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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자락 봉황산 부석사

푸른바다 |2003.07.30 10:35
조회 552 |추천 0

      Musicy      

Gloomysunday - 1

MAIN TITLE (GUITAR VERSION)

Gloomysunday - 2

 

Ave Maria

 

The Salley Gardens

천상의 소리 음악 크릭   무더운 여름철 피서는 조용한 산사에서 보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푸 른 바 다      
BuseoksaTemple of Sobaeksan(Mt)
소백산자락 봉황산 부석사  
BuseoksaTemple of Sobaeksan(Mt)
BuseoksaTemple of Sobaeksan(Mt)

BuseoksaTemple of Sobaeksan(Mt)

BuseoksaTemple of Sobaeksan(Mt)

BuseoksaTemple of Sobaeksan(Mt)

BomunsaTemple of Rakgasan(Mt)

 

 

BuseoksaTemple of Sobaeksan(Mt)

해동화엄종 종찰 영주 봉황산 부석사

소재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자연을 보는 탁월한 안목 부석사

 

부석사는 불국사와 함께 한국 사원 건축의 정점에 서 있다. 굴국사가 인공미의 극치라면 부석사는 자연미의 극치를 보여 준다.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건 석축으로 불국사의 전면 석축이 목구조 형식을 본떠 쌓은 것이라면 부석사의 석축은 생긴 대로 아래에서 위로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것이다. 큰 돌, 작은 돌, 둥그스럼한 돌, 네모난 돌, 각양각색의 돌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건물을 앉혀서 외부 공간을 한정하지 않고 단순히 쌓은 석축의 높이차에 의해 영역을 한정했다. 이렇게 부지의 높이 차이로 영역을 한정하고 가장 높은 영역에 주불인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을 앉힌 다음 그뒤에 이 절을 창건한 의상대사의 영정을 모신 조사당을 앉혔다.

 

부석사는 축선의 아름다움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찰이다. 일주문, 천왕문,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으로 이어지는 주 동선 밖으로 여타의 건축물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껴 앉은 형상이다. 이런 이유로 시선이 걸리적거리지 않고 동선이 명쾌하다. 특히 이러한 느낌은 범종루 밑을 통해서 본 안양문과 무량수전에서 잘 드러난다. 서방정토의 입구로서의 안양문과 서방정토의 수호불인 이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의 지붕이 겹쳐지면서 우리 건축 역상상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이는 주위에 다른 전각들이 많아 시선을 어지럽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의상과 선묘

 

의상의 전기를 싣고 있는 <송고승전>에는 이 부석 신변의 주인공을 선묘룡이라 하고 있다. 이 선묘 이야기를 좀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의상은 원효와 함께 중국에 건너가 새로운 불법을 배우고자 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 흙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원효는 당나라에 가는 것을 포기하여 의상 혼자만이 서른여섯의 나이에 초지를 관철하여 중국에 건너갔다. 산동반도에 도착한 그는 그곳 유지의 집에 묵으면서 자신이 공부해야 할 마땅한 스승과 지역을 알아보고 있었다. 준수한 용모에 번득이는 총기를 지닌 이 기품 있는 이방의 수도자는 금세 인근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여러 여인들의호기심을 자극했음도 물론이다.

 

그런 사람 중에 선묘라는 주인집 딸도 있었다. 그녀는 옷을 곱게 꾸며 입고 온갖 교태를 부려 의상의 눈길을 끌고자 했으나 의상의 구도 일념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러한 의상의 태도에서 크게 감명받은 선묘는 마음을 돌이켜 새로운 생각을 일으켰다. 이 생이 다하고 또 다음 생이 이어져도 대사께 귀의하여 대사께서 대업을이룰 수 있도록 자신은 그 지원자가 되어 뒷바라지하겠다는 서원이었다. 이성으로 보고 가졌던 애욕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자 그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내는 대신 도심으로 이를 승화시킨 것이다.

 

의상은이내 종남산으로 가서 지엄을 스승으로 모시고 중국불교철학의 진전 과정에서 얻어 낸 최고의 사상 체계인 화엄학의 정수를 체득하여 스승의 인가를받는다. 그래서 신라에 돌아와 그 뜻을 널리 펴고자 10년 만에 귀국길에 올라 다시 뱃길이 떠나는 산동반도에 와서 예의 그 신도집에 들렀다. 그 동안 이역 땅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후원을 해 준 데 대해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는 신라로 가는 배편을 찾아 귀국길에 올랐다.

