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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여왕’ 연수영 」4고구려 수군의 승리 ⑶

개마기사단 |2011.10.01 19:40
조회 107 |추천 0

● 해양도해전(海陽島海戰)

 

설만철이 이끄는 수군이 창려해전에서 완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당나라의 수군 총사령관 장량은 고구려 수군이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사태를 심각한 수준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직속 부관인 영협(英挾)과 강회(岡灰)를 시켜 고구려 수군의 본거지를 수색하도록 하는 한편, 창려참에 대한 보급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645년 6월 19일에 남황성(南皇城)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이곳의 백성 6천여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성주인 모대곤(牟大坤)과 8천여명의 병사들이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당군의 남황성에 대한 보복공격은 이내 탐망선을 띄우며 주변정찰과 정보수집에 힘쓰고 있던 연수영의 석성 본영에도 보고가 들어갔다. 연수영과 그의 부하 장수들은 극도로 분개했다.

 

“당괴들이 아직도 혼이 덜 난 게 분명합니다! 아마도 설만철이란 놈이 이세민에게 혼이 나도 단단히 났을 겁니다. 목이 달아나지 않은 게 이상한 노릇이지만…… 어쨌든 우리 수군은 첫 출전에서 대승을 거두어 사기가 많이 올랐습니다! 전란 통에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할 수 없는 이곳 장산군도의 수부들이 수군으로 자원입대해서 병력도 1만여명으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창려에서 노획한 당괴의 배를 개조 수리하고, 또 새로운 전함도 부지런히 만든다고는 했지만 물자가 부족한 탓에 아직도 전함이 대선과 협선 모두 합해봐야 2백척도 못 되니 여간 딱한 노릇이 아니오! 화살은 그동안 백성들의 힘까지 보태어 열심히 만들어 20여만대나 비축할 수 있었소이다. 다만 재물이 부족해서 군사들과 격군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게 딱합니다.”

 

참좌 장운형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한다. 당시 고구려 조정에서 수군에 지원하는 예산은 육군의 절반 정도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병력과 군선을 확충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전황이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병력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비록 육군의 절반에 해당하는 예산이지만, 한번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받아먹을 수 있었던 것은 연수영의 오라버니인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배려 덕분이었다.

 

“이번에 남황성을 점령한 당괴의 장수는 구효충(丘孝忠)이란 놈인데, 이 자가 거느린 수군은 병력이 2만명에 군선이 4백척이나 됩니다. 모두 영주·협주·강주·회주 등 당나라 남쪽 지방에서 징발한 군사들이라고 합니다. 남황성 함락으로 기세가 오른 적군은 지금 눈알이 시뻘겋게 우리 수군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척항문 고성운의 보고를 듣고 연수영의 두 눈동자가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남황성을 탈환해서 포로로 잡힌 우리 백성들을 되찾고, 적군의 안시성에 대한 후방 진공(進攻)을 막아야 하오! 제장은 즉시 출전 준비를 서두르시오!”

 

645년 6월 하순, 연수영의 석성 수군은 두번째 출정을 감행한다. 이 때의 수군 병사는 1만여명에 가까웠고, 대선이 1백여척에 중·협선은 2백여척 정도 되었다. 연수영의 함대는 일단 가도군도(佳島群島)에 주둔하면서 고성운의 척후선단을 멀리까지 내보내 적군의 움직임을 탐지하도록 하였다.

 

아군의 두 배가 넘는 구효충의 대함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연수영은 가도가 고구려 수군의 본영으로 보이게 여러 채의 가건물로 된 가짜 군영을 설치하고 첩보공작대를 시켜 이곳이 고구려 수군의 본영이라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도록 한 후, 요동반도 남단의 가시포로 작전상 후퇴를 했다.

 

구효충은 고구려 수군을 찾아 요동반도 남해안 일대를 샅샅이 뒤지며 다니고 있었다. 당군은 고구려 수군이 묘도에서 거의 궤멸되었으나 아직도 상당한 전력(戰力)을 보유한 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본영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당군은 연수영의 공작대가 퍼뜨린 거짓 정보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가도군도에 이른 당 수군은 고구려 수군의 군영을 발견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모두 때려 부수고 태워버린 뒤에 보니 그 진영은 겉모양만 그럴듯한 가짜 진지였다. 그때 첩자들로부터 고구려 수군 함대가 지금 가시포에 있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빨리 쫓아라!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마라!”

