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공포소설>피 막 - 1

살인교수 |2003.11.25 02:04
조회 2,401 |추천 0

<중편 공포 소설>  P{margin-top:2px;margin-bottom:2px;}

 

피막

 

피막(避幕) : 예전에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안치해 두는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집

 

그 피막에는 무서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오래 전 나라의 벼슬을 지낸 적이 있는 명망 높은 양반 가문에 우울한 그늘이 드리워졌다.
오 대 독자로 태어난 장남이 기형아였기 때문이다. 장남은 선천적으로 오른팔이 없었으며
얼굴에는 커다란 혹이 나 있었다. 혹은 장남이 성장하면서 같이 성장해 나갔다. 결국 장남이
다 자랐을 때에는 얼굴 크기가 보통 사람의 두 배 이상은 되는 가분수가 되었다.
하지만 장남은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검술을 연마해서 아버지의 자괴감을 덜어주었다. 특히
그의 검술은 그 고을은 물론 이웃 고을에까지 정평이 났다. 왼팔 하나로 두 손에 검을 든
무사들과 겨루어 백전백승을 거두었다. 마침내 아버지도 장남을 자랑스럽게 여기긴 했지만
제대로 된 아들이 하나 더 탄생하기를 고대함은 여전했다.
장남이 열 세 살 되던 해에 심장병으로 고생하던 그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었다. 어머니는
숨을 거두기 몇 일 전부터 피막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난히 어머니를 좋아
했던 장남은 피막으로 옮겨져 쓸쓸한 최후를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많은 눈물
을 흘렸다.  
장남의 나이가 열 여섯 되던 해 아버지는 둘째 부인을 맞이해 건장한 아들을 탄생시켰다.
이에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장남 때와는 달리 성대하게 마을 잔치를 열어 아들의 탄생을
축복해주었다.
장남은 아버지가 모든 사랑을 배다른 동생에게만 베푼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를 조금도 시샘
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할 일만 했고 마침내 과거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하지만 워낙 추한 몰골을 지닌 탓에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제대로 된 벼슬자리를 얻진 못했
다. 그는 궁궐에 입궐하길 원했으나 외관을 중요시 여기는 궁궐은 그를 차갑게 외면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까지 병환으로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크게 낙심한 장남은 그 때부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술로만 세월을 보냈다. 그는 어
머니가 죽어간 피막에 혼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장남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 마을 무녀의 딸 수련과 정분이 났다. 아무도 추한
외모를 상대해 주지 않았지만 마음씨가 착한 수련만이 그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피막에서 정분을 쌓아가며 진솔한 사랑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 둘째 부인은 이를 계기로 장남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그가 완전히
사라져야만 모든 재산이 자신과 어린 아들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부인은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흉한 외모의 장남이 사실은 지옥에서 환생한 악마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와 친근한 무녀 모녀는 그를 조종하여 마을을 파멸시키려는 나쁜 주
술사라고 소리치고 다녔다.
이에 격분한 마을 사람들은 둘째 부인의 말만 믿고 합동으로 장남을 심판하고자 했다. 하지
만 워낙 검을 잘 다루는 장남인지라 섣불리 접근할 수가 없었다. 날고 긴다는 무사들도 모
두 그의 왼팔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일이 뜻대로 잘 되지 않자 둘째 부인은 끔찍한 방도를 생각해낸다.
미리 검술사들을 매복시킨 후 수련의 어머니를 몰래 붙잡아 장남을 유인했다. 사랑하는 사
람의 어머니였기 장남은 둘째 부인이 파놓은 함정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둘째 부인은 장남이 보는 앞에서 수련 어머니의 목을 잘라 버렸다. 그 잘려나간 수련 어머니의 목을 장남을 향해 집어던졌다. 수련의 어머니는 장남에게 수련 다음으로 소중한 사람이었다. 장남은 왼팔에 든 칼을 던지고, 그 손으로 수련 어머니의 목을 받았다. 바로 그 때 매복하고 있던 검술사들이 달려들었다. 장남은 유일한 한 손으로 수련 어머니의 머리를 감싸고 있었기에 검을 들 손이 없었다. 그는 이내 검술사들의 검에 난도질당하고 목까지 잘려 나갔다.
둘째 부인은 마지막으로 수련을 없애고자 했다. 사람들을 시켜 수련을 납치한 뒤 피막으로
데려갔다.
둘째 부인은 독사처럼 사악한 여자였다. 그녀는 잘려나간 장남과 수련 모의 목을 들고 무녀
