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종종 판에서 글 읽으며 시간 보내는 스물여섯살 여자입니다. 결혼한지는 올해로 일년 반 정도 됐네요.
오늘은 다름아니라 저희 남편 때문에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저희 남편은 저보다 세살 연상이니 올해로 스물 아홉 됐습니다. 남편을 처음 만난건 2년 반(2009년)쯤 전에 학교근처 카페였는데요. 저는 신촌에서 여대를 다니고 있었고, 남편은 옆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엄밀히 말하자면 아직도 다니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글 씁니다.) 제가 카페에서 친구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와서 번호를 물었거든요. 그 후로 1년 연애 후 결혼했습니다.
예단이니 예물이니 이런 건 양가 모두 별로 신경 안 쓰는 주의라서 형식적으로만 하고 결혼식도 신랑 친구 50여명, 제 친구 스무명 정도만 부르고, 나머지는 다 양가 부모님 손님들만 초대해서 조용히 치뤘습니다.제 친정은 전라도에 있고, 시댁은 충청도입니다. 결국 둘다 서울에서 유학생활하는 학생 부부죠. 흔히 나오는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에 대한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신랑도 친정에 아주 잘하고요. 문제는 결혼해서 맨날 둘이 붙어 있다 보니 연애할 때 랑은 또 다르더라구요...이래저래 고민도 많이 생기고...
휴...대충 이제 시작해 볼게요. 학생 부부라고 말씀 드렸죠? 결혼 얘기 나올 때 저희 둘 다 취직하고 돈 벌어서 생계 꾸려 나가려면 멀어서 좀 나중에 하는게 어떻겠냐 라고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남편이 자기가 돈 그동안 모아둔게 꽤 있다면서 결혼하면 집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생활비 정도는 자기가 댈 수 있다고 해서 결혼을 서둘렀습니다. 나중에 안 일인데 오빠는 이십대 초반에 군대 다녀오고 바로 복학을 안하고 휴학상태로 돈을 꽤 모아놨었습니다. 학교 다니면서도 돈버느라 휴학을 종종 했구요.
결혼하고 나서 통장들을 보니 그게 제가 생각했던 액수보다 훨씬 많더라고요. 정말 큰돈이요...오빠가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는 자세히는 이야기 안해줍니다. 말로는 진짜 운이 많이 따라 줬고, 위험한 일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놀라서 나쁜일이었냐고 물어보니 그건 아니고, 도박에 가까울 정도로 주식 판에서 옵션질도 하고, 몇군데 투자를 한게 대박이난거라고 합니다. 어려서 무서운줄 모르고 겁없이 해서 돈 모았다고, 다신 그렇게 안한다면서 말이죠... 저 만나고 나서는 그런거에서 다 손 땠다고 하고요. 앞으로도 다시는 안한다고 약속했구요. 그래서 지금 자산관리는 이율높은 제2 금융권에 보장 한도액까지 집어넣고 남는 돈들은 대부분 안전한 금융기관에 맡겨놓고 있습니다. 이자는 낮지만 오빠가 이제 재테크 같은데 관심 없다고 해서 주식같은건 정말 큰 회사 몇 개 빼곤 처분한지 오래됐습니다. 주변에서 건물하나 사서 임대료라도 받으라고 하는데 오빠는 그런거 하면 돈은 좀 더 생길지는 몰라도 건물관리에도 신경써야 되고 이래저래 귀찮은 일 생긴다고 반대를 해서 안하기로 했습니다.
양가 부모님들도 신랑이 구체적으로 얼마 가지고 있다는 건 모릅니다. 남편이 시댁에는 일부러 적게 알려드렸답니다. 돈 때문에 문제 생기는게 싫은거죠. 시댁은 지방에서 그냥 평범한 중산층입니다... 시아버지는 대기업 다니시다 몇해전 퇴직하시고 다른 일하면서 지내시고, 시어머니는 아직 직장에서 일하십니다. 두 분다 아직 일 잘 하고 계시고, 오빠 동생인 시누도 이제 대학 졸업하고 막 취업했고요. 저희 부모님도 아직 두분다 정정하게 일 잘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이제 독립한 오빠가 재산이 구체적으로 얼만지 일일이 알려드릴 필요는 없기도 하죠...
