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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이야기 9

이구아나 |2008.01.17 15:04
조회 285 |추천 0

다음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탐험하기로 계획한 우리는 86가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은 세계각국의 유물들과 페인팅, 조각품 등이 화려하게 전시 되어 있었다. 나는 탄성을 지르며 당장에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제프는 그런 나를 보더니,

“글쎄.. 여기선 사진을 못 찍는 걸로 알고 있어.”

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아마 안 될 거야.”

누가 모범생 아니랄까봐. 그는 공공규칙과 질서에 꽤나 민감한 사람 같았다.

그러나 이런 굉장한 작품들을 눈 앞에서 그냥 흘려보내야 한다는 건 나에게 있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하면 조용히 카메라를 접어 넣으면 그만이지 뭐. 용감한 아줌마의 자손 우재경이 아니던가? 나는 사진기를 꺼내 중세시대의 기사와 무기들을 찰칵찰칵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주변을 둘러봤을 때 모든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을 찍고 있음을 깨달았다.

“Hey, 저것 봐, 찍어도 되나 봐. 너두 찍어, 괜찮아, 괜찮아!”

“Well..”

하지만 나는 그의 미지근한 반응에 아랑곳 없이 다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를 찾았을 때 나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하하… 이제 사진 찍는 거야?”

“사진 찍어도 되나 봐.”

그가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것 봐. 찍어도 된다니까!”

한참 그를 비웃어 대던 나는 그의 카메라렌즈가 나를 찍고 있음을 느꼈다.

“이것 봐! 한국관도 있어!”

박물관 지도를 보던 나는 이층의 한켠에 얌전히 위치한 한국관을 찾아내고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네, 가보자!”

우리는 당장에 이층으로 올라가 한국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맨하탄의 한복판에서 한국의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달려들어간 한국관의 입구에서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텅 빈 그 작은 공간에서 우리는 유일한 유생물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없네..”

한껏 고조되었던 나의 목소리는 실망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걸어 들어가더니 고풍스런 빛깔의 조각보와 백자 앞에 서서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좋다. 아주 편안한 느낌이야. 꼭 너처럼..”

다시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들어 사진을 찍고 있는 그를 찍었다.
 


다음날 우리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가기로 약속했다. 늘 올려다 보던 빌딩위를 올라간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이나 흥분되었다. 제프는 언젠가 가족과 뉴욕관광을 마친 상태였지만 다시 한번 가 보고 싶다며 나와 동행해 주기를 자청했다.
같이 다닐 동행인이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든든한 일이었다. 특히나 영어까지 익힐 수 있으
니 그는 내게 있어 일석이조의 선물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빌딩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그는 한 손에 스타벅스 커피컵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그런데.. 그는 달라져있었다. 자연스럽게 스타일링된 머리와 브라운빛 알의 선글라스.. 그리고 카키색 피트되는 티셔츠를 걸친 그는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마치 멋진 뉴요커를 보는 듯한 느낌.. 외모에 약한 나는 또 줏대없이설레기 시작하는 내 심장을 느끼고 있었다.

“안녕..”

그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어…”

“미안 머리 좀 자르고 오느라 늦었어.”

그의 얼굴은 조금 상기되어 보였다.

“어. 그래? 어쩐지! 훨씬 낫다 야!”

“그래? 고마워..”

“야.. 저번 머리는 이제 하지마.. 그건 좀 아니었어.”

“그렇게 이상했어?”

“어!”

나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매우 직선적이다.

“야, 말이 좀 심한데?”

“어쨌든 오늘 정말 괜찮다구!”

“고..마워.”

빌딩에 들어선 우리는 공항에서나 하던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드디어 전망대로 올랐다. 전망대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거친 바람에 나의 머리는 수세미마냥 엉망이 되었지만 전망대 아래 펼쳐진 맨하탄의 장관에 나는 넋을 잃고 있었다. 우리는 동서남북을 돌며 맨하탄의 야경을 열심히 감상했다.

“여기서 니가 사는 곳이 보여?”

“아마도… 저쯤 일거야.”

그는 작게 빛나는 불빛을 가리켰다.

“니가 사는 곳은?”

“조기!”

나는 2000불에 달하는 값비싼 렌트비를 감수하며 41가의 스튜디오에 머무르고 있었다.

“야, 거기 너무 비싸지 않아?”

“하긴 비싸긴 해.. 이스트빌리지는 어때?”

