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아.이+ THEME ZONE #4 - 동제단편 "기념일"
『 baby, MY BABY 』
"난 어렸을 적부터 늘 남들에게 뒤처진다는 생각을 가져왔죠"
퍼석한 눈동자를 들어올리며 여자가 숨을 몰아쉬듯 내뱉았다.
담배연기로 흐릿해진 실내 공기와 칙칙한 빛깔의 천장 한가운데 매달린
암울한 조명이 그녀의 얼굴만을 집중적으로 비추어 내리고 있다.
덕분에 여자의 얼굴은 빛 그림자로 인해 한층 더 피곤해보인다.
"교수이신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정교육과 성품, 인품 그리고 교육수준까지
보통 아이들보다 월등히 뛰어났죠.
가정 형편 수준도 일반 가정보다 훨씬 높았어요.
늘 깔끔하고 지적인 외모, 또래보다 성숙한 생각, 교수 부모를 둔 외동딸.
이만하면 갖추어질 만큼 다 갖추어진 것 아니겠어요?"
한숨을 쉬지도 그렇다고 넋두리를 내뱉는 어조도 아니었다.
담담하게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그렇게 단조롭게 그리고 느긋하게 이어갔다.
"하지만, 전 늘 무언가를 동경했어요.
그 동경의 대상이라는 것은 다름아닌 '유행' 이었어요. 후후, 우습지 않아요?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동경하는게 고작 유행따위라니,..
그것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죠.
처음에는 그런 감정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 아 아니, 그것보다도
제가 그따위 허접잖은 것을 동경하고 갈망한다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꼈어요.
그런것 따위 태어날때부터 나와는 거리가 멀었고,
언제나 나는 타인의 눈에 비춰질 때 엘리트하고 럭셔리해 보이는게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 사람은 극과 극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던가요,
그랬나 봐요, 나는 억눌러져 있던 나의 생활을 탈피하는 방법으로 '유행'을 동경했던 거죠.
언제더라, 고등학교 2학년때였던가?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죠.
당시 한참 유행하던 머리란게 일자 앞머리었어요.
난 여고를 다녔거든요.
아시다시피 여교에서는 유행이란게 금방 퍼지거든요.
너나 할 것 없이 일자 앞머리를 자르고 오더군요.
사실 부러웠어요.
그래서, .. 나도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앞머리를 잘라버렸죠.
나도 유행의 대열에 낄 수 있다는 것이 내심 좋았지만, 반응이 어땠는 줄 아세요?"
여자는 잠시 말을 끊는다.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유행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 여자의 눈은 웃는 것처럼 보였다.
눈은 웃고 있지만, 왠지 말을 내뱉고 있는 입은 울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형상이였다.
곧 울고 있는 것 같은 입에서 웃음소리가 문자 그대로 튀어나왔다.
웃는 것이 아닌, 웃음소리만이.
"후후후, 그래요.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쳐다봤어요.
늦게서야 발견하게 된 저의 어이없는 모습에 부모님들은 굉장히 화를 내셨죠.
머리를 처음 자르고 학교를 갈 때는 거울 속의 제 모습이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교무실에서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같은 반 학생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부모님에게 매를 맞고 나자 거울 속 제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더군요.
저에게는 그 유행이라는 것이 어울리지가 않았던 거에요.
태어나서 이제까지 그런것과는 거리가 멀다가 어느날 갑자기 바꾸려 하니까
익숙하지 않았던 거죠.
전 그런 제 모습이 너무너무 싫었어요."
여자가 다시 한번 눈으로만 싱긋 웃어보였다.
"지루하신가요? 그래요, 이제 시작해요.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아이를 낳았죠.
일찍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뜻대로 대학 졸업 후 부모님 친구분의 아들과 결혼을 했어요.
남편의 학벌이나 재력따위는 저는 관심이 없어요.
저는 단지 아이가 필요했거든요.
