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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이나.. 지났는데..

그립다 |2010.02.08 15:49
조회 38,050 |추천 34

하루종일 바빠서 톡이 된줄도 몰랐네요^^

모든분들의 응원! 정말 감사드려요! 톡 기대도 안하고 쓴글인데~

와!! 감사합니다! 저 더 힘낼께요! 화이팅

 

그리고 댓글들 보니까, 엄마 주민번호로 엄마 사는곳 찾으라고 하신분들 많은데 ㅠㅠ

자신이 없어요 아직 엄마를 볼 자신이.. 하지만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응원덕분에, 저 더 힘낼수있을꺼같아요

같은 아픔을 갖고계신 여러분들, 우리 같이 힘내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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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루일상의 반을 톡과 함께 보내는 톡톡 3년차,

올해 20+6살이된 톡커女입니다.

 

 

문득 그리운 마음에.. 이렇게 글을 써보게 됐어요

 

 

정확히 16년전,

저희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땐 마냥 어려서 이혼이라는게 어떤건지도 몰랐고,

엄마를 다시는 만날수 없는 일이라는것 조차 몰랐습니다.

 

 

 

16년전 엄마의 마지막 모습..

저에겐 참 매정한 엄마로 기억되네요

 

 

외할머니와 함께 짐을 꾸리고 나가버리는 엄마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끌었다는건, 아마 아무도 몰랐을꺼예요

 

 

엄마가 제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는것도.. 아무도 모르겠죠...

 

 

 

고모들, 큰엄마들은 어린게 엄마가 가는데 울지도 않고 잡지도 않는다고

독하다고 하셨지만 사실 전 화장실에 들어가 수건에 얼굴을 묻고

소리도 못내고 어깨를 들썩이며 펑펑 울었어요, 정말 엄청 울었어요

 

 

 

 

16년전 일이지만, 어제일 같이 생생하고, 또 생각하니 목이 메이네요-

 

 

그뒤로 저에겐 두번째 엄마가 생겼어요-

아빠가 재혼을 하셨거든요

 

 

매정하게 나를 버리고 간 엄마보다, 나를 키우겠다고 데려와준 아빠가 고마웠어요

 

하지만 아무리 잘 지내려고 해도 새엄마와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어요

늘 눈치만 보이고,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새엄마가 싫어할까봐 다가가지도

못했어요

 

저에겐 2살터울 여동생이 있었는데, 저에겐 유일한 말벗이였어요

동생도 마찬가지였구요

 

 

 

늘 방에 쳐박혀서 그 흔한 tv도 없고 전화도 없고 침대만 덩그러니 있는 방안에서

저희둘은 그래도 서로 의지하면 그 답답함을 견뎌왔던거 같아요

 

 

만화책도 빌려와서 보고, 둘이 방에서 빙고도하고, 급식에서 나왔던 빵도 챙겨와서 먹고, 그 답답하고 좁은 방에서 저희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꾹꾹 참고 견뎌냈어요

 

저희가 거실에 나가서 티비를 보면 새엄마가 싫어했거든요

친구들한테 전화할때도 매일 공중전화에 나가서 걸었어요, 새엄마가 전화하는것도

싫어했거든요...

 

 

그렇게 끝나지 않을것 같던 저희의 10대는 아무런 추억도 없이 그렇게 끝나버렸네요

용돈도 받아본적이 거의 없고, 학교에서 친구들이 괴롭힐때도 아무에게도

말할수 없었고, 부모님 모시고 오라는 알림문을 줘도 다 버렸어요, 성적표 한번 보여드린적도 없네요, 보여달라고 안하셨으니까요...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 대학진학은 꿈도 안꿨고,

바로 취업을 했어요, 20살때 바로 취업이 안되니까 새엄마 아는분이 하시는 공장에

가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정말 너무 힘들었고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이게 제가 살아야 될 길인가 싶어서, 이를악물고 버텼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그 공장이 망했거든요

그래서 또 다른 공장에 가고 , 2년이 지나고 문득 제 인생에 회의가 들었어요

 

 

 

난 지금 뭐하는걸까? 앞으로 난 이렇게 하고 싶은것도 없이 일하라면 하라는데로

살아야 되나 싶어서, 일을 그만두고 공공기관 계약직일을 찾아냈어요

 

 

개월수를 연장해 가면서 어느세 1년이 됐네요..공공기관이니까 일도 배우고

공장보다는 힘도 덜들고, 어느세 저에대한 자신감도 생겼구요...