아무튼 그래서 금융이자로 생활하고 있는데 친정하고 시댁에 용돈 조금 드리고도 둘이서는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돈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길 줄 은 몰랐습니다. 오빠는 올해로 스물 아홉인데 취직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기는 이제 돈 벌어 놓을 만큼 벌어놨고 자기 소비패턴이 사치랑은 거리가 멀고, 지금 소비 정도만 유지하면 평생 써도 자기가 벌어놓은 원금엔 손 안대도 살 수 있다고, 집은 전세지만 자기는 굳이 꼭 집을 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지금 부동산 경기 몇년내로 거품 완전히 다 빠지고 탈탈 털릴거라면서 집은 나중에 사자고 합니다. 차도 지금 두대 씩이나 있고, 큰 돈 들어갈일은 집 정도만 사면 된다면서요. 아이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든다고 해도 세넷 정도 낳아도 죽을때까지 써도 원금 반밖에 못쓴다더군요. 영화에서나 나오는 비싼 스포츠카 몇대씩 사거나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동네에 집 사거나 하지만 않으면 된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다르거든요... 돈이 충분히 있다고는 해도 살다보면 어떤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일 생기고 나서 직장잡고 뭐하고 할 수 는 없는 일이잖아요...사회생활이 꼭 돈에만 관계된 일도 아니고 말이죠. 그런데 오빠 생각을 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빠의 하루 일과는 대충 이렇습니다. 평일엔 아침 여섯시 쯤에 일어나요. 일어나서는 전날 밤에 만들어놓은 야채+과일 주스를 마시면서 신문 좀 보다가 여섯시 반 정도에 조깅을 나가고요.(날씨 따듯할 때는 테니스 치러가거나 조깅을 하고 눈오거나 비오는 날, 추운 겨울에는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서 달립니다.) 한 시간 좀 넘게 운동하고 들어와서 씻고, 빵 한조각 +커피를 마십니다. 보통 이때쯤엔 저도 일어나 있어서 저는 이때 아침을 먹고요. 여덟시 반 쯤엔 학교 도서관에 갑니다. 거기서 책 읽고, 독후감? 서평? 비슷한 글을 씁니다. ㅡㅡ 열한시 반 쯤엔 자기 친구들 있는 연구실 중에 교수님 안 계신곳 골라 들어가서 자기 친구랑 차 한잔을 마셔요... 티 타임이래요...열 두시부터 다시 도서관에서 책 읽다가 한시쯤 되면 제가 도시락으로 만들어 준 샌드위치를 먹고 산책하든지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다가 두시부터 다섯시 까지는 또 책 읽고...그러다가 다섯시 좀 넘어서 부터는 근처 헬스장에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합니다... 일곱시에는 집에 들어와서 저녁 먹구요. 밖에서 저녁 약속 있는 날은 아홉시 쯤 집에 들어옵니다. 집에 들어옵니다. 집에 들어와서는 또 서재 들어가서 책 읽거나 저랑 같이 영화 보든지. 종종 주말에 축구경기 같은거 보러 친구들이랑 맥주마시러 갈 때 빼고는 거의 집에 있습니다. 기계 같아요. 기계... 가끔 술약속 있어서 늦게 들어오는 날 빼고는 내내 저 생활 이더라고요.
거짓말 같죠? 2010년 6월 말에 결혼하고 한달 신혼여행 다녀온 후에 신혼이라고 둘다 휴학하고 한 학기 정도 내내 같이 붙어 있었는데 정말 월~토요일은 저 스케쥴 그대로 삽니다. 일요일은 늦잠자고, 책은 안 보는 대신 같이 밖에서 영화보거나 공연보러 다닙니다. 처음 서너달은 좋았습니다. 걱정도 없고 책이나 보면서 근처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나 차 마시면서 영화나 음악 얘기, 책 얘기 이런거나 하면서 보냈으니까요. 신혼이니까 더 행복했던것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오빠도 복학하고 저도 복학하고 졸업하면서 대학원 준비하고, 대학원 다니고 있어요. 장래를 생각해 보면 이게 아닌것 같은데 오빠는 정말 속이 편합니다. 자기는 취직 하기가 싫대요. 취직한 친구들 보면 고시 패스한 친구들도 있고, 공기업 들어간 친구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회계사도 있고, 의사도 많이 있는데 다들 엄청 시달리면서 산다고 말이죠.