앞에 보이며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수련은 잘려나간 목들을 보자 극도의 슬픔과 분노로 눈
이 뒤집어졌다. 그녀의 몸 안에서 무언가 강렬한 응어리가 폭발하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가공할 위력의 기운을 발산했다. 하지만 그러한 징조에도 아랑곳 안고 둘째 부인은 사람들
을 시켜 수련의 목을 자르게 했다.
색동옷을 입고 있던 수련의 목이 절단되자 엄청난 양의 피가 허공으로 뿜어져 나와 옷을 붉
게 만들어버렸다. 그와 함께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피막 안에 울려 퍼졌다.
"내 목을 내놔! 내 목을 내놔!"
죽은 수련이 울부짖는 소리였다.
목이 잘려나간 수련의 몸은 살아있는 생물 마냥 힘있게 움직였다. 자신의 잘려나간 목을 찾
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은 이미 피막 창을 통해 밖으로 내던져진 후였다. 내던져
진 그녀의 목은 늪 속에 빠져 영영 건져 올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수련의 두 손은 계속 더듬더듬 자신의 목을 찾아 헤맸다. 두 손이 꿈틀대며 자신
의 목을 절단했던 남자들을 찾았다. 남자들은 장승처럼 뻣뻣이 굳어져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미 수련의 귀기에 홀려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련의 손은 이윽고 남
자들을 하나 씩 차례대로 죽여나갔다.
지옥과도 같은 끔찍한 비명과 절규가 피막 안을 피로 물들였다.
그 후 그 일대는 목이 잘려나가 죽은 무녀, 수련의 저주와 원한으로 피폐해져 갔다. 밤마다
사람들이 목이 잘려나가 죽어갔으며 곡식과 식물들도 모두 시들어갔다. 죽어간 사람들로 인
해 마을에는 빈집들이 늘어가고 그 빈집들은 곧 흉가가 되어가고 마침내는 아무도 남지 않
게 되었다.
그 마을은 죽은 마을이 되어 시커먼 잡초들만 무성했다. 폐허가 된 죽음의 땅에서 피막만이
핏빛 생기를 띄우며 또 다른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바로 저 곳입니다."
황사장은 언덕 위를 가리키며 다른 한 손으론 연신 땀을 닦았다. 대머리의 조짐을 보이는
그의 넓은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렸다. 아직 삼십대 중반의 나이지만 꼭 열 살은 더 들어 보
였다.
"그러니까, 저 곳이 그 유명한 유령의 집이다, 그 말입니까?"
캐주얼한 골프 웨어 복장의 강주민이 큼직한 시가를 입에 문 채로 말했다. 재벌 2세인 그는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나이지만 병환중인 아버지를 대신해서 몇 달 전부터 정식으로 회장
자리를 물려받은 재력가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라이터를 꺼내 시가에 불을 붙였다. 황사장은 불을 붙
이는 그의 손목에 시선이 갔다. 롤렉스시계가 그의 손목을 장식하고 있었다. 금과 다이아몬
드로 만들어진 그 롤렉스시계는 최소 일억 이상은 호가할 것 같았다.
황사장은 극도의 박탈감이 느껴졌다. 발에 땀이 나도록 수십 년을 뛰어도 그는 강주민의 손
목에서 찰랑거리는 그것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그런 것
을 수십 개씩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왠지 꺼림칙해요, 여보."
영화 타이타닉에서 여주인공이 썼던 것과 비슷한,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챙이 큰 고풍스러운
모자를 쓴 안향순은 사치스러움이 몸에 밴 여자였다. 화려한 디자인의 야외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고대 영국 귀부인을 연상시켰다. 손과 목에는 각종 보석들이 주렁주렁 매달
려 있었고 큐빅으로 세팅된 하이힐의 굽은 무려 십 센티미터가 넘어 보였다.
안향순은 강주민의 한 쪽 팔에 착 달라붙어 애써 겁에 질린 귀여운 소녀의 표정을 지으려
했다. 황사장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꼴같잖을 뿐이었다. 자기 딴에는 귀엽게 겁먹은 표정은
지은 것인지 몰라도 보는 사람 입장에선 그저 안면을 심하게 찌그러뜨린, 한낱 짜부라진 낯
짝에 불과했다. 전혀 귀엽지도 순진해 보이지도 않았다. 거울이 있다면 당장 그 얼굴이 얼마
나 흉한지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그런 표정을 지으며 강주민에게 콧소리를 해댔다.
"혹시 저주 같은 게 내려 진 건 아닐까요? 왜 그런 공포영화도 있잖아요. 여보, 나 겁 많은
거 알죠? 전 정말 귀신은 질색이에요."
"어허, 그 사람하고는 참. 촐싹거리지 말고 입 좀 다물고 있어 봐!"
아내의 어설픈 애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강주민은 버럭 화를 냈다.
"그 쓸데없이 따라와선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어! 지금 뭐 놀러 온 건 줄 알아. 사업 구상 때
문에 온 거라고! 할 일 없으면 집구석에서 낮잠이나 자던가 여편네들 불러모아 고스톱이나
칠 것이지 귀찮게스리 따라와 가지고는, 쯧!"
강주민은 마치 평소부터 품고 있던 아내에 대한 불만을 같이 토로하는 것 같았다.
사실 강주민은 아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향숙과 결혼 한 이유는 처가 쪽 사람들
이 대부분 법조계 일을 하고 있어 그들과 연계하기 위해서였다. 별로 예쁘지도 않고 머리도
나쁜 아내가 그는 싫었다. 자신과 대화의 수준이 맞지 않는다고 그는 늘 생각했다.

