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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결혼

. |2010.03.14 02:43
조회 114,385 |추천 90

 

인터넷 소식을 검색하다 들은 소식이다. 경기 불황으로 인한  청년 실업 증가로  결혼 경비가 없어서, 미래가 불투명해서 결혼을 앞둔 많은 연인들이 결혼을 포기하거나 미룬다고 한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한다는 말이 왜 그리 슬프게 들리는지... 우리 내외가 결혼했던 19년전이 떠오른다.

 

1990년에 결혼한 나는 26살 직장인였다. 그런데 지금의 남편은 나보다 1살 많은 대학 복학생.

대학3학년인 남자친구와 내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양쪽 집안에서 난리가 났었다. 우리를 너무 어리고 철없이 여기는 부모님들의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여서 얼마나 반대가 심했는지 모른다.

 

남편의 대학 등록금도 겨우 겨우 빚을 내어 대주던 가난한 시댁은 아들이 대학 졸업이라도 하고 직장을 잡은 후 천천히 결혼 하길 바랬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난감했을지 십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내 나이 21살에  성당에서 만나 군대간 3년을 기다리며 5년을 연애한 우리에게 더이상의 연애기간은 불필요했고 저녁마다 데이트가  끝나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진다는 것이 피 끓는 청춘으로 정말 힘들기만 했다.

 

이 세상에 한 남자만 보였고 서로가 이 사람 하나만 있으면 모든 어려움을 다 해쳐나갈 용기와 능력이 저절로  생길 것 같았다. 둘이 함께만 있을 수 있다면....

 

그러나 세상을 우리 보다 많이 사신 부모님의 걱정은 훨씬 더 현실적이였던 것 같다. 이제 겨우 대학 3학년인 신랑 만 믿고 뭐 먹고 살거냐는 친정아버지의 불호령에"제가 벌잖아요."라고 말했다가  그 철없고 해맑음에 경을 칠 뻔했다.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였지만 대학생이 둘에 막내동생이 고등학생이였던 친정집에서도 갑자기 혼사를 치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시름도 깊어졌다.

 

4남매 맞이가 제 식구 거둬먹일 능력이 되는 남자를 만나  잘 살길 바랬을  우리 아버지는 가난한  집으로 더 기댈것 없는 시댁을 보고 무척 실망하셨었나 보다.

 

나 역시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적은 월급으로 겨우 겨우 모은 돈이 겨우 새똥만큼 이였는데 결혼을 하자고 무작정 덤비는 무모함을 잘 알지만 그때는  사랑에 눈이 먼 우리에게  결혼이야말로 바로 이뤄야 할 절실한 목표였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려고 우리는 사랑하는 부모님께 대항해야했고, 울며 호소도 했고, 더 미더운 모습을 가장해 설득해야했다. 3학년 등록금만 해주시면 나머지 4학년 졸업때까지  등록금은 우리 힘으로 마련하고 생활비를 도와주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고 실제로 나중에 결혼해 살면서 그렇게 했다.

 

남자친구는 공과대학을 다니면서도 새벽3시에 일어나 아파트 세차를 해서 용돈과 등록금을 벌만큼 성실한 사람이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고 언성이 높았던 양쪽 집 상견례를 가진  몇달 후 우리의 허무맹랑 할것 갔던  결혼 준비는 그렇게 부모님의  우려 속에서 시작되었다.

 

결혼식 만큼은 아버지가 교회봉사자로 활동 중이던 명동성당에서 해야했는데  사실 아버지가 모실 많은 하객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그동안 남의 결혼미사에 보냈던 축의금 반환(?)을  위해서 그랬다.

 

우리 동네 성당보다 더 크고 예쁜 명동 성당에서 결혼을 한다니까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호사였다.

 

시댁에서는 처음에 월세를 말씀하셨지만  어려운 중에도 남편 친구 아버지가  신축한 다세대 반지하 단칸방을 월세가 아닌 전세로  싸게 계약할 수 있었다 .역시나 빚을 내 구해주셨지만 집이 구해지자 이것 하나 만으로도  반은 한것 같았다.

 

나는 수소문해서 영등포 어느 가정집에서 하는  웨딩드레스 공장에 가서  아현동  웨딩숍에  나가기 바로 전에  먼저 입는 조건으로 헐값에

드레스를 빌렸다. 그리고  직장 친구가 알려준 명동의 미용실에서 피부맛사지 두번을 받는 조건까지 포함해  신부화장 계약도 했다.

 

내게 하나 밖에 없는 고모가 옷장 화장대 TV장을 가구 공장에서 사서 내 결혼 선물로 마련해 주셨고 엄마는 나랑 집 가까운 동네 시장에서 밥상에 밥공기등과 플라스틱 바가지까지 하나 하나 골라  살림을 마련했다.

 

그때에 내겐 이미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라디오에 틈틈히 글을 올려 받은 접시세트1개와 와 숙녀복 티켓 그리고 라면 끓일 정도 크기의  3중바닥 냄비1개와  크리스탈 컵세트가 모여  있었다. 이 중 숙녀복 티켓은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남성복을 세일할 때 기다려 양복한벌과 자켓 하나로 바꿔 남편에게 예복으로 선물할 수 있었다.