자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무식하고 위험해서 두 번하라면 못할 것 같은, 어떻게보면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으로 돈 벌어놔서 이제 안 벌어도 괜찮다면서요. 인생의 목표가 회사에서 일하는게 아닌 이상, 회사다니는건 자기 인생의 시간을 지불하고 돈으로 돌려 받는거라며 자기는 돈이 있는데 굳이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시간을 회사에 주기 싫다는 겁니다...일년에 1억씩 벌어서 저금해놔도 정년 때까지 명예퇴직 안당하고 버티서 모아놓는 것보다 자기가 모아놓은 돈이 많으니 맞는 말이긴 하지만 또 사회 생활이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지금이야 친구들도 아직까지 공부하는 사람들이 드물진 않지만 이제 다들 사회생활 할 나이인데 혼자 저렇게 유유자적 선비처럼 지내도 되나 모르겠어요... 말 그대로 조선시대 선비네요 선비...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지지난달에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제가 몇주간 바쁘게 할 일이 있어서 같이 못놀아 주고 그래서 제가 미안해서 주말에 친구들이랑 하루종일 놀고 온다는거 오케이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연락 없길래 재밌게 놀고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더니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온 사람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구들이랑 홍콩을 다녀온겁니다... 말 한마디 없이 외국 나갔다 온거네요.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얘기를 했는데 이거 그냥 별일 아닌걸로 취급해서 황당하더군요. 놀다온다고 말했었고 잘놀고 들어오지 않았냐... 이러면서요. 친구들이랑 오전부터 놀다가 기왕 오랜만에 노는거 재밌게 놀자면서 다녀온 것 같습니다...이게 아무렇지 않은 일인가요??
또 하나 있는데 이것도 지난달에야 불거진 문제에요. 지금 오빠랑 저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복층형 오피스텔에 전세로 들어와 살고 있구, 나중에 아이 생기면 이사가자고 합의해놓은 상태입니다. 옥상 부분은 테라스로 쓰고 싶어서 제일 윗층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말에 하루는 제가 친정에 혼자 다녀올 일이 있어서 오빠 혼자 집에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일이 해결되서 중간에 돌아왔구요. 오빠 깜짝 놀래켜 주려고 연락은 안하고 집에 돌아가고 있는데 지하주차장에서 멀리서 보니 오빠가 들어가고 있어서 몰래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오빠 먼저 엘리베이터에 타는 거 보고 다음번 엘리베이터로 따라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우리집 층수까지 안올라가더라구요...중간에 멈춘걸 보니 오빠가 거기서 내린겁니다...혼자 집으로 올라와서 기다려도 안 오길래 전화해서 오빠 불렀습니다. 어디냐고. 다른집 들어간거 다 안다고. 지금 어디서 뭐하는 거냐고 따지니 곧 올라간다더군요. 그런데 올라온걸 보니 오빠랑 오빠 대학 친구들이 같이 올라오더군요.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니 오빠는 우리집 오피스텔 건물에 하나를 또 전세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가보니 가관이더군요. 남자애들 방이었습니다. 완전히 남자애들... 오피스텔을 바처럼 개조해서 홈바도 만들어놓고, 벽에는 축구선수들 유니폼? 같은거 막 걸려있고, 그 스타워즈에 나오는 하얀색 병사 갑옷도 실물사이즈로 있고, 재주도 좋게 업소용 냉장고는 어디서 구했는지 엄청큰걸로 하나 구해놓고 거기에 병맥주가 꽉 차있더군요... 티비도 엄청 큰걸로 60인치는 되보이는 벽걸이 티비에다가 각종 게임기까지... 소파도 큰걸로 하나 놓고 말이죠. 오빠한테 이게 뭐냐고 그랬더니 아지트 비슷한 거랍니다.
오빠랑 친구들 다섯명이서 심심할 때 들어와 노는 곳... 사교 클럽 같은건데 여자친구나 부인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은 일절 데려오지 않는 조건으로 만들었답니다. 남자들끼리 놀때 쓴다고... 친구들은 거의다 회사다니고 있는데, 오빠처럼 결혼한 사람도 한명 있구요... 전세금은 오빠 비자금 (알고보니 비자금도 꽤 있더군요...)에서 빼서 마련한거고 티비는 친구 중에 한명이, 냉장고랑 술은 또 한명이 그런 식으로 아주 비밀기지를 갖춰놨더라구요... 주말에 외국 축구경기 하는거 보러 나간다고 할 때마다 사실은 여기서들 모여서 축구보고 맥주마시고 그랬다 그러드라구요...주말이나 공휴일 이런때 친구들은 여기 삼삼오오 모여서 빈둥빈둥 게임하고, 맥주마시고... 오빠 친구들 중에 한명도 유부남이라 그 사람도 부인한테 비밀로 하고 여기서 놀았대요. 학교 졸업하면 사회생활 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학생 때처럼 놀기 힘든건 이해하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저는 그 오피스텔 당장 계약 해지하라고 하고 싶은데 오빠는 못하겠답니다... 어제도 이 일로 싸웠는데 오빠에게 뭐라고 해야하나요...