남편의 성화에 안향숙은 입을 쑥 내민 채 새치름해졌다. 그녀는 맞받아 쳐 봤자 LA와 로스
앤젤레스가 다른 곳 인줄 알고 있던 자신이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학사학위까지 수료한
남편과의 말싸움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기에 화가 머리 끝가지 올
랐지만 속으로 분을 삭힐 수밖에 없었다. 또 남편 집안의 엄청난 경제적 부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달콤한 특권을 계속 누리기 위해선 그에게 순종해야만 했다.
"이보게 장기사, 저 집이 없다고 생각하고 한 번 견적을 내봐. 어떤가? 이 일대 부지에 골프
장이 제대로 설 수 있겠나?"
강주민은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장건영을 향해 사업 안을 얘기했다. 그는 자신보다 나
이가 열 살 정도 많은 장건영을 마치 막내 동생 대하듯 했다.
장건영은 설계사였다. 그는 오랫동안 강주민의 아버지인 강성환 회장을 모셔왔다. 강성환 회
장과 함께 일하며 수많은 건물들을 짓고 회사를 발전시켜 왔다. 그런 만큼 강성환의 신임을
단단히 얻고 있었다. 강성환은 시기가 되면 장건영에게 건물 하나를 떼어 줄 생각이었고 장
건영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열심히 일을 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갔다.
하지만 강성환이 갑자기 병으로 눕게 되자 모든 꿈이 사라졌다. 강주민은 평소 아버지가 장
건영을 자신보다 더 신임해 왔음을 불쾌하게 여겼다. 그래서 장건영에게 건물은커녕 어떤
이익도 주지 않았다. 그저 소처럼 부려먹기만 할 작정이었다. 장건영은 그런 강주민의 의도
를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는 없었다. 그에게 저주를 퍼붓고 회사를 떠나
든지 그의 비위를 잘 맞추어 어떡해서든 건물 하나를 건지든지 해야 했다.
장건영이 강주민과 골프장 부지 건설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사이 장건
영의 아들 장인하는 아버지의 자가용에 앉아 따분하게 과자를 먹고 있었다.
오늘은 그의 열 세 번째 생일이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그는 유난히 아버지를 잘 따랐
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세 살 때 병환으로 숨진 어머니는 이미 얼굴도 가물가물 할 정도
로 잊혀진 존재였다. 그 후로 그는 아버지에게서 어머니의 사랑까지 받아냈고 아버지 역시
어미 없이 자란 그를 가엽게 여기며 깊은 애정을 보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하루 스케줄이 상당히 바빠야 했다. 오전에는 할머니 댁을 방문해
야 했고 오후에는 놀이동산에 가야만 했다. 지금쯤이면 벌써 할머니 댁 방문을 끝마치고 놀
이동산으로 향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강회장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쓸데없이 여기 저기 불려 다니며 골
프장 부지와 관련된 지겨운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인하야, 너 저번에 유령의 집 가고 싶다고 그랬지?"
장건영은 그런 식으로 아들의 마음을 달래보려 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 바로 유령의 집이야. 어때 신나지?"
"치! 저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서워해요, 뭐."
"아냐, 지금 가는 곳은 놀이동산 같은 데서 본 그런 평범한 것들과는 틀려. 진짜 유령이 나오는 곳이야!"
"진짜 유령이 나와요?"
아들이 흥미를 보이자 장건영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럼! 진짜 귀신이 나와. 가면 같은 거 뒤집어 쓴 가짜가 아니라 진짜가 나와. 어때? 무섭
지 인하야?"
"안 무서워요. 진짜 귀신 나와 보라죠, 뭐. 재밌겠는데요."
"야, 우리 아들 대단하구나. 강심장이야, 아주. 그럼 유령의 집 잠깐 들렸다가 바로 놀이동산