 

가전제품은 우리가 살 단칸방에 딸린 좁은 욕실을 보시고 세탁기가 필요없을것 같다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용산 전자상가에서 세탁기랑 제법 큰 냉장고 그리고 TV 한대 가스렌지 그리고 전화까지 장만했다.

 

서로 없는 살림이라고 예단도 적당히 넣은 봉투로 서로 인사치레만 하고 한복은 한복집을 하시는 시큰 어머니가 남편 것  한벌 내게 두벌 해주셨고 시어머니 친구이자 성당 교우가 하는 금은방에서 시댁에서 혼배반지로 쓸 묵주반지랑  내 탄생석인 빨간 산호석세트를  패물로  해주셨다.

 

난 어머니께 차라리 그런거 말고 돈을 주세요 하고 싶은 걸 가게가

시어머니 친구 분 가게라 입도 벙긋 못하고 그저 고맙다고 받았다.

사실 그때는 반지나 보석 이런 것보다 더 하고 싶은게 많았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는 화장품 세트도  선물해야 한다며 당시 소피 마르소가 선전하는국산 화장품 세트 일체를 선물로 받았는데 찾아간 그 화장품 가게도 성당 교우여서 신혼여행용  가방을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아마도 더 비싼 화장품에 딸려나오는 선물이였는데  아는 집이라 축하의 의미로 주신 것 같았다.

 

시어머니께서 예복하라고 주신 약간 두둑한 돈으로 동대문 시장에서 값싼 흰색 정장을 사서   상의에 반짝이는 유리구슬을  달아 앙드레김 아저씨가 해준 옷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화려하게 꾸몄다.

 

친구들을 보니  신혼여행 가느라 입는, 그때 돈으로  몇십만원하는  예복을 대부분 다시 입는 일이 별로 없길래  예복은 그렇게 싼옷을 사다 다시 고치고 나머지 차액으로 내 출근복 2벌과 남편과 나의 커플 스웨터와 청바지를 시장에서 새로 샀다. 아직까지  시어머니는 모르신다.

 

폼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친구들이 내게  자랑한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며 수입화장품 같은 것  하나 없었다.

 

그래도 기뻤다.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엄마랑 책장만 3개가 넘는 내 책을 남동생들과  새 집으로 옮기고  고모가 사준 십장생이 새겨진 9자 장롱에 우리 둘의 옷을 넣으며  단칸방을 쓸고 닦느라  나와 남편은 땀 맺힌 콧망울을 하고도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양쪽 집안에선 아끼고 아끼느라 당시 80만원 하던 야외 촬영 앨범을 할 돈이 모자랐다. 이 앨범을 그래서 생략했다. 내가 해본 가장 진환 화장에 공주처럼 머리를 올렸던 그때에 사진앨범은  결혼 앨범 만 남았는데 아쉬웠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상견례 후 넉 달 만에 이뤄진 성스런 혼배미사에 걸어  들어 가면서 어찌나 감격의 눈물이 넘쳐 나던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준비한 결혼이 새삼 고맙고 내게 가족과 부모님이 계심에 감사한 마음에 그랬나 보다.

 

남편에게 내 손을 건네는 그때야 다시 보게 된  아버지는 너무 많이 여위셨고 놓으려는 손은 떨고 계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는 맞딸의 결혼 준비와 함께 모르고 계셨던 당뇨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 체중이 갑작스레 빠지기 시작했었다. 나 때문은 아니였지만 새 양복을 맞추질 못해 입던 양복을 입으신 아버지의 어깨가 왜  그리고 헐거워 보이던지...

 

이렇게 식이 모두 끝나고  제주도로 3박4일 신혼여행을 다녀오니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아 서툰 솜씨로 집들이를 하느라 주말마다 바빴는데 걱정해주고 함께 준비해준 분들을 위해서 직장생활이 힘들어도 안할 수는 없었다.

 

어른들과 친구들은  미숙한 내가 친정엄마를 도와 솜씨껏 장만한 소박한 잔치 상에도 축하금이나 선물을 갖고와 우리의 시작을 격려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지들 그리고 도와준  친구들의  그때 그 마음을 응원

삼아 우리는 지금까지  딸 아들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이란 일생의 행운을 미루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는 더 큰 재산은 없으니까.

 


 

 

 

 

 

 

 

추천수90
반대수0
베플*|2010.03.14 04:01
우스갯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 담겨있어 장난식으로 말을 던지지 못해 덧글이 없는듯 합니다 어린 제가 봐도 고생길이 열려있지만 중간 즈음에 남편분이 성실했다는 말에 결혼생활이 그래도 행복했을 것 같네요^^ - http://www.cyworld.com/kik0117
베플눈물뿐인바보|2010.03.14 04:51
가난해도 행복한게 가장 좋운거지요 서로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 될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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