 

구효충은 소리쳐 명령을 내리고 즉각 추격전을 펼쳤다. 고구려 수군이 이젠 완전히 겁을 먹고 달아나기에 급급한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무려 5일 이상이나 기항(寄港)을 하지 않은 채 무리한 수색을 감행함으로써 당군은 지칠 대로 지치고 말았다. 기진맥진한 군사들이 배 위에서 탈수증으로 죽거나, 설사로 지쳐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난간을 넘어 빠져죽거나, 심지어는 배를 끌고 그대로 본국 쪽으로 집단 탈영하는 자들도 있었다.

 

연수영은 이런 당군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하게 꿰뚫고 있었기에 특공대를 태운 수십척의 쾌속선을 보내 기습공격을 벌이도록 하여 당군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석성도에서 출전한 지 4일째 되는 날에 연수영은 장수들을 대장선으로 소집했다.

 

“모두 들으시오! 당괴의 목적은 우리 수군 본영을 찾아내 없애고 압록수나 패수 하구로 상륙하여 황성으로 진격하려는 것이오. 이제 우리는 해양도로 이동해 적군의 전략을 역이용하여 배후를 봉쇄하고 이자방진(二字方陳)을 펴서 반격할 것이오.”

 

장수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구효충이 이끈 당 수군은 드디어 해양도까지 추격해왔는데, 그들은 이곳 해역의 물때와 풍향에 어두웠다. 그런 탓에 역풍과 역류에 시달리며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고구려 수군은 육지와 섬 사이 해협을 서둘러 빠져나가 섬 뒤쪽으로 돌아가서 일제히 뱃머리를 돌려 다시 섬을 우회했다. 그리고 열심히 추격해온 당군 함대의 후미로 재빨리 돌아가서 진세를 펼쳤다. 연수영의 함대는 전면에는 대선들이 이자방진을 펴고, 그 좌·우익과 후위에는 중선과 협선들이 포진하여 당군 함대의 배후를 차단했다.

 

마침내 적군 함대가 사정권에 들어오자 연수영은 높은 목소리로 군령을 내렸다.

 

“궁수(弓手)들은 수사(水射)를 준비하고, 창검수(槍劒手)·도부수(刀斧手)·방패수(防牌手)는 궁수를 엄호하라!” 

 

당 수군은 고구려 수군이 갑자기 배후에서 나타나 퇴로를 차단하자 당황했다. 수백척의 함대가 일시에 뱃머리를 돌리려는데 마침 해류가 역류였다. 혼란은 필연적이었다. 당 수군은 고구려 수군을 공격하려고 서둘러 함대를 회전시키다가 자기네 전함끼리 부딪쳐 노와 키가 마구 부러져나갔다. 그런 배들은 금세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통제 불능상태에 빠진 당군의 전함들은 고구려 수군의 날렵한 중섬과 협선으로 구성된 돌격대와 유격대의 먹이감으로 전락했다.

 

“쏘아라!”

 

연수영이 벼락처럼 소리치며 군령기(軍令旗)를 힘껏 휘둘렀다. 갑판에 일렬로 늘어선 궁수들이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궁수들마다 바로 곁에는 방패를 든 병사들이 커다란 방패로 궁수들의 몸을 가려 사격하는 궁노수를 적군의 화살로부터 보호해주었다. 2인 1조의 궁수와 방패수 바로 뒤에서는 제2열의 궁수대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화살을 시위에 먹이고 있다가 제1열이 발사를 하고 방패 뒤로 몸을 숨기면 바로 그 자리에 교대로 들어가 화살을 날렸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연속사격이 이루어졌다.

 

연수영은 평소에 이와 같은 연사(連射) 훈련을 실전과 다름없이 반복해서 실시했기 때문에 궁수와 방패수 간의 호홉이 척척 맞고, 궁수와 궁수 간의 교데에 거의 빈틈이 없었다. 훈련이 실전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렇게 증명되었다. 적선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궁수들은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던 곡사법(曲射法)을 수평으로 발사하는 직사법(直射法)으로 바꾸었다. 화살에 정통으로 맞아 픽픽 쓰러지는 적병의 모습이 육안으로도 분명히 보였다.