 

실제 뒷바라지를 했전 선묘는 돌아가는 의상을 위해 옷가지가 든 바구니를 마련하고 있다가 그가 배에 탄 뒤에야 소식을 듣고 달려나갔다. 이미 배는선창을 떠나 바다로 멀어져 가고 그의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서운함만 가득 차 온다. 그러나 그녀가 본래 가졌던 서원대로 도심을 되찾아 본마음이 대사를 공양하는 데 있음을 확인하고 옷가지가 든 상자를 바다에 던져 의상이 탄 배에 가 닿기를 발었더니 질풍이 갑자기 불어와 가볍게 상자를 배 속에 넣어 준다.

 

선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수천 리 험한 뱃길이 위험하지나 않을는지 걱정되어 이 몸을 던져 용이 되게 하여 저 배를 보호하리라 맹세하고는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런 지극한 마음에 바다도 감동하여 과연 그녀의 뜻대로 용이 되게 하여 의상이 탄 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보호하여 무사히 신라 땅까지 인도하여 갔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진정한 도심을 구현시킨 선묘룡이 마지막 몸을 날려 다시 의상의 대업을 도운 것이 부석의 조화라 한다. 의상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전법도량의 완성을 위해 최후의힘을 발휘하여 방해 집단을 물리치고 자신은 석룡으로 화하여 무량수전 안의 아미타상 밑에서부터 앞마당의 석등까지 몸을 묻고 전법의 등불이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니 오늘도 그 석룡은 법당밑에 묻혀 있다 한다.

 

 

부석사와 김삿갓

 

안양루에 걸려 있는 중수기를읽어보니 이렇게 적혀 있다.

 

몸을 바람난간에 의지하니 무한강산이  발 아래 붙어 달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니 넓고 넓은 건곤이 가슴속으로 거두어들어오니 가람의 승경이 이와 같음은 없더라.

 

천하의 방랑시인 김삿갓도 부석사 안양루에 올라서는 저 예리한 풍자와 호방한 기개가 한풀꺾여 낮은 목소리의 자탄만 하고 말았다.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별려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서 내려다보는 그 경관에 취해 시인은 저마다 시를 읊고, 문사는 저마다 글을 지어 그 자취가 누대에 가득한데 권력의 상좌에 있던 이들은 또다른 기념방식이 있었다. 그것은 현판글씨를 써서 다는 일이다. 무량수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 온 적이 있는데 몇달 뒤 귀경길에 들러 무량수전이라 휘호한 것을 새긴 것이라 하며, 안양루 앞에 걸린 부석사라는 현판은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쓴 것이다. 우리 같은 민초들은 일없이 빈 바람을 가슴에 품으며 눈길은 산자락이 뻗는 데까지 달리게 하여 벅찬 감동의 심호흡을 들이켤 뿐이건마 한 터럭 아쉬움도 남지 않는다.

 

 

부석사와 사과나무

 

늦가을 부석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은행잎 카펫길보다도 사과나무밭 때문이었다.  언제나  인생을 사과나무처럼 가꾸고 싶어한다. 어차피 세한삼우의 송죽매는 될 수 없다. 그런 고고함, 그런 기품, 그런 청순함이 타고나면서부터 없었고 살아가면서 더 잃어버렸다. 그러나 사과나무는 될 수가 있을 것도 같다. 사람에 따라서는 사과나무를 사오월 꽃이 필 때가 좋다고 하고, 시월에 과실이 주렁주렁 열릴 때가 좋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잎도 열매도 없는 마른 가지의 사과나무를 무한대로 사랑하고 그런 이미지의 인간이 되기를 동경한다.

 

사과나무의 줄기는 직선으로 뻗고 직선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되도록 가지치기를 해야 사과가 잘 열린다. 한 줄기에 수십개씩 달리는 열매의 하중을 견디려면 줄기는 굵고 곧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모든 사과나무는 운동선수의 팔뚝처럼 굳세고 힘있어 보인다. 곧게 벋어오른 사과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보면 대지에 굳게 뿌리를 내린 채 하늘을 향해 역기를 드는 역도선수의 용틀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사과나무의 힘은 곷이 필 때도 열매를 맺을 때도 아닌 마른 줄기의 늦가을이 제격이다.

 

사과나무의 생김새는 그것 자체가 위대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묵은 줄기는 은회색이고 새 가지는 자색을 띠는 색감은 유연한 느낌을 주지만 형체는 어느 모로 보아도 불균형을 이루면서 전체는 완벽한 힘의 미학을 견지하고 잇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 더욱더 사과나무를 동경하게 되었다.

세상엔 느티나무 뽑을 장사는 있어도 사과나무 뽑을 장사는 없다.

 

 

참고도서

최완수 저 : 명찰순례

최순우 저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류경수 저 : 우리 옛 건축에 담긴 표정들

대원사 간 : 부석사

유흥준 저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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