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하나님의 눈

오택만 |2011.10.06 01:25
조회 78 |추천 0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표현들 가운데서, 다시 살펴보면 우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화장실이 급하다.” 실제로 ‘화장실’이라는 명사가 ‘급하다’라는 뜻은 아니지만, 관용적인 표현으로 ‘빨리 가보게!’ 라고 대답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뜻은 통하지요. “한눈을 팔다.” 한쪽 눈을 돈을 받고 팔아 넘기는 것이 아닌, 집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늘 사용하는 언어들. 그것들은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하여서 만들어졌고, 그러므로 언어들 안에는 우리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고, 가치관과 내면의 추구하는 바가 서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고 배워온 표현들과 사뭇 다른 표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성경 속에 담긴 독특한 면모들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시각과 마음을 알며 닮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3장 19절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아담에 대하여서 ‘흙으로 돌아갈 것’ 이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 즉, ‘흙에서 취함을 입었음’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땅에 사는 사람들이 그 땅 위에서 범죄 하게 될 때에는 땅이 저주를 받고, 또 그 땅 거민들이 죄악을 행할 때에는 그 땅이 그들을 토해내게 된다 표현되기도 합니다.

또,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을 때에 하나님은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창세기 4:11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범죄하면 땅이 저주를 받으며, 땅에서 누군가를 해치게 함으로 피흘림이 생기면 그 피흘림으로 땅이 더럽혀진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그 죄를 속할 수가 없다고 표현되어 있지요.

또한 그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며 기도하면 그 땅을 주님께서 고치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목자 되시고, 우리가 양이 되는 것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실 때 예수님이 우릴 인도하시는 것을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2-4절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들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만나주신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갖고서 만나주십니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넘어서 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입니다. 사탄이 오는 목적은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예수님은 양의 문이시며, 양의 목자는 문으로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양에게 온 것은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예수그리스도 안의 긍휼과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2

죄의 징벌과 책임에 대한 관점으로 받아들여서 흔히 생각하는대로 ‘형제에게 노하지 말아라!’ ‘형제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정복하고 싸우는 역사가 많았고 살인도, 유혈투쟁도 잦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예를 부리기도 했을 정도로 인간에 대한 권리 존중이 약하였지요. 그렇지만 오늘날은 노예제도가 없어졌고 인류공동체 안의 국가 간의 유혈사태는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고 전보다 사랑스레 대우하는 사회가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옛적보다 지금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람들은 사탄을 닮은 성품보다 하나님을 닮은 성품으로 총체적으로 변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이루는 원동력이 된 사람들은 크리스챤들이었으며 유대인들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아주 먼 미래 혹은 가까운 장래에는 사람이 사람에게 욕을 하는 것 자체에도 공적인 처벌이 허용된다든지 벌금부과가 매겨진다든지, 혹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제재하는 일들이 사회 안에서 통용되는 원칙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분명코 모든 민족들에게 축복하는 통로로서 선택하셨고 사용하고 계시며, 어쩌면 지구 밖 우주로까지 인류 사회가 발전 되어서 어느날 어느 행성에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지요.

“먼 옛날 지구의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은총이 오늘의 우리 사회 속에 이르기까지 생명으로 넘치도록 역사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 서양 문물이 동양에 들어온 것, 이러한 표현들 자체를 보아도 모두 유대인이 있었던 곳으로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된 역사사관이며 실제로 그러한 ‘인류 사회 선두’가 되는 사람들이 곧 크리스챤들이며 또한 유대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하나님의 민족으로서, 크리스챤은 새롭게 은혜로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의 통로요 복의 근원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려면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차이가 참으로 크다는 것을 자세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두 눈으로 사물을 봅니다. 두 개의 눈이 초점을 맞춰서 하나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지요. 사물이 눈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두 겹으로 겹쳐 보이기도 하고, 눈 앞을 가리면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눈은 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눈으로 본다는 사실은 굉장하게 많은 정보를 세밀하고 자세하게 지속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심령을 감찰하십니다.

예레미야 17장 10절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밤 하늘의 별을 보십시오! 빛은 매우 빠릅니다. 그렇지만, 무한대로 빠른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한정된 속도를 갖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밤 하늘의 별들 가운데서 지구로부터 빛의 속도로 도달하더라도 몇 년이 걸리거나 몇십년 몇백년이 걸리는 거리에 있는 별도 있는 것입니다. 빛의 속도로 1년동안 달려서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별과의 거리를 우리는 1광년이라고 지칭합니다.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어떤 별은 3만 광년, 어떤 별은 10광년, 어떤 별은 70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구상에서 오늘 바라보는 어떤 별의 모습은, 10년 전의 모습일수도 있고, 100년전 혹은 50년전의 모습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시각능력에는 여러 가지 제한과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대와 세대와 민족과 경계를 초월하여서 살피시고, 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역대하 16장 9절 상반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세기 2장 21-23절

하나님께 사람의 손과 같은 손이 있을까요? 하나님께 사람과 같이 손가락이 있을까요?