가자, 응~? 저녁에는 할머니 집에서 파티도 열고. 어때, 근사하지?"
"예. 좋아요."
인하는 정말로 아이들치고는 담력이 강한 편이었다. 그는 놀이동산 같은 데를 가더라도 꼭
유령의 집 코너는 들릴 만큼 공포 애호가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하는 진짜 유령의 집이라
는 곳에 잔잔한 흥분감이 발동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겹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후의 태양 볕에 뜨겁게 달구어진 자가용
안에서 혓바늘이 나도록 마른 과자나 씹고 있자니 따분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인하는 창문 밖으로 목을 쭉 빼서 멀리 언덕 위를 바라보았다. 조그마한 붉은 벽돌 단층집
이 보였다. 아버지와 어른들의 말들을 종합해보면 바로 그곳이 유령의 집이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밤마다 그 집에서 여인의 중저음에 가까운 절규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때로
는 히히히힛, 하는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아비규환을 연상시키는 처절한 비명소리도 들려온
다고 한다.
인하는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폐허처럼 변해버린 마을은 황량한 벌판 그 자체였다. 모든 식물과 나무들이 검게 시들었거나 죽어 있었다. 사람의 기척은 고사하고 새나 벌레들의 움직임조차도 찾기 힘들었다.
인하는 다시 언덕 위를 바라보았다. 저 조그마한 집이 주변의 모든 동물과 식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집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체 같이 여겨져 섬뜩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작고 초라해 보이네요."
둥근 금테 안경을 쓴 조진선이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만한 포즈로 팔짱을 끼고 있는
그녀는 비교적 빠른 나이에 정교수가 되었음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여자
였다. 단아한 흰색의 블라우스가 그녀의 살짝 나온 아랫배를 가려주고 있었다.
"교수님, 그럼 저 곳이 무서운 전설이 전해지는 저주의 피막인가요?"
농구선수 만큼 키가 큰 박철준이 진선의 어깨너머에서 물었다. 그는 조진선의 조교였다.
"별로 그렇게 안보이지만 뭐, 그렇다는 군."
"제가 보기엔 그저 낡은 창고같이 보이는데요. 정말 유령 같은 것이 있을까요?"
"글쎄…… 이제부터 확인해봐야지.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온 거니까."
조진선은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고고학 교수였지만 심령학과 풍수지리에도 능
했다. 특히 강령술에 탁월한 재주를 가졌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 이유로 황사장이 특별
히 그녀를 초빙한 것이었다.
사실 심령학은 그녀에게 있어 고고학보다 더 전문분야였다. 고고학 교수라는 감투는 근엄한
척하는 학계 인사들을 녹일 줄 아는 그녀의 빼어난 사교술이 얻어 낸 결과물이었다. 그녀는
지렁이가 무서워 땅을 파지도 못하는 여자였다.
문득 조진선은 어딘 가로 곁눈질을 했다. 자신과 좀 떨어진 위치에 있는 앳된 얼굴의 여학
생이었다. 여학생의 반짝이는 눈빛과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 립스틱 없이 붉은 입술, 화장기
없이 하얀 피부가 몹시 거슬렸다. 가만히 있어도 싱그러움이 절로 묻어나는 그녀의 생생한
젊음이 자신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쟤는 뭐 하러 데려왔어?"
조진선이 냉랭한 목소리로 내뱉자 박철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해했다.