나는 입을 씰룩거렸다. 한국에서 기껏 모아온 돈이 렌트비로 쑥쑥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나 아파트에 방하나를 빌렸거든? 1000불도 안해..”

“와! 그래? 그래서 누구랑 사는데?”

“A woman named Rosie.”

“여자랑 산다구?”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응.. 50대중반쯤 됐나? 아직은 잘 모르지만 재밌는 사람인 것 같아.”

“그렇구나…”

나 왜 이렇게 안도가 되는 것일까?

“저기 좀 봐.. 강물이야!”

나는 꽥 소리를 질렀다.

“멋지다.. 다음에 우리 유람선도 타 봐야지?”

“꺅! 진짜!”

역시 동행인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한참 만에야 엠파이어 빌딩을 나선 나는 약간의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저녁 먹을까?”

“그래..”

“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글쎄..”

순간 나는 근처의 코리아타운을 떠올렸다. 그에게 한국음식을 맛 보여주고 싶었다.

“너 한국음식 먹어본 적 있어?”

“아니.. 전혀.”

“Come on.”

나는 그를 끌고 32가로 잰 걸음을 옮겼다. 32가의 밤은 늘 그렇듯 한국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여기가 코리아 타운이야.”

“그렇구나.”

그는 신기한 듯 한국인들로 가득한 거리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기로 가자!”

우리는 줄을 늘어선 레스토랑에서 서서 미리 주문을 해 두었다.

“좋은 시스템이야. 미리 주문도 받고 말이야.”

그가 또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 한국식당에선 흔한 일인데.”

나는 그의 식성을 고려해 돌솥비빔밥을 추천했고 나는 순두부찌게를 주문했다. 우리가 자리를 잡
고 안자 곧 몇 개의 밑반찬들이 테이블에 놓여졌다.

“제이미! 이것도 주문한 거야?”

“하하.. 아니야. 이건 기본적으로 주는 거야. 그리고 더 먹고 싶으면 리필도 해 준다고..”

“정말?”

그는 탄성을 지르며 서툰 젓가락 질로 김치와 해초무침등을 맛보기 시작했다.

“Great!”

“안 매워?”

“괜찮아. 나 매운 음식 좋아해! 정말 맛있다.”

그는 비빔밥이 나오기도 전에 혼자서 김치 한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곧 비빔밥과 순두부찌게가 나
왔다. 그는 두툼한 뚝배기그릇에 반했다는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제이미.. 이건 왜 주는 거야?”

그는 비빔밥에 딸려 나온 작은 국그릇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음식은 밥이랑 국을 함께 먹는 게 기본이야.”

“와.. 굉장해.”

그는 국을 한 숟가락 떠먹고는 어설픈 손놀림으로 열심히 비빔밥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오.. 잘 하는데.”

그는 배가 고팠는지 비빔밥을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배 많이 고팠어?”

“너무 맛있다. 나 한국음식에 반한 것 같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한국가면 얼마나 맛있는 곳이 많은데! 상다리가 부서진다고!”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국자랑을 시작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국에 가서 꼭 먹어보고 싶다.”

“오늘은 내가 쏜다!”

“그런게 어딨어!”

그는 주섬주섬 돈을 꺼내고 있었다.

“됐어! 됐어.”

나는 폼 나게 카드를 내밀었다.

“고마워, 제이미.”

우리는 배를 두드리며 맨하탄의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저기 좀 봐!”

나는 길을 걷는 두 명의 모범생을 가리켰다.

“왜?”

“꼭 어제 너같다. 큭큭!”

“제이미,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미안, 미안.. 근데 오늘은 멋있어!”

“저런 사람들을 여기서는 뭐라고 부르는 지 아니?”

“뭔데?”

“Nerd..”

“그래?”

“응.. 학교 다닐 때 나 nerd그룹에 속해 있었어.”

“하하하하..”

내 웃음소리가 34가의 밤공기를 흔들었다.

“어.. 다 왔다.”

어느새 우리는 우리 집 건물 앞에 당도해 있었다.

“그럼.. 잘 가.”

“Can you give me a hug?”

그는 팔을 활짝 열며 나를 꼭 끌어안았고 잠시 당황한 나는 어색하게 그의 등을 토닥였다. 그래..
미국에선 이것이 보편적인 인사인게지..

그는 돌아서서 지하철역쪽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나는 그를 잠시 돌아보다 현관문에 열쇠를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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