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스터리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악의』.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널리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번 작품은 '왜, 어째서' 죽였는지 살인의 동기를 묻는 가해자에 대한 작가 특유의 성찰과 화법이 돋보인다. 등장인물들의 기록을 통해 사건을 전개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악의를 파헤친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히다카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사체를 발견한 사람은 히다카의 젊은 아내와, 친구이자 아동문학작가인 노노구치. 한때 노노구치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가 사건을 맡게 되고, 사건에 대한 노노구치의 수기를 토대로 수사를 하던 중 노노구치가 범인임을 밝혀낸다. 하지만 노노구치는 체포된 뒤에도 왜 친구를 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데...
이 소설은 자기 연민에 빠진 범인 노노구치의 글과, 감정이 배제된 가가 형사의 기록을 번갈아 보여준다. 일찌감치 범인을 알려주는 작가는 범인의 정체보다는 살인의 동기와 범죄의 과정에 더 집중하고 있다. 살인의 동기,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인간의 악의, 허를 찌르는 반전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어우러지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PS. 2006년 발간된 `용의자 X의 헌신`을 소설로 처음 접하면서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알게됐다.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을 보기 전에 미리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서 본 것이지만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책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로는 두 번 째로 접하게 되는 이 번에 읽은 `악의(惡意)`는 `용의자 X`와는 다르긴 하지만 역시 감탄을 절로 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용의자 X`에서는 중년 남성의 멜로와 시체 트릭 그리고 수학자와 공학자의 심리대결을 통해 단순한 추리소설이상의 인간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는데 `악의`에서도 역시 숨겨진 인간내면의 악의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인간심리를 잘 묘사했다.
정통 추리소설의 `누가 그것(범죄)를 저질렀는가?`에 중점을 두는 방식을 탈피해서 `어떻게(HOW), 왜(WHY)`에 포인트를 맞춘 것도 역시 `용의자 X`와 비슷하며 이런 방식이 나는 정말 좋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원래 공대출신이라 그런지 그의 소설에는 공학적 기술을 사용한 트릭이 많이 쓰인다고 하던데 이 소설에서도 역시 그의 그런 면모를 드러내는 듯하다. `용의자 X`에서는 공학자인 `유가와`가 탐정의 역할을 하며 친구인 수학자의 트릭을 밝혀나가며 `악의`에서도 카메라와 컴퓨터 전화를 이용한 트릭이 선보인다.
앞으로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을 더 읽어볼 작정이다.
단 두 편의 소설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면을 알 수는 없겠지만 내 보기에 그는 인간내면에 대한 수준 높은 통찰력을 지녔다고 본다.
그의 소설이 단순한 트릭과 기법에만 치중했다면 이토록 높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나름대로의 인간에 대한 통찰과 연구가 글 속에 묻어 나고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주었기 때문에 인기 추리작가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닐까?
또 한 가지 덧 붙이자면 `용의자 X`에서도 그렇지만 `악의`에서도 소설의 내용 중 어느 한부분 조차도 결말과 트릭에 대한 복선과 힌트가 아닌 것이 없다. 좋은 추리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의문과 의심을 가지게 하며 결말에 대한 힌트를 곧곧에 숨겨두어야 한다.
쉽게 말해 `X+Y는 Z라는 결론이 나오는 데 중간에 X나 Y에 대한 언급도 없이 갑작스레 Z라는 결말을 보여주는 것은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에 미리 복선이나 힌트 암시 등 어떤 단서도 없거나 빈약한 상황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결말은 독자들에게 당혹감만 줄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앞의 두 소설들은 정말 그런 원칙에 충실하며 모든 소설의 내용이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얽혀 있듯이 유기적으로 잘 구성돼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허를 찔리게 만든다. 특히 `악의`에서는 맨처음 나왔던 심리적 트릭을 통해 `용의자 X`의 범인이었던 `수학자`에게 지녔던 것과 비슷하게 범인에 대해서 연민의 정을 자아내게 하는데 이것은 정말 나 스스로도 마지막까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던 최고의 트릭이었다.
`작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독자들을 속이는 장치를 맨처음에 미리 설정해 두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가가 중간에 어떤 부연 설명도 없이 독자로 하여금 은연중에 그런 마음이 들도록 심리적 장치를 부여했고 십중팔구 그것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