제 아이는 저같이 키우고 싶지 않았어요.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지 않도록 키우고 싶은게 저의 바람이였죠.
외모에서부터 성격, 지적 능력과 안정된 환경, 이상적인 부모, 그리고 '유행'까지도
모두 제 아이에게는 어울리도록 남들에게 칭찬받을 만큼 만들고 싶었어요.
다행히 딸이었어요,
아이에게는 제가 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유행'들을 누리게 해줄 생각이었죠.
아이의 첫 돌 선물로 뭘 해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반지나 팔찌같은건 너무 흔하니까
좀 더 색다른걸 해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작은 큐빅 귀걸이를 선물해주었답니다.
어릴 때 귀를 뚫어놓으면 막히지 않기 때문에 커서 편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악세사리 점에서 아이의 귀뚫기를 거부하길래, 제 손으로 직접 뚫었어요.
처음 해보는 일이라 그런지 서툴러서 피가 제법 많이 났습니다.
귀를 뚫고 나면 소독을 해야하고, 마이싱이라는 것을 먹여야 되는 지도 몰랐어요.
제가 그런걸 해본 적이 있어야죠"
여자가 또다시 작게 웃는다.
그러고 보니 여자의 얼굴에는 악세사리 한 점도, 화장기도 없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은 약간의 귀티를 띄고 있었지만 흐려진 눈동자와
너무 새빨간 입술때문에 약간의 귀티마저 귀기로 투영되어 보였다.
"아이 성격은 저와 남편을 너무 닮아서 소심했어요.
또래 아이들보다 지적 능력은 뛰어났지만, 활동성과 적극성이 결여되어 보였죠.
칭얼대지도 잘 울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뛰어난 인내심을 가졌죠.
하지만 귀를 뚫은 후 아이는 곧잘 칭얼대기 시작했어요.
한밤중에 자지러질 듯 울어댈 때도 있었지만, 그리 신경쓰지 않았죠.
어느날인가 아이를 목욕시키다가 잘못 귀를 건드렸었죠,
귀걸이를 꽂아 넣었던 부분에서 시커먼 고름들이 쏟아지는 걸 보고
거의 반 정신이 나갈뻔한 나는 아이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어갔어요.
.. 아이의 귀는 썩어가고 있었어요.
순금이 아니면 부작용이 생기는 특이성 피부를 가진 체질이란걸 몰랐죠.
그리고 내가 관리도 너무 허술하게 해뒀던 거에요.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이의 귀를 두쪽 다 절단했어야 하는 상황이 될뻔했죠.
뭐 그래도 듣는데 지장은 없었겠지만, 귓볼이 없다면 귀걸이를 할 수가 없잖아요.
결국 귀걸이를 빼고 귓속의 고름을 빼내는 수술을 했었죠.
나를 어처구니 없이 바라보던 남편과 의사의 눈초리가 아직도 선하네요."
여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귓볼을 만지작거렸다.
아이의 귀가 없어진다는 것보다는 귀걸이를 할 수 없게 되니까 귀를 잘라내지 못해요,
하는 식의 말투였다.
"그 애가 7살이 되던 해던가, 학교를 일찍 보냈었죠.
전국적으로 조기 영어 열풍이 불었어요.
아, 아마 아실거에요.
언론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한 적이 있었으니까.
조기 영어 열풍도 우리 아파트에 찾아왔죠, 그리고 은밀하게 전해지는 다른 '유행'이 있었어요.
아이의 혀 수술이었죠.
아시죠? 영어 발음을 위해 아이 혀를 절단하는 거요.
물론 혀는 아니죠, 혀 아래쪽 근육을 조금 절단하는 거래요.
다른 층 엄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아이들의 혀를 조금씩 잘라냈어요.
나도 질 수 있나요?
내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 수술을 받았죠.
절단한 부분이 아물려면 이주일 정도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남편에게는 철저하게 비밀로 했어요.
남편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한국의 대표적인 남성상이었거든요.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아이는 여전히 한마디 말도 없었죠.