"쟨 왜 허구헛날 너만 졸졸 따라 다니는 거야?"
"예? 그, 글쎄요……."
박철준이 말을 더듬자 조진선은 그를 힐끗 바라보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쟤하고 그거구나?"
"옛? 그, 그거라뇨……!"
박철준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표정을 외면하며
조진선은 같잖다는 듯 코방귀를 뀌었다.
"쳇, 말랑말랑한 애가 좋다 그거지?"
"교수님, 그런 거 아니에요. 오해하시지 마세요. 흉가 체험 같은 거 꼭 해보고 싶었다면서
하도 졸라대기에 마지못해 데려 온 거예요."
박철준은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조진선은 저만치 멀어지며 차갑게 말했다.
"내일 학장과 오찬 있는 거 알지? 너 하고 같이 가려고 했는데 그만 두어야겠어. 넌 연애하
느라 바쁠 것 같구나."
조진선이 멀어지자 박철준은 낭패라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쥐었다. 그가 주먹을 쥐
자 그의 근육질 몸매가 탄력 있게 수축되었다.
그 멋진 근육질 몸을 훔쳐보고 있던 이유미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아까부터 다른 일을
하는 척 하면서 교수와 박철준이 소근거리는 것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교수
가 철준에게서 멀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다가간 것이다.
"왜 그래 오빠? 무슨 일 있어?"
"별 거 아냐."
"왜? 저 여우가 뭐라 그래?"
"아니라니까."
"아니긴! 딱 보니까 저 여우 화난 거 같은 데 뭘. 왜? 나 데리고 왔다고 오빠한테 뭐라 그러
는 거야?"
철준은 기가 막히게 문제의 핵심을 포착해내는 이유미의 육감이 놀라웠다.
"미친년. 지가 뭔데 난리야.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건대! 뒷구멍에서 호박씨나 까는 주제에
잘난 체 하기는."
"야, 너 교수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내가 뭘? 학교에 소문이 파다한데. 저 여우 학장 첩인 거 모르는 사람 어디 있다고."
"야! 그만 하지 못해!"
철준은 누가 들을까봐 언성을 최대한 낮추면서 유미를 질책했다.
"참, 오빤 괜히 신경질이야. 혹시 저 여우 오빠한테도 찝쩍대는 거 아냐?"
"너, 정말……!"
"알았어. 그만 할게. 하지만, 오빠 조심해. 저 여우 남자라면 늙었건, 젊었건 킬러야! 괜히 걸
려들어서 이상한 소문 나고 그렇지 말라고."
철준이 뭐라고 대꾸하려 하자 유미는 그의 팔짱을 다정하게 끼며 말문을 막아버렸다.
"참, 그런데 저 집 말야. 정말 유령 같은 게 나올까? 응, 오빠?"
유미는 철준의 근육질 팔뚝에 어깨를 기댔다.
멀리서 그 모습을 흘겨보는 조진선은 어이없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기 조교수님."
문득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강주민이 시가를 뻐끔거리며 웃음 띤 얼굴을 하고 있
었다.
"예, 강회장님."
그녀는 애교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안향숙이 입술을 삐쭉댔
다. 하지만 조진선은 안향숙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교수님 보기엔 어떻습니까? 이상한 기운 같은 게 느껴지십니까?"
"글쎄요, 뭐라 할까…… 저 곳에서 좋지 못한 기운이 발산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쳇, 그런 말은 누가 못할까봐."
안향숙이 빈정거렸다.
"이 사람이 정말! 당신이 뭘 안다고 함부로 나서고 그래? 조교수님은 심령학, 풍수지리학 분
야에서 최고 권위자셔. 그 좀 모르면 잠자코나 있어."
강주민은 아내를 호통친 뒤 다시 조교수를 향해 웃음 만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참 교수님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단하신 분 같아요. 젊으신
나이에 다양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고루 습득하시고 또 학계에서 높은 인정을 받고 계시니