 

그리고 올해 전 공부를 해보기로 결심해서, 방통대에 원서를 넣었고,

합격해서 3월부터 공부도 해요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요.. 날 버리고 간 엄마 보란듯이..

 

 

사실 엄마가 보고싶지도 그립지도 않아요

생각도 안하고 있었어요 엄마는.. 날 버리고 갔으니까

낳아주기만 하고 길러주지 않았으니까..

 

 

 

근데 제가 이번에 개명을 하게 됐거든요

 

근데 개명할때 필요한 자료중에 엄마, 아빠의 가족관계 증명서라는게 필요한데

그걸 친엄마것으로 해야된다고 하더라구요

 

 

동사무소에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러갔는데

공무원분이 엄마 성함 적어달라고 하는데, 16년의 세월이 이렇게 무심했는지

이름이 가물가물 하더라구요

울컥하기도 하고.. 대충 생각나는데로 적었는데 틀렸더라구요ㅠ 휴..

 

 

 

그리고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고 보는데...

 

 

엄마는 이름도 개명하고, 중학생된 딸도 낳았더라구요

아무것도 아닌건데, 그냥 그 종이를 들고 하염없이 울었어요

 

엄마가 사무치도록 그리워서 운건지,

내인생이 이렇게 된게 억울해서 운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곧 설날이예요,

새엄마쪽 외가에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어서 이번에도 아마 친할머니댁만

다녀오고 집에 있을거 같아요..

 

 

친엄마는 잘 지내는지.. 16년동안 제 생각은 , 아니 우리 생각은 한번도 안했는지

정말 궁금하고 그래요...

 

 

세월이 흐르면 약이 된다고, 언젠간 새엄마쪽 외가에도 가볼날이 오겠죠?

친엄마도 한번이라도 우릴 찾아와 주겠죠?

 

 

2010년엔, 저랑 제 동생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새해복 많이받으세요

 

 