 

마침내 전면의 적선들이 전의를 잃고 갈팡질팡 허둥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도 거의 부러지고 키도 부러져나갔으니 달아나고 싶어도 달아날 방도가 없었다.

 

이자방진의 후위를 맡은 전함들은 계속해서 석포를 통해 석환·철환·창뢰·화토병 등을 쏘아 날렸다. 마침 풍향이 고구려 수군에게 절대로 유리한 서북풍이었다. 적선이 기동력을 잃고 우왕좌왕하자 연수영은 총공세를 펼쳤다. 육박전에 앞서 연수영은 본격적으로 화공을 펼쳤다. 화토병과 불화살의 세례를 받고 당군 전함은 한 척 한 척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연 도사! 저기 제일 큰 누선에 적장이 타고 있습니다. 구효충이란 놈이오!”

 

장운형이 적군 함대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연수영의 얼굴에 흥분의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좋은 기회요. 장 장군, 오늘 반드시 저 놈을 잡읍시다!”

 

연수영은 급히 전령을 돌격장 모청호와 전위장 강철우에게 보내어 구효충의 지휘선인 누선을 직공토록 명령했다. 그리고 적군의 대장선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3층 누선의 꼭대기 지휘대에 화려한 붉은 갑옷을 입고 붉은 투구를 쓴 채 소리소리 지르는 비만형 체구의 장수가 구효충이었다. 속력이 빠른 중선과 협선들이 아군 대선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적선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돌격해 들어갔다. 쇠갈고리를 매단 밧줄이 연달아 당군 전함의 갑판에 날아가 걸렸다. 칼과 도끼를 허리에 찬 고구려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밧줄을 잡고 적선에 기어올랐다. 선두에 서서 도선(渡船)을 시도한 돌격장 모청호가 가장 먼저 구효충의 대장선에 뛰어올라 사람 키보다 훨씬 더 긴 장창(長槍)으로 부장들과 호위병들 속에서 허둥대는 구효충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구효충이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르지 못하고 쓰러져 즉사하자 그의 부장과 호위병들은 앞다투어 누각에서 달아났다. 달아나봤자 바다 속으로 풍덩 풍덩 몸을 던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전투가 고구려 수군의 대승으로 끝나자 연수영은 모청호가 잘라 가지고 온 구효충의 수급(首級)을 대장선 큰 돛대 위에 매달아 모든 군사가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큰 돛대 위에 높이 효수된 적장 구효충의 머리를 보자 고구려 수군 장병은 다시 한 번 바다가 떠나갈 듯 커다란 환호성을 올렸다. 취타병들은 피리와 나팔을 불고 징과 꽹과리를 마구 두드려댔다.

 

장소원(張昭遠)·가위(賈褘)·조희(趙熙) 등이 편찬한『구당서(舊唐書)』는 해양도해전에 대해서 "총관 구효충 등에게 군사 2만여명과 군선 수백척을 주니 압록수로 나아가 불을 환히 밝혔다. 해양도에서 해적이 나타나고, 풍랑이 일어나니 일부가 돌아왔다"하고 간략하게 기록하면서 당 수군의 패전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였다. 그러나 요령성 대련시 대흑산성의 비사성비편(卑沙城碑片)은 고구려 수군이 해양도해전에서 당 수군을 크게 무찔렀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이 해양도해전을 통해 당 수군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고, 압록수나 패수로 진격하려는 전략은 당분간 희망사항으로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또한 요동을 공략하는 이세민의 본진 등 육군에 대한 보급은 심각한 차질을 빚었다. 물론 연이은 패배에 따른 당 수군 장졸들의 사기 저하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연수영은 해양도해전의 승리로 여당전쟁의 주 전선을 안시성과 천산산맥으로 일단 고정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연수영은 개전 이후 벽류하 상류의 본성인 석성을 떠나 수군기지가 있는 바다의 석성에서 머물렀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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