하나님께 ‘감각 기관’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보시는 것’에 대하여서는 인간 수준의 ‘보는 것’으로 한정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자신이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 안에서 다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은 보고 계시며 알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삶에 찾아오셔서 만나주십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은 분명코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구약성서를 연구하고 늘 가까이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배우는 것을 민족적 전통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교육이야말로 유태인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또 어느 랍비는 탈무드를 연구하는데 매일 아주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고 말합니다.

유태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오해를 낳을 만큼 유태인은 우수합니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40년도 (2011) 못되는 이민국인데도 주변을 둘러싼 아랍 여러 나라들로부터의 빈번한 전면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눈부신 승리를 거두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태인의 인구는 3%에 불과하지만 대학 진학률은 7.8%이고 정신 분석 의사의 14.3%가 유태인이며 변호사의 8%, 수학자의 7%가 유태인입니다. 미국의 대학에서는 최상위의 성적을 받은 사람이 파이-베타 카파 협회의 회원이 되는데, 그 33%가 유태인입니다.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 미국 유태인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거의 4분의 1이나 됩니다. 최초로 의무교육을 실시한 것도, 민주주의를 만들어 낸 것도 모두 고대 유태인이었습니다.

유태인이 지키고 배워온 것 때문일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훌륭한 교육을 지속하고, 훌륭한 교육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지속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탈무드는 구약성서를 가까이하며 랍비들이 토론하고 생각하며 또 그들의 삶 속에서 전수되어온 것들을 오랜 세월동안 편집하여 만든 것입니다.

유태인의 탈무드는 많은 지혜를 담고 있으므로 묵상하고 연구할 때 유익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성서 전체를 공부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공부하는 것을 통하여서도 만나주실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 삶에 이루어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장 2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자녀세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서 지켜 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6-9절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우리의 영적인 가족들에게도 늘 성경을 올바로 전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복음 24:46-48절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도행전 28장 30,31절

성령이 임하시면 우린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 주 예수를 전파하여 구원을 얻도록 하는 하나님의 사역자, 하늘의 전령이 될 수가 있습니다.

당신이 예수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서 생명을 얻었다면 그것은 태초부터 계획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1장 3-6절

우리의 신앙과 삶은 우리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붙드셔서 은혜를 주신 것이며, 우리가 순종함도 하나님의 의지에 의한 것입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로마서9장 15-18절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니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로마서 14장 4절

또한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신비는 우리 스스로의 지력으로 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로마서 11장 20-22절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탈무드에는 ‘자신의 결점을 찾는 데에 항상 열중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남들의 결점은 보이지 않으며, 남의 결점을 찾는 데에 항상 열중하고 있는 자는 자신의 결점을 보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두 가지 경우의 삶을 다 살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생각하건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도 좋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유태인 랍비의 가르침에 의하면 죄를 언제까지나 뉘우쳐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우울에 빠져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마음 속으로 크게 반성하고 두 번 다시 허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일단 반성하고는, 기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하님님과의 관계 안에 두시길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로마서 11:3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1:7

하나님이 우릴 선택하셨고,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부르심을 입어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깊이 연구하고 사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 아니면 이방인이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1장 16-18절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눈에 무엇인가 들어가면 눈물이 나고 아프게 됩니다. 눈꺼풀이 바쁘게 깜빡이며 움직이고 온 신경이 눈에 집중하게 됩니다. 손으로 비비게 되기도 하고, 아파서 입으로 소리지르게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눈은 아주 고귀하게 다루어지고 소중하게 보호되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9,10절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이 성경구절은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 노래의 말씀으로 읽어 들리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순종하고 존중하는 백성에게 좋으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신명기 32장 16,17절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신명기 32장 21절

“그들이 하나님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그 결과 이방인이라고 불리우던 우리들에게까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백성됨이 허락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장 13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장 9,10절

사도바울은 유대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지만 이방인을 위한 사역자로 택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9장 1-5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로마서 13장 13,14절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그리고 이제 곧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친히 살피시며 온전히 구원하시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비밀에 대하여서 이렇게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로마서 11장 25-32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마침내 유대인들은 온 세계 가운데서 가장 위대하고 존귀한 영예를 얻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인정되며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계시는, 중심 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광범위하게 많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이사야 55장 3-5절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이사야 54장 5절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54장 7,8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사야 60장 3절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국경 안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이사야 60장 18-22

그 하나님이 또한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 아브라함의 씨, 이삭의 자손, 영원한 나라의 백성 삼아 주셨으니 늘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