추천수34
반대수0
베플ㅈㅇㅈ|2010.02.08 15:55
친어머니께서도 분명 글쓴분이랑 동생분 생각하실것 같아요 이제와서 선뜻 찾기가 어려우실지도 모르니까요.. 앞으로도 동생분이랑 더 행복하시길 바래요♡ ---------------------------------------------- 어머 베플됐다 > < 근데, 글을 다시 읽어봐도 참 대단하신것 같아요.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는 글쓴분처럼 바르고 열심히 살 자신이 없을것 같아서요 ... 리플들 보니까 상황이 비슷한분들이 많으신것 같은데, 진심으로 모두 힘내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진심으로 .. 그리고 .. 자신이 겪었기에 누구보다 잘 아는 아픔과 상처들이니만큼, 나중에 자신의 아이가 같은상황을 겪지않도록 노력하는게 정말 중요할것 같아요 많이 늦었지만, 모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끝!
베플|2010.02.10 12:07
나랑 참 비슷하다... 나도 부모님 이혼하실때, 겉으로는 아무런 티도 안냈는데.. 친척들이 진짜 미친듯이 날 달달 볶아대더라, 니가 딸이맞냐?맞으면 잡아야지 뭐하는거냐 독한년 이라면서.... 그사람들은 내마음 알까?? 왜 나를 그렇게 볶아댔을까? 친척이라며... 그렇게 나 중학교때 부모님 이혼하시고, 장애인인 내동생 맨날 괴롭힘 당하고 맞고 오면 같이 부여잡고 울고, 나도 고2때 난치병판정받아서 계속 수술받고 고생하고..그래도 남들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그때 마다 친척들이 날 괴롭히더라... 내가 수술할때, 나 대학교 입학할때 아빠가 중국간다고 할때.. 어찌나 나를 달달 볶던지... 날 볶으면 뭐가 나올까?? 난치병때문에 내몸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그 어린20살한테 남동생을 대리고 살라고했다. 생활비 줄것도 아니면서....내 병원비 대줄것도 아니면서.... 정말..나의 친척들은 "입만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글쓴이 글 보니..정말 다시금 생각난네..
베플모카치노|2010.02.10 12:33
내가 언니니까 말 편하게 할께 내가 10살때 오빠가 14살 때쯤 도박에 미친 엄마랑 아빠가 이혼을 했어 엄마는 도박에 미쳐서 집 말아먹고 아빠는 그런 엄마 사람 만들어서 사신다고 아둥바둥하시다가 결국 너무 큰 사고가 터져서 이혼 하시거지 우리집, 할머니집 날려먹은 것도 모자라 바람아닌 바람에.. 어린 자식들 앞에서 약 먹고 병원에 실려갔거든.. 그렇게 엄마가 가고 몇년간은 제법 열심히 사는것도 같았어 아빠는 아빠대로 할머니랑 같이 살면서 우리 맡길수있으니 재혼 안하신다고 엄마가 정말 정신 차리면 다시 합치겠다고 이를 악물고 빚갚으며 사셨고.. 그런데 내가 중학생이 되때쯤에 엄마를 보러가니 엄마가 어떤 아저씨랑 나오더라 그 땐 확실히 몰랐는데 조금 더 지나고 보니 그 아저씬 유부남이었어 그리고 몇년 뒤에 두분 결혼하셨어 한마디로 울 엄마가 유부남을 꼬신거고 딸까지 있는 부부 이혼시켜서 두분이 결혼하고 아들 낳아 맏며늘이 노릇하고있더라고 같은 여자지만 정말 어이없더라 장손을 낳아다고 의기양양.. 울오빠도 장손인데.. 더 무섭고 웃긴 건 그 전처딸이 그때 9살쯤이었는데 새엄마 노릇 단단히 하더라 그리고 낳은 아들보고는 내 동생이라고 울오빠랑 닮았다고 말하는데.. 피가 물보다 진하긴 한건가 싶은 의문이 들 정도였어 아빠도 그 사실을 알고 어찌나 황당해하던지..한참을 뜸하게 안보고 살다가 우리가 다 크고 돈도 벌고 하면서 연락이 또 왔었어 그래서 돈도 날려지 나는.. 울 아빠 어려서 엄마 잃은 불쌍한 딸이라고 오냐오냐 손 한번 안대고 키우셨는데 엄마테 돈 털리고 신용 털린거 알고 날 엄청 혼냇어 그런 인간이랑 다시 한번 상종하면 호적에서 파버릴꺼라고 지금은 내가 오는 연락을 피해 솔직히 난 사람 이하라고 생각해 엄마 외삼촌네 가서 살고 있었고 이혼 후 몇번 사고친거 아빠가 수습해준걸로 알아 아빤 엄마가 정신차리고 돌아오길 바랬고 우리 친가식구 모두 그러길 바랬어 그래서 처음 몇년간 착실하게 살때 아빠가 방학때면 엄마보고 오라고 보내준거고 그런데 그 사람은 아니더라고 변할 수 없는 종자의 사람이야 두고간 자식들이 눈에 밟히면 그럴 수 없거든 우리 어릴때 도시락 한번 제대로 싸준 적 없고 학교 행사는 물론 오히려 엄마 없을 때 더 잘하고 다녔으니까.. 그런데 새로 낳은 어린 아들은 무조건 오냐오냐해서 애가 어찌나 싸가지가 없는지.. 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고 감사하고 그렇지만.. 난 그래 아닌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 잊을 사람은 잊고 좋은 기억만 남겨두는게 내 정신건강에 이롭잖아 글쓴이도 얼마나 마음 고생을 많이 하고 컸을지 다 알것같아 정말 내 맘도 아프다 같은 지역에 살면 언니가 맛난 밥 사주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삐뚤지 않게 크고 착하게 자라줘서 언니가 대견하고 고마워 나도 우리오빠도 가끔 술 마시면 하는 얘기가 아빠가 있어서 할머니가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사람처럼 자랐다고 엄마아래 있었으면 우리 쓰레기였을거라고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남매가 함께여서 다행이었다고 너도 동생이 있잖아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복의 양은 같다고 해 슬픔의 양을 조금 더 많이 썼으니까 이제 행복할 양을 쓰면 되는거야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힘내고 뭐라고 자꾸 말해주고 싶은데.. 넘 주제넘기도 하고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암튼 정말 행복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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