밥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훨씬 수척해진 모습이었어요.
링겔과 영양제는 계속 투여받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하는데 그리 지장은 없었어요.
그날 저녁이었어요, 평소에는 아이를 잘 찾지 않던 남편이 느닷없이 아이를 찾더군요.
아이는 여전히 표정없이 남편에게로 가서는
남편이 묻는말에 대답도 않고 잠자코 서 있기만 했죠.
화가난 남편이 아이를 다그치자 그제야 아이가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하는데,
아니, 말을 하고는 있는데 티비의 음소거 모드처럼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남편은 아이의 입을 벌리고 들여다보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어요.
그리고는 나를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보더군요,
'네 짓이지?' 하고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면서요.
곧 남편이 부른 것인지 곧 앰뷸런스가 도착했어요.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치기 전 남편은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아이의 입속을 보여주더군요.
아이의 혀는 잿빛 돌같아 보였어요,
딱딱하게 굳어진 혀는 입속에 그대로 눌러붙어 있었던 거죠."
여자는 그때 만져보았던 아이의 혀의 감촉을 되살리듯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손가락을 가늘게 떨었다.
"난 몰랐어요, 아이가 그렇게 되었는지.
통 나에게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 아이는 아직 어리니까
나와 충분하게 의사소통을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뭐 모르죠.
일주일까지는 딱딱하게 굳어져있다가 이주일이 되면서 풀어진 혀는 영어 발음이 잘 될지,"
여자는 그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진지한 듯 얘기하며 다시 한번 웃어보였다.
"그 일 이후로 남편은 나를 고소했어요.
아동학대죄라나 뭐라나, 이게 말이 되요?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을 내가 학대한다는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구요,
다 내 자식 잘 되라고 하는 일인데, 그걸 왜 몰라준단 말입니까,
이렇게 지극한 모성애 본 적 있습니까? 있냐구요!
난 내 딸을 최고로 만들어 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여자는 흥분한 듯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결국 그 자는 내 딸을 뺏어갔어요, 그리고 내 인생의 낙도 가져갔죠.
난 이혼당하고 고소까지 당했습니다.
부모님들은 날 호적에서 파겠다고 난리셨죠. 후후
..그 아이는 아직 여덟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
아직 할게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 나한테서 뺏아가다니."
여자는 결국 혼자 중얼중얼거리다가 나에게 한마디 내뱉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을 다른 누군가가 가지려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찾아올 수 없는 경우라면 그 소중한 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 ......"
"후후, 그래요. 뭐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겠죠."
여자는 잠시 시간을 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빛이 눈부시지도 않은지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다시 나에게 말했다.
"제 딸아이 사진 좀 보여주시겠어요?"
나는 말없이 서류를 뒤적거려 여자의 딸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커다랗고 시원한 눈과 뚜렷뚜렷한 이목구비, 하얀 피부가 마치 인형같은 아이다.
여자는 사진을 한참동안 미소지으며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아가, 작년 어린이 날에 받은 네 코 얼마짜리인지 잊지 않았겠지?
그래, 제작년 어린이 날에는 턱을 해줬던가?
후후, 엄마도 늙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네, 이마인지 턱인지 모르겠어.
그래, 올해 어린이날에는 무슨 선물 받고 싶니?
나중에 엄마한테 얘기해주렴, "
여자는 아이 사진에 쪽하고 입술을 갖다대더니 빙긋 웃으며 나에게 사진을 되돌려준다.
"자, 그럼 가실까요."
여자의 하얀 환자복이 조명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고 생각한 순간,
여자가 뒤돌아 서며 책상위의 아이 사진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아가, 아빠에게는 말하지 마렴.
네 치아 보조기가 도금이라는 거 말야,
.. 알지?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 부족한 글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글 퍼가실 때에는 적월매혹 이라는 제 필명과
제 홈피 주소를 함께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
written by_赤月魅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