참 대단하십니다. 고고학에, 심령학에, 풍수지리학에 외국어까지 잘 하신다 고요? 참 존경스럽습니다."
"너무 과찬이십니다."
"아무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교수님께 꼭 보답하겠습니다."
조진선은 예상치 못했던 강주민의 호의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이 요동치는 흥분을 주
체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컴퓨터보다 빠른 계산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강주민은 아내에게 조금도 애정을 보이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는 머리 나쁘고 치장하
기만 좋아하는 아내에게 싫증을 느끼고 있다. 그가 원하는 여자는 바로 자신처럼 똑똑하고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저명한 학자이다. 미모에서도 안향숙보다는 훨씬 자신이 있다. 안향숙
은 패션 감각도 빵점이다. 그녀는 남편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고 있는 미련한
여편네에 불과하다. 강주민은 나 같은 여자를 동경하고 있다. 나 역시 그의 재력을 동경하고 있다.
"앗, 이장님이 여긴 웬일이십니까?"
황사장이 제법 큰 소리로 말하자 주위에 있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황사장은 곤란스러운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그가 달려가는 방향에선 환갑을 넘
었음직 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명과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젊은 여자 한 명이 이쪽으로 다
가오고 있었다.
"이장님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황사장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이보게 황사장. 어떻게 오셨냐니?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 그토록 자네에게 알
아듣도록 일러주지 않았던가!"
"그 참 이장님도……! 이장님이야 말로 지금 와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 끝난 얘기
아니었습니까? 왜 이제 와서 또 그러십니까? 정말 이러시깁니까? 저 좀 살려주세요. 이번 건 성사 못시키면 저 깡통 차야 합니다. 제발 좀 그냥 잠자코 계셔 주세요."
황사장은 늙은 이장의 손을 잡고 애걸하듯이 부탁했다.
하지만 이장의 눈빛은 단호해 보였다.
"이 사람아. 이게 어디 그렇게 떼쓴다고 될 일인가? 자네도 저기 있는 저 사람들도 모두 다 큰 실수를 범하고 있는 걸세. 그걸 왜 모르나 이 답답한 사람아."
"그 정말, 이러시깁니까! 정말 너무하십니다. 제가 일만 잘 끝나면 마을 기금도 내고 이장님
께 소도 한 마리 사 드린다고 했잖습니까? 왜 자꾸 방해하려 그러십니까?"
"그게 아닐세 이 사람아! 너무 하는 건 자네들이야! 그깟 푼돈 기금이니 소 대가리 따윈 나
바라지도 않네. 그냥 얌전히 돌아가는 게 좋을 걸세. 그게 자네들 신상에 좋을 거란 말이야!"
황사장은 거침없이 얘기하는 이장에게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장은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경고하듯 큰소리로 말했다.
"내 말 잘 듣게. 지금이라도 저 사람들 데리고 여길 돌아가게. 자네들 지금 저 피막엘 들어
간다면 오늘밤에는 못 나올 걸세. 틀림없이 말하건대 오늘 중으론 못나와. 내일 중으로도 못
나와. 영원히 못나와. 알겠어? 삼 백년도 더 된 오래된 저주야. 결코 무시할 것이 못돼! 다
들 죽어버릴 거야. 피막의 원한이 자네들을 영영 삼켜버릴 거라고!"

 

피막 2에서 계속... by 살인교수

http://cafe.daum.net/suttlebus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