 내가 무얼 했냐면 영등포 밤거리를 하릴없이 배회하다가
한 심야상영관에 들어가 영화 <Wild Wild West>를 본 것이다
그 영화에 Will Smith가 부른 또다른 Just the two of us가 흘러나왔다
그게 전부였다. 다른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냐면 영화가 끝날때까지 내리 잤거든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잠들어있는 내 팔을 누군가 거칠게 흔들었을때
나는 하마터면 그 사람의 골통을 바수어놓을뻔 했다
왜냐면 극장에서 잠들어있을때 누군가가 흔들어 잠을 깨운다는건
정말 기분 더러운 순위 베스트 5위 안에 들 것이 분명하거든
게다가 눈을 떴을때 엔딩크레딧이 흐르고 있다면 더욱 죽고싶은 기분일거야
그런데 제기랄, 내가 눈을 떴을땐 엔딩크레딧마저 끝이 나고
화면이 온통 암흑이었다. 정말 그랬다니까.
슬픈것도 아닌 그런 기분은 정말이지 가능하면 느끼고 싶지가 않아.
그래도 여전히 술을 마시고 밤늦게 혼자 영화관에 가는걸 보면
정말이지 나란 놈은 통 